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왕

 

 

[잠언 1610-15]

 

 

2012년 5월 14일 월요일 한국일보 인터넷 기사를 보니까 “오바마는 최초의 게이대통령”이란 제목 아래 기사가 있어 읽어 보았습니다(인터넷). 읽어 보니까 미국의 시사주간 뉴스위크(Newsweek)가 최근 동성결혼 지지를 선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최초의 게이 대통령”으로 표현해 물의를 빚고 있는 기사 내용 중심으로 쓴 기사였습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 결혼을 지지한 최초의 현직 대통령이 되었는데 왜 그가 대통령 대선을 앞두고 동성 결혼을 지지했는가 에 대한 각각 해석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해석을 보니까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정치권에서는 ‘재선을 노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도박’, ‘역풍의 위험을 무릅쓴 소신 발언’ 등이 있다고 합니다. 그간 오바마의 국정운영에 실망해 등 돌렸던 진보적 지지층의 눈길을 다시 잡아챌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경제 문제로 궁지에 몰린 오바마가 동성애라는 뜨거운 이슈로 눈길을 돌리게 만들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고 합니다(인터넷). 이런 일이 결국 저와 여러분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때 여러분은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신명기 17장 18-20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한 이 율법서를 등사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의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만일 우리 미국 대통령이 성경책을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고 있다면 과연 이렇게 한 나라의 대통령이(전 세계가 바라보는 미국 대통령이) 동성 결혼을 공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통령이라면 교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명령에서 떠나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듭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기보다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살전 2:4) 대통령이 돼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문 잠언 16장 10-15절을 보면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왕”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왕에 대해서 말하되 그는 선한 왕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왕”이란 제목 아래 한 나라의 지도자인 왕 또는 대통령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 3 가지로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왕은 하나님의 지혜로 바른 결정을 내립니다.

 

오늘 본문 잠언 16장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한국어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다고 번역되었는데 영어 성경 NASB를 보면 ‘신적인 지혜에서 나온 결정이 왕의 입술에 있다’(A divine decision is in the lips of the king)이라고 번역돼 있습니다. 어느 번역이 맞습니까? 영어 성경 번역이 원어 히브리어 성경에 더 가깝게 번역이 돼 있습니다. 즉, 신적인 지혜에서 나온 결정이 왕의 입술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왕은 신적인 지혜가 있는 것일까요? 그 대답을 우리는 서론에서 언급한 신명기 17장 18-20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즉, 신적인 지혜가 왕의 입술에 있는 원인은 그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평생에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왕에게 지혜를 주셨다는 말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을 쓴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의 경우는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린 후 밤에 꿈속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지만 성경 시편 1편이나 119편을 쓴 것을 보면 솔로몬 왕 또한 하나님의 율법 책을 주야로 묵상하므로 더욱더 지혜로워 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은 생각은 우리가 신적 지혜를 얘기할 때 솔로몬 왕보다 그의 아버지인 다윗 왕을 예로 드는데 더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사무엘하 14장 20절을 보면 성경은 다윗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아서 땅에 있는 일을 다 아시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은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천사의 지혜와 같은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혜가 신적 지혜가 아닐까요? 이러한 신적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다윗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1절) 드고아에 있는 슬기 있는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2절) 그녀의 입에 할 말을 넣어준 (3절)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19절). 그러므로 다윗 왕에게 들킨 그 드고가의 슬기 있는 여인은 다윗 왕에게 “내 주 왕의 지혜는 하나님의 사자의 지혜와 같아서 땅에 있는 일을 다 아시나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20절).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천사의 지혜, 신적인 지혜를 지니고 있었던 다윗은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과 악을 분간”(discerning good and evil)할 수가 있었습니다(17절). 그러므로 다윗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어느 누구도 좌로나 우로나 옮길 자가 없었습니다(19절).

