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의뢰하고
우리 명철을 의지하지 마십시다.
우리가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면(잠3:5)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명철로는 하나님의 명령이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떻게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한데(왕상 17:1)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고 명하십니까?(3-4절) 비가 수년 동안 내리지 않으면 당연히 시냇가는 마를 것이고(7절) 시냇가의 물이 마르면 엘리야는 물을 마시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고 명하시면서(9절) 거기에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 가지고 자기 아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 죽으리라”(12절)하는 한 과부를 준비해 놓으셨습니까? 좀 돈 많은 크리스천 과부를 준비해 놓으시면 풍족히 먹고 사역도 좀 넉넉히 후원받고 좋을 텐데 말입니다. 아니, 어떻게 엘리야 목사님은 나와 내 아들이 먹을 한 끼 음식을 먼저 자기에게로 가져오라고 명합니까?(11, 13절) 그 후에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니 아니 이게 말이 됩니까?(13절) 아무리 목사님이라 할지라도 내 아들 만큼 사랑하겠습니까? 한 끼 음식, 엄마인 내가 못 먹어도 내 아들은 먹이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인데
어떻게 그 음식을 목사님에게 먼저 갔다 바칠 수 있습니까?
우리의 명철로는 이해가 안 되는 하나님의 사람의 명령이요 또한 하나님의 명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18, 24절)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15절).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5, 10절). 어떻게 그들은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자기들의 명철을 의지하기보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였기 때문입니다(잠 3:5).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왕상 17:4, 9, 14). 심지어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그릿 시냇가의 물이 마르지 아니할 것이라는 약속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인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4절)는 말씀만 붙잡고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5절). 놀랍지 않습니까? 과연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순종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는 이적들을 경험하였습니다(6, 16절).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는데 아니 어떻게 내 아들이 죽을 수 있습니까?(17절) 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죽게 놓아두셨을까요? 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데 우리 삶에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숨겨진 죄를 들춰내셔서(18절) 회개케 하시사 변화시켜 주시려고 그러시는 것일까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부르짖게 만드시고자 그러시는 것일까요?(20절)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과 영광을 경험케 하시고자 그러시는 것일까요?(22절)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요 우리 입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한줄 다른 이(들)로 하여금 알게 하시고자 그러시는 것일까요?(24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장 5-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