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있는 자의 혀

 

 

 

[잠언 151-7]

 

 

여러분, "세치 혀를 잘 놀려야 한다"라는 말 들어본 적이 있으시죠? 무슨 뜻입니까? “세치의 혀”란 약 10cm 정도 길이의 혀라는 의미로서 짧은 혀로 하는 말이 목숨이 왔다 갔다 할 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 만큼 혀는 짧지만(3치라 표현), 혀로부터 나오는 말의 결과는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성경 야고보서 3장 5절 보십시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우리 혀로부터 나오는 말이 어떤 이들은 엄청난 상처와 좌절과 실망과 저주가 되고, 어떤 이들은 희망과 용기와 생명을 얻기도 하며, 또 어떤 경우에는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도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오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그래서 성경 잠언 18장 21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오늘 본문 잠언 15장 2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지혜 있는 자의 혀”란 제목 아래 한 2가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미련한 자의 입입니다. 3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미련한 자의 입은 과격한 말을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5장 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성경을 읽다보면 분노 속에서 과격한 말을 한 예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이 노를 발하며 자기의 아들인 요나단에게 한 말을 예를 들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20장 30-31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 아니 어떻게 자기의 아들에게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라고 과격한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들 요나단 입장에서 이 얼마나 상처가 되는 말일까요? 사울 왕은 분노 가운데 요나단의 어머니를 들먹여 욕하는 이런 행위는 특히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는 극도의 증오와 분노를 나타내는 가장 격렬한 감정의 표시였다고 합니다(인터넷). 결국 사울 왕은 분노 가운데 자기 아들 요나단에게 과격한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성경 잠언 15장 18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몹시 화를 쉽게 내는 자[a man of rage(Walvoord)]는 다툼을 일으킨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는 다툼을 일으킵니까? 그는 분노 가운데 입을 절제하지 못하고 말을 함부로 하되 과격한 말, 상대방에게 상처 입히는 말을 하므로 다툼을 일으킵니다. 그러면서도 분을 쉽게 내는 미련한 자는 자기가 잘못하면서도 옳은 줄 알고 떠들며 싸웁니다(박윤선).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분노할 때에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화가 나 있을 때에는 말을 절제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분노하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은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과격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고 입을 열어 과격한 말을 할 때에는 그 말을 듣는 상대방은 충분히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분노할 때 말하기를 더디 해야 합니다(약 1:19).

 

둘째로,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15장 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여기서 ‘쏟는다’라는 히브리어 원어의 문자적 의미는 “bubbles forth”(거품을 밖으로)입니다(Walvoord). 이 동일한 단어가 오늘 본문 28절 하반절에 나옵니다: “…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영어로는 “gushes”라는 단어인데 그 단어 의미는 “(액체가) 솟구치다, (액체를 갑자기) 쏟아 내다, (칭찬, 감정을 별로 진실성 없이) 마구 쏟아 내다”입니다(네이버 사전). 무슨 뜻입니까? 마치 샘에서 물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미련한 자의 입에서 미련한 것이 거품처럼 마구 쏟아 낸다는 의미입니다. 한 마디로, 미련한 자는 생각 없이 말을 많이 한다는 뜻입니다(박윤선). 결국 미련한 자는 그 마음에 깨닫는 진리가 없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말하기보다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이런 저런 말을 쏟아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련한 자는 생각 없이 말을 많이 하므로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냅니다(14:33). 나타낼 뿐만 아니라 자기의 미련한 것을 전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2:23). 여기서 자기 속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미련함)입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의 어리석음을 나타내되 오늘 본문 잠언 15장 14절 하반절을 보면 성경은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미련한 자는 자기의 미련한 입으로 자기 속에 있는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을 즐긴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래서 성경 잠언 17장 27-28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 흥미롭지 않습니까?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긴다는 말씀이 말입니다. 우리는 말을 아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하며 진리의 말씀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에 근거해서 생각하며 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저 무턱대고 생각 없이 말을 쏟아내서 우리 자신의 미련함을 나타내며 전파할 필요는 없습니다.

