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추구하십시다.

 

 

[잠언 21-9]

 

 

우리 선택에는 분명히 결과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로 선택하면 그 결과는 우리에게 축복이지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기로 선택하면 우리에게는 저주입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경외하지 않기로 선택을 하면 그 결과는 3가지입니다: (1) 광풍같이 임한 재앙 (잠 1:27), (2) 하나님의 외면 (28절), 그리고 (3) 하나님의 내어버려두심(31절).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 경외하기로 선택을 하면 그 결과는 잠언 1장 3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우리가 하나님 경외하기를 선택하면 우리는 안전하게 살며(live in safety) 재앙의 두려움 없이(be at ease) 평안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경외하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악을 떠나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수 있습니다(3절). 그러므로 우리는 안전함과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왠지 우리는 너무나 많은 때에 미련함을 택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시편 107편 17절 말씀이 우리에게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난을 당하매.” 우리는 미련함을 택하므로 말미암아 그 선택의 결과인 곤난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지금 교회가 지혜를 택하기보다 미련함을 택하므로 말미암아 고통과 고난을 당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미련함을 버리고 지혜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장 1-9절 중심으로 “지혜를 추구하십시다”라는 제목 아래 우리는 한 2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오늘 본문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1) 왜(Why?) 우리는 지혜를 추구해야 하는가? (2) 어떻게(How?) 우리는 지혜를 추구해야 하는가?

 

왜 저와 여러분은 지혜를 추구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하면 알고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우리가 지혜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를 3 가지로 정리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지혜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발견하(깨닫)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장 5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And discover the knowledge of God). 우리가 이미 잠언 1장 7절에서 배웠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지식을 사랑하고 어리석음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어리석음을 사랑하고 지식을 미워합니다(1:22). 과연 하나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자들이 미워하는 지식은 무슨 지식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곧, 하나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3장 7-9절에서 한 고백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과연 저와 여러분은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라도 가장 고상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만 있으면 만족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는 진리를 알고 깨닫기 위해서 하나님(하늘)의 지혜를 추구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지혜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 경외하기를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장 5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Thus you will discern the fear of the Lord).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자세나 그 분의 의지나 느낌, 행실과 목적 등을 우리가 배우고 알아갈 때에야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죄악을 떠날 수 있습니다. 잠언 3장 7절을 보십시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악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므로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깨달아 악을 떠나야 합니다. 바로 욥이란 인물이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에서 떠난 자였습니다(욥 1:1). 우리는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떠나되 어떠한 역경과 고난에 처해 있을지라도 입술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가 지혜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모든 선한 길을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장 9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못하게 하고(1:29) 오히려 어리석음을 좋아하게 만들므로(22절) 결국 우리로 하여금 악한 자들의 길을 걷게 만듭니다(15절).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속히 떠나(출 32:8) 악으로 달려가며 죄를 범하기를 빨리합니다(잠 1:16). 이것은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의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드려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가운데 하나님 경외하기를 깨달아서 악한 자들의 길에서 떠나 의인의 길, 공의와 공평과 정직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 모든 선한 길을 깨달아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지혜를 추구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한 3 가지로 지혜를 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장 3절을 보십시오: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얻기 위해선 먼저 하나님께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지혜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철저히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미련한지를 더 많이 그리고 더 깊이 깨달아 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더욱더 간절히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잠언 2장 3절에서 솔로몬 왕이 저와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지혜를 하나님께 “불러 구하며” “소리를 높이며” 구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알아 삶 속에 적용하기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신자의 열정적인 애원을 보여줍니다(MacArthur). 이러한 열정적이고 간절한 기도를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 우리는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6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 성경은 우리에게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지혜를 믿음으로 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음으로 간절하게 필요를 느끼는 하늘의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 지혜를 주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에게도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Charles Bridges라는 목사님은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이 세상 지혜는 학문에 의하여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늘의 지혜는 기도에 의하여 얻는다. 학문은 성경학자를 만들어 낼 수 있으나 기도는 신령한 기독자를 만들어 준다”(박윤선). 맞습니다. 하늘의 지혜는 기도에 의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지혜를 간구하므로 말미암아 하늘의 지혜를 얻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우리 삶 전 영역에 적용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령한 기독자로 세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지혜를 추구하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장 4절을 보십시오: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오래 전 집사님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마치 광부가 금을 캐듯이 성경을 읽어야 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끔 TV나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광부들이 땅 깊은 탄광 속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접한 기억이 납니다. 특히 마지막으로 본 뉴스는 작년에 칠레에서 광부들이 탄광에 갇혀 있다가 구출 받은 드라마틱한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얼마나 큰 위험 부담을 가지고 광부들이 일을 하는지 그저 간접적으로나마 생각하게 만드는 뉴스입니다. 저는 그 광부들을 생각할 때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그들은 생명을 걸고 일을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왜 그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걸고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신들의 생명을 걸 정도로 뭔가 가치가 있어서 그렇게 일을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가치관의 혼동 시대’라 생각합니다. 지금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가치가 있고 무엇이 가치가 없는지 혼동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단은 지금 달콤한 환상인 거짓된 행복을 우리에게 약속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것을 버리고 순간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에 가치를 두고 그것들을 추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단의 역사를 생각할 때 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능력으로 애굽에서 구원을 받아 광야에서 담대히 전진해 나아가다가 마음의 변하여 그들을 좇아온 애굽 왕 바로와 그의 군대를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여기 광야에서 죽은 것보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데 더 낫다’라는 식으로 모세를 원망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저는 그 말씀을 묵상할 때 어떻게 죄의 노예 생활이 영원한 생명보다 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엔 광야에서 비록 육신은 죽을 찌라도 구원 받아 죄에서 자유를 누리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 노예 생활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인데 어찌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받아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아가면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길 원하였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가치의 혼동 때문입니다. 무엇이 참 귀중한 것인지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질 수 있는 가치관 이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이러한 믿음의 가치관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 귀중성을 알고 “은을 구하는 것 같이” 찾아야 합니다(잠2:4). 지금 솔로몬 왕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데 있어서 보배를 찾는 자처럼 그것을 귀히 여겨 찾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박윤선). 마치 사람들이 귀중한 보배를 구할 때 그것을 얻기까지 많은 희생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욥 28:1-11)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함에 있어서는 많은 희생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박윤선).

 

마지막 셋째로, 우리가 지혜를 추구하기 위해선 우리는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그 들은 말씀을 우리 마음에 고이 간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장 1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보배롭게 여겨 희생을 아끼지 않고 구할 때에 우리는 마음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훈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들은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간직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 잠언 7장 1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잘 간직하기 제일 좋은 방법은 그 말씀을 내 소유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 소유로 만드는 방법은 바로 그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56절을 보십시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This has become mine, That I observe Your precepts).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므로 그 말씀을 마음에 고이 간직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어 악한 이 때에 세월을 아껴 주님을 뜻을 깨달아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엡5:17-17).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이 악하고 어두운 시대에 우리 교회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혜가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경외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선한 길을 깨달아 알아 그 선한 길을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믿음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갈급한 심령으로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그 들은 말씀을 우리 마음에 고이 간직해야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사 주님의 뜻을 깨달아 그 주님의 뜻대로 지혜롭게 살아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