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가 제일입니다.
[잠언 4장 1-9절]
“최선을 다하되 최고가 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목회자가 꼭 알아야 할 9가지 원리”란 책의 저자인 서현교회 김경원 목사님의 말입니다. 물론 이 말의 문맥은 저 같은 목회자가 탈진을 방지하기 위해서 최선은 다하되 최고가 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만큼 우리 목회자들이 경계하고 또 경계할 것은 최고의식이라는 것입니다(김경원). 저는 개인적으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맡은 일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귀하지만 최고가 되려는 최고의식이 우리 안에 잠재하고 있다면 결국은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완벽주의를 추구하게 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교만함에 빠질 위험이 참 많다고 생각됩니다. 즉,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최고를 추구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최고를 최선을 다해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잠언 4장 7절에서 성경은 그것이 바로 “지혜”(wisdom)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4장 7절을 보십시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지혜가 최고다’라는 뜻입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 중심으로 “지혜가 제일입니다”란 제목 아래 하나님이 보시기에 최고인 지혜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겸손히 받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제일인 지혜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4장 7절을 보면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소유를 내어 놓고 그 지혜를 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7절). 그 정도로 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값어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 소유를 걸은 만큼 값어치가 있는 이 지혜를 얻기 위해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훈계를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4장 1절을 보십시오: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우리가 제일인 지혜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훈계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선한 도리(sound teaching)를 주시기 때문입니다(2절).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교훈은 선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교훈(법)은 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선한 가르침을 받아 그 가르침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2절).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가르침을 우리 마음에 둬야 합니다(4절).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을 잊지 말고(5절) 지켜 행해야 합니다(4절).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십시오: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었노라.” 지금 솔로몬 왕은 자기는 자기의 부모인 다윗과 밧세바의 “유약한 외아들”(only child)이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아들들(1절)에게 선한 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2절). 아마도 이 솔로몬 왕의 교훈은 자기가 부모님에게 외아들이었을 때 쓴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윗과 밧세바에게서 난 아들들이 솔로몬만 아니라 세 아들이 더 있었기 때문입니다(대상3:5)(Walvoord).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한 가정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다윗 왕이 그의 아들인 솔로몬에게, 그리고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되어 그 또한 자기의 아들들에게 선한 도리를 가르쳤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저에게, 그리고 저는 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전한다는 것, 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다윗은 “헷 사람 우리와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않았는데(왕상 15:5)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은 나이가 늙을 때에 이방인 왕비들이 그의 마음을 돌이켜 다른 우상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그의 마음이 그의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였습니다(11:4). 다시 말하면,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 왕은 자기 아들들에게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잠 4:1) 그 가르침을 마음에 두고(4절) 잊지 말고 어기지 말라(5절)고 했지만 그는 나이가 늙어 자기 아들들에게 가르친 대로 자기가 살지 못하고 우상숭배를 하는 하나님께 죄를 범했습니다. 한 마디로, 솔로몬 왕의 마음은 하나님께 온전치 못하였습니다(왕상 11:4). 그러면 솔로몬을 이어 왕이 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분명히 그의 아버지인 솔로몬에게 선한 도리(교훈)을 받았을 터인데 르호보암은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니까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습니다(대하 12:1).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르호보암을 본받아(1절) 다들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습니다(2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할아버지인 다윗의 신앙이 아들 솔로몬과 손주 르호보암에게 계속 전수되었어야 하는데 오늘 본문에서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고 말하는 솔로몬 왕조차 다윗 왕의 훈계를 떠나 우상 숭배라는 큰 죄를 하나님께 범하였고 그의 아들인 르호보암도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율법을 떠나 하나님께 죄를 범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선한 말씀을 마음에 두고 잊지 말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 볼 수가 있습니다(시 34:8).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경외하는 우리 육신의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선한 말씀(가르침)을 지켜 행할 때에 우리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롬 8:28)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선한 도리(잠 4:2)에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그에게만 소망을 걸고 그의 선한 계명에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시 34:8). 그리할 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나아가시는 하나님과 그의 선하심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롬 8:28).
마지막 두 번째로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제일인 지혜를 우리가 얻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우리에게 한 3가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우리가 지혜를 얻을 때 우리는 보호를 받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4장 6절을 보십시오: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2장 7-8절을 보면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는 지혜(6절)로 행실을 온전케 하여(7절) 공평(성도)의 길을 걸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보존)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성경은 지혜가 우리를 보호한다(2:1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3장 23절을 보면 성경은 우리가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킬 때(21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발이 거치지 않도록 안연하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3절). 이렇게 지혜는 우리를 보호해 주며 지켜줍니다. 여러분은 이 성경 말씀을 믿으십니까? 저는 이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질 때 한 가지 마음에 점점 더 느끼고 확신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가 없으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선한 말씀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미련해 질 때 제 신앙과 마음이 사단의 공격에 노출되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생명의 근원이 되는 우리 마음이 사단의 공격에 노출되어 위험합니다. 그리고 더 위험한 것은 제 자신이 미련하면서도 제 자신의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길 뿐만 아니라(12:15)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면서(26:11) 즐긴다는 것입니다(15:14).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없으면 참으로 우리는 위험합니다. 전도서 7장 12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성경은 지혜가 우리의 생명을 보존해 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최고인 지혜를 최선을 다해서 얻도록 우리는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2) 우리가 제일인 지혜를 품고 높일 때 지혜가 우리를 높이며 영화롭게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4장 8절을 보십시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우리가 지혜를 높일 때 지혜가 우리를 높여 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을 높이면 그 어리석음이 우리를 낮출 것입니다. 저는 요즘 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고민으로 인하여 마음도 긴장도 되고 좀 무겁기도 합니다. 그 심각한 고민이란 “목회자의 변질”입니다. 저는 제 자신도 모르게 제가 변질되어 교만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죄를 범할까봐 두렵습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저는 오늘 본문 말씀 잠언 4장 8절을 묵상하면서 제가 변질됨에 있어서 하나님의 지혜를 높이기보다 제 자신의 지혜를 높이며 하나님을 높이기보다 제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교만함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만함 속에서 제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제 자신을 스스로 높이고자 한다는 것은 결국 제 자신의 어리석음만 높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저를 낮추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 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제일인 지혜를 높이고 그 지혜를 품으라는 말에 순종하고 싶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저를 높이시고 저를 영화롭게 해 주시길 기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제일인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스스로 낮추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선한 도리(교훈)를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십자가의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처럼 우리는 주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마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 것처럼(빌 2:9)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
(3) 우리가 제일인 지혜를 품을 때 지혜가 우리를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4장 9절을 보십시오: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솔로몬 왕은 “지혜”를 여성으로 인격화했습니다. 그 여성과 같은 지혜를 우리가 품을 때 그 지혜가 우리를 아름답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16장 14절을 보십시오: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결국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제일인 지혜를 얻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온전히 화려하게 하시사 우리의 명성이 불신자들 중에 퍼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귀한 축복입니까?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최고인 지혜를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소유를 걸은 만큼 값어치가 있는 이 지혜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선한 훈계를 듣고 마음에 두어 지켜 행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 지혜가 우리를 보호해주며 우리를 높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을 줄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