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사람의 대로

 

 

[잠언 1616-24]

 

 

여러분이 참 좋아하는 찬양은 무엇입니까? 저는 “축복의 사람”이란 복음 성가 찬양이 참 좋습니다. 그래서 그 찬양을 운전하면서 듣고 또 들으면서 함께 따라 부르곤 했습니다. 그 노래 1절 가사 앞부분을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그대는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이죠 ….” 여기서 “시온의 대로”란 시온성(예루살렘 성전)까지 나있는 큰 길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가사 내용은 시편 84편 5절에 근거한 것입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편 기자의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었다는 말은 그는 예루살렘 성전 가기를 심히 사모하여 그 성전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말입니다(1-4절). 사모하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궁정을 너무나도 사모하여 그의 신체까지 쇠약해졌습니다(2절).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말미암아 서글픈 자신의 신세를 아프게 한탄하면서 시편 기자는 주님의 성전으로 갈 수 있기를 애원하는 심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박윤선 박사님에 의하면 그 당시 외국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한 번 가보려는 경영과 노력에는 ‘눈물 골짜기’ 같은 고통과 난관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내하고 통과하면 그 끝에 ‘많은 샘의 곳’, 곧 심령의 안위와 희열에 봉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른 비’ 같은 천래의 은사를 받으며 하나님을 뵈옵는 일을 영적으로 체험했다고 합니다(박윤선). 이 시온의 대로가 저와 여러분 마음속에 있습니까? 참된 시온성인 저 천국의 새 예루살렘 성전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오늘 본문 잠언 16장 17절을 보면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니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정직한 사람의 대로”란 제목 아래 정직한 사람의 대로에 대해서 한 2지로 생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아 순종하길 원합니다.

 

첫째로, 정직한 사람의 대로는 악을 떠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6장 17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니 ….” 정직한 사람의 대로는 악을 떠난다는 이 진리는 우리가 이미 지난 주 수요기도회 때 묵상한 잠언 16장 12절을 생각나게 만듭니다. 곧,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왕은 악을 행하는 것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 본문 잠언 16장 17절 상반절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16장 6절인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단다는 말씀을 생각나게 만듭니다. 이 모든 성경구절들이 말씀하고 있는 핵심 포인트는 잠언 8장 13절 상반절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결국 오늘 본문 잠언 16장 17절에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는 악을 떠난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정직한 사람은 우리가 지난 주 묵상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왕처럼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16절에 근거해서 다시 말한다면, 마음의 대로가 있는 정직한 사람은 지혜를 얻는 것이 금과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은 줄 아는 사람이다란 말이기도 합니다. 그는 지혜의 가치를 알고 있기에 그 지혜를 얻으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떠납니다. 그러면 마음의 대로가 있는 정직한 사람이 떠나는 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교만”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16장 18-19절을 보십시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 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음의 대로가 있는 정직한 사람은 지혜를 얻어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떠나는데 특히 교만을 떠납니다. 그 이유는 그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만을 떠날 뿐만 아니라 교만한 자와 함께하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정직한 자는 잠언 16장 5절 말씀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또 한 가지 마음이 대로가 있는 정직한 사람이 떠나는 악은 바로 “게으름”입니다. 잠언 15장 19절을 보십시오: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무슨 말입니까? 악인은 꾀를 많이 부리다보니 게을러서 땀을 흘리며 수고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악한 꾀나 부리면서 게으르게 사는 악인의 삶에는 동서남북으로 가시와 같은 어려움들로 들러 싸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와 같습니다. 성실하게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정직한 사람의 길은 잘 닦여진 대로처럼 평탄한 이유는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을 좇을 뿐만 아니라 그는 일을 미루지 않고 부지런히 땀을 흘리면서 수고하기 때문입니다(인터넷).

 

여러분, 우리는 마음의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을 사모하며 소망하면서 이 순례의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순례의 길을 걷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모든 악을 다 미워하고 떠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다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저 멀리 뵈는 우리의 시온성,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전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복음성가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이란 노래가 생각납니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오 거룩한 곳 아버지집/ 내 사모하는 집에 가고자 한밤을 새웠네/ 저 망망한 바다 위에 이 몸이 상할지라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주 복음 전하라/ 아득한 나의 갈길 다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 쉴 때/ 내 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 빈 들이나 사막에서 이 몸이 곤할 지라도/ 오 내 주 예수 날 사랑하사 날 지켜 주시리.”

 

마지막 둘째로, 마음의 대로가 있는 정직한 사람은 자기의 길을 지킵니다.

 

성경 잠언 16장 17절을 보십시오: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니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악을 떠나는 정직한 사람, 즉 진실한 신자는 죄의 유혹을 받을 즈음에 거기 빠지지 않고 용감히 그 죄의 유혹을 떠납니다(박윤선). 어떻게 진실한 성도는 죄의 유혹을 뿌리치고 떠날 수 있습니까? 그 이유는 그는 삼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기 때문입니다. 20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직한(진실한)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있습니다(21-23절).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지혜로 모든 것을 바로 분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진실한 신자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은 그에게 겸손함이 있기 때문입니다(19절).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직한 그리스도인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며 순종하여 자기의 길을 신실하게 잘 지켜 나아간다는 말입니다. 그가 그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0절). 그러기에 정직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 권위를 존중시하여 그것을 잘 살펴보고 따라갑니다(박윤선). 그러므로 그는 죄의 유혹에 올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하여 악을 떠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시편 119편 9-11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주님께 죄를 범치 아니하려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 그 말씀을 따라 삼가는 시편 기자처럼 오늘 본문 잠언 16장 20절에 나오는 잠언 기자도 삼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므로 죄의 유혹을 용감히 뿌리치고 떠날 것을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지혜와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지혜와 겸손함이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주의하여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미련한 자와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롭고 겸손하며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길을 걸어가되 그 길을 잘 지킵니다. 결코 그는 주님의 길을 걸어감에 있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의 입을 잘 지켜(23절) 그 입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어떻게 그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가 하면 정직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입을 슬기롭게 하여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합니다(23절). 23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 즉, 정직한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지혜로워서 자기의 입술을 지키되 그 입술을 통하여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합니다(21절, 23절). 어떻게 다른 이들의 학식을 더하게 할 수가 있습니까? 바로 “선한 말”로 가능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선한 말”, 곧 하나님의 말씀은 꿀 송이 같아서 우리의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도 예레미야 15장 16절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에 기쁨과 즐거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길을 신실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참으로 정직한(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순례자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걸어가는 천국 백성들로서 우리는 정직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직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악을 떠나되 특히 교만과 게으름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삼가 주님의 말씀의 주의하여 악을 떠나 우리 자신의 길을 잘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길을 신실하게 걸어가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입을 잘 지키고 또한 우리의 입을 슬기롭게 하여 우리의 입술을 통하여 선한 말로 남의 학식을 더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정직한 사람의 대로를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