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명철할지니라”
[잠언 8장 1-11절]
저는 개인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면 갈수록 제 자신이 참 어리석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필요함을 점점 더 느끼고 있습니다. 잠언 말씀에 비춰볼 때 저의 어리석음이란 많지만 한 세 가지만 나누고자 합니다:
(1) 저의 어리석음이란 지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저의 어리석음은 지식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잠언 1장 22절 말씀입니다: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제가 지식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하면 저의 어리석음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저의 어리석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서 있지 못하고 하나님의 훈계와 법도를 떠나(8절) 사단의 꾐에 넘어가(10절) 죄악에 휩쓸려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2) 저의 어리석음이란 저의 안일함(complacency)에서 오는 신앙의 퇴보입니다.
잠언 1장 32절 말씀입니다: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안일함 또는 안주함이란 현 상태에 만족하는 것으로서 저의 신앙생활 속에서 믿음의 진보와 복음의 진보 등 성장함에 대한 열정이 식어지고 그저 지금 현재 신앙 상태로 만족할 때, 저의 신앙에 퇴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신앙의 퇴보란 하나님의 지식과 교훈과 책망 받는 것을 싫어하므로 오는 결과로서 그 원인은 제가 하나님의 사랑을 등지고 하나님의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어떠한 죄를 하나님께 범하는 것인가 하면 여호수아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신앙의 퇴보 속에서 세상(사람들)을 친근히 하여(수 23:12) 세상과 짝지어 사는 것입니다.
(3) 저의 어리석음이란 마음이 조급함입니다.
잠언 14장 29절 말씀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마음이 조급한 제 자신을 하나님께서 보게 하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저 같이 마음이 조급한 자는 혈기의 분노를 급속히 발하되(박윤선) 특히 저 같은 경우는 내적 분노를 급속히 발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잠언과 같은 지혜의 책들을 묵상하면서 제 자신의 어리석음이 들춰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함을 조금씩 조금씩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있는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특히 잠언을 통하여 지혜와 훈계를 해 주시며(1:2) 또한 어리석은 저로 하여금 슬기롭게 하시는(4절)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 있는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잠언 8장 5절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찌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찌니라 ….”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너희는 명철 할지니라”는 제목 아래 과연 나는 또한 우리는 어떻게 명철해 질 수 있는지 한 2가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이 하나님의 교훈을 저와 여러분이 겸손히 받아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드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명철해지기 위해선 우리는 지혜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8장 1절을 보십시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여기서 지혜와 명철이 소리를 높이고 부른다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는 지혜가 온 우주에 가득 찼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찌하여 하나님을 모르는가 하는 탄식입니다(박윤선). 그래서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잠언 8장 2-3절에서 지혜가 “길 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부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이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1장 20-21절에도 나옵니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가로되.” 흥미롭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난 주 수요기도회 때 묵상한 잠언 7장 말씀에서 간교한 계집은 “어떤 때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모퉁이”에 서서(12절) 떠들어서(11절) 어리석은 청년을 유혹하는데 오늘 본문 잠언 8장 1-4절에서는 지혜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 “성문 곁과 문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사람들을 부르는 모습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결국 우리 모든 사람들은 두 가지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사단의 어리석은 유혹의 소리며 또 하나는 하나님의 지혜의 소리. 과연 저와 여러분은 무슨 소리를 들으시면서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렇게 지혜가 길거리에서, 광장에서, 훤화하는 길머리에서,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지 않으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적 지혜가 없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기에 죄악 된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만 지혜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자들도 지혜를 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영적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옳은(바른) 길을 분별하여 그 길을 걸어가지 못하고 우리는 지금 우리의 어리석음 가운데서 잘못된 길과 죄악 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 원인은 바로 우리가 지혜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지혜가 부르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1, 5절). 우리가 명철해 지기 위해선 우리는 지혜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왜 저와 여러분이 지혜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그 이유를 오늘 본문 잠언 8장 6-9절에서 한 4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지혜가 우리에게 “가장 선한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8장 6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Listen, for I have worthy things to say). 여기서 “가장 선한 것”(noble/princely things, worthy things)이란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 ‘가치 있고, 적절하며 또한 매우 참된 말들로서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worthy thing, i.e.,words that are valuable and proper and so true)(Swanson). 결국 이 말씀은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 바른 가치관을 성립하게 된다는 뜻도 포함돼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가 지혜롭고 명철하게 되어 하나님의 가치관을 가지고 무엇이 영원하고 유익한 가치가 있고 무엇이 순간적이고 무익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바른 가치관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소리를 듣는 명철한 그리스도인은 영원하고 유익한 가치가 있는 것을 선택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가 있는 일을 합니다.
(2)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지혜가 우리에게 “정직”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8장 6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여기서 “정직”(right things)이란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 ‘진실성’(integrity) 또는 “정직/청렴/강직”(rectitude)란 것으로서(Koehler) 선(line)으로 말하자면 일직선(straightness)으로서 직석 방향(a linear direction)에서 구부러지지 않고 벗어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Swanson). 결국 이 말씀은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가 지혜롭고 명철하게 되어 우리가 구부러진 길과 똑바른 길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가 지혜롭고 명철하게 되어 정직한 길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걷게 된다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바른 길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소리를 듣는 명철한 그리스도인은 구부러지고 삐뚤어진 길을 선택하지 않고 오히려 정도를 걷는 것을 선택하여 그 올바른 길을 걷습니다.