 

오늘 본문 잠언 16장 10절 하반절을 다시 보면 신적 지혜가 있는 왕은 “재판 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고 솔로몬 왕은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신적 지혜가 있는 지혜로운 왕은 천사 같이 선과 악을 분간하므로 재판할 때 바른(공의로운) 판결을 내리므로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지금 누가 이 10절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솔로몬 왕 아닙니까? 그러면 저와 여러분 마음속에 생각나는 솔로몬 왕이 판결내린 재판이 무엇입니까? “창기 두 계집”이 그에게 와서 (왕상 3:16) 살아 있는 한 아이가 누구의 것인지 쟁론할 때(22절) 지혜로운 솔로몬 왕이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24절)하여 “산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 주라”(25절)하므로 아기의 진정한 엄마나 누구인지 분간하여 바른 판결을 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28절).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로몬 왕의 판결함을 보고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음을 보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그가 이 지혜가 있다면 동성 결혼을 지지했을까요? 이번에 CNN 인터넷 뉴스에서 기사를 보니까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이 진화하다가(evolve) 이러한 결정까지 내리게 되었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과연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한 한 나라의 대통령의 생각이 진화되데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난 발언을 공식적으로 하였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의 입술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에게서 신적 지혜가 있음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게 되면 지혜가 없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에 흐려진 분별력에서 바른 판결을 내릴 수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국인 한국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미국 대통령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신적 지혜 곧 다윗 왕과 솔로몬 왕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지혜를 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책을 옆에 두고 주야로 묵상하는 대통령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도자들이 되게 해주시길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대통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대통령이 되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대통령)은 악을 행하는 것을 미워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6장 12절을 보십시오: “악을 행하는 것은 왕의 미워할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미워합니다(8:13).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악을 행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경계하되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고자 그 말씀을 경청하고 또한 순종합니다. 이 얼마나 우리나라 한국 역대 대통령들하고 다릅니까? 대통령 임기만 끝나면 이런 저런 비리고 부정 등으로 인하여 검찰에 불러 가고 심지어 감옥에도 들어갔다 나오는 대통령도 있지 않습니까? 왜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되풀이 되는 것일까요? 저는 그 대답을 서론에서 읽은 신명기 17장 18-20절에서 찾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평생에 자기 옆에 두지 않고 그 말씀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교만하여 하나님의 계명에서 떠나 죄악을 범하는 것입니다. 어떤 죄악을 범합니까? 신명기 17장 16-17절 말씀처럼 이것저것 “많이” 두고 “많이” 쌓아두는 죄를 범합니다. 특히 돈과 재물을 많이 쌓아둡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왕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순종합니다(롬 12:2). 그 하나님의 뜻은 바로 공의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입니다(잠 16:12절). 오늘 본문 잠언 16장 11절을 보십시오: “공평한 간칭과 명칭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추돌들도 다 그의 지으신 것이니라.” 여기서 “간칭”, “명칭”, “추돌들”은 다 “저울”(measures)을 가리킵니다. 저울을 가리키되 정확히 측량하는 저울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즉, 이 저울은 “공평한” 저울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한결 같은 저울”을 가리킵니다.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잠언 20장 10절과 23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결 같지 않은 저울추와 말은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왕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한결 같지 않은 저울을 자기도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보좌는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서 있습니다. 왕의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서 있다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왕이 나라를 공의로 바르게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공의로 나라를 바르게 잘 다스리는 왕은 그 나라를 굳게(견고히) 서게 한다고 오늘 본문 잠언 16장 13절 하반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과연 왕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해 볼 때 저는 한 3가지 원리를 성경 잠언에서 찾아봅니다:

 

(1) 공의로 나라를 바르게 잘 다스리는 왕은 인자와 진리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합니다.

