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습니다.

 

 

 

[잠언 71-27]

 

 

여러분, 우리 한국 속담에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다”라는 말을 알고 계시죠? 그 뜻은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궁지에 빠뜨린다는 뜻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볼 때 가끔 스스로 무덤을 파는 말을 할 때가 있음을 경험합니다. 그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 안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깨닫고 나서도 저는 제 자신 스스로를 궁지에 빠뜨리는 말을 할 때가 또 생긴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이러한 경험이 있으십니까? 혹시 여러분은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란 고사 성어를 들어 보셨습니까? 저는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처음 들은 말인데 그 뜻은 ‘자신이 꼰 새끼로 자신을 묶는 것 같이 자기 스스로 곤경에 빠지게 하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자승자박”이란 말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망치게 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잠언 7장 7절을 보면 자기가 자기 자신을 망치게 하는 한 지혜 없는 자가 나옵니다. 그 지혜 없는 자란 어리석은 자들 중 한 소년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 판에 간직하지 않고(1절) 그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으므로(1, 2절) 말로 호리는 음녀의 유혹에 빠진 자입니다(5절). 저는 오늘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습니다”라는 제목 아래 과연 지혜 없는 어리석은 자가 어떻게 음녀의 유혹에 빠지는지 그 과정을 한 3가지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단의 어떠한 유혹이라도 깨달아 알아 그 유혹과 싸워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사단은 한 지혜 없는 자로 하여금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가도록 유혹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7장 8절을 보십시오: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 집으로 들어가는데.” 하나님은 잠언 4장 14-15절에서 우리에게 “사특한 자의 첩경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로 명령하고 계십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지켜 행하므로 악인의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이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으로 새겨듣지 않고 오히려 무시하며 악인의 길로 다닙니다. 오늘 본문 잠언 7장에 나오는 한 지혜 없는 자가 바로 이러한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그 어리석은 자는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지나갈 때(8절)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오히려 돌이켜 떠났어야 했습니다(4:15). 그러나 그 어리석은 소년은 그 음녀의 길을 돌이켜 떠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걸어가되 그 음녀의 집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그것도 해가 저물고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 그 어리석은 소년은 그 음녀의 집으로 향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7:9). 왜 대낮이 아닌 깊은 밤 흑암 중에 그 소년은 음녀의 집으로 향했을까요? 그는 아무도 자기를 보길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어리석은 소년은 남에게 자기 행위를 감추려고 은밀히 깊은 밤에 창녀에게로 간 것입니다(박윤선). 왜 그는 깊은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자기 집을 나와 창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near)하여 그녀의 집 방향으로 간 것입니까?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 원인은 그 지혜 없는 소년은 하나님의 법을 자기 눈동자처럼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7장 2절을 보십시오: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여기서 “눈동자”란 히브리어 단어의 문자적 의미는 ‘눈의 중 가운데’(the center of eyes)란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9절에 나오는 “깊은 밤”이란 단어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the center of night”, 즉 ‘밤의 중 가운데’란 뜻입니다(Walvoord).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제 생각엔 한 지혜 없는 소년이 깊은 밤의 중 가운데 은밀하게 창녀의 집으로 간 원인은 그가 그의 눈의 중 가운데로 하나님의 말씀에 바라보면서 그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어쩌면 그는 그의 눈으로 자기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그 음녀를 은밀히 쳐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6절).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눈동자같이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음녀의 집 쪽으로 향하여 걸어가 결국에는 하나님께 범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래 전 80년대에 그 유명한 Hollywood 길 바로 한 block 밑에 있는 Sunset 길에는 많은 창녀들이 서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골목 모퉁이에도 창녀들이 서 있어서 운전하고 지나가는 남자들에게도 눈짓을 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가 사춘기 때 친구들하고 그 Sunset 길을 차로 지나간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왜 그 길을 친구들과 함께 차로 지나갔는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그 때 저희가 야밤에 그 길을 차로 지나간 이유는 창녀들을 보려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 때 참으로 제가 어리석은 소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Sunset 길을 아예 차로 지나가지도 말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아예 그 길 근처에도 그 늦은 밤에 가서는 아니 되었었는데 미련하게 그런 짓을 했었습니다. 지금은 Sunset 길에 아직도 창녀들이 늦은 밤에 거닐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인터넷을 통한 음녀의 유혹이 더 심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언젠가 TV channel 4를 보니까 경찰 수사관들이 함정 수사를 하고 있는데 인터넷으로 18살 미만 minor 여자로 하여금 인터넷에서 남자들하고 채팅하다가 그녀의 집으로 오고 싶어 하는 그 남자들을 경찰이 잡을 때 그 현장을 TV에서 방송해 준적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사단이 우리를 유혹함에 있어서 인터넷을 통한 안목의 정욕을 자극하여 결국에는 육체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결혼 밖에서의 성관계가 심각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 마음 판에 새기로(3절)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우리의 눈동자처럼 지켜야 합니다(2절). 박윤선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동자는 귀하면서도 아주 연하여 조심스럽게 보호해야 된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 먼지라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눈썹과 눈까풀이 지키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에 있어서도 잠시 동안만 부주의해도 잘 지켜지지 않고 그만 거기서 이탈되기 쉽다”(박윤선). 바라기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탈하지 않고 그 말씀을 눈동자처럼 귀하에 여겨 잘 지킴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음녀 유혹과 싸워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음녀는 숨겨진 의도로 한 지혜 없는 자를 나와서 맞이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7장 10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계집이 그를 맞으니.” 성경은 한 지혜 없는 어리석은 소년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깊은 방 흑암 중에(9절)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녀의 집으로 갔을 때(8절)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그 음녀는 마치 몸 파는 창녀처럼 옷을 입고 그 어리석은 소년을 맞이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음녀를 가리켜 오늘 본문 10절 한국 성경에서는 “간교한 계집”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그 소년을 맞이함에 있어서 숨겨진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간교한 창녀는 그 지혜 없는 어리석은 소년을 맞이함에 있어서 자신의 진정한 의도는 숨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기서 ‘간교하다’라는 히브리어 원어의 문자적 의미는 바로 ‘숨기다’(hidden)입니다(MacArthur). 과연 그녀의 숨겨진 의도는 무엇일까요? 잠언 23장 27-28절을 보십시오: “대저 음녀는 깊은 구렁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그는 강도 같이 매복하며 인간에 궤사한 자가 많아지게 하느니라.” 음녀가 한 지혜 없는 자를 창녀의 옷같이 입고 맞이하는 숨겨진 의도는 “함정”을 놓아 그로 하여금 결혼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게(faithless) 만드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 음녀의 숨겨진 참된 의도는 많은 결혼한 남자들로 하여금 결혼할 때에 언약하였던 것을 파기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박윤선). 문제는 지혜 없는 우리 남자들이 이러한 간교한 여자의 숨은 의도를 모르고 너무나 어리석게 그녀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솔로몬 왕이 오늘 본문 잠어 7장 1절에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을 우리 마음에 간직해야 합니다. 여기서 ‘간직하다’라는 히브리어 원어는 ‘숨기다’(hide) 또는 ‘소중히 간직하다’(treasured up)이란 의미입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 10절에서 간교한 계집은 그녀의 참된 의도를 숨기고 있는데 성경은 우리에게 그녀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선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 마음에 숨기라 또는 소중히 간직하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참 흥미롭습니다. 결국 솔로몬 왕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은 우리가 간교한 여자가 자신의 참된 의도를 숨기고 우리에게 다가와 유혹을 할 때에 그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숨겨둬야(소중히 간직해야) 합니다.

