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자들

 

 

[잠언 120-33]

 

 

언젠가 아내가 저에게 한 말이 기억납니다: ‘세상은 더욱더 악해질 것이기에 교회는 더욱더 교회다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이악한 세상에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왠지 교회는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요 3:19). 교회 안에 다툼과 싸움과 분쟁과 나눔으로 인하여 지금 교회는 상처와 아픔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기보다 우리의 미련함을 전파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잠 12:23). 분명히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로서 그 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하나됨(unity)일진데 우리는 그러한 교회의 모습을 보기가 힘듭니다. 왠지 요즘 한국에 있는 한국 교회나 여기 미국 이민 교회를 보면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교회처럼 보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 속한 교회일진데 사람들에게 속한 교회로 전락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우리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는 더 이상 사람의 교회가 아닌 주님의 교회요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로서(마16:18) 이 세상의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이주 수요기도회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는 젊은이들”이란 제목아래 잠언 1장 8-10절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젊은이들은 어떠한 자들인지 한 3가지로 교훈을 받았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젊은이들은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8절),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젊은이들은 악한 자들의 꾐을 좇지 아니합니다(10절), 그리고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젊은이들은 악한 자들과 함께 다니지 않습니다(15절). 오늘은 “하나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자들”이란 제목 아래 본문 잠언 1장 20-33절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어떠한 자들인지 그리고 그들의 결과는 무엇인지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어떠한 자들입니까?

 

첫째로, 하나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어리석음은 좋아하고 거만을 기뻐하며 지식은 미워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장 22절을 보십시오: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여기서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지혜가 필요한 3 종류의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어리석은 자들”(simple ones), “거만한 자들’(mockers) 그리고 “미련한 자들”(fools)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시비를 분변할 줄 모르고 일정한 견해가 없는 자들로서 악한 운동에 휩쓸리기가 쉬운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들은 이미 죄악에 휩쓸려 어리석음을 좋아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거만한 자들은 극도로 악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멸시하는 자들이고 미련한 자들은 어리석은 자와 달라서 악으로 굳어졌고 도덕적으로 우매한 자들입니다(박윤선).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즐거워하지 않는 자들로서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을 기뻐하며 지식을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솔로몬 왕은 이 어리석고 거만하며 미련한 자들이 어느 때까지(How long?)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을 기뻐하며 지식을 미워할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권면하고 있습니다(22절).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교회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호 4:6).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 목사님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렸고 하나님의 계명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6절). 그러므로 결국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을 맞이했습니다(암 8:11).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음을 좋아하고 거만을 기뻐하며 지식을 미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고 있습니다(잠 1: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훈계와 법도를 떠나(8절) 악한 자들의 꾐에 넘어가(10절)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죄를 범하되 습관적으로 죄를 범하여 마음이 강퍅해져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 없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어 우리들의 범죄를 후회하는 마음조차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범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져 있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짐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마음이 강퍅해져서 범죄를 후회하는 마음조차도 전혀 없는 미련한 자들이 되지 않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바로 지혜를 사랑하므로 가능합니다. 우리가 어리석음을 미워하고 지식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마음의 강퍅함을 면할 수 있고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혜와 훈계를 얻어야 합니다(2절). 그리할 때 저와 여러분은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하므로 말미암아(3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세상의 예수님의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교훈을 멸시하고 책망을 받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1장 25절을 보십시오: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지식을 미워하고 어리석음을 좋아하는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지혜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않은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의 소리를 외면합니다. 그들은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할지라도(20-21절) 듣기를 싫어합니다(24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23절)고 말씀하시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듣기를 싫어하며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24절). 도리어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합니다(25절). 결국 미련한 자들은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을 받지 아니하므로 자신의 미련함을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맙니다. 자기가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고 거만한지를 말입니다. 왜 이렇게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을 받지 않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그들은 지식을 미워하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29절).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23:9).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들은 하나님의 교훈의 말씀을 듣고 학식이 더하며 모략을 얻습니다(1:5).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들은 지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들은 하나님의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므로 말미암아 지식이 더하며(21:11) 더 지혜롭게 됩니다(19:20).

 

듣는 귀는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는 축복입니다. 그리고 나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 주는 이의 책망까지도 듣는 귀는 참으로 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을 들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25:12)임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들의 책망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이 지식을 더하며 더 지혜롭게 되어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퇴보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장 32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등지고 하나님을 떠난다는 것입니다(박윤선). 우리가 어리석음을 좋아하고 거만을 기뻐하며 지식과 교훈과 책망 받는 것을 미워하고 싫어하다 보면 결국에 가서는 우리의 신앙은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은 결국에 가서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퇴보는 결국 우리를 죽이며 우리를 멸망시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수아 23장 12-13절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너희 중에 빠져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하면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경고의 메시지를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11절).

 

그러면 하나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1) 재앙이 폭풍같이 임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장 27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을 경이 여기고 듣지 아니하며 지식을 미워하는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지식을 미워하며 교훈과 책망을 받지 않는 미련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심판하시되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재앙을 폭풍같이 내리시므로 말미암아 어리석은 자들은 재앙의 두려움과 근심과 슬픔에 깊이 잠길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7절).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조롱(God’s derision)이라 생각합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여러분은 상상이 되십니까?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는 것이 아니라(시 44:13, 119:51) 하나님께 조롱을 받는다는 것, 여러분은 상상이 되십니까?

 

(2) 하나님께서 그들을 외면하십니다.

 

오늘 본문 잠언 1장 28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우리가 미련하여서 하나님의 교훈을 멸시하고 책망을 받지 않다가 결국 재앙을 만나 고통과 고난 속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근심과 슬픔 속에서 그 고통과 고난(재앙)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러나 왠지 그 기도 응답이 오지 않음을 우리는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재앙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지 않고 잠잠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외면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외면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외면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아니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외면했습니까?’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1장을 보면 어리석고 거만하여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외면했고(22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외면하였으며(7-9절), 하나님의 교훈(25절)과 책망(23절)을 외면했습니다(MacArthur). 마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지런히 말씀하시고 부르셨지만 듣지도 않고 등을 돌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죄를 범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 또한 부지런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에게 부지런히 등을 돌려 우리가 갈 길을 가고 있을 때가 너무나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외면하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재앙 가운데서 하나님께 외면을 당할지라도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외면을 당한다는 것, 상상하실 수 있습니까? 과연 여러분은 하나님의 외면하심을 견디실 수 있습니까?

(3) 세 번째 결과는,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1장 3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행의의 열매를 먹게 하시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는 어리석고 거만하며 미련한 자들을 심판하심에 있어서 그들의 죄의 결과 가운데 그냥 내버려두신다는 말씀입니다(MacArthur). 그 한 예로 우리는 성경 로마서 1장 24-28절을 들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에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욕되게 하셨”다(24절),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다(26절),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28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죄악 된 본능대로 살도록 그냥 내어 버려두시는 것이 재앙보다 더 무서운 심판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적어도 우리가 재앙을 만나며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곤 하면서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다가도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우리를 우리의 죄와 재앙 가운데서 건져주실 가능성이 열려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우리의 죄악 된 본능대로 내어 버려두시면 우리에게는 죄에서 건짐을 받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에스겔 11장 2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미운 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좇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거부하고 지식을 미워하며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을 버리면 하나님께서도 저와 여러분을 우리의 죄악의 결과에 그냥 내어 버려두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식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을 듣지(받지) 아니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눅 3:8).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교훈을 듣고 하나님의 책망을 겸손히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잠언 1장 33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우리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즐거워하는 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되어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