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의 뿌리

 

 

[잠언 12]

 

 

여러분 혹시 2011년 10월 5일부터 한국 SBS에서 방영되었던 “뿌리 깊은 나무”라는 드라마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이정명의 소설 “뿌리 깊은 나무”를 드라마 한 것으로, 조선 세성시대 훈민정음 반포 전 7일간 경복궁에서 벌어지는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작품으로서 한글창제의 위대함과 이면에 가려진 고충을 가감 없이 보여준 드라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어떤 사람이 이러한 글을 쓴 것을 읽게 되었습니다: “한글의 우수성을 그 제작을 기도한 세종대왕의 동기에서 부터 시작하여, 그 과정에서 그가 고민했었을 여러 상황들을 모두 다 빼놓지 않고 잘 상상해내어 드라마로 보여주었다. 해서 한글을 직접 쓰고 있는 한민족의 문화아래서 자라난 사람의 하나로서 그러한 위대한 왕을 가졌던 긍지뿐 아니라 그처럼 고귀한 글자를 손수 쓰고 있다는 자부심을 적지 않게 북돋아 주었다”(인터넷). 그러면서 그 사람은 “한글이 얼마나 익히기 쉽고 그 것을 만들어 낸 동기가 얼마나 고상한 생각에서였던가를 잘 모르고 자라나는 해외 이세들에게 영어 자막이 붙여지자마자 꼭 보여주고 싶은 드라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언어인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들이 있었는지를 좀 엿볼 수 있는 이러한 드라마를 통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의 신앙의 뿌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들로서 우리의 뿌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12장 3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의인의 뿌리”라는 제목 아래 한 2가지로 잠언 12장 전체를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아 순종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합니다. 다시 말하면, 의인은 굳게 서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12장 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 성경은 우리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절). 달리 말하자면, 우리 사람의 뿌리가 악하면 굳게 서 있지 못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시편 1편 4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여러분, 악인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악인은 짐승과 같이 징계(correction)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잠 12:1). 왜 악인은 징계를 싫어합니까? 그 이유는 오늘 본문 잠언 12장 15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악인은 미련하여서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련한 악인은 지혜로운 자의 권고(충고)를 듣지 않습니다(15절). 그리고 악인은 악을 꾀하면서(2절) 궤휼을 도모합니다(5절).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입니다(6절). 이러한 악인에게는 오늘 본문 4절 하반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욕을 끼치는 여인”(a disgraceful wife)을 아내로 두므로 자신의 뼈를 썩음 같이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악인은 자신만이 굳게 서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집도 굳게 설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악인은 결국에 가서는 엎드러져서 소멸됩니다(7절).

 

그러나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않습니다(3절). 어떻게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의인은 굳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 비결은 의인은 훈계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의인은 지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굳게 서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나니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 의인이 훈계를 좋아하는 이유는 지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의 징계도 달게 받습니다. 그 이유는 의인은 의로운 길, 올바른 길로 행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5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의인의 생각은 공직”합니다. 다시 말하면, 훈계를 좋아하며 지식을 사랑하는 의인의 계획들은 공평하고 정직하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은총을 내려주시사(2절) 어진 여인을 만나게 해주시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그 어진 여인을 통해서 그녀의 남편의 면류관이 되게 하십니다(4절).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어진 여인을 아내로 주시사 그녀로 인해 그 의인을 영광스럽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께서는 의인만 굳게 서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3절) 그 의인의 집도 견고하게 서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7절).

 

둘째로, 의인은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합니다. 다시 말하면, 의인은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12장 12절을 보십시오: “악인은 불의의 이를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 성경은 악인은 불의의 이를 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2절). 그가 불의의 이를 탐하는 이유는 그의 마음이 방탕한 것을 따르기 때문입니다(because he is chasing fantasies)(11절). 여러분, 악인의 마음에 있는 탐심은 공상과 아무 가치가 없는 헛된 것을 좇습니다. 그러기에 그 악인은 불의한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남의 것을 약탈합니다. 그의 생각은 비뚤어져 있어서(8절) 자기의 손을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11절) 남의 것을 약탈할 생각만 합니다. 그 이유 중 하는 악인은 게으르기 때문입니다(24절). 그래서 오늘 본문 27절 보면 성경은 게으른 악인은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생각만 비뚤어진 것이 아니라(8절) 그의 마음도 비뚤어져 있습니다. 20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궤휼이 있고 ….” 악을 도모하는 악인의 비뚤어진 마음에는 기쁨(“희락”)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마음에는 잔인함이 있습니다(10절). 그래서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악인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려서라도 남은 것을 약탈할 마음의 계획을 세웁니다. 이렇게 생각과 마음이 비뚤어져 있는 악인은 입도 비뚤어져서 입술에 허물이 있다고 오늘 본문 13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입술에 허물이 있되 그 입술에서는 궤휼(lies)을 말합니다(17절). 다시 말하면, 악인은 눈 깜짝일 동안만 있는 “거짓 혀”를 가지고 있습니다(19절). 그래서 악인은 음식도 핍절하면서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 합니다(9절). 그리고 심지어 악인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여(18절)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합니다(12절). 과연 어떻게 의인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갑니까?