 

성경 잠언 20장 28절을 보십시오: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 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대선이 가까이 오기만 하면 대통령 후보들이 여기 저기 온 나라를 다니면서 자기를 뽑아 달라고 선거를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시민들에게 자기를 뽑아주면 대통령이 되어서 이런 저런 일들을 그들을 위하여 하겠다고 많은 약속들을 합니다. 과연 대통령 되기 전에 했던 약속들을 대통령이 되어서 잘 지켜 나아갑니까? 그 정도로 진실성이 있는 공의로운 대통령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특히 한국 대통령 선거를 TV로 보다보면 대통령 후보들은 온 나라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시민들을 만나 약속을 할 때 그들은 서민들에게도 잘 다가가는 모습도 볼 때가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진정으로 서민들을 사랑하고 긍휼이 여기고 있는가 라는 의문도 들 때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만일 왕이 인자(긍휼)만 있고 진리(약속을 지키는 진실성 곧 공의)가 없으면 백성이 문란하게 되고, 진리가 있고 인자가 없으면 너무 강경하여 백성이 감화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왕은 인자와 진리, 둘 다 정권 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박윤선).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어떠한 대통령이 인자와 진리로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볼 때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왕만이 인자와 진리로 나라를 잘 다스린다고 생각합니다.

 

(2) 공의로 나라를 바르게 잘 다스리는 왕은 악을 제하여 버립니다.

 

성경 잠언 25장 5절을 보십시오: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 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이 말씀의 의미는 공의로 나라를 바르게 잘 다스리는 왕은 악한 간신들을 제하여 버린다는 말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아무리 인자(긍휼)와 진리(공의)를 나라를 잘 다스리므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는 왕이라 할지라도 함께 가까이서 일하는 신하들이 악한 간신들이 라면 그 왕과 그 나라는 어찌 되겠습니까? 만일 왕이 그 악한 간신들을 제하여 버리지 않으면 그들의 죄악의 결과를 자기 자신(왕)이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신들을 신임하는 것은 왕으로서 어리석게 택하는 자살 행위라고 박윤선 박사님은 말하고 있습니다(박윤선).

 

(3) 공의로 나라를 바르게 잘 다스리는 왕은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여 줍니다.

 

성경 잠언 29장 14절을 보십시오: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 위가 영원히 견고히하리라.” 이 말씀의 의미는 왕이 낮아져서 가난한 자들의 어려움을 체휼하면서 그들의 사정을 바로 파악하여 그들의 사건을 잘 판단해 줄 때에 그의 보좌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는 말입니다(박윤선). 즉, 공의로 나라를 바르게 잘 다스리는 왕은 가난한 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그들의 사정을 잘 파악하여 그들을 성실히 판단하여 준다는 말입니다. 만일 우리나라 대통령이 이렇게 공의로 나라를 바르게 잘 다스리고 있다면 선량한 시민들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저는 그 대답을 로마서 13장 1-5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 대답은 선량한 시민들은 그들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그들 위에 있는 정부의 권세도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1절). 만일 우리나라 대통령이 공의로 나를 잘 다스리고 있으면 선량한 시민들은 정부의 권세를 거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그것은 하나님을 명을 거스리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2절). 그리고 선량한 시민들은 선을 행할 것입니다(3절). 그러나 악을 행하는 시민들은 그들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권세를 거스릴 것입니다. 그들은 선을 행하지 않고 악을 행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러고 있다면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 4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자가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시기 때문입니다(4절). 즉, 악을 행하는 것을 미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진노하심으로 보응하실 것이기에 악을 행하는 시민들은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대통령)은 충신의 충고를 잘 받습니다(박윤선).

 

