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여인

 

 

[잠언 141-9]

 

 

여러분, 과연 저와 여러분이 우리 각자의 가정을 어떻게 세워 나아가야 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승리장로교회에게 주신 주님의 약속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 18절을 생각할 때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한 3가지 기도 제목들이 있습니다. 그 3가지 기도 제목들이란 저는 주님께서 그리스도 중심된 꿈을 가진 일꾼들을 우리 가운데서 세워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저는 또한 주님께서 우리 각각 가정들을 세워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주님께서 주님의 몸 된 승리장로교회를 세우시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기도할 때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를 함께 기도제목으로 놓고 기도할 때가 종종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 3가지 기도 제목들 중에 특히 저는 두 번째 기도 제목인 주님께서 우리의 가정을 세워 주시길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좀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복습 차원에서 2008년 5월 18일에 전파했던 “주여, 저희 가정을 세우소서!”란 제목 아래 역대상 17장 16-27절 말씀을 다시 뒤돌아보면 그 때 우리는 세 가지 기도 제목을 받았었습니다: (1) ‘주여, 하나님의 은혜로 다스림을 받는 내 가정이 되게 하소서!’(16절), (2) ‘주여, 하나님의 말씀이 내 가정에 권위가 되게 하소서!’(23절), 그리고 (3) ‘주여,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내 가정이 되게 하소서!’(25절). 과연 저와 여러분의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스림을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정에 권위인지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가정인지 다시 한 번 오늘 말씀을 받고 기도하면서 뒤돌아보십시다.

 

저는 오늘 본문 잠언 14장 1-9절 말씀 중심으로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가정을 세우심에 있어서 지혜로운 여인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좀 묵상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4장 1절을 보십시오: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여인”이란 제목 아래 한 2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이 2가지를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아 순종하므로 우리의 집과 섬기는 교회를 세우시는 주님의 역사에 겸손히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먼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자기 손으로 집을 허는 미련한 여인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14장 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과연 자기 손으로 집을 허는 미련한 여인은 누구입니까?

 

첫째로, 자기 손으로 집을 허는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을 경멸히 여깁니다.

 

오늘 본문 잠언 14장 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미련한 여인은 “패역하게 행하는 자”입니다. 패역하게 행하는 자란 바로 자기 좋은 대로만 행하는 자를 말합니다(박윤선). 그리고 자기 좋은 대로만 행하는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을 경멸히 여깁니다. 즉, 그녀는 하나님을 멸시합니다. 과연 어떻게 그녀는 하나님을 멸시합니까? 박윤선 박사님은 한 7가지로 말하였습니다(박윤선): (1) 하나님을 멸시하는 미련한 여인은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합니다(딤후 3:4), (2) 하나님을 멸시하는 미련한 여인은 부패한 인간성 그대로 행하며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합니다(유1:10), (3) 하나님을 멸시하는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이 인간의 죄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며, 속히, 또는 매번 벌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에 그녀는 도리어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롬2:4), (4) 하나님을 멸시하는 미련한 여인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잠 13:13), (5) 하나님을 멸시하는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자기를 영화롭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녀는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으려고 망동합니다, (6) 하나님을 멸시하는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함. 이것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마7:7-11)을 멸시함입니다, 그리고 (7) 하나님을 멸시하는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정성되이 하지 아니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멸시하는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기에 똑바른 길을 걷지 못하고 비뚤어진 길을 걷습니다. 즉,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미련한 여인은 표리가 있는(불성실한)(double-dealings) 길을 걷습니다(KJV 성경주석). 그녀는 불성실하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므로 정직하게 행하지 않고(할 수도 없고) 오히려 악을 행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자기 집을 헙니다.

둘째로, 자기 손으로 집을 허는 미련한 여인은 교만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4장 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미련한 여인은 교만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절). 그녀는 교만하여 남을 자기보다 못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다른 이들을 우습게보고 마음으로 또한 무시합니다. 예를 들어 한 가정에서 아내가 미련하고 교만하면 남편을 자기보다 못하게 여기므로 우습게보고 무시합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입으로 자기의 남편에게 무시하는 말을 하므로 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힙니다. 그러면서도 심각한 문제는 그녀는 자기가 자기의 남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교만하고 미련한 아내와 사는 그 남편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의 집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집이 제대로 세워지겠습니까 아니면 허물어지겠습니까? 잠언 11장 2절 상반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 무슨 뜻입니까? 미련하고 교만한 여인은 자기의 입으로 말미암아 치욕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어떠한 치욕을 당합니까? 잠언 10장 13절 하반절을 보면 성경은 “…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미련하고 교만한 여인은 자기의 입으로 말미암아 치욕을 당하되 채찍 또는 막대기(26:3)로 징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여인을 낮아지게 하십니다(29:23). 하나님께서는 결코 교만한 여인으로 하여금 가정을 세우시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미련하고 교만한 여인은 자기 집을 헙니다.

