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 (1)

 

 

[잠언 31-10]

 

 

저희 교회 회원자격을 보면 “영적 자세”란이 있습니다. 그 “영적 자세”란을 보면 우리 교회 식구들이 필요한 영적 자세인 “순종”, “겸손”, “신실함”, “충성” 등등이 적혀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자세에게 대한 내용들 이전에 적혀 있는 문구가 하나 있습니다. 그 문구는 다름 아닌 “The kind of person you are is far more important than the kind of work you do”(당신이 누구인가가 당신이 무엇을 하는가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입니다. 저는 이 문구를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 판에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의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목회에 있어서 우리의 행함(Doing)보다 존재(Being)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중요시 여기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행하였는가 이기보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입니다. 제가 이것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행함으로 존재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만일 지금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닮아가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가고 있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가 예수님의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 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 도전이란 ‘나는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보다 ‘나는 지금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있는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갈 때 우리는 행함도 예수님처럼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지혜로운 자가 될 때에 우리는 지혜롭게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저와 여러분이 잠언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해 나아가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지혜를 받아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 수요기도회 때 잠언 2장 10-22절 중심으로 “지혜의 유익”에 대해서 생각했었습니다. 그 지혜의 유익은 지혜는 우리의 영혼을 즐겁게 해주며(10절), 우리를 보호해 주고 건져주며(11-12절) 또한 우리로 하여금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20절). 오늘은 본문 잠언 3장 1-10절 말씀 중심으로 “지혜로운 자 (1)”에 대하여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의 신앙 자세입니다. 한 4가지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지혜로운 자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킵니다.

 

오늘 본문 잠언 3장 1절과 3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법 또는 하나님의 명령 잊어버리지 않고 지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를 자신의 마음 판에 새깁니다. 이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요 14:21) 순종하므로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더 깊이 체험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로운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동기는 하나님 사랑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더 깊이 체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엄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미워하심을 더욱더 깊이 체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는 어리석음을 좋아하고 거만을 기뻐하며 지식을 미워하기에(잠 1:22)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싫어하며(24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에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비웃음(26절)과 하나님의 외면(28절),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인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31절).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체험합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자는 그 깊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합니다. 더 나아가서, 지혜로운 자는 더욱더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진실 된 삶을 추구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로운 자는 사랑의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의 말씀을 지켜 행하므로 말씀 인격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말씀 인격화된 삶은 바로 진실 된 삶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거짓된 삶을 삽니다. 그 이유는 그는 절대 진리의 말씀을 미워하고 싫어하기에(22, 24절) 악한 자(10절, 2:12)와 음녀(2:16)의 꾐과 유혹에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우리 마음 판에 더욱더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므로 사랑과 진실 된 삶을 살아드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둘째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3장 5-6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 판에 새기고 지켜 행하는 지혜로운 자는 그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여 의뢰(신뢰)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말은 “독점적인 신뢰”를 말합니다. 이런 의뢰심을 가리켜 “동심의 신뢰(childish confidence)”라고 합니다(박윤선). 마치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믿되 단순성 있는 신뢰심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바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박윤선). 이러한 동심의 신뢰로 하나님을 의뢰하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마음으로 의뢰할 수가 없습니다. 그 한 예로, 엘리야를 들 수가 있습니다.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로가 내리지 않는 상황에서(1절) 엘리야를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3-4절)고 명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이 우리의 머리로 이해가 되는 명령이라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에서 시냇가로 가서 시냇물을 마시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실 수가 있습니까? 비가 내리지 않으면 시냇물이 마를 텐데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비가 내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적을 행하시사 시냇물이 메마르지 않게 하실 수 있는 능령의 하나님이십니다. 홍해 바다를 마르게 하시사 육지처럼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 반대로 비가 오지 않는 상태에서 시냇물을 메마르지 않게 계속 시냇물이 흘러내리게 하실 수 있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적을 엘리야에게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결과 그릿 시냇가의 물은 말랐습니다(7절). 과연 비가 오지 않는 상황에서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는 하나님의 명령, 이 하나님의 명령은 엘리야가 자기 명철을 의지했더라면 과연 순종할 수 있는 명령이었을까요? 결국 땅에 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는 마릅니다(7절). 그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에 사는 한 과부에게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고 명하십니다(9절).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자신과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 죽으려고(12절) 하는 한 과부로 하여금 엘리야를 공궤하게 하셨습니다(9절). 과연 이 하나님의 명령도 우리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가 되는 명령입니까? 아니 어떻게 아들과 함께 한 끼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하는 과부의 집으로 가라고 하나님께서는 명하실 수가 있습니까? 우리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면 순종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 이사야 55장 8-9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천지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조물주 하나님의 높으신 생각을 피조물인 우리의 낮은 생각에 집어넣어서 살아갈 때가 수 없이 많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의심 속에서 우리 자신을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잠3:5).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명철을 의지해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고 그 분을 전적으로 의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사를 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경영하는 것을 이루실 것입니다(16:3).

 

셋째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떠납니다.

 

오늘 본문 잠언 3장 7절을 보십시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다보면 결국 우리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게 됩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의 명철을 의지하여 일을 경영하여 그 경영하던 일이 잘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지혜로워서 그 일이 잘 된 줄 착가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자기 명철을 의지하는 자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깁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우리에게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가능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는 악을 떠날 수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진리를 사랑할 때(3:3) 우리는 미움과 거짓을 떠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는 ‘스스로 지혜롭기 여기는 악을 떠날 수 있습니다(7절).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그 분을 범사에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의뢰하고 우리 자신을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의 헛된 믿음입니다(14:16). 그리고 스스로 자기 자신이 지혜롭다고 믿는 이러한 헛된 믿음의 원인은 높은데 마음을 둔 교만입니다(롬12:16). 왜 우리가 높은데 마음을 둡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높으신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친밀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을 때 우리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고(잠 3:7) 또한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합니다(롬 12:16). 이러한 교만함에 우리가 빠질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감사치도 않으며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나 우준하게 되어 있을 것입니다(1:21-22).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겨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높은데 마음을 두지 않고 오히려 낮은데 마음을 둬야 합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는 겸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떠나 겸손해야 합니다. 이러한 겸손한 자를 하나님께서 들어 일으켜 높이 사용하실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지혜로운 자는 자기의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3장 9절을 보십시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여 재물을 얻는 자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므로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그는 입술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으로 결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돌릴 수도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교만함 속에서 자기 배를 더 채우고자 애쓰지 결코 겸손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재물을 바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떠나는 지혜로운 자는 마치 지혜 있는 자녀들이(엡 5:15) 부모님을 주님 안에서 순종할 뿐만 아니라(6:1)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처럼(2절)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공경합니다(잠 3:9). 공경하되 그는 자신의 재물과 자신의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을 공경합니다(9절). 왜 지혜로운 자는 그렇게 합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과 소산물은 다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의 표현을 하고 싶기 때문에(신 26:1-3, 9-11) 하나님을 재물로 공경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자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정하는 방법입니다(Walvoord). 물질로 하나님께 받치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행위입니다(박윤선). 출애굽기 34장 20절을 보면 “빈손으로 내 얼굴을 보지 말지니라”고 쓰여 있고 신명기 16장 16절을 보면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력의 대가인 물질이 귀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에게 바쳐야 됩니다. 잊지 마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고후 9:7)(박윤선).

 

지혜로운 자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킵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합니다. 또한 지혜로운 자는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떠납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재물로 하나님을 공경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지혜로운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