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에 음녀의 아름다움을 탐해서는 아니 됩니다.

 

 

[잠언 620-35]

 

 

여러분 “칠거지악”이란 말 아십니까? 지난 주 수요기도회 후 잠언 6장 16-19절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칠 악”이란 묵상 내용을 제 개인 Facebook에 다가 올려놓았더니 어느 목사님이 댓글을 달으셨는데 “조선시대 칠거지악[七去之惡]이 생각”난다고 적으셨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여 인터넷을 탐색해 보았더니 칠거지악이란 중국, 한국 등 유교문화권에서 남편이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일곱 가지 잘못이라고 말하더군요: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음(不順父母), 아들이 없음(無子), 음탕함(不貞), 질투함(嫉妬), 나쁜 병이 있음(惡疾), 말이 많음(口說), 도둑질을 함(竊盜)(인터넷). 저는 남편이 아내를 내쫓을 수 있는, 즉 이혼할 수 있는 이 일곱 가지 잘못을 동의하지는 않지만 세 번째인 “음탕함”에 대해서는 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성경에서도 이혼에 대한 말씀에 있어서 배우자가 ‘간음’을 행했을 때 이혼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인터넷 기사를 보니까 한국이 세계 최고로 “색욕”죄가 많은 나라에 뽑혔다고 하여 그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인터넷). 7대중 죄별로 본 BBC 세계국가별 성악(性惡)조사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죄가 많은 나라는 바로 호주(오스트레일리아)라고 합니다. 여기서 “7대 중죄”란 전통적인 대죄 7가지로 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식탐, 그리고 색욕입니다. 호주는 색욕, 탐욕 그리고 자만 등 세 가지 대죄 부문에서 두루 높은 점수를 받아 세계에서 가장 죄가 많은 나라로 뽑혔다고 합니다. 미국은 식탐부문 죄 많은 나라 1위로 선정됐고, 아이슬란드는 자만과 나태 죄 부문에서 죄 많은 나라 1위, 멕시코는 탐욕 부문에서 1위, 그런데 한국은 색욕 대죄 부문의 세계최고 나라로 선정됐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6장 25절을 보면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지금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에 음녀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며 그녀의 음란한 눈짓으로 하여금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게 하지 마십시오.’ 저는 오늘 이 권면의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솔로몬 왕이 말하고 있는 음녀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외모”(outward adornment)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3절을 보십시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등 음녀의 아름다움은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그녀의 외모는 아름답기에 남자들이 그녀에게서 매력(attraction)을 느낍니다. 그녀는 겉모양을 화려하게 꾸미기에 안목의 정욕에 이끌림을 받는 남자들의 시선을 이끌기에 충분합니다. 언젠가 인터넷 뉴스 판을 보니까 아프리카 대륙 서쪽 국가 카메룬에서는 어머님들이 자기 딸들이 성폭행을 당해 임신하는 일을 막기 위해 불에 달군 쇠방망이나 돌로 딸의 가슴을 지져서 성징을 없애는데 카메룬 소녀 4명 중 1명이 ‘가슴 인두질’을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인터넷). 그 가슴 인두질을 당하는 소녀들은 평생 고통 속에 거해야 할 텐데 왜 이렇게 어머님들이 하는지 생각해 볼 때 남자들의 본능이 여자들의 가슴을 보면 시선이 집중되고 성적 상상과 함께 자극이 생기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인터넷). 어느 한 인터넷 기사를 보니까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ISAPS)에서 나온 자료에 의하면 성형수술의 종류에서 많이 하는 빈도를 보면 “지방흡입술” 다음에 “가슴 확대 술”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안검수술이나 코 성형 술이라고 합니다(인터넷). 솔로몬 왕은 잠언 5장 20절에서 “내 아들아 어찌하여 음녀를 연모하겠으며 어찌하여 이방 계집의 가슴을 안겠느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남자들은 우리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며 그녀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고 그녀의 사랑을 항상 연모해야 합니다(18-19절). 그런데 음녀는 자신의 외모로도 우리를 유혹하되 특히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고 있지 않는 유부남들을 미혹하여 음녀의 가슴을 안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음녀는 자기의 외모는 남자들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하는데 자기의 외모 외에 그녀의 혀는 기름처럼 매끄러워서(5:3) 아첨하여 남자들을 호리되(2:16, 6:24) 매우 유혹적입니다. 그녀의 혀는 남자들의 마음을 끌되 성적으로 유혹함에 있어서 매우 성공적입니다. 특히 그녀의 혀는 지혜 없는 남자(7:7)나 자기 아내를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이 여기지 않고 그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지 않는(5:19) 유부남들을 미혹함에 있어서 매우 성공적입니다. 이러한 음녀의 외모와 혀 외에도 음녀의 눈꺼풀(6:25)도 많은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유혹에 빠지게 만듭니다. 어떻게 음녀의 눈꺼풀이 남자들의 마음을 유혹합니까? 바로 음녀의 눈은 남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므로(flirting eyes) 그들을 유혹합니다(Walvoord). 많은 남자들이 추파를 던지는 음녀의 요염한 눈짓에 얼마나 유혹을 받습니까?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잠언 31장 30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솔로몬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여자의 아름다움은 헛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여자의 아름다움은 잠깐 동안이며 순식간에 없어진다는 것입니다(참고: 시 37:20).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장 4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여인의 아름다움은 “숨은 사람” 즉, 내적 사람이지 결코 겉 사람이 아닙니다. 겉 사람의 아름다움은 잠깐 동안이요 썩어질 것이지만 내적 사람의 아름다움은 썩지 아니합니다. 베드로는 여인들에게 이 썩지 아니할 내적 아름다움인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을 추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기 때문입니다(4절).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값지고 하나님께서 칭찬하시는 여자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자요 썩지 아니할 내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딸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딸들은 그저 용모가 사람들 보기에 좋아서[예: 왕후 와스디(에 1:1)]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므로 결국에는 자기의 화려함을 믿고 많은 사람들 더불어 행음(음란)하는(겔 16:15) 죄를 범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들도 그러한 자기의 외모의 화려함을 믿고 행음하는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여자의 아름다움은 헛되다는 사실(잠 31:30)을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로, 솔로몬 왕이 왜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에 음녀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잠언 6장 26절을 보십시오: “음녀로 인하여 사람이 한 조각 떡만 남게 됨이며 음란한 계집은 귀한 생명을 사냥함이니라.”