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자가 되라! (1)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언 1130).

 

 

새해 2006년도 승리장로교회 표어는 “사람을 얻는 자라 되라!”(Be a Soul Winner!)입니다. 그리고 표어 구절은 잠언 11장 30절 하반절인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는니라”(he who is wise wins souls)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사람을 얻는다’는 말씀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은 얻는다’는 말씀은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 혹은 지혜로운 방법으로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합니다(MacArthur). 한 마디로 말하면, 지혜로운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영향을 끼친다’(a “life-giving influence”)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생명을 주는 영향’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잠언 11장30절 상반절을 보면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죽은 나무는 불의인의 열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불의인의 열매를 맺는 이 잃어버린 나무를 찾아 주님께 데리고 오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도록 선을 베푸는 것, 그것이 생명을 주는 영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젠 생명나무로서 무럭무럭 자라나 열매는 맺는 신앙인의 삶을 살도록 돕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자의 사람을 얻는 자의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여기서 말하는 ‘생명을 주는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어떠한 특질(혹은 인품)이 있어야 합니까? 스펄전 목사님의 그의 책 “The Soul Winner”에서 7가지로 말했습니다.

 

첫째로, 영혼을 얻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거룩한 성품이 있어야 합니다.

 

Andy Stanley 목사님의 지도자들의 인격에 대하여 던진 질문(“The Next Generation Leader”)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인격 개발은 항상 끝을 생각하고 시작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기를 원합니까?’ 이 질문에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은 인격 개발의 끝을 무엇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진다면 저와 여러분은 승리장로교회 모든 사람들에게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기를 원하십니까? ‘야 저 누구누구는 참 예수님을 닮았어(혹은 닮아 가는 것 같아)’ 이런 칭찬을 듣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웃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교회가 세상에 거룩한 영향력을 미치기보다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불경건한 영향을 받고 있는 까닭은 성도들이 세상과 구별되어 거룩한 삶을 사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격 개발의 끝 혹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님을 닮는 것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그 예수님을 닮아가는 목표에 우리는 그의 거룩하심을 추구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복음 17장14절 이하에서 얻는 대답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에 속하지 말아야 합니다(14절). 그러기 위해서는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15절). 둘째로, 진리로 거룩해져야 합니다(17, 19절). 스펄전 목사님은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성품을 타협하는 도구(사람)들을 사용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 보라고 하고 복음을 전할지라도 초청자나 혹은 전도자가 예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지 못하고 그의 거룩하심을 삶 속에서 들어내지 못한다면 영혼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스펄전). 우리는 입술로만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므로 말미암아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영혼을 얻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영적 삶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옥한음 목사님의 교회갱신 목회자협의회 설교(제목: “표준을 낮게 잡으면 망한다”)(2001. 8.22)를 보면 옥 목사님은 그 설교 서론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의 리더십에 엄청난 변화를 말씀하시면 그 변화가 질적으로 나빠지는 변화임을 지적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리더십의 신뢰가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고민 없는 질그릇이라면 그것은 질그릇이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고린도후서 4장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질그릇에다가 보배를 담았다”고 말씀하고 계신데 왜 보배를 금 그릇에다가 담지 않으시고 질그릇에다가 담으셨으니 이 질그릇은 죽을 지경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못 느끼는 지도자라면 “그 사람은 약간 좀 이상하거나, 아니면 너무 은혜를 받아서 천사가 되었든지 둘 중의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어떻습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은 보배를 담은 질그릇으로서 고민이 있습니까?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닌 저와 여러분, 과연 우의 영적 삶의 수준을 얼마나 높게 잡았습니까? 예를 들어 동네 산을 표준으로 삼고 준비하는 사람과 에베레스트를 오르려고 준비하는 사람과 그 준비 자세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요즘 교회 직분자들 다 그런데 하면서 그들을 표준으로 삼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과 예수님을 표준으로 삼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과 같을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어떤 설교자들은 반죽은 상태(the state of half-death)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강단에서는 천사요, 일상생활 삶 속에서는 지렁이와 같이 산다는 것입니다. 주일 교회 와서는 천사인데 집이나 직장에서는 다르게 산다면 그것은 반 죽은 상태 신앙생활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높은 수준의 영적 삶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이 수준을 낮추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을 얻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상처를 주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그릇 밖에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교회 안과 교회 밖에서의 일치하는 삶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거룩하게 보이고 가정과 삶 속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이 자꾸만 들어나면 교회 안과 밖에서의 일치되지 못하고 있는 성품으로 말미암아 영혼을 얻는데 하나님의 도구로 충분히 쓰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셋째로, 영혼을 얻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성경적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겸손한 자는 어떠한 자입니까? 하나님을 알아가므로 자기 자신을 바로 알아가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로마서 12장 3절 말씀처럼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합니다. 간단히 적용해 본다면 겸손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바로 알고 있기에 주제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때에 우리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착각 속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가 너무 많은 것입니다. 가끔 보게 되는 글은 저는 부족해요 하면서 2%로가 부족합니다 라고 하는데 2%로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98%가 부족한 것을 2%로 부족한 것으로 착각할 때가 많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착각 속에 살아갈 때가 있습니까? 그 이유는 교만함 때문인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두 부류의 교만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부류는 자만에 가득찬 사람들로서 ‘나를 칭찬해 달라, 제발 나를 칭찬해 달라, 나는 그것을 원한다’하는 사람들이며, 또 다른 교만한 사람들의 부류는 ‘나를 칭찬해 달라’는 원함조차도 없는 자들로서 이미 너무나 교만하여 사람들이 자기를 칭찬하던 안하던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원하기보다 그들을 업신여깁니다. 이 부류의 교만한 사람들을 말씀하신 후 스펄전 목사님은 잘못된 겸손을 말했는데 마음에 찔림이 있었습니다. 그 잘못된 겸손을 가리켜 그는 뭐라고 불렀는가 하면 “sinful love of ease”(편안함을 추구하는 죄악 된 사랑)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낮게 보고 있는데 그들의 생각은 자기 자신들의 능력을 너무나 작게 여겨 아무 선한 일도 모험적으로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의존(self-reliance)이 없다고 말하면서 항상 자기 자신을 위하여 편한 곳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겸손해서 자기 자신들이 책임질 일(비난 받을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것을 겸손이라고 부르지만 스펄전 목사님은 “sinful love of ease”(편안함을 추구하는 죄악 된 사랑)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도전은 영혼을 얻는 자는 이러한 부류의 교만함이 전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영혼을 얻는 자는 진정한 겸손히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겸손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바로 생각하게 해주며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을 생각게 만듭니다.