 

셋째로, 미련한 자의 입은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5장 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패려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여기서 “패려함”이란 말이 참되지 않을 뿐 아니라 듣는 자를 괴롭히는 것을 가리킵니다(박윤선). 무슨 말입니까? 미련한 자는 패려한 혀를 가지고 있고 그는 그 혀로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되 그들의 심령을 상하게 한다는 말입니다(참고: 15:13; 17:22, 18:14). 특히 미련한 자는 분노가운데 과격한 말을 함부로 하므로 말미암아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련한 자는 분노 가운데 자기가 입에서 쏟아내는 말로 얼마나 그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지 모를 뿐만 아니라 그 분노하는 순간에는 자기만 생각하지 상대방이 상처 입는 것에 대하여서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지난주에 저희 집 아이들 둘이서 좀 기분 상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제가 근처에 있다가 한 아이가 또 다른 아이에게 “jerk”라고 불렀습니다.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그 jerk라는 말은 “얼간이”란 말인 것 같습니다. 그 때 저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그 아이에게 쓴 소리 한 마디를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자기 방에 가서 서럽게 울었습니다. 제가 왜 그리 화가 났는가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제가 9학년 때인가 학교에서 어떤 흑인 여자가 저에게 “jerk”라고 불렀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때 제가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상처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아이가 그 말을 하였을 때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입니다. 어느 면으로 생각하면 요즘 우리들의 대화 가운데 사용하는 용어들이 다들 사용하는 말이기에 그저 별 신경 안 쓰고 사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한 단어 중에 ‘you stupid’(멍청한 자식, 바보 같은 자식)이 있는데 영어로 이 stupid란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서 요즘 젊은 아이들은 ‘f’ word의 욕을 서슴없이 대화 가운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 같지도 않기에 다들 편안하게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과연 이러한 단어들을 이렇게 쉽게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요? 성경 마태복음 5장 22절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여기서 “라가”라는 말은 영어로 말하자면 “blockhead”(Kittel)(돌대가리 혹은 병신)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모욕(insult)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분노하는 가운데 형제에게 병신이라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면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우리는 상대방에게 이러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가 상대방에게 이렇게 부르므로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어떠한지 한 4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상대방의 분노를 쉬게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5장 1절 상반절을 보십시오:“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 지혜 있는 자는 상대방이 분노하고 있을 때 함께 분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혜 있는 자는 상대방이 분노하고 있을지라도 노하기를 더디 합니다(18절). 그러한 가운데 그는 분노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순한 대답으로 그 상대방의 분노를 쉬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 있는 자는 부드러운 말로 그 상대방의 분노를 쉬게 합니다. 그 좋은 예가 사무엘상 25장 24-31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좋은 예란 바로 악으로 선을 갚는(21절) 불량하고(25절) 미련한(25절) 나발이란 사람으로 인하여 다윗이 약 200명 각기 칼을 찬 사람들을 데리고(13절) 나발의 집을 해하기로 결정하고(17절) 그의 집으로 가고 있을 때 미련한 나발의 지혜로운 아내 아비가일이 그의 종에게 자초지종을 듣고(14-17절) “급히” 떡 이백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와 잡아 준비한 양 다섯 등등을 나귀들에게 싣고(18절) 소년들에게 앞서가게 한 후(19절) 자기도 뒤 쫓아 가다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만났을 때(20절) 아비가일은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의 앞에 엎드려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주여 청컨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으로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 여종은 내 주의 보내신 소년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 주의 여종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24-25, 28절). 지혜로운 아비가일의 말을 다 들은 다윗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찌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찌며 또 네게 복이 있을찌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나를 막아 너를 해하지 않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네가 급히 와서 나를 영접지 아니하였더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두지 아니하였으리라”(32-34절).

 

잠언 25장 15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지혜 있는 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분노하는 사람을 대합니다. 대하되 지혜 있는 자는 부드러운 혀로 상대방을 설득시켜 그 분노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의 분을 쉬게 합니다. 쉬게 하되 성경 잠언 16장 14절을 보면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살육의 사자와 같은 왕의 진노도 쉬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혀입니까? 우리의 혀가 이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대방의 분노를 부드러운 말로 쉬게 하는 지혜로운 혀를 가지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둘째로,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풉니다.

