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

 

 

[잠언 158-33]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흑백이 분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이면 선, 악이면 악, 우리는 분명하게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지혜의 책 잠언을 계속해서 묵상해 나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과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배워서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우리 또한 미워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우리 또한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5장 9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이란 제목을 걸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한 3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제사를 미워하십니다.

 

오늘 본문 잠언 15장 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인의 제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제사 드리는 자가 겉으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만 그의 마음으로는 악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러한 악인의 제사를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특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한 예로 유대인들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면서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난 상태에서(사 29:13, 마 15:8, 막 7:6) 하나님께 드렸던 제사입니다. 그러한 제사에 대해 이사야 1장 11-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무수한 제물과 제사들을 가증히 여기셨고 그들의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은 견디지 못하셨습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제물과 모임들을 싫어하셨고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모든 종교 예식을 철저히 행하면서 “아울러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13절). 다시 말하면,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고 행동으로 제물과 제사를 하나님께 받치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악을 추구하고 그들의 삶은 악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5-1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신약 성경에 와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제사를 생각할 때 저는 로마서 12장 1-2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만일 우리가 지금 이 세대를 본받아 살면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도 모르고 우리의 뜻대로 살면서 매 주일 성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이러한 예배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예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예배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과 짝지어 살면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기보다 변질되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 뜻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그러한 예배를 사랑하실까요 아니면 미워하실까요?

 

복음성가 “낮에 해처럼 밤에 달처럼”이 생각납니다. 그 노래 가사 2절을 보면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 그러나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나의 입술은 주님 닮은 듯하나 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 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으니 주님여 나를 도와주소서.”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아닙니까? 우리의 입술은 주님을 닮은 듯 한데 우리의 마음을 아직도 추하지 않습니까? 과연 이러한 추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실까요 아니면 미워하실까요? 오늘 본문 잠언 15장 14절 하반절을 보면 성경은 “…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우리의 입은 미련한 것은 아닌지요? 혹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면서 입술은 주님을 닮은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 마음이 하나님에게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본문 잠언 15장 18절을 들 수가 있습니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주일 예배당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데 가족 식구이던 교회 식구이던 분을 내고 다툼으로 말미암아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났을 때 성경 마태복음 5장 24절은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그래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그 형제와 화목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면 과연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겠는가 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 잠언 15장 8절은 악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악인은 아닐지라도 악인처럼 입술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지 않는 삶을 계속해서 산다면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결코 사랑하시는 예배가 아닐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주님 앞에 나와 아무 회개도 없이 예배를 드린다면 그러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시는 예배가 아닐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에게 한 말이 생각납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길을 미워하십니다.

 

오늘 본문 잠언 15장 9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인의 길을 걷는 악인은 하나님의 도를 배반하는 자입니다(10절). 그의 입술은 하나님의 도를 순종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불순종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는 이익(profits)을 탐하기 때문입니다(27절). 다시 말하면, 악인의 길을 걷는 악인이 하나님의 도를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이유는 마음에 탐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에 그 탐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해가면서라도 크게 부하고자 합니다(16절). 그리고 그는 실제로 부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는 비록 “살진 소”는 먹지만 서로 미워하는(17절)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잠언 15장 6절 하반절을 보면 성경은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지혜 있는 자가 그를 견책할지라도 그는 그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합니다(12절). 오히려 그는 지혜 있는 자의 견책을 싫어합니다(19절). 심지어 그는 자기 아버지의 훈계도 업신여깁니다(5절). 이것은 자기의 무지함과 미련함을 들어내는 것입니다(21절). 그리고 이것은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기는 것입니다(32절). 잠언 13장 18절에서 이렇게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는 궁핍과 수욕(poverty and shame)이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 본문 잠언 15장 2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악인의 집을 허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은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15절). 그리고 그는 마음의 근심 속에서 심령이 상할 것입니다(13절). 더 나아가서, 악인은 엄한 징계를 받되 심지어 죽기까지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0절).

 

여러분, 악인은 무지하고 미련한 것을 즐기므로 바른 길을 걷기보다(21절)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인의 길을 걷습니다. 그 악인의 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길이 아니라 자기의 탐심과 소욕을 좇는 길입니다. 그 길을 걸음에 있어서 악인은 뇌물을 좋아합니다(27절). 그 길은 크게 부할 수 있는 길처럼 보이지만 번뇌가 많은 길이요(16절) 미움과(17절) 분노와 다툼(18절)이 있는 길입니다. 우리는 이 길을 걷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길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악한 꾀를 미워하십니다.

 