 

넷째로, 영혼을 얻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그 질문을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야고보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죽은 믿음을 생각해 보면 될 것입니다. 성경 야고보서 2장 26절을 보면 사도 야고보는 “…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살아있는 믿음이란 행함이 있는 믿음인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1:22). 지난 화요일 새벽기도회 때 묵상한 누가복음 10장 29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시험하는 한 율법사가 나옵니다. 그는 율법을 잘 아는 자로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행하라”(실천하라)고 말씀하시니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옳게 보이려고 예수님께서 누가 내 이웃이냐고 물었던 것을 묵상하면서 행하지 않는 믿음, 자기 자신을 속이는 믿음, 이러한 믿음으로는 영혼을 얻을 수 없음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영혼을 얻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사 영혼을 얻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 복음을 믿어야 하며 그 복음을 통하여 영혼을 얻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는 자는 믿음대로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 영혼을 얻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혼을 얻기 위하여 전심전력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한 말씀인 디모데전서 4장 15절을 보십시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여기서 말하는 “이 모든 일”중에 디모데전서 4장 12절 말씀을 적용하길 원합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영혼을 얻는 자가 되기 위하여 그들에게 본이 되고자 하는 진정한 열심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다가가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열심히 아닌 그럭저럭 영혼을 얻고자 복음을 전한다고 한다면 되겠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섯 번째로, 영혼을 얻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에 큰 단순함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에 큰 단순함이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을 얻는 일에 목적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고 만일 영혼을 얻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의 영광이나 다른 것에 있다면 마음에 단순함을 잃어버렸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영혼을 얻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마음에 단순함을 빼앗아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3절을 보면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simplicity)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진실함”이란 영어 NASB 성경에는 “simplicity”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어떻게 해서든 미혹해서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 마음의 단순함(진실함)을 부패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를 향한 단순한 마음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을 얻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단순한 마음을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로, 영혼을 얻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내 자신을 전적으로 항복해야 합니다.

 

마치 오병이어의 이적 때 어린아이가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물고기 2마리와 떡 5덩어리를 주님께 다 받쳤던 것처럼 주님께 전적으로 항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영혼을 얻는 자로 주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 2006년도 “사람을 얻는 자라 되라!”(잠11:30)는 표어를 걸고 한 영혼, 영혼을 전도함에 힘을 쓰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펄전 목사님이 말한 위에 일곱 가지 특질들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이 일곱 가지 특질을 위하여 기도하고자 합니다. 잊지 않고자 말씀 선포 후 다시 적어 내려가 보았습니다. 벽에 붙여 놓고 외우려고 합니다. 그리고 묵상하며 기도하며 힘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얻는 자로서 세움을 받고 싶습니다. 한 영혼을 얻고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