 

오늘 본문 잠언 15장 2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 무슨 뜻입니까? 지혜 있는 자의 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말함을 의미합니다(박윤선). 즉, 지혜 있는 자의 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말하되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성경은 지식을 전파한다(spread knowledge)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혜 있는 자의 눈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의 귀는 지식을 구하며(18:15) 그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 주야로 묵상하기 때문입니다(시1:2). 즉,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기에 그 지식을 잘 전한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미련한 자의 입술과 대조적입니까? 미련한 자의 입술은 지식이 없으므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쏟아낼 뿐만 아니라(2절하) 전파하는데(12:23) 비해 지혜 있는 자는 혀는 지식을 잘 전파합니다.

 

잠언 24장 5절을 보면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 잠언 15장 2절 상반절에 적용해 볼 때 지식을 잘 전파하는 지혜 있는 자의 혀는 강하고 힘을 더한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육신의 강함과 힘보다 우리의 혀의 강함과 힘을 기르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진리를 아는 지식에서 꾸준히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우리의 혀를 잘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전파해야 합니다.

 

셋째로,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상처를 치료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5장 4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온량한 혀는 곧 생명나무라도 ….” 여기서 “온량한 혀”란 ‘치유하는 혀’를 가리킵니다. 즉, 미련한 자의 입술은 과격한 말을 하므로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만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상처를 치유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혀를 가지고 있고 싶지 않으십니까? 과연 어떻게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상처를 치료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말하므로 상처를 치료합니다(2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말하되 지혜 있는 자의 혀는 부드러운 말(유순한 대답)(1절)로 잘 말하여 상대방의 상처 입은 마음을 치료합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 치유하는 혀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 혀는 진실하고도 화평스럽게 하는 말로서 듣는 자를 위로하며, 살려주며, 소망을 가지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가리켜 “은혜 가운데 소금으로 고르게 함 같은” 말이라고 합니다(골 4:6)(박윤선). 성경은 이렇게 지혜 있는 자의 혀는 듣는 자를 위로하고, 살려주며, 소망을 가지게 하기에 “생명나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잠 15:4). 다시 말하면,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므로 죽어가는 영혼을 치료하기에 생명나무인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지혜 있는 자의 혀는 때에 맞는 말을 합니다.

 

성경 잠언 15장 23절을 보십시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적합한 때에 적합한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저는 종종 내주 하시는 성령님께서 적합한 때에 적합한 말을 하게 하시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채팅으로 상담을 할 때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성령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생각나게 하시는 성경구절을 나누게 하시므로 상대방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것을 엿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제 자신도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말씀이 그 때 그 지체에겐 적합한 말씀 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본문 잠언 15장 23절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를 통하여 말하게 하시므로 기쁨을 얻게 하신다고 믿습니다. 잠언 25장 11-12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무슨 뜻입니까? 경우에 합당한 충고의 말은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입니다(박윤선). 여기서 “경우”라는 히브리어 원어의 의미는 “바퀴”란 뜻입니다. 곧, 그 때 형편과 경우에 잘 조절하여 돌아감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충고하는 자가 상대방에게 말할 때에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잘 조절해야 될 것을 가르칩니다(박윤선): 충고하는 자 자신이 사랑과 화평을 지니고 있을 때에 말해야 됩니다. 능욕하는 태도로 말하지 않아야 됩니다. 성급하게 말하지 않아야 됩니다. 예의 없이 말하지 않아야 됩니다. 이렇게 충고할 때 상대방이 잘 받아들일 때에 이것은 그 충고하는 자에게 큰 대접(“은쟁반에 금사과”와 “금고리와 정금 장식”의 의미)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박윤선). 과연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므로 주위 사람들이 주는 충고를 큰 대접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적합한 때에 적합한 말을 함에 있어서 어쩔 때는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충고나 심지어 책망을 하기 원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고나 책망도 아끼지 않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되 우리는 거만한 자에게 하지 말고 지혜로운 자에게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거만한 자를 책망하면 그가 우리를 미워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며 그가 우리를 사랑할 것입니다(잠 9:8).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성경 야고보서 3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에 실수가 없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힘써야 함에 있어서 오늘 본문 잠언 15장 1-7절 중심으로 미련한 자의 입과 지혜 있는 자의 혀에 대해서 묵상을 했습니다: 미련한 자의 입은 과격한 말을 하고, 미련한 것을 쏟으며 또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상대방의 분노를 쉬게 하며, 지식을 선히 베풀며, 상대방의 상처를 치료하며 또한 때에 맞는 말을 한다고 배웠습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의 혀는 지혜 있는 자의 혀입니까 아니면 미련한 자의 혀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