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아내를 복되게 하십시오!

 

 

[잠언 515-23]

 

 

여러분도 “복덩이”란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실 것입니다. 그 의미는 “매우 귀중한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네이버 사전). 여러분에게 있어서 매우 귀중한 사람이나 물건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하면, 여러분의 복덩이는 누구 또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잠언 5장 18절 상반절을 보면 성경은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Let our fountain be blessed)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샘”이란 아내를 비유합니다. 즉, 성경은 우리의 아내를 복되게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우리의 아내를 복되게 할 수가 있습니까? 한 2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아내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복으로 여겨야 합니다.

 

성경 잠언 18장 22절을 보십시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물론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아무 아내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하면 잠언을 보다 보면 그는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1:9, 19; 25:24). 여기서 솔로몬 왕이 말하는 “아내”는 그런 다투는 여인이나 성내는 여인이라기보다 “어진 여인”(an excellent wife)(12:4), “슬기로운 아내”(prudent wife)(19:14) 또는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a wife of noble character)(31:10)입니다. 잠언 12장 4절을 보십시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잠언 19장 14절을 보십시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 로서 말미암느니라.” 잠언 31장 10절을 보십시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성경은 이러한 어질고 슬기로우며 현숙한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아내를 배우자로 둔 남편은 복 받은 자입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어질고 슬기롭고 현숙한 아내는 그에게 복덩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내를 복덩이로 여기고 계십니까? 아니면 저주 덩어리로 여기고 계십니까? 제가 이렇게 질문을 하는 이유는 오늘 본문 잠언 5장 18절에 나오는 “복되게 하라”는 원어 히브리어 의미에는 “복”(bless, be blessed)이라 뜻도 있지만 “저주”(curse)라는 뜻도 내포돼 있기 때문입니다(Vine). 우리는 우리의 배우자를 복덩이로 여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젊어서 취한 아내”는 하나님이 주신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내는 우리에게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말2:14)(박윤선). 그러므로 우리 남자는 우리 아내에게 “당신은 나의 복덩이요”(You are my blessed one)라고 마음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말로도 표현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복된 아내를 우리의 복덩이로 여기지 않는다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불신앙의 죄요 또한 교만의 죄입니다. 아마 우리 남자들 중 이렇게 변명하고 싶은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현숙한 여인을 주시지 않으시고 다투며 성내(성깔 있)는 여인을 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그런 아내를 복덩이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참 그럴싸한 변명 같지 않습니까? 만일 그러한 말을 제가 듣는 다면 저는 그 형제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다투며 성내는 여인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런 여인을 선택했으니 책임감을 가지고 그 여인을 현숙한 여인으로 양육하십시오.’ 너무나 많은 경우 우리 남자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질고 슬기롭고 현숙한 여인을 거부하고 우리가 보기에 예쁘고 매력을 느끼는 그러나 나중에는 다투며 성내는 여자를 선택하여 결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선택을 했다면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우리의 아내를 현숙한 여인으로 양육하는데 헌신해야 하지 않습니까? 지금 너무 많은 우리 남자들이 자기가 선택하여 결혼한 아내에게 참 무책임한 말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아내에게 저주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또한 행동으로도 아내로 하여금 자기가 저주 덩어리고 느끼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지금 많은 아내들이 자기들의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여인의 인생입니까? 우리는 우리 아내(배우자)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덩이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아내에 대한 책임을 신실하게 끝까지 잘 감당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우리 아내를 복되게 하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의 배우자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성경 잠언 5장 18절을 보십시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과연 우리가 우리의 아내를 어떻게 즐거워해야 합니까? 우리 남편들은 우리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라는 말은 우리 남편들은 우리의 아내의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힌바 되어야 한다(we must be captivated by her love)는 의미입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 아내의 미모보다 그녀의 미덕에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다는 말씀 비유의 의미입니다(박윤선).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의 “우물”과 우리의 “샘”(15절)인 우리의 아내의 사랑만을 즐기며 결코 그녀를 버리고[“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하지 말라는 말의 뜻(박윤선)] 음녀의 집으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우리의 아내로 말미암아 성적으로나 애정적으로나(sexually and affectionately) 만족할 만한 원기 회복(satisfying refreshment)을 얻을 때에(MacArthur) 우리는 결코 음녀의 품을 그리워하며 음녀의 사랑을 연모하지 않을 것입니다(20절).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잠언 5장 16-17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그러나 지금 얼마나 많은 남편들이 자기들의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타인으로 더불어 나누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자기들의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인에게 가고 있습니까? 지금 많은 남편들이 자기들의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지 못하며 아내를 즐거워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그녀의 사랑을 연모하지 않고(19절) 오히려 음녀를 연모하며 다른 여인의 가슴을 안고 있습니다(20절). 부부 카운슬러 M. 게리 뉴먼은 200명의 남자들 (바람을 피우는 사람과 안 피는 사람)을 대상으로 왜 남자들이 바람을 피는지에 대해 조사 연구 분석을 하였는데 그 결과가 이렇다고 합니다(인터넷): 48%의 남성들은 바람을 피우는 이유가 감정적/정신적인 사랑을 상대방(아내/애인)으로 부터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는 가장 큰 이유가 아내들로부터 육체적인 친근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약 8%의 남자들만 “그렇다”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남자들도 신체적/육체적 친근감보다, 그들의 아내로부터 “자기야, 고마워”, “자기야, 사랑해” 라는 감정적/정신적 친밀감을 원한다고 합니다. 단,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여자와는 다르게, 남자들은 이런 속에 있는 감정을 잘 표현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77%의 남자들은 주위에 바람을 피운 친구나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40%의 남자들은 바람피우는 대상을 직장에서 만난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같은 직장서 만난 여자와 바람을 피게 되는데 그 이유는, 직장내 동료 여인들 또는 후배 여인들로 부터의 칭찬과 존경을 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남자들은 그들을 인정해 주는 여인한테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남자들이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인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바람을 피우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죄악 된 선택의 결과를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7-14절). 그 징계란 우리가 7-14절에서 묵상한 “존영 상실”(9절), “시간 상실”(9절), “재물 상실”(10절), “건강 상실”(11절), “양심상 고통을 당함”(12-14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간음의 결과를 알고 음녀를 연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더 높은 동기를 21-2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동기는 한 3가지입니다(Walvoord).