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악하고(24절) 음탕한(26절) 여자의 아름다움을 탐하고 그녀의 눈꺼풀에 흘려서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마침내 우리는 파산하게 되며, 생명까지 잃게 된다는 말입니다(박윤선).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창녀의 아름다움을 탐하여 그녀와 사귀므로 재물을 없이하고 있습니까? 잠언 29장 3절을 보십시오: “지혜를 사모하는 자는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창기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없이 하느니라.” 얼마 전 차가 망가져서 차를 견인할 때 그 견인차 운전사하고 대화한 기억이 납니다. 이혼 한 후 여러 여자들을 만나면서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들은 주로 자기에게 이것저것 자꾸만 사달라고 요구한다고 합니다. 그 운전사가 말하는 요즘은 그런 여자들은 돈보고 자기를 사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운전사는 이혼을 해서 다른 여자들을 만나는 것에 대해서 바람피우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저는 그 사람이 이런 여자, 저런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는 이야기를 듣고 재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면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6장 30-31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유부녀와 통간하는 죄악이 도적질한 죄보다 더 크다고 말하면서(박윤선) 도적질하다가 들키면 “칠 배를 갚아야 하라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어 주게 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간통의 죄의 값을 치러야 함에 있어서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어 주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만큼 성적 불성실함은 값을 치름에 있어서 파산까지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도 마찬가지임) 참으로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많은 남녀들이(싱글이나 유부남/유부녀나) 오늘 본문 27-28절 말씀처럼 “불을 품에 품고”있으며 또한 “숯불을 밟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의 말처럼 불을 품에 품고 있으면 당연이 그 옷이 탈 수 밖에 없으며 숯불을 밟으면 당연히 그 발이 델 수밖에 없는 것처럼 지금 많은 남녀의 성관계가 결혼 밖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많은 남녀들이 간통의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29절과 32-33절에서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 부녀와 간음하는 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리라 …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성경은 우리가 간통의 죄를 범할 때에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다른 남자의 아내를 간통했을 때 그 여자의 남편이 질투하고 분노하여 자기 아내를 간통한 남자를 원수같이 여겨 용서하지 않고(34절) 아무 보상금도 받기를 거부하고(그 보상금이 아무리 클지라도)(35절) 그 남자에게 복수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지막 셋째로, 우리가 우리 마음에 음녀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잠언 6장 20-24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너의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하리니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우리가 우리 마음에 음녀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않기 위해선 한 마디로 우리는 우리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명령과 법을 항상 우리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여 떠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참고: 3:1-3; 7:1-3). 그 이유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를 보호해 줄뿐만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22절).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은 등불(a lamp)이기에 우리를 인도해 주며, 빛(a light)이기에 우리를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해 주며 또한 하나님의 명령과 법은 우리에게 “훈계의 책망”(the corrections of discipline)을 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과 법, 그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마음에 항상 새겨서 지켜 행할 때 그 말씀이 우리를 지켜서 우리로 하여금 악한 계집,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 마음에 세상적인 아름다움을 사모해서는 아니 됩니다. 이사야 53장 2절을 보면 성경은 메시아이신 예수님도 사람들 보기에 매력을 느낄만한 “고운 모양”도 없었다(no beauty)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이 세상 사람들 보기에 매력을 느낄만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사도 베드로는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벧전 3:3-4)고 말하였는데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값진(4절)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값진 아름다움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우리 마음에 음녀의 아름다움을 탐하지 않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며 추구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생각할 때 시편 27편 4절이 생각납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시편 기자처럼 제가 한 가지 일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여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간절한 소망 가운데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며 추구할 뿐만 아니라 저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나타나야 하는데 과연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무엇일까 생각할 때 이사야 35장 1-2절 말씀을 겸손히 받는 것입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사모하고 추구하는 삶이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며 추구하는 삶입니다. 곧,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처럼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게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이 세상에 들어내며 살아가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