 

셋째로, 음녀는 입술의 호리는 말로 한 지혜 없는 자를 꾑니다.

 

오늘 본문 잠언 7장 21절을 보십시오: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여러분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인터넷 구글(google)에 들어가서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을 찍으니까 영화 “옵세스드(Obsessed)”를 보고 어떤 사람이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 한 4가지를 적어 놓았습니다. 참고로 이 옵세스드라는 영화는 유부남을 유혹하는 여자의 집착을 보여준 스릴러 영화입니다(인터넷). 첫째 방법은 ‘적당히 그리고 전략적으로 노출하라’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남자의 성적 본질을 자극하는 것으로서 남자들은 여자의 은밀한 부분을 보게 되면 머리에게 금방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방법은 ‘눈으로 자주 웃어라’입니다. 여자의 미소는 남자에게 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여자가 남자를 바라보고 웃으면 그 남자는 심하게는 ‘저 여자가 나에게 반했나봐’라는 망상까지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방법은 ‘눈물을 보여라’입니다. 여자의 눈물은 남자를 불러들이는 마법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넷째 방법은 ‘자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한 남자를 자주 바라보면 그 남자는 반드시 그 여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7장 21절을 보면 음녀가 그 어리석은 남자를 호리를 말로 꾄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꾀다’라는 말은 영어로 “seduce”(유혹)입니다. 이 영어 단어 “seduction”은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그 문자적 의미는 “to lead astray” 곧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다,’ ‘미혹시키다’ 또는 ‘타락시키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부정적으로 사용되었을 시에는 유혹과 꾐이 관련되어서 한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흥분을 일으키게 하여 행동 선택을 하게 만들되 그 행동이 결국에는 그 사람을 타락하게 이끈다는 것입니다(인터넷). 과연 오늘 본문에서 어떻게 음녀가 한 지혜 없는 남자를 유혹하여 타락시킨다고 말씀하고 있는지 한 3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음녀는 보이는 것으로 어리석은 남자를 유혹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7장 10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계집이 그를 맞으니.” 여기서 “기생의 옷”을 입었다는 말은 요즘 말로 하면 그 음녀는 창녀같이 옷을 입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창녀들이 어떻게 옷을 입습니까? 유혹적으로 옷을 입지 않습니까? 요즘 한국에서 여자들이 옷을 입는 것을 보면 치마가 왜 그리 짧은지…. 심지어 어떤 여자들은 거의 팬티 옷을 입고 다니는 수준의 옷을 입고 다니고 있습니다. 창녀들이 유혹적으로 옷을 입는다는 것은 노출이 심하되 남자들의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을 성적으로 자극할 정도로 옷을 입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우리 남자들을 유혹하기에 참으로 자극적이다 생각합니다. 성경은 그러한 옷을 입고 창녀는 여기 저기 거리나 광장 모퉁이에 서서 남자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2절).

