게으름과 교만

 

 

[잠언 189, 12]

 

 

여러분은 성공을 가로 막는 장애물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병삼 목사님이란 분은 그의 책 “성공의 7가지 장애”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잘 넘어가야 할 성공 속에 감추어진 장애물들을 7가지로 나열했습니다(인터넷). 그 중에 두 가지가 바로 “교만”(Pride)과 “게으름”(Neglect)입니다. 저자는 교만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겸손의 문을 통해 들어오시지만 사단은 교만의 문을 통해 들어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게으름은 하나님과 의사소통이 단절되기 때문에 죄이고, 불평이 많아지고, 모든 사람들과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기 때문에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교만과 게으름을 어떻게 극복해 나아가야 합니까?

 

오늘 본문 잠언 18장 9절과 12절을 보면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일을 게을리 하는 자(one who is slack in his work)와 마음이 교만한 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두 구절 말씀 중심으로 “게으름과 교만”이란 제목 아래 게으름과 교만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게으름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 본문 잠언 18장 9절을 보십시오: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솔로몬 왕은 이미 잠언 10장, 12장 13장 등등에서 게으른 자에 대해서 여러 번 말했습니다. 그 말의 요점은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10:4).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게으른 자는 일을 부지런히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의 손을 게으르게 놀리고 있기 때문에(10:4) 가난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게으른 자는 손을 게으르게 놀리지만 그는 자기의 머리를 부지런히 굴립니다. 특히 악하고 게으른 종은 말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우리가 이미 잠언 15장 19절에서 묵상했듯이 악인은 꾀를 많이 부립니다. 그러므로 그는 게을러서 땀을 흘리면서 일하며 수고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악하고 게으른 종의 삶에는 동서남북으로 가시와 같은 어려움들로 둘러싸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입니다(마 25:14-30).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겼는데(14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습니다(15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 새(19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나 두 달란트 받았던 자는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는데(20, 22절)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24-25절)고 말했습니다. 그 때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는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26-27절)고 말했습니다. 다른 두 사람은 그 주인이 준 달란트를 가지고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즉각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내가 알았으므로”라고 말하면서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이렇게 악하고 게으른 종은 꾀나 많이 부립니다. 그래서 잠언 13장 4절에서 성경은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그는 마음은 원하는데 손을 게으르고 놀리기 때문이 그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12:27)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9:24, 26:15). 웃기지 않습니까? 고기를 먹고 싶으면 사냥을 해서 짐승을 잡아야 하는데 마음으로만 원하고 실제로 사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여러분 웃기지 않습니까? 또한 어느 누가 배가 고픈데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합니까? 아니 그러면 아기처럼 누군가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여줘야 합니까? 이것은 게으름의 극치라 생각합니다. 마음은 원하는데 사냥도 하지 않고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는 것, 이것은 참으로 게으름 중의 게으름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게으른 사람을 가리켜 성경 잠언 19장 15절은 “태만한 사람”(an idle man), 즉, 나태하여 놀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게으른 자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합니다(21:25). 그러면서도 게으른 자는 오히려 일을 만듭니다. 어떻게 게으른 자는 일을 만듭니까? 디모데전서 5장 13절을 보면 게으른 자는 집집으로 돌아다니면서 쓸데없는 말, 즉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여 일을 만듭니다. 다시 말하면, 게으른 젊은 과부는 오히려 집집에 돌아다니면서 망령된 폄론을 하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므로 일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다(They are idle. They are not busy, they are busybodies)라고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장11절에서 말했습니다. 이들은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로서 교회 안에서 다른 이들의 일을 참견하여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루하루의 삶의 필요한 것을 위하여 교회 안에서 어떤 형제들에게 세금을 뜯어내므로 형제 사람을 실천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오늘 본문 잠언 18장 9절에서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is brother to one who destroys)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게으른 자와 패가하는 자가 형제라는 말은 게으른 자는 큰 낭비자(a great waster)란 말입니다(Spence-Jones). 그 말은 게으른 자는 마치 방탕 하는 자와 마찬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잠언 23장 21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그리고 잠언 12장 11절을 보면 성경은 분명히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but he who chases fantasies lacks judgment)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게으른 사람은 “자기를 지혜롭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선히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26:16).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 게으름과 교만이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게으른 자는 교만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게을러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잠언 책을 묵상하면서 여러 번 교훈을 받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은 부지런합니다(잠 12:27, 15:19). 우리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서 부지런히 우리 자신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롬 2:21) 다른 이들을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하며 또한 우리는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합니다(잠 16:26). 부지런히 일을 하되 우리는 개미처럼 감독하는 자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부지런히 그리고 서로 협력하며 일을 해야 합니다(6:7). 그리고 우리는 개미처럼 장래를 위하여 미리 준비하되 부지런히 준비해야 합니다(8절). 마치 개미가 추수하는 여름 때에 겨울철 먹을 것을 미리 모아들이므로 겨울을 준비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미래를 생각하면서 미리 준비할 것들을 부지런히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의 죽음을 부지런히 준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부지런히 준비해야 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교만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 본문 잠언 18장 12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여러분, “교만”이란 무엇입니까?(인터넷) 겸손의 반대 개념으로서(잠 11:23, 13:10, 15:33, 16:18, 19, 마 5:3, 눅 14:11) 스스로 우월감을 심중에 품고 언제나 자기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핵심적 교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최고의 덕이며 교만은 최대의 죄라는 것입니다(잠 1:7, 6:16, 17, 벧전 5:5). 교만은 흔히 권력의 교만, 지식의 교만, 의로움의 교만으로 나누어집니다. 성경에서 나타난 교만은 하나님 없이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집중될 때 생겨납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경계하되 우리는 특히 사람들의 칭찬을 경계해야 합니다. 잠언 27장 21절을 보면 성경은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주님께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사람들의 칭찬과 관심과 집중으로 인하여 마음이 교만해 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히 12:2). 우리의 시선은 항상 주님께 집중돼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처럼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하되 우리는 주님의 뜻에 항상 순종하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직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잠언 8장 13절에서 묵상했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십니다. 또한 잠언 16장 18절에서 묵상했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직한 사람은 악을 떠나는데 특히 어떠한 악을 떠나는가 하면 바로 교만입니다. 그 이유는 그는 교만은 패방의 선봉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16:18). 그는 교만을 떠날 뿐만 아니라 교만한 자와 함께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만 아니라(13:10)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교만한 자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16:5).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직한 자는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춥니다(16:19). 그 이유는 그는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11:2).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줄 알기에(3:34)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자신의 마음을 낮춥니다. 또 한 가지 마음이 대로가 있는 정직한 사람이 떠나는 악은 바로 “게으름”입니다(15:19).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직한 자는 성실하게 자신의 책임을 다합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사람의 길은 잘 닦여진 대로처럼 평탄합니다.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좇을 뿐만 아니라 그는 일을 미루지 않고 부지런히 땀을 흘리면서 수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직한 자처럼 겸손히 그리고 부지런히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가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길 원하고 계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부지런합니다. 결코 그는 게으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착하고 충성된 주님의 종은 겸손합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은 겸손히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주님의 일을 부지런히 하는 주님의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