 

셋째로, 자기 손으로 집을 허는 미련한 여인은 거만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4장 6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 미련한 여인은 거만하여 다른 사람들의 말 듣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듣는 능력을 상실합니다(MacDonald). 여러분, 사람이 듣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듣는 귀가 두개나 있다고 한들 다른 사랑하는 사람들의 권면이나 충고나 면책 등을 듣기를 계속 거부하다 보면 그러한 사람은 자기 옳다고 생각에 사로잡히게 될 뿐만 아니라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서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주위에 친구들을 다 잃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느 누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겠습니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자기가 제일 잘 났다고 생각하면서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들이 너무나 거만하게 들릴 때 누가 그 사람 주위에 남아 있겠습니까? 만일 집 안에 아내가 미련하여 거만하다면 그녀는 그녀의 남편의 말 듣기를 거부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듣는 능력을 상실하는 가운데 교만하고 거만하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질될 것입니다. 그러한 여인이 자기의 남편과 특히 자녀에게 미칠 나쁜 영향을 여러분은 상상이 되십니까? 이러한 거만한 자가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한다고 오늘 본문 6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말 듣기를 거부하여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거만한 자가 지혜를 구한다는 그 자체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지혜를 구하는 그 자체가 아니라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 거만하여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1:7; 9:10)(Walvoord).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교만하고 거만한 자가 지혜를 구하여 얻을 수 있겠습니까? 잠언 16장 18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지혜가 없는 거만한 미련한 여인은 그 남편과 자녀들을 넘어지게 합니다. 그녀는 자기 남편과 자녀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므로 말미암아 결국 자기 가정을 자기 손으로 무너트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넷째로, 자기 손으로 집을 허는 미련한 여인은 지식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14장 7절을 보십시오: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자기 손으로 집을 허는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고 교만하고 거만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즉, 그녀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언행을 일삼습니다(시14:1)(박윤선). 그리고 그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기에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을 나게 하는 변론과 언쟁을 좋아합니다(딤전 6:4). 여러분, 집 안에 아내가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면 분명히 그 여인은 변론과 언쟁을 좋아할 것입니다. 그 결과는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서 그러한 가정에는 평안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련한 여인이 지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만하여 자기가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거만하여 어느 누구의 충고와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 가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란 영적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하고 거만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별로 없으면서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교회는 시끄러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교만하여 가르침을 받는 마음에 자세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러한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잠 14:7)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지 않으면 우리도 잘못하면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우리 집을 무너트리는 미련한 자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로, 자기 손으로 집을 허는 미련한 여인은 자기 자신을 속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14장 8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미련한 여인의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미련한 여인의 어리석음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시 53:1). 그러므로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기에 그녀는 부패하여 가증한 악을 행합니다(시 53:1). 그녀는 선을 행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1, 3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한 여인은 자기의 행위가 바른 줄 알고 있습니다(12:15). 야고보서 1장 22절을 생각납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순종(실행)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미련하고 거만한 여인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녀는 아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무시하는 미련한 여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미련한 여인이 어떻게 자기 집(가정)을 세울 수 있겠습니까?

 

여섯째로, 자기 손으로 집을 허는 미련한 여인은 죄를 심상히 여깁니다.

 

오늘 본문 잠언 14장 9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에 진리를 모릅니다. 진리를 모르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련한 여인은 진리를 모르기에 악을 행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기 범한 죄악을 죄악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할 능력을 그녀는 상실했습니다. 오히려 진리를 모르며 죄를 죄로 여길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미련한 여인은 잠언 10장 23절을 보면 “행악으로 낙”을 삼습니다. 그러기에 미련한 여인은 죄로 마음이 강퍅하여져서 하나님께 죄를 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즉, 미련한 여인은 죄를 심상히 여깁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각하게 여기시는데 미련한 여인은 죄를 가볍게 여깁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 무식한 자는 죄를 죄로 알지 못하고 도리어 그것을 즐거워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녀는 죄를 회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회개하지도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녀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기에 회개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면서 살 것입니다. 그녀는 죄를 심상히 여기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죄악 된 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수많은 죄를 범하면서도 양심에 찔림이 없을 정도로 강퍅한 마음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한 여인이 집에 있다면 그 집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지막 둘째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14장 1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 과연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여인은 누구입니까?

 

첫째로,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정직히 행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4장 2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1:7).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여인은 정직히 행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정직히 행하는 지혜로운 여인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까요? 박윤선 박사님은 한 5가지를 말하였습니다(박윤선): (1) 평범한 일을 하면서도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2) 은밀한 가운데서 경건하게 살며 깨어 기도합니다. (3) 마음속으로 죄를 범하지 아니합니다, (4) 평안한 때에 오히려 주님을 떠날까 하여 두려워하며 조심합니다, (5) 난처한 때에 구차스럽게 그것을 면하려 하지 않고 의리를 지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정직히 행하는 지혜로운 여인은 죄를 결코 심상히(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9절). 오히려 그녀는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죄를 심각하게 여깁니다(9절). 그러므로 그녀는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을 때 죄에 대한 깨달음과 동시에 하나님께 자기가 범한 죄를 자백하며 회개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정직히 행하는 그 여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9절).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정직히 행하는 여인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그녀를 기꺼이 받아들이신다(acceptance)는 말입니다(Walvoord).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8:35) 여러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잠언 31장 30절을 보면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자에게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여인은 정직히 행하므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세우십니다.

