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와 재판
[잠언 18장 5, 17-19절]
여러분, 한국 기독교에서 제일 큰 교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대한예수교장로회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예장합동의 97회 총회가 “용역 총회”, “기자 출입 금지 총회”, “가스총 총회”, “노래주점 총회”, “날치기 총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습니다(인터넷). “용역 총회”란 교단 임원 중 총무란 목사님이 “살인 청부업자가 고용돼 아킬레스건을 끊는 다는 등의 협박을 받아 용역 동원이 불가피했다”고 말하면서 약 150명가량의 용역 업체 사람들을 고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용업 업체 사람들로 하여금 총회 모임 장소의 다른 모든 입구들을 폐쇄하고 정문 하나만 개방한 후 그 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을 검문하되 사진, 이름, 소속 노회가 적힌 출입증 없이는 총대도 못 들어오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용역 업체 사람들이 총회 모임을 취재하러 온 기자들을 출입 금지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기자 출입 금지 총회”라는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용역 업체 사람들을 부른 교단의 총무라는 목사님이 총회 모임 중 마이크 앞에 서서 자기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해 소지하고 있었던 가스총을 총회 도중 꺼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스총 총회”라는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노래주점 총회”라는 말을 듣게 된 원인은 이번에 총회장이 된 목사님이 같은 교단 간부인 다른 두 목사님들과 함께 노래주점에서 여성 도우미를 불러 유흥을 즐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덮으려고 교단 간부라는 다른 목사님이 여자 도우미를 협박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회장이 된 정 모 목사님이란 사람이 총회를 인도하다가 마지막 날인가 갑작스럽게 파회 선언을 해 버리고 모든 임원들이 모임 장소에서 나간 후 마이크와 불이란 다 꺼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날치기 총회”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총회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140개의 노회장들이 모여 다섯 가지 안건을 결의했다고 합니다: (1) 비상 총회 소집, (2) 총회장 불신임 건, (3) 총무 해임 건, (4) 총회 정상화될 때까지 상비부 활동 중지, (5) 노회 상회비 및 각 교회 세례 교인 헌금 납부 유보. 저는 한국 교회를 위하여 기도 부탁을 받은 후 특히 이 총회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5일간 열렸던 총회 모임에 대한 소식을 한 기독교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서 관심 있게 보고 소식들을 접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 좋은 소식들을 접하면서 적지 않은 충격과 마음이 좀 그랬지만 갑작스러운 총회 파회 후에도 842명이나 되는 총대들이 끝까지 남아서 마음을 모아 결국 140명에 이르는 많은 노회장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것을 보고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 위기가 예장합동 교단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귀한 기회가 되어 참된 회개와 회복과 개혁의 기회가 되길 기원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어떻게 모든 일들이 진행이 되어갈지 모르겠지만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접하는 소식들을 보면 오늘 본문 잠언 18장 5절과 17절에서 19절까지와 연관해서 생각해 볼 때 한 두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 두 가지란 첫째로 총회 임원들을 뽑는 선거제도에 대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제비뽑기” 방법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재판”입니다. 지금 총회에 총대 목사님 한 분이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개정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그 제안은 제비뽑기와 직선제를 절충한 개정안을 제안한 것입니다. 이렇게 그 목사님이 절충한 제안한 이유는 제비뽑기 선거제도 방법이 최적의 인물을 뽑는데 필요한 제도라기보다 금권 선거 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인터넷). 