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능력

 

 

[잠언 812-21]

 

 

여러분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우리 자신의 무능력함을 통하여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의 역경과 어려움 가운데 우리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힘들고 괴롭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 능력의 한계 속에서 하나님이 무한한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접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약할 때 강함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잠언 8장 12절을 보면 성경은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는다고 말씀하면서 14절에 가서는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지혜는 명철이요 능력은 지혜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지혜의 능력”이란 제목아래 과연 지혜의 능력은 무엇인지 한 3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혜의 능력의 한계인 우리의 미련함을 좀 더 뼈저리게 느끼는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의 능력을 경험하길 원합니다.

 

첫째로, 지혜의 능력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8장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1장 7절을 다시 보면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 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기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인데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는 이 잠언 1장 7절 말씀을 오늘 본문 잠언 8장 13절과 연관해서 생각하면 곧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미워하는데 미련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악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악을 사랑하되 미련한 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 그리고 패역한 입을 사랑합니다(13절).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미워하는 지혜로운 자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기에 자기도 미워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의 능력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혜의 능력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느 집사님하고 대화하면서 그 분이 저에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로마서 3장 10절을 말하시면서 로마서 7장에 나오는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를 말했습니다(19절). 그러시면서 그 집사님은 사도 바울의 말인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24절)고 말하시기에 저 또한 그 분이 말하신 성경구절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나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나 자신과의 영적 싸움에서 로마서 7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 중 하나는 사도 바울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 도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도 이러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19절). 여러분도 여러분이 원하는 선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신 적이 없습니까? 만일 있다면 그러한 악을 행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여러분 마음은 어떻습니까? 자신의 무능력함 속에서 자책하며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지 않습니까? 지혜의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미워하게 만듭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미워하고 계시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미워하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 본문 잠언 8장 13절에서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혜가 우리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미워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기 때문입니다(12절). 무슨 말입니까? 지혜는 우리에게 판단의 지식을 주어 우리로 하여금 종교 윤리적 선악을 바로 분별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지혜는 우리를 슬기롭게 하여 종교 윤리적 죄를 범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는 말입니다(박윤선). 이러한 지혜의 능력을 여러분은 받고 싶지 않습니까?

 

지혜의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계시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게 만들어 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악을 미워하시되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선은 겸손과 온유와 선한 행실과 정직한 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능력을 소유한 지혜로운 성도는 겸손하며 온유하여 선을 행하며 또한 진실을 말합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이 지혜의 능력을 소유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입니까?

 

둘째로, 지혜의 능력은 공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8장 15-16절을 보십시오: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한 나라의 대통령과 지도자들이 공의로 나라를 다스리고 세우기 위해선 하나님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선 나라의 법도와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나라의 행정기관인 입법, 사법, 행정 중 특히 법의 규정에 따라 심판하는 사법(법원)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일 사법부에서 법을 바로 실행함에 있어서 공의를 세우지 않는다면 그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나라를 가리켜 우리는 ‘무법천지’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모든 나라가 법치국가를 지향함에 있어서 그 나라 통치 권력이 법에 따라 행사되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말할 것 없이 더욱더 하나님의 법대로 치리되고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를 바라보면 과연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나라인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왕이신 주님을 모시지 않고, 주님을 닮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주님의 영광을 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왠지 요즘 우리 교회는 말만하고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지만 그 복음의 능력은 우리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법은 예수님의 두 계명인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우리 교회가 그 하나님의 법을 지켜 행하지 않고 말만하기에 교회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는 사도 바울처럼 가르치는 것과 행사가 일치되지 않고 있습니다(17절). 다시 말하면, 지금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선 말을 하지만 그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지금 교회는 이 세상의 선한 영향을 끼치기보다 세상으로부터 악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의 능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부어 주시사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미워할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 공의를 세우므로 교회의 질서를 바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교회 안에 공의를 세운다는 말은 선과 악을 분별하여(왕상 3:9) 선을 행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살전 5:22). 그 말을 오늘 본문 문맥 중심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겸손과 온유와 선한 행실과 정직한 입을 가지고 선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엡 2:10).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For God is not a God of disorder but of peace)이시기 때문입니다(고전 14:33).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을 믿는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지혜로 다스림을 받을 때에 그 가정과 교회 안에는 결코 어지러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가정과 교회 안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의 가정은 이 지혜의 능력이 나타나는 가정입니까?

 

마지막 셋째로, 지혜의 능력은 재물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8장 21절을 보십시오: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함이니라.” 우리가 지난 주 수요기도회 때 묵상한 잠언 8장 10-11절에서 우리는 금이나 은이나 진주보다 하나님의 지혜가 훨씬 더 좋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훈계와 지식을 얻을 때 우리는 재물을 벌 수 있는 능력도 얻게 되기에 재물 자체보다 하나님의 지혜가 더 값어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8장 18-19절을 보십시오: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솔로몬 왕은 지혜가 있는 자에게는 부귀와 영화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 솔로몬 왕 자신이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이 아닙니까? 여러분, 신명기 8장 17-18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물 얻기를 힘쓰기보다 재물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 얻기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지혜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지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혜를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8장 17절을 보십시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지금 솔로몬 왕은 저와 여러분에게 “나를 사랑하는 자”(21절) 곧 지혜를 사랑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지혜를 사랑할 때 우리는 지혜의 사랑을 덧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사랑을 우리가 덧입는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 말은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지혜를 구했을 때 그가 구하지도 않은 부귀영화를 하나님께서 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지혜를 사랑할 때 지혜는 우리에게 이 모든 축복을 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 왕은 우리에게 지혜를 간절히 찾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지혜를 간절히 찾을 수 있습니까? 먼저 우리는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약 1:5). 그리고 우리는 지혜의 소리를 부지런히 들어야 합니다(잠 8:1).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부지런히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지혜의 능력을 덧입게 될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이란 바로 말씀의 능력과 사랑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지혜의 책들을 계속해서 묵상해 나아가면서 또 하나의 능력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 능력은 바로 오늘 본문에서 묵상한 “지혜의 능력”입니다. 물론 그 지혜의 능력을 구하게 된 동기는 지혜의 책들을 묵상하게 되면서 더욱더 제 자신이 미련함과 어리석음을 들춰지는 가운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가 지혜의 능력을 사모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악을 미워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가 하나님께 지혜의 능력을 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을 저 또한 미워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선을 저 또한 더욱더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지혜의 능력이 또 필요한 이유는 공의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주님의 몸 된 승리장로교회를 섬기면서 교회 안에 질서와 평화를 위해서라도 지혜의 능력을 덧입어 공의를 세우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기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의 능력을 주셔서 재물을 얻어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 사역을 위해서 드려지는 역사를 있길 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이뤄지기 위하여 우리 모두 다 지혜의 능력을 덧입기 위하여 지혜를 사랑하며 지혜를 간절히 찾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