 

(1) 의인은 부지런합니다.

 

잠언 12장 27절을 보십시오: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 의인은 악인처럼 불의의 이를 탐하지 않습니다(12절). 또한 의인은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않는 악인처럼 게으르지 않습니다(27절). 오히려 의인은 부지런하여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므로 먹을 것이 많습니다(11절). 그리고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도 돌아봅니다(10절). 그러므로 부지런한 의인은 사람을 다스리게 됩니다(24절). 그러나 게으른 악인은 부림을 받습니다(24절). 한 마디로, 의인의 부귀는 부지런합니다(27절).

(2) 의인은 지혜롭습니다.

 

잠언 12장 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 지혜로운 의인은 악인처럼 스스로 높은 체 하지 않습니다(9절). 오히려 그는 지식을 감추어 둡니다(23절; 10:14). 그에게는 절제와 겸손함 있어서 적합한 때에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므로 자기 자신을 높이기보다 상대방을 세워줍니다(참고: 14:1). 그리고 지혜로운 의인은 미련한 자처럼 자기 행위가 바른 줄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권고를 듣습니다(12:15). 그 이유는 지혜로운 의인은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을수록 자기 자신이 지혜롭게 되는 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19:20). 또한 지혜로운 의인은 모사(advisers)가 많으면 평안(승리)을 누리는 줄 알고 있기 때문에 권고를 듣습니다(11:14). 또한 지혜로운 의인은 미련한 자처럼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지 않고 수욕을 참습니다(12:16). 그가 수욕을 참을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는 것입니다(10:12). 그리고 그는 화평을 추구하기에(12:20) 수욕을 참는 것입니다.

 

(3) 의인은 진실히 행합니다.

 

잠언 12장 22절을 보십시오: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진실히 행하는 의인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눈 깜짝일 동안만 있는 거짓 입술이 아닌(19, 22절) 영원히 보존되는 진실한 입술(19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진리를 말합니다(17절). 또한 의인의 진실한 입술은 마치 양약 같아서(18절) 선한 말로 상대방을 즐겁게 합니다(25절). 그리고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됩니다(26절). 더 나아가서, 의인의 정직한 입술은 사람을 구원하기까지 합니다(6절).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28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강준민 목사님이 쓴 “뿌리 깊은 영성”이란 책을 보면 하나님과 깊은 내면의 친교를 강조하는 앤드류 머레이 목사님이 남아프리카의 오렌지 나무를 해치는 질명 가운데 하나인 ‘뿌리 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인터넷). 저자에 의하면 이 병에 걸린 나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열매를 맺기 때문에 일반인은 나무가 병들었는지도 눈치를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전문가는 그 나무에서 느린 죽음의 서곡을 듣는다고 합니다. 포도나무의 뿌리진디도 이러한 뿌리 병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옛 뿌리를 잘라내고 새 뿌리를 접붙이지 않는 한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원산지 포도나무에 미국산 포도나무의 뿌리를 이식시킨 후 시간이 경과하면 줄기, 가지, 열매는 전과 다름없지만 뿌리는 더 싱싱하고 질병에도 저항력을 지닌 포도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 점은 질병이 찾아오는 곳, 그리고 치료가 필요한 곳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 있다는 것입니다. 병든 나무의 문제가 뿌리 병에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문제도 바로 뿌리 병과 같은 영혼의 질병에 그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바른 영성생활을 하기 위해선 예수님께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께 깊이 뿌리를 내려서 움직이지 아니하고 견고히 서 있으면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드리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