그리고 다른 한 가지인 “재판”은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앞으로 총회 안에 총회장, 총무 목사님과 비상대책위원회 간의 소송과 재판으로 갈 확률이 많이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미 총회장 목사님의 노래주점 건이 법원 판결에서 책임질 것이라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잠언 18장 5절과 17절을 보면 성경은 송사와 재판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고 18절에 가서는 제비뽑기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비뽑기와 재판”이란 제목을 걸고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순종하길 원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재판”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18장 5절을 보면 “재판”이란 말이 나오고 17절에 가서는 “송사”라는 말이 나오는데 성경의 “송사”는 “재판”을 말합니다(인터넷). 이 두 단어가 함께 나오는 성경구절들이 있는데 그 중에 에스겔 44장 24절 상반절을 예로 들 수가 있습니다: “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 ….” “송사”란 요즘 말로는 소송사건을 말합니다. 원고와 피고가 있어 서로 잘 했다고 다투다가 결론을 못 얻으면 재판을 걸어 판결을 받는 일이기도 합니다(인터넷). 그러면 하나님의 규례대로 재판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여러모로 생각해 볼 수가 있겠지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몇 가지 규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인터넷): (1) 첫째로, 성경 고린도전서 6장 1-8절은 성도들 간에 소송하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2) 둘째로, 성경 마태복음 5장 25-26, 40절은 송사하기 전에 먼저 화해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3) 그러나 화해가 되지 않았을 때 셋째로, 성경 출애굽기 18장 13절은 재판을 받습니다(예: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재판을 받으러 나왔음). 물론 여기서는 세상 재판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4) 넷째로, 신명기 1장 16절과 25장 1절은 재판장은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했을 때 송사를 들으면서(19:15-19) 쌍방 간에 공정히 판결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재판장은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해야 합니다. 여기서 재판장이 공정히 판결하기 위해선 오늘 본문 잠언 18장 17절의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송사에서는 쌍방의 말을 다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반대심문(cross-examination)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재판장은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라고 성경 출애굽기 23장 3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재판장은 가난한 자라고 해서 편애하여 그 사람 말을 듣고 그 사람의 편을 들어주지 말라는 말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 잠언 18장 5절을 보면 성경은 “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악인을 두둔해서 의인을 억울하게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17장 15절에서는 “악인을 의롭다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의를 행해야 하는 재판장은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목사가 재판을 받아 면직(dismissal, removal)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지금 한국에서는 어느 한 큰 교회 유명했던 목사님을 면직해야 한다는 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 목사님의 성추행 사건 등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목사를 재판할 수가 있습니까? 바로 노회가 할 수가 있습니다. 한국 장로교회 헌법 제 4장 제 19조에 보면 이렇게 써 있다고 합니다: “목사에 관한 사건은 노회 직할에 속하고, 일반 신도에 관한 사건은 당회 직할에 속하나, 상회가 하회에 명령하여 처리하라는 사건을 하회가 순종하지 아니하거나, 부주의로 처결하지 아니하면 상회가 직접처결권이 있다”(인터넷). 이 규정에 따르면 목사관계 재판사건은 노회가 관장하고, 목사 이외의 모든 교인들인 장로, 집사, 권사, 서리집사, 전도사 등 온갖 세례교인관계 재판사건은 당회가 관장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지 교회의 당회가 지교회 교인을 재판하기 전 명심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마태복음 18장15-17절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즉, 재판을 하기 전에 당회는 지교회 교인을 사랑으로 권고해서 회개케 해야 합니다. 그 권고 과정 속에서 (1) 원고가 피고와 일대일로 상대하여 권고하되 (2) 만일 그 피고인이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합니다. (3)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4) 불신자처럼 여기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그 피고인을 미워하던지 증오해서 보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그 피고인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키려는 것입니다.
