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녀

 

 

[잠언 311-26]

 

 

저는 어제 새벽기도회 때 제 세 자녀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이 뭉클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2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주신 선물인 딜런, 예리, 예은이를 사랑하고 계심을 느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부족한 아빠인 제가 그 세 자녀들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지난 주 토요일에 하나님께 헌신하는 마음으로 귀걸이를 한 예리를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와 더불어 제 자신이 사랑하는 딸 예리를 하나님께 받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마음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예리를 통해서 ‘에브라임의 역사’, 두 배로 열매를 맺게 하시길 간구할 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은이를 위해서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사 그 하나님의 은혜로 더 수고하며 은혜를 베푸는 자가 되길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맏아들 딜런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에는 “너 하나님의 사람 딜런아 진실하고 신실하길 바란다”는 이 아버지의 마음속으로 외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자녀나 후손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간절한 기도 제목들이 있는 줄 압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자녀들, 후손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하십니까?

 

저는 오늘 본문 잠언 3장 11-26절을 묵상하다가 11절과 21절에 “내 아들아”라는 솔로몬 왕의 말을 보고 그 단어들 중심으로 “지혜로운 자녀”란 제목 아래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 묵상의 핵심은 과연 지혜로운 자녀는 누구인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지혜로운 자녀들은 누구인지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 우리 자녀들(또는 후손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첫째로, 지혜로는 자녀는 하나님의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3장 11-12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왜 우리 아버지들이 자녀들을 징계합니까? 자녀들이 우리 아버지의 말에 불순종해서 그렇지 않습니까? 얼마 전 저희 집 딸 둘이서 지극히 작은 것 가지고 싸우기에 제가 징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아이들을 징계한 후 ‘너희들이 무엇을 잘 못했는지 글을 써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딸아이는 글을 길게 써서 그림까지 그려서 저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그 내용을 읽어보았더니 자기가 조그만 것 때문에 싸우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웠다고 하면서 자기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뉘우치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의 글을 보니까 자기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말하면서 아버지인 저에게도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용서했겠습니까? 아니면 용서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아니 하나님께 용서의 기도를 드렸다는데 제가 어떻게 사랑하는 딸아이를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신 8:5). 징계하시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도를 떠날 때(forsake the way or leave the path) 우리를 징계하십니다(잠 15:10).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도를 떠날 때 징계를 하십니까? 그 이유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한 기뻐하셔서 우리가 그의 말씀을 떠나 불순종의 삶을 살 때 사랑의 매를 드십니다(3:12). 또한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그의 아들, 딸로 여기고 계시기에 징계하시는 것입니다(히 12:6-8). 그러면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한 3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우리 마음에 얽힌 미련한 것들을 멀리 쫓아내기 위해서입니다(잠 22:15), (2) 우리를 회개케 하여(계 3:19) 다시는 죄를 범치 않고(욥 34:31)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며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히 12:9), (3)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함(히12:10)과 또한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사 53:5).

 

오늘 본문 잠언 3장 11절에서 솔로몬 왕은 “내 아들아”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는 2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잠언 31절에서 솔로몬 왕은 내 아들아라고 말하면서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고 명하였는데 이렇게 오늘 본문 311절에 와서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로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자녀들이 아버지의 법을 잊어버리고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지 않을 수가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아버지가 자녀를 징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솔로몬 왕이 오늘 본문 11절에 와서 아버지의 징계를 말하지 않고 “여호와의 징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묵상할 때 솔로몬 왕은 아버지로서 그의 자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가르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그의 자녀들이 자신의 법과 명령을 지켜 행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께서 너희를 징계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켜 주므로 자신의 법과 명령이 하나님 중심된 것임을 말함과 동시에 그 법과 명령을 잊어버리고 지키지 않을 시에는 하나님께서 너희를 징계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그의 자녀들에게 심어주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 솔로몬 왕이 내 아들아말하면서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고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고 말한 이유는 하나님의 징계는 우리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싫어할 수가 있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때에는 우리에게 유익이 있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박윤선).

 

그 하나님의 징계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물론 우리가 이미 징계의 목적 세 가지를 묵상한 것처럼 징계의 유익은 우리 마음에 얽힌 미련함을 멀리 쫓아내고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여 다시 죄를 범치 않고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며 살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며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모든 징계의 유익을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잠언 3장 12절에서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 마디는 바로 징계의 유익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징계의 유익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는 것(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와 여러분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배우는 것이 징계의 유익인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의 유익을 얻은 경험이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좀 마음으로 깨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지혜로운 자녀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배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가를 깨닫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러한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잊어버리고 지키지 않아 하나님께 죄를 범할 때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복으로 여겨야 합니다(욥 5:17). 그 복은 무엇입니까? 나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더욱더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을 배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둘째로, 지혜로운 자녀는 지혜의 복을 누립니다.