둘째로,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여인은 그 입술에 지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14장 7절을 보십시오: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 지혜로운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겸손하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자의 권면과 훈계를 겸손히 들어 지식 얻기가 쉽습니다(6절). 그녀는 심지어 의인의 책망도 겸손히 듣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지혜로운 자의 책망을 은혜로 여깁니다(시 141:5). 그러므로 그녀는 지혜로운 자의 책망을 환영합니다(welcome). 그 이유는 그녀는 그 지혜로운 자의 책망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게 유익되게 할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녀는 지혜로운 자의 책망을 자기 자신에게 유익되게 합니까? 그것은 바로 지혜로운 여인은 지혜로운 자의 책망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학식(learning)을 더하게 하므로 유익되게 합니다(잠 1:5, 9:9). 잠언 9장 9절을 보십시오: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 이렇게 겸손하여 학식을 더하는 지혜로운 여인은 교만한 여인처럼 입으로 매를 자청하지 않습니다(3:3). 오히려 그녀는 입술로 스스로 보존합니다(3절). 다시 말하면, 지혜로운 여인은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하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여 남에게 유익하도록 입술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자기 자신도 유익을 얻습니다(박윤선).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남을 사랑하므로 그를 헐뜯지 않고 도리어 감싸준다(벧전 4:8). 그러니만큼 남들도 말로써 그를 보호한다.” 더 나아가서, 그녀는 신실한 증인으로서(5절) 지식 있는 입술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지혜롭고 입술에 지식이 있는 여인을 통하여 가정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십니다.

 

셋째로,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여인은 부지런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4장 4절을 보십시오: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당연히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합니다. 그러나 소가 없으면 논밭을 경작함에 있어서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소가 없으면 농업에 있어서 큰 수확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여인은 소를 사서(money) 시간을 투자하여(time) 소를 먹이고 씻기로 돌보므로 말미암아 함께 부지런히 일하여(work) 풍성한 수확을 얻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노력해야 될 것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짐승들 중에서도 특히 소를 거론하시는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명기 25장 4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그래서 박윤선 박사님은 “’소’는 충성과 노력의 상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지혜로운 여인은 충성하며 노력함. 노력하되 그녀는 부지런히 노력하여 “산업이 핍절치 아니”합니다(잠 31:11). 잠언 31장 13절부터 보면 현숙한 여인은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되(13절) 그녀는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들에게 식물을 나눠주고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15절) 힘으로 허리를 묶으며 그 팔을 강하게 하며(17절) 자기의 무역하는 것이 이로운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한다(18절)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한다(27절)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칭찬합니다(28절). 이러한 지혜롭고 부지런한 여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세우시고 교회를 세우십니다.

 

넷째로,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의 길을 압니다.

 

오늘 본문 잠언 14장 8절을 보십시오: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무시하기에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길을 걷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자기 마음대로 그리고 자기 뜻대로 자기가 걷기를 원하는 길을 걷습니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어리석음만을 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53:1). 그리고 이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떠나 사는 것은 진리를 떠나 거짓된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자기 자신을 속이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들어내는 미련한 여인은 자기의 가정을 허물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의 집을 세웁니다. 그녀는 먼저 자기의 갈 길을 압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향하신 뜻을 알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로운 여인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기가 할 일을 바로 알고 그 일을 행합니다(고전 7:17)(박윤선). 그 하나님의 뜻 중 하나는 바로 자기의 집을 세우는 것이요 또한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이 주님의 뜻을 알고 이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주님께 충성하며 부지런히 노력하되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겸손히 주님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지혜로운 여인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주님의 집을 세우십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집을 세운 지혜로운 여인을 생각할 때 성경에 누가 생각이 나십니까? 저는 성경 룻기서에 나오는 모압 여인 룻이 생각납니다. 성경은 그 모압 여인 룻을 “현숙한 여자”(a woman of excellence)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룻 3:11). 어느 면으로 보면 룻의 가정은 시아버지 엘리멜렉도 죽고, 남편 말론도 죽고 시동생인 기룐도 죽고, 동서인 오르바도 가정을 떠났고 유일하게 남은 사람은 과부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자기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룻은 이방 여인임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좇아 유다 땅 베들레헴으로 와서 보아스의 밭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보아스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둘은 결혼해서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에 룻은 보아스와 함께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큰 은혜입니까? 이 은혜를 생각할 때 참으로 룻은 현숙한 여인이요 지혜로운 여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은혜를 사모하는 여인이었으며(2:10), 순종하는 여인이었고(3:5-6) 또한 인애를 베푸는 여인이었습니다(3:10). 주님께서는 이러한 룻을 통하여 보아스의 가정을 세우시사 그 가정을 통하여 결국에는 메시아 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고 예수님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리고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주님의 몸 된 승리장로교회를 세우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정직히 행합니다. 또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은 그 입술에 지식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은 부지런합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길을 알아 주님의 뜻에 합당한 자기가 할 일을 충성되이 행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집을 세우는 지혜로운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