 

(1)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잠언 5장 21절을 보십시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For a man's ways are in full view of the LORD, and he examines all his paths).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악인의 모든 행위를 감찰(평탄케 하신다는 말의 개역)하신다는 말입니다(박윤선). 하나님 께서는 우리의 은밀히 행하는 모든 행위를 감찰하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 이 우리 아내의 사랑을 연모하지 않고 다른 여인의 사랑을 연모하고 있다면 하나님 께서는 그 마음을 아시고 우리를 징계하실 것입니다.

 

(2) 죄라는 것은 우리를 올가미에 걸리듯 걸려들게 하며(1:17-18) 또한 우리로 하여금 죄의 줄에 매이게 하기에 우리는 음녀를 연모해서는 아니 됩니다.

 

잠언 5장 22절을 보십시오: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비록 우리들은 죄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사실 죄라 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노예로 만들어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3) 우리의 도덕적 생활이 규율이 안 잡혀 자기 멋대로 행할 때에 그 결과는 죽음이라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음녀를 연모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잠언 5장 23절을 보십시오: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을 인하여 죽겠고 미련함이 많음을 인하여 혼미하게 되느니라.” 우리는 결코 미련함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훈계를 받지 못하고 우리의 마음을 음녀에게 빼앗겨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결과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지혜에 주의하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의 아내 또는 배우자를 복되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허락해 주신 자신의 배우자를 복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아내를 즐거워합니다. 그들은 그녀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깁니다. 여러분, 이것은 복의 근원이 되시는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신부된 교회의 관계를 가리킵니다. 즉, 우리 신부된 교회는 복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우리의 복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온 맘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