 

오늘 본문 잠언 3장 13-15절을 보십시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참된 복은 무엇입니까? 과연 세상의 은과 정금과 같은 물질이 참된 행복을 우리에게 줍니까? 지난주에 저는 한 기독교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한기총은 해체돼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어 보았습니다(여기서 “한기총”이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약자로서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단체임)(인터넷). 제가 이 기사를 읽게 된 이유는 얼마 전 한기총에 소속된 목사님 한 두 분이 한기총 대표회장을 하려고 선거 때 돈을 쓰고 받고 등등을 고백한 기사들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하여 이 기독교 인터넷 웹사이트 기자가 영동교회 장로님이지 고신대 석좌교수이신 손봉호 교수님을 인터뷰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인터뷰 내용 중 기자가 이런 질문한 내용이 있습니다: “금권 선거로 드러난 교계 지도자들의 지나친 명예욕이 단지 한기총의 문제인가?” 이 질문에 대한 손 교수님의 대답은 이거였습니다: “우리 문화에 존재하는 처세주의와 입신양명 추구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한국 개신교의 신앙이 기복 신앙으로 변질되었다. 돈 벌고 유명해지는 게 복이라고 교회에서 가르친다. 목회자는 정치를 해서 권력을 얻을 수도 없고, 기업을 해서 돈을 벌수도 없다. 결국 남는 게 명예뿐이다 보니 여기에 집착하게 된다”(참고: “처세주의”란 ‘저 하나만 생각하는 태도”란 뜻; “입신양명”이란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떨침”이란 뜻). 여러분은 이 손봉호 교수님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도 한국 개신교의 신앙이 기복 신앙으로 변질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돈 벌고 유명해지는 게 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손 교수님의 말에 동의합니다. 우리 한국 개신교 신앙은 기복 신앙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이 존재해야 하고, 내가 필요할 때 그 하나님이 언제든지 나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믿는 이 기복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그저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물질의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이 과연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른 신앙입니까?

 

오늘 본문 잠언 3장 13-15절을 보면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지혜와 명철을 얻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3, 18절). 그러면서 지혜를 얻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그 지혜의 가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지혜의 가치는 금은보화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금은보화보다 지혜가 더 가치가 있습니까? 다시 말하면, 지혜를 얻는 자에게 무슨 복이 있기에 금은보화와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16-18절을 보십시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성경은 지혜의 복은 장수와 부귀요, 즐거움과 평강일 뿐만 아니라 “생명나무”, 즉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지혜의 복은 내세의 구원에 속한 축복을 보장 받는 것입니다(박윤선). 참 지혜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은 저와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과 평강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땅에서의 장수의 복의 진정한 의미인 영원한 생명과 진정한 부귀인 하늘의 보화를 쌓아놓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 지혜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장수하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할지라도 진정한 즐거움과 평화를 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내세의 축복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영원한 저주만 남아 있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가장 불행한 것은 금은보화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박윤선).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제일주의로 살지 않는 인생은 참으로 불쌍한 인생이요 불행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불쌍하고 불행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본문 잠언 3장 19-20절을 보면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지혜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의 위대하심에 대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박윤선). 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무엇과 비교할 수가 있습니까? 이 세상의 금은보화가 비교기 될 수 있습니까? 솔로몬 왕은 지혜로운 자녀는 이 위대한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므로 말미암아 복을 누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복을 누리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영원한 복을 누리고 있는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셋째로, 지혜로운 자녀는 지혜와 근신을 지킵니다.

 

오늘 본문 잠언 3장 21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로 네 눈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솔로몬 왕은 그의 자녀에게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른 판단력(sound judgment)과 분별력(discernment)을 보존하라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입니다(박윤선). 하나님을 경외하되 “눈앞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듯이 늘 모시고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박윤선). 그리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실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자녀에게 주시는 축복들이 있습니다. 그 축복들은 무엇입니까?

 

(1) 영혼의 생명(life)입니다.

 

잠언 3장 22절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그것이 네 영혼의 생명이 되며 ….” 우리는 육신의 생명보다 영혼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박윤선). 솔로몬 왕은 우리가 지혜와 근신을 지키면,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실한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우리 영혼의 생명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안전(safety)입니다.

 

잠언 3장 23절을 보십시오: “네가 네 길을 안연히 행하겠고 네 발이 거치지 아니하겠으며.”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진실 된 삶을 살아갈 때 비록 사단이 우리로 하여금 정직한 길을 떠나 구부러진 길(2:15)과 어두운 길로 행하게 하려고(13절) 미혹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해 주시사 안전하게 정직한 길, 선한 자의 길, 의인의 길(20절)을 계속 걷게 하여주십니다.

 

(3) 단잠(sweet sleep)입니다.

 

잠언 3장 24절을 보십시오: “네가 누울 때에 두려워하지 아니하겠고 네가 누운즉 네 잠이 달리로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시므로 안전하게 지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단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폭풍 가운데서도 배 안에서 잠이 드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실한 성도들에게 환난 가운데서도 단잠을 주십니다.

 

(4) 담대함(confidence)입니다.

 

잠언 3장 25절을 보십시오: “너는 창졸간의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지혜를 얻은 자,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진실 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벌하시기 위하여 보내시는 환란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합니다(박윤선).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6절).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통하여서라도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자녀들에게 주시는 지혜의 가치를 깨달아 알아 그 지혜를 추구하는 가운데 지혜의 축복들을 겸손히 받아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혜와 근신을 지켜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자녀들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인 영혼의 생명, 안전, 단잠 그리고 담대함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