마지막 둘째로,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제비뽑기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18장 18절을 보십시오: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성경의 재판의 절차를 보면 다툼이 일어나 시비가 있을 때 때로는 제비를 뽑아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왜 제비뽑기를 시행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결정하기 애매한 것들을 결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인터넷). 그러므로 제비뽑기 형식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인터넷). 다시 말하면, 무슨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는 자들만이 취하는 행위가 바로 제비뽑기라는 말입니다(박윤선). 이 말은 다투는 사람들이 둘 다다 강한 자들로서 자기들의 다툼을 자기들의 힘으로나 혹은 세상 법정으로 가지고 가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하나님의 뜻대로 해결하려고 제비를 뽑아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하면, 다투는 양측이 제비 뽑는 결과에 의하여 중심에서부터 다툼을 종식시키려고 하는 것이기에 이들의 심령의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것입니다(박윤선). 그런데 문제는 그 다툼이 심하여 문제의 해결점을 찾지 못할 때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투는 양측이 다툼을 종식시키려고 하지 않으려고 할 때(적어도 한쪽에서 그렇다면)는 제비뽑기를 하지도 않으려고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 법정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성경 잠언 18장 1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 무슨 뜻입니까? 여러분, 그 당시 전쟁을 할 때 견고한 성을 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우리가 한국 드라마에서 옛날 전쟁하는 모습을 볼 때 견고한 성을 함락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좀 엿보지 않습니까? 그 정도로 우리에게 상처를 입은 가족 식구들이나 가까운 친구들과 화목하기가 힘들다는 말입니다. 솔로몬 왕은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고 말했는데 그 의미는 그러한 다툼은 없애기가 매우 힘들다는 말입니다(Walvoord).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달 전 한국 뉴스에 삼성 회사의 회장과 그의 형제들 간의 다툼이 생각났습니다. 가까운 형제들인데도 그 다툼 속에서 화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볼 때 오늘 성경 말씀처럼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란 견고한 성을 취하는 것보다 참 어렵다는 말씀에 동의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왠지 가까운 사이인 부부나 식구나 형제들끼리의 다툼이 심해지면 아예 원수지간이 되는 모습을 볼 때 어떻게 다툼을 피하고 화목케 해야 하는지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서로 화목 하는데 하나님의 뜻이요 예수님께서는 화목케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도 화목케 하는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고후 5:18). 과연 어떻게 우리가 화목케 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가 있을까요? 피스메이커 미니스트리(Peacemaker Ministry)의 에릭 폴리 목사는 교회내의 갈등과 분쟁과 분열 가운데에는 화평을 만드는 자(Peace-maker), 화평을 깨는 자(Peace-breaker), 그리고 화평을 가장한 자(Peace-affecter)가 있다고 설명하고 특히 “한국 사람들 가운데는 유난히도 ‘화평을 가장한 자’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한국적 문화에는 갈등을 공개하면 체면과 권위가 손상된다는 정서가 오랜 세월동안 자리해 감추고 미화해서 지나가고자 하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 된다”며 “이는 서로와의 대화가 줄어들고 간격이 멀어져갈 뿐 해결책은 아니다”고 경고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어 “상대의 인격과 문화를 존중하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해 용서와 화해를 통한 진정한 피스메이킹을 이뤄야한다”며 성경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 피스메이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폴리 목사는 성경적 피스메이킹이란 “갈등이나 분쟁이 생길시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앞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보혈로 죄인인 우리를 용서하였듯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고 사랑하고 이행해 화목케 하는 사역”이라고 제시했습니다(인터넷). 여러분, 우리는 화목케 하는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이든 가정 안에서이든 또한 직장에서 이든지 간에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주님 안에서 잘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복음의 합당한 삶이란 화목케 하는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 사람들 간에 화목을 도모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웃들 간에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며 화목케 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제비뽑기가 그 당시 화목케 하는 사역에 한 방법이었고 지금도 그 방법을 쓰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화목케 하는 사역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요즘 한국 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에서는 총회 임원들을 뽑을 때 제비뽑기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불미스러운 일로 그 교단은 갈등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 어쩌면 세상 법정으로 재판까지 갈 확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 안에서 서로 해결점을 찾아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에는 더 불미스러운 일인 세상 법정 판결에 의존하게 될지도 모르게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더욱더 부끄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한국 합동교단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미국에 있는 이민교회도 분쟁으로 인하여 세상 법정에 가는 것은 결코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판을 해도 우리는 교회나 노회, 우리 안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해결하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복음으로 해결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화목케 하는 사역에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교회의 하나됨을 잘 지켜 나아가므로 이 세상에 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