오늘 본문 잠언 15장 26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악한 꾀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라도 ….”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제사와 악인의 길을 미워하실 뿐만 아니라(8-9절) 악인의 악한 꾀(26절) 또는 악한 계교(wicked schemes)(6:18)도 미워하십니다. 비록 악인은 자기가 계획한 악한 꾀나 계교를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성경은 분명히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39편 1-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감찰하시사(살펴 보시사) 우리의 앉고 일어섬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도 다 밝히 알고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잠언 15장 11절에서도 “음부와 유명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리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악한 자는 악행하기를 꾀합니다(24:8). 그 이유는 그는 교만하고(15:25)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16, 33절).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1장 10절을 보면 성경은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꾈지라도 쫓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악한 자가 우리를 꾀는 이유는 “온갖 보화를 얻으며 빼앗은 것으로 우리 집에 채우”기 위해서입니다(13절). 곧, 악인이 악을 꾀하는 이유는 남의 것을 탐하여 자신의 소유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 잠언 15장 27절 말씀처럼 악인이 악한 꾀를 내는 이유는 이익을 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악인은 뇌물도 주고받고 하면서 부정한 방법도 사용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악인은 자기가 열심히 수고도 하지 않으면서 자꾸만 악한 계교를 사용하여 남의 물질을 부정한 방법으로 작취 하려는데 있습니다. 결국 악인은 꾀를 많이 부리다보니 게을러 질 수밖에 없습니다(19절). 자기가 땀을 흘리며 일하면서 수고할 생각은 하지 않고 악한 꾀만 부려서 부하고자 하니 게을러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잠언 15장 19절을 보면 성경은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다(The way of the lazy is as a hedge of thorns)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악한 꾀나 부리면서 게으르게 사는 악인의 삶에도 동서남북으로 가시와 같은 어려움들로 둘러싸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욥기 5장 12절을 보면 성경은 “하나님은 교활한 자의 계교를 꺽으사 그들의 손이 성공하지 못하게 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 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악인이 자기 악한 계교로 인하여 그의 소유가 많아지고 부해지므로 성공해 보이는 듯 해보일지라도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악인으로 하여금 성공하지 못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성공(형통)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참고: 시 73). 우리는 결코 악인의 꾀에 넘어가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인의 제사와 악인의 길, 그리고 악한 꾀를 우리 또한 미워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까?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한 3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오늘 본문 잠언 15장 8절을 보십시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드리는 무수한 제사(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드리는 제사(예배)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이 기도를 가리켜 오늘 본문에서는 “정직한 자의 기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직한 자의 기도”란 바로 “올바른 자의 기도”를 말합니다(박윤선). 과연 누가 올바른 자입니까? 죄를 하나도 범하지 않는 자들입니까? 올바른 자는 시편 51편 17절 말씀에 순종하는 자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즉, 올바른 자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자는 상한 심령, 즉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회개하면서 간구하는 자입니다. 그러한 의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들으신다고 오늘 본문 잠언 15장 19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입술로만 하나님을 존경하고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멀리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멀리하시는 악인이요(29절) 악인의 제사(8절)와 악인의 길(9절)과 악한 꾀(26절)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존경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여 그분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씀에 순종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정직한 자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의를 따라가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오늘 본문 잠언 15장 9절을 보십시오: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인의 길을 걷는 악인은 하나님의 도를 배반하지만(10절)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되 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16, 33절)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33절)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되 서로 사랑하며(17절) 노하기를 더디 하고(18절) 부지런합니다(19절). 하나님께서는 그 의인의 지계를 정하시므로 말미암아(25절) 그로 하여금 올바른 길을 걷게 하십니다(8, 21절). 하나님께서는 그 의인으로 하여금 “위로 향한 생명 길”로 걷게 하십니다(24절). 그 의인에게는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가 있어서(31절) 훈계와 견책 받기를 좋아합니다(10, 12, 32절). 그 이유는 명철한 의인의 마음은 지식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14절). 그러므로 명철한 의인은 그의 눈이 밝아져 자기 마음을 기쁘게 할 뿐만 아니라(30절) 자기의 부모님을 즐겁게 합니다(20절). 그리고 그는 자신의 즐거운 마음으로 인하여(13, 15절) 얼굴은 빛나며(13절) 항상 잔치합니다(15절).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인으로서 의의 길을 마땅히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의를 따라가는 자들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순종하되 겸손히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며 살아가므로 마음의 즐거움과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의를 따라가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선한 말을 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오늘 본문 잠언 15장 26절을 보십시오: “악한 꾀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라도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정직한 기도를 드리는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 선한 말을 합니다. 여기서 “선한 말”은 무엇입니까? 잠언 16장 24절을 보십시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선한 말은 기쁘고 친절한 말입니다(박윤선). 그것은 이웃을 기쁘게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이웃을 기쁘게 하는 선한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이웃의 뼈를 윤택케 하는 좋은 기별, 즉 좋은 소식(Good news)을 전합니다(15:30). 또한 선한 말을 하는 사람은 마음의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 말합니다(28절). 그는 함부로 분노 가운데 자기 마음에 있는 미련함과 악을 쏟아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유순한 대답으로 자기 이웃의 분노를 쉬게 합니다(1절). 그리고 그는 그의 이웃에게 때에 맞은 말을 하므로 그 이웃을 기쁘게 합니다(23절). 그러므로 선한 말을 하는 사람은 이웃과 좋은(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선한 말을 하는 사람은 경영함에 있어서 다른 이들과 함께 의논합니다(22절). 의논하되 그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는 것은 그는 다른 사람의 이를 탐하지 않고 뇌물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27절). 또한 선한 말을 하는 사람은 경영함에 있어서 모사를 많이 둡니다(22절). 그러므로 그의 경영하는 것이 성공합니다(22절).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선한 말을 정결한 제물처럼 받아주시기 때문입니다(박윤선). 다시 말하면, 정직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선한 말을 하는 의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정결한 제물처럼 받아주시기에 그의 경영하는 것을 성공케 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잠언 16장 1절을 보십시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 로서 나느니라.” 우리는 그저 믿음으로 우리의 행사(경영)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경영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3절).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잠언 15장 8-33절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3 가지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 3가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악인의 제사와 악인의 길과 악한 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은 정직한 자의 기도와 의를 따라가는 자 그리고 선한 말을 하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는 자들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