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자

 

 

[잠언 181-3]

 

 

유태인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지혜가 없는 자는 아무것도 없다’(인터넷). 우리들은 유태인들은 머리가 좋은 민족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천적으로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라 머리를 쓰도록 어릴 때부터 가르침을 받는 결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여기서 머리를 쓰다는 말은 지식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얻는 법을 가르쳤다는 말입니다. 즉, 유태인들은 지혜 있는 자로 길러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모든 것을 지혜에 걸면서 행동하여 왔다고 합니다(인터넷). 그래서 우리가 유태인의 교육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은 바로 탈무드입니다. 탈무드는 그들의 지혜가 집대성 된 것으로 성인식이 되기 전까지 꾸준히 공부해서 지식을 쌓은 뒤 이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과정들을 평생 지속하며 지혜를 쌓아나아 간다고 합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잠언 18장 1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솔로몬 왕은 온갖 참 지혜(완전한 지혜, 참 지식)를 멸시하는 미련한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자”란 제목 아래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교훈을 받길 원합니다.

 

첫째로,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릅니다.

 

오늘 본문 잠언 18장 1절을 보십시오: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자는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집니다. 즉, 그는 자기의 친구들에게서 고립되어(isolated)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자는 이기적(selfish)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로 그가 이기적인가 하면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친구들에게조차도 가혹하게(harsh) 행하기에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 한 예로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16장 28절을 들 수가 있습니다: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즉,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자는 이기적인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친한 벗도 이간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바로 그는 자기 친구의 허물도 거듭 말하므로 자기의 친한 벗도 이간할 수 있습니다(17:9).

 

여러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자는 전혀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에게는 참 지혜는 없지만 거짓된 지혜가 있습니다. 이 거짓된 지혜가 무엇입니까? 바로 야고보서 3장 14-1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세상 적이요 정욕 적이요 마귀적인 지혜입니다(15절). 이러한 땅 위에 속한 지혜를 가진 자는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습니다(14절). 그러므로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자는 자랑하며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합니다(14절). 그 결과 공동체 안에는 시기와 다툼만 있을 뿐만 아니라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습니다(16절). 그러나 온갖 참 지혜를 사랑하는 자, 즉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를 가진 자는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다고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 3장 17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참 지혜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공동체 안에서 화평케 하는 자들입니다(18절). 그리고 화평케 하는 자는 결코 자기 소욕만을 따르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 지혜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이타적인 사람으로서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기에 그에게는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참 지혜를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자는 자기의 의사만 드러내기를 기뻐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8장 2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사람은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로서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즐거워합니다. 여기서 자기의 의사를 ‘드러낸다’라는 단어의 원어 의미는 “airing”입니다. 여러분, “air”하면 무슨 뜻입니까? “공기” 또는 “허공”이라는 뜻 아닙니까? 즉,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미련한 자는 허공에다가 자기의 의사를 쏟아내기만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닫힌 마음을(closed mind) 가지고 있어서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입은 열려서(open mouth)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하는 자입니다(Walvoord). 이러한 자는 지식 얻기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견해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심지어 박윤선 목사님은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소원을 고집하면서 그것을 관철시키려고 진리를 버린다’(박윤선). 그러므로 참 지혜를 배척하는 자는 미련하여 자기 입으로 미련한 것을 쏟아냅니다(15:2). 그 결과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합니다(18:6).

 

여러분, 온갖 참 지혜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이기적으로 자기의 의사만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의 견해를 마치 허공에 쏟아내듯이 그리 하지 않습니다. “허공”하니까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고린도전서 9장 26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사도 바울의 이 말을 오늘 본문 잠언 18장 2절과 연관해서 묵상할 때 저는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온갖 참 지혜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열려있어서 이웃을 이타적으로(selfless) 사랑하기에 자신의 입도 열어 말하되 목적을 가지고 절제 있게 말을 한다.’ 그리고 저는 그 목적이 바로 이웃 사랑이요 교회란 공동체의 하나됨을 지키고자 화평케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온갖 참 지혜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말들을 은혜스럽게 합니다(전 10:12). 그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은 항상 은혜 가운데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합니다. 그래서 그는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골 4:6). 또한 온갖 참 지혜를 가진 그리스도인의 입술은 정직하며(잠언 23:16), 진리를 말합니다(8:7). 또한 그의 입은 지식을 전파합니다(15:7). 그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풉니다(2절). 그의 입술은 여러 사람을 교육합니다(10:21). 그리고 온갖 참 지혜를 가진 그리스도인의 입술은 다른 지체들을 기쁘게 할 것을 압니다(10:32). 이렇게 온갖 참 지혜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이웃 사랑과 교회의 하나됨을 잘 지키고자 목적을 가지고 절제 있게 말을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미련한 자가 자기 의사(견해)만 드러내기를 기뻐함과 달리 다른 사람들의 견해 듣기를 좋아합니다. 여러분 혹시 나는 이 사람하고 대화하다보면 그저 내 마음이 열려서 그에겐 이런 저런 말을 편안히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보통 이런 사람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 문을 열고 말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따뜻하게 사랑해 주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교회 안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할 때 교회가 화목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향기가 들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자는 멸시와 능욕을 받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18장 3절을 보십시오: “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이를 때에는 능욕도 함께 오느니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자란 바로 온갖 참 지혜를 멸시(contempt)하는 자란 말입니다. 그리고 온갖 참 지혜를 멸시하는 자는 멸시를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교만하기에 그는 온갖 참 지혜를 멸시하는 것이요, 그가 온갖 참 지혜를 멸시하기에 멸시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특히 온갖 참 지혜를 멸시하는 교만하여 하나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합니다(잠 1:25). 그럴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책망도 받지 않습니다(25절).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웃을 멸시합니다(11:12). 이러한 자는 자기의 이웃을 무시하고 심지어 경멸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온갖 참 지혜를 멸시하는 미련한 자는 부끄러움(shame)을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잠언 18장 3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온갖 참 지혜를 멸시하는 자는 부끄러움과 더불어 능욕(disgrace)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온갖 참 지혜를 멸시하여 자기 소욕을 따르며, 자기 의사만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비난(reproach)을 받으며 치욕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온갖 참 지혜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지혜를 높이므로 그 지혜가 그를 높일 것입니다(4:8). 그리고 그는 지혜를 품으므로 그 지혜가 그를 영화롭게(honor you) 할 것입니다(8절). 그리고 온갖 참 지혜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12:8).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합니다(1:7). 온갖 참 지혜를 멸시(배척)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릅니다(18:1). 그리고 그는 자기의 의사만 드러내기를 기뻐합니다(2절). 그 결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자는 멸시와 능욕을 받습니다(3절).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곧 온갖 참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결코 자기 소욕만을 따르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이타적인 사람으로서 이웃을 사랑하며 섬깁니다. 또한 온갖 참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이웃 사랑과 교회의 하나됨을 잘 지키고자 목적을 가지고 절제 있게 말을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는 미련한 자가 자기 의사(견해)만 드러내기를 기뻐함과 달리 다른 사람들의 견해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온갖 참 지혜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지혜를 높이므로 그 지혜가 그를 높일 것입니다(4:8). 그리고 그는 지혜를 품으므로 그 지혜가 그를 영화롭게(honor you) 할 것입니다(8절). 그리고 온갖 참 지혜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12:8).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은 온갖 참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