오늘 본문 잠언 16장 13절을 보십시오: “의로운 입술은 왕들의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히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 왕 자신이 하나님의 지혜가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인자와 진실로 나라를 잘 다스리되 특히 가난한 자들의 어려움을 체휼하면서 그들의 사정을 바로 파악하여 그들의 사건을 잘 판단해주는 것이 귀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왕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미워하되 특히 자기 신하들 중에 간사한 악인들을 제하여 버리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만일 그 간신들을 제하여 버리지 않으면 그 왕에게 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왕에게 해가 된다는 것은 그 나라에 해가 될 것이기 때문에 왕은 단호하게 간신들을 척결해야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이 생각났습니다. 그 이유는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자기 아버지 다윗의 명을 받아 주위에 간신들을 제하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다윗의 넷째 아들로 자신이 왕이 되려고 음모를 꾸민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를 쳐서 죽이고(왕상 2:25), 아도니야의 반란음모, 즉 왕 즉위식에 주동세력이었던 제사장 아비아달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고 그를 추방하였으며(2:26-27), 자기 아버지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를 죽이고(39-46절) 또한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인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5절)를 죽이고 나중에 아도니야를 좇은 요압 장군을 죽였습니다(25절). 이들 중 특히 요압 장군을 죽인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그 이유는 요압 장군은 다윗이 왕이 되기 전 사울 왕에게서 도피하던 시기부저 솔로몬의 왕정의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하던 군대 장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이스라엘 역사상 많은 전쟁을 치룬 장관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을 치렀던 시기의 위대한 장군이었습니다(인터넷). 그러한 그가 왜 솔로몬 왕에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그는 권력에의 지나친 집착으로 인하여 민심 수습과 정치적 안정이 절실히 요구되는 역사적 과도기에 아브넬 살해 사건, 아마사 살해 사건, 아도니아 반란사건 등을 일으”켜 이스라엘에 큰 혼란을 야기시켰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왕은 악을 행하는 간신들을 제하여 버리는 가운데서도 충신들을 자기 옆에 두고 그들의 충고를 잘 받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충신들의 입술은 “의로운 입술”이요 그들의 입술에서는 정직을 말하기 때문입니다(잠 16:13). 이 얼마나 귀한 충실들의 입술입니까? 그들의 정직한 말은 지혜로운 왕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간사한 신하들은 거짓 입술로 왕에게 아부나 하므로 왕의 판단을 흐리게 하며 더 나아가서 나라를 치리함에 있어서 잘못된 판결을 내리게 합니다. 만일 왕이 미련하면 충신의 책망을 듣기를 거부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는 그 충신을 미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왕이 지혜로운 왕이라면 그 충신의 직설적인 책망이라 할지라도 겸손히 들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충신의 충고와 책망을 환영할 것입니다. 이렇게 지혜로운 왕에게 충신들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왕에게 충고를 하는 이유는 그가 나라를 사랑하고 왕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생명을 걸고서라도 왕에게 충고합니다. 또한 그 충신들은 지혜로워서 왕의 진노를 쉬게 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6장 14절을 보십시오: “왕의 진노는 살육의 사자와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왕이 진노가운데 포악한 정치(폭정)를 하려고 할 때 지혜로운 충신은 그 왕의 진노를 쉬게 하므로 착한 정치(인정)를 하게 한다는 말입니다(박윤선). 그리할 때 충신의 충고를 들은 왕이 포악한 정치를 돌이키고(14절) 착한 정치를 하게 되므로 그 나라 백성이 대중적으로 혜택을 누린다는 것입니다[(15절 상반절) “왕의 희색에 생명이 있나니”]. 그 해택은 팔레스틴에 곡식 열매의 성숙을 위하여 내리는 늦은 비와 같습니다(박윤선).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나라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돕는 주위 위정자들을 위하여 또한 기도해야 함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는 그가 지혜로워서 충신들의 충고도 겸허히 들을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게 해 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지만 특히 그의 보좌관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는 대통령을 잘 보좌할 수 있는 지혜로운 충신들이길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지금 우리가 태어난 고국 한국의 제 18대 대통령 선거는 금년 12월 19일 수요일에 치러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 미국 대통령 선거는 금년 11월 6일 화요일에 치러질 예정입니다. 특히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는 연방 상원의원 100명 중 33명과 연방 하원의원 435명 전원을 뽑는 선거도 함께 진행된다고 합니다(인터넷).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국과 한국 두 나라의 대통령과 위정자들을 뽑는 이 대통령 선거를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특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대통령이 세워 질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신적 지혜를 주시사 바른 판단과 바른 결정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게 해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하십시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행하는 것을 미워하는 대통령이 되게 해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충신의 충고를 겸손히 잘 듣고 나라를 잘 치리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