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자가 되라! (2)
“…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는니라”(잠언 11장30절).
2006년 신년연합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승리장로교회 새해 표어 구절인 잠언 11장 30절 하반절 말씀 중심으로 4가지 능력에 대해서 묵상하였습니다. 잠에게 깨고 싶은 간절한 마음속에서 마음의 무거움을 가지고 선포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영적 무관심과 특히 영적 무능력 속에서 깨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무능력함을 느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기에 오직 이 네 가지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선포하였습니다. 사람을 얻는 자가 먼저 되어야 할 제가 자신의 무능력함을 느끼는 신년연합예배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 이 4가지 능력을 경험하길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새해 2006년 하나님께서 긍휼이 여겨주시사 이 4 가지 능력으로 충만하게 해주시길 간구합니다.
첫 번째 능력은 기도의 능력입니다.
사도행전 1장14-15절을 보면 성경은 약 120문도가 “…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인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붙잡고 성령이 자기들에게 임하길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들은 기도하되 어떻게 기도했는가 하면 첫째로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였고, 둘째로 전심으로, 헌신적으로 기도했으며, 마지막 셋째로 이들은 지속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로 전도하라”[미주복음신문, 2005년 11월27일]에 난 기사를 보면 “기도는 리더십”이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기사를 보면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기도하지 않는 민족보다 더 큽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그 조직이나 국가에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국가와 가정 그리고 사회와 직장을 기도로 통치하고 관리하십시오. … 기도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겠다는 사인으로 생각하십시오. 기도 가운데 생각나는 사람은 전도할 수 있는 찬스입니다”(인터넷). 그러면서 기사를 쓴 저자가 하는 말은 “기독교 인터넷사이트 갓피플 닷컴이 10월 23일부터 11월 12일까지 네티즌 1043명을 대상으로 ‘내가 해본 방법 중 가장 좋았던 전도 방법’에 대한 설문을 실시한 결과가 나왔는데 17%가 ‘만날 때마다 전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기도해주기’를 꼽았다고 합니다(인터넷).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이 기도의 능력을 믿고 굴복하는 가운데 기도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16장에 나타난 패턴처럼 기도하러 가는 가운데(13절)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고 허락해주시는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복음을 받게 하시고(14절) 그러므로 결국 온 가정이 예수님을 믿고 다 세례를 받았던 것처럼(15절)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기원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가 기도하러 가는 가운데(16절) 우리가 보기엔 안 좋은 귀신들린 여종과의 만남 (16절)을 통하여 핍박이 올지라도(19-24절) 감옥에서도 바울이 기도하였던 것처럼(25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므로(26절) 간수가 예수님을 영접하고(33절) 온 가족이 하나님을 믿는(34절)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하는 가운데 큰 지진을 통하여 감옥 문이 열린 것처럼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우리 전도 대상자들의 마음 문이 열리므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기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능력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능력이란 사도행전 1장 8절에 나오는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므로 받는 “권능”을 말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위로부터 능력”(눅24:49), 즉 “권능”은 제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었던 정치적인 파워나 구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경건한 생활의 개인적인 능력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로 하여금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만드는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Word Pictures in the N.T. & Nelson Study Bible). 유상섭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권능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기도하고 있을 때에 그에게 임한 성령이 그로 하여금 본격적인 복음 사역을 능력으로 시작하게 했듯이,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동일한 성령님이 능력으로 역사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유상섭).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면, “위로부터 능력”, “권능”은 복음 사역을 감당케 하는 능력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이러한 능력을 이미 받았다면 왜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위로부터 능력을 경험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능력이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성령의 능력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인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에 순종치 않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가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권능”을 받지 못해서가 아닌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이미 이 “권능”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위하여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 3:16). 우리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우리 마음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선포(전파)하는 삶을 살기를 위해서 간구해야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이렇게 간구할 때에 주님께서는 더 넘치도록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20절).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서 기도의 능력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담대히 전파하므로 주님께 인도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나아가는데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세 번째 능력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복음의 능력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을 얻는 자 바울이 어떻게 전도의 열정을 가질 수 있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어느 인터넷 웹사이트 글을 보니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죄와 세상과 율법으로부터 구원한 복음의 능력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적혀 있는 글을 보니 “전도의 첫걸음은 복음의 능력을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인터넷). 과연 나 자신이 나를 구원한 복음의 능력을 맛보았다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예로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우물가의 여인을 들 수가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경험한 이 여인은 요한복음 4장 39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결과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42절을 보면 그 동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나타난 복음의 능력은 약 120문도가 약속의 말씀인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을 붙잡고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을 때(1:14),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오순절 날 성령 강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성령 충만했던 사도 베드로가 일어나 모인 군중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하심을 전파했을 때에 3,000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2:41). 여기서 우리는 한 패턴(pattern)을 보게 됩니다: 기도 --> 성령 충만 --> 복음 선포 --> 3000명 구원의 역사.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하며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며 그러하므로 복음을 담대히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능력은 사랑의 능력입니다.
만일 복음의 진리가 선포되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빠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무능력한 것처럼 복음의 진리가 성령의 열매인 사랑으로 전파되지 않으면 아무 능력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사랑장의 말씀 고린도전서 13장 1절을 보면 성경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밖에 안 됩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제일 무서운 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무관심”이라고 서울 사랑의 교회 원로목사님이신 옥한음 목사님이 그의 책 “전도자”에서 말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냉혹한 이기주의에 사로잡혀서 자기 자신이나, 자기 가족,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외에는 도통 관심이 없습니다. 이 세대가 점점 더 무서운 무관심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옥한음). 마치 누가복음 10장 30-37절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안 인의 비유처럼 강도 만난 사람처럼 영적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은 수 없이 많은데 우리는 마치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그냥 ‘보고 피하여 지나가는 것’입니다(31, 32절).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9장 13절에서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 희생을 베푸는 사랑”(옥한음)이 결핍돼 있고 오히려 “제사”, 즉 예배를 하나님 앞에 나아와 드리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영혼들, 믿지 않고 있는 가족 식구들과 자녀들, 부모님들, 친구들 등등, 그들을 그냥 놔두고 혼자 나와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린들 과연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받으시겠는가 질문해 볼 때에 옥 목사님은 이들을 두고 혼자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에 “너무나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옥한음). 그러한 가운데 “안타까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주여, 어떻게 하든지 그 영혼을 구원해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부르짖어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옥한음). 우리는 결코 누가복음10장 29절에 나오는 율법사처럼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행동이 없는 신앙생활을 합리화 시키면 아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 사랑함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입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이 우리 가족 중에, 친척 중에, 친구들 중에, 직장 동료들 중에 …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을 그냥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되면 아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들을 신실하게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저희 할머님이 좋아하시던 말씀은 제가 알기론 시편 23편 말씀이셨습니다. 그 말씀 1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러한 깨달음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 깨달음은 바로 주님을 나의 목자로 삼지 않고 마치 양이 제 갈 길을 가듯이 내가 살아간다면 철저히 부족함을 느껴야 주님께 돌아와 주님을 의지하며 목자로 모시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마치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처럼 아버지의 품을 떠나 제 갈 길을 가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철저히 부족함을 느끼므로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께 돌아갔던 것처럼 저는 이 새해 2006년 주님을 목자로 모시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의심하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때에 인간 제임스의 부족함을 철저히 느끼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고 싶습니다. 그분의 능력이 나타나길 간절히 사모하고 싶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맛보고 싶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능력과 복음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사랑의 능력을 깊고 넓게 크게 체험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