 

(2) 음녀는 만지는 것으로 어리석은 남자를 유혹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7장 1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그 계집이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노출이 심하게 옷을 입은 음녀가 어리석은 남자에게 돌진하여 두 팔로 그를 꼭 끼어 앉고 입술에 키스를 한다는 것이 상상이 되십니까? 그리했을 때 그 어리석은 남자는 안 그래도 그 음녀의 창녀같이 입은 옷을 보고 시각적으로도 이미 성적 흥분을 느끼고 있었을 텐데 그 음녀를 자기를 붙잡고 입까지 맞췄다면 그 때에는 성적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간교한 음녀는 한 지혜 없는 자를 유혹함에 있어서 육체적 접촉까지 사용합니다. 그 음녀가 만지고 키스까지 하므로 그 어리석은 청년을 유혹할진대 그 혈기왕성한 청년이 얼마나 성적으로 자극을 받겠습니까?

 

(3) 음녀는 들리는 것으로 어리석은 남자를 유혹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음녀는 어리석은 남자를 유혹함에 있어서 오늘 본문 2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여러 가지 고운 말로”(with persuasive words), “입술의 호리는 말로”(with her smooth talk) 유혹한다는 말입니다. 여자도 마차가지라 생각하지만 특히 남자는 오감에 있어서 시각, 촉각과 청각이 약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남자가 여자에게 유혹 받을 때 여자의 몸매 보므로 유혹당할 수도 있고 스킨십을 통해서도 유혹을 당할 수 있겠지만 그 여자가 하는 말을 들음으로도 충분히 유혹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음녀도 보면 어리석은 남자를 유혹할 때 그 남자로 하여금 그녀의 숨겨진 의도대로 움직이도록 설득을 시키는 말과 호리는 말, 즉 매우 부드러운 말로 그 남자를 걸어가는 길에서 미끄러져서 이탈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음녀는 어리석은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1) 그 음녀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하되”(13) “내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오늘날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4-15).

 

이 말은 그 음녀가 창기의 신분 그대로 있으면서 자기가 하나님께 나아가 제물을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서 서원을 하였고 그 서원한 것을 갚았기에 오늘날 이렇게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로 하여금 만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분명히 신명기 23장 18절은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음녀는 이 말씀을 무시하고 실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서 이따금 종교 의식을 강행하며 하나님께서 자기의 음란한 직업도 도와주신다고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까?(박윤선)

 

(2) 그 음녀는 자기의 침상을 그 어리석은 청년에게 말로 묘사하면서(7:16)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18)고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남편은 은 주머니를 가지고 집을 떠나 먼 길로 갔으니까 보름에서야 집에 돌아오기에(19-20절) 안심하고 함께 동침하자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유혹적인 음녀의 말입니까? 이러한 음녀의 매끄럽고 유혹적인 말들은 특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있는 우리 어리석은 남자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들리겠습니까? 지금 많은 우리 그리스도인 남자들이 이러한 여성의 꾀는 말에 설득당하고 넘어가서 다른 여자와 동침하며 성관계를 맺어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한 지혜 없는 청년도 결국 그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 마치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이,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이 그 음녀를 따랐습니다(22절). 그 결과가 무엇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한 지혜 없는 자의 결말은 멸망이란 말입니다(23절). 마치 새가 그물로 들어가면 확실히 그 생명을 잃음과 같이 한 지혜 없는 자의 결말도 마찬가지로 생명을 잃습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주의해야 합니다(24절).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눈동자 같이 지켜야 합니다(2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소중이 간직해야 합니다(1절). 그리고 우리는 음녀를 가까이 하기보다 지혜와 명철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5절).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지켜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음녀를 따라갔다가는 멸망한 자가 허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26절).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므로 우리의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않으며 그녀의 길에 미혹되지 않길 바랍니다(2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