(3)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지혜가 우리에게 “진리”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8장 7절을 보십시오: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여기서 “진리”(truth)란 히브리어 단어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아멘”이란 단어입니다. 그 의미는 ‘확고하다/견고하다’(to be firm), ‘견디다/인내하다’(endure), ‘신실하다’(be faithful), ‘진실하다’(be true), ‘신뢰하다’(trust), ‘믿는다’(believe)라는 뜻입니다(Vine). 그래서 우리가 예배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나 기도 및 찬양 할 때 “아멘”할 때 주로 그 의미는 ‘믿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는 지혜롭고 명철하게 되어 진리와 거짓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 속에서 악을 미워하게 됩니다(7절하). 한 마디로,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바른 지식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소리를 듣는 명철한 그리스도인은 거짓을 버리고 진리를 선택하여 그 입술로 진실을 말하면 또한 진실 된 삶을 살아갑니다.
(4)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지혜가 우리에게 “공평”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8장 8절을 보십시오: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여기서 ‘의롭다’란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 ’공평하다’(just)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공의롭다(공평하다)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미 6절 하반절에서 묵상했듯이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지혜가 우리에게 “정직”을 말하기 때문인 것처럼 오늘 본문 8절에서도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지혜가 우리에게 “공평”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정직”이나 “공평”이나 공통점은 선으로 말하자면 일직선으로서 그 선이 구부러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자기 “입의 말은 다 의로 은즉 그 가운데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지혜의 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바른 행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소리를 듣는 명철한 그리스도인은 굽은 길과 패역한 길을 떠나서 오직 공평의 길을 선택하여 걷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지혜의 소리(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가장 선하고 정직하며(6절) 진실하며(7절) 또한 공의로운(8절)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들을 때에 우리는 지식을 얻을 것이요 또한 총명해 질 것입니다(9절). 더 나아가서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우리는 더욱더 지혜롭고 총명해져서(9절) 가장 선한 것과 정직한 것과 진실 된 것과 공의로운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 가장 좋은 길, 정직한 길, 진리의 길, 공평의 길을 선택하여 그 길로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지혜가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 바른 지식, 바른 가치관, 바른 길, 그리고 바른 행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명철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지혜의 음성을 듣고 그 길을 선택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진실 된 삶, 가장 선한 삶, 정직한 삶, 그리고 공평한 삶을 살아 드리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우리가 명철해 지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훈계를 듣고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8장 10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만일 여러분 앞에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는데 하나는 은과 정금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훈계와 지식이라면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이 질문을 생각할 때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우리가 자녀들에게 생선을 잡아다 주기보다 생선을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달리 생각하자면, 생선 자체보다 그 생선을 잡을 수 있는 기술(방법)을 가르쳐 주는 게 우리는 훨씬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실제 삶을 살펴보면 우리는 생선 자체를 선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하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과 훈계보다 금은보화, 즉 재물을 더 추구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8장 10-11절 말씀의 핵심은 금이나 은이나 진주보다 하나님의 지혜가 훨씬 더 좋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금은진주 보화는 생선이고 하나님의 지혜는 그 생선을 잡는 방법 또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훈계와 지식을 얻어 지혜로워지면 재물을 벌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시기에 재물 자체보다 하나님의 지혜가 더 좋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서 삼성과 애플 사이의 특허소성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안철수 씨가 한 말인 ‘이젠 하드웨어로는 승산이 없다’가 생각납니다. 지금 시대가 바뀌면서 하드위어 보다 소프트웨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드웨어란 컴퓨터나 컴퓨터에 붙어 있는 주변 장치들인 컴퓨터 본체, CPU, 하드 디스크, 마우스, 모니터 등등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한마디로 “프로그램”입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로 게임을 하려고 해도 하드웨어만 있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합니다. 그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설치해 주어야 컴퓨터로 게임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비교를 어떤 사람은 이렇게 우리 사람에게 비교를 했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하드웨어, 사람의 지식은 소프트웨어(인터넷). 사람의 육체도 참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식이 없는 사람의 육체는 마치 컴퓨터에 소프트웨어가 없는 하드웨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둘 다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식이 없는 사람의 육체를 생각할 때 지금 이 시대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리고 재물을 얻고자 애쓰고 있지 않나 염려가 됩니다.
저는 “재물”하면 신명기 8장 17-18절이 생각납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이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재물 얻을 능력이 재물 자체보다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본문 잠언 8장 10-11절에서 솔로몬 왕은 우리에게 은이나 정금보다 하나님의 훈계와 지식을 얻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우리는 재물보다 그 재물을 얻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에 힘을 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잠언 8장 18-21절을 보십시오: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함이니라.”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얻어 명철해 져서 의로운 길, 공평한 길을 걸어 다니므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재물을 풍성히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물보다 하나님의 훈계와 지식을 얻어 명철해 져야 합니다. 명철함이 재물보다 더 나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얼마 전 기독교 신문에서 저희 노회 소속돼 있는 목사님 한 분이 쓰신 사설을 읽었는데 그 사설에서 저는 처음으로 “디지터 치매”란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디지터 치매”란 무엇인가하면 요즘 과학이 발달해서 우리 사람들이 기계를 의존하다보니 머리를 잘 안 쓰게 되고 그 결과 자꾸만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 스마트 폰이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어서 그 폰이 이것저것 다 해주니까 특별하게 머리를 사용할 일이 별로 없는가 봅니다. 그러다 보니 그 기계에 의존하게 되므로 자기 머리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되므로 치매 증상 같은 것이 온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관찰이라 생각합니다. 동의하는 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디지터 치매”를 생각할 때 “영적 치매”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묵상하지 않고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의 음성 소리를 잘 듣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분주하게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교훈과 지식을 기억치 못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 구부러진 길을 걸으며 진실 되고 정직한 삶을 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좋은 것보다 우리가 보기에 가장 좋은 물질을 추구하면서 불의의 삶과 불의를 행하는 죄를 범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명철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의 소리(음성)을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재물보다 더 가치가 있는 하나님의 훈계와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보시기에 명철한 사람들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