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소망에 흔들리지 마십시다!

 

 

 

 

[골로새서 1장 15-23절]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가 가진 “하늘 나라의 소망”(골1:5, 현대인의 성경)이란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경우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살전1:10, 현대인의 성경).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소망이란 주님이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실 때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부활하는 것과 그 후에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의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4:16-17, 현대인의 성경).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소망을 가지고 인내했습니다(1:3, 현대인의 성경). 우리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소망을 가지고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하되 우리는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약5:8).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많은 고난 중에서도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살전1:6,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2:13). 그리할 때 그 말씀은 우리를 굳건하게 할 것입니다(3:2). 그 말씀은 믿는 우리 속에서 강력하게 역사할 것입니다(2:13; 참고: 요일2:14). 그리할 때 우리는 주님 안에 굳게 서 있을 것입니다(약5:8, 현대인의 성경). 그리할 때 우리는 여러 환난 중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살전3: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실 것입니다(13절). 그리할 때 우리는 길이 참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을 수 있습니다(약5:7).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3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음: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복음의 소망에 흔들리지 마십시다!”라는 제목 아래 한 3가지로 나눠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3절 말씀입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현대인의 성경) “만일 여러분이 믿음에 굳게 서서 …”]. 믿음과 불신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엔 믿음은 사실(Fact)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만, 불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느낌(Feeling)에 근거합니다. 만일 우리가 사실인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계속 하던 대로 항상 주님의 일에 힘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참고: 고전15:58).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서서 믿음으로 살지 않고 우리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과 그것에 대한 우리 느낌대로 살고 있다면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을 때마다 우왕좌왕하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걱정, 근심하면서 주님의 일을 신실하게 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내가 보기엔/생각하기엔/느끼기엔 …’이란 말을 주로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보는 대로(생각하는 대로, 느끼는 대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후5:7).

 

제이슨 앨런은 “종교개혁의 5가지 원리”란 책에 “오직 은혜로!”라는 제목 아래 쓴 글을 보면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아직 받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이자 지금 당장은 볼 수 없는 것에 관한 신념이다”(참고: 히11:1). 그좋은 예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 때(창12:4)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 약속이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2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85세 때[75세 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12:1)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산지 10년이 지난 후(16:3, 현대인의 성경)] 사래가 출산하지 못하므로 그녀가 아브라함에 자기의 여종인 애굽 사람 하갈과 동침하여 자녀를 얻자고 했습니다(1-4절). 그 때 아브라함은 사래의 말대로 하여 그의 나이 86세 때(16절) 이스마엘을 낳습니다(16절).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지 못했기에 흔들려서 아내인 사라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17:1)(사라는 89세 때), 하나님께서는 사라를 축복하여 그녀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17:16, 19, 현대인의 성경) 또한 "내년 이맘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10,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사라는 그 뒤 천막 입구에서 듣고 혼자 속으로 웃으며 "내가 노쇠하였고 내 남편도 늙었는데 내가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하고 중얼거렸습니다(10-12절, 현대인의 성경). 이것은 사라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자신의 명철(지식)을 의지하였기에(잠3:5) 자신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 내년 정한 때에 내가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8:14, 현대인의 성경). 로마서 4장 18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었으므로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라고 하신 약속대로 그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개역개정)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의 믿음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분명히 인간적으로 보고 생각하면 자신과 아내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기에(창17:11) 결코 아들을 낳을 수 없는(12-13절)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아브라함은 이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은 것입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게 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자기 나이가 백 세가 다 되어 몸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나이가 많아 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또한 그는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하고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롬4:19-21, 현대인의 성경). 이러한 믿음과 확신과 신념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한 선배 목사님의 초청을 받아 그 분이 섬기시는 교회에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했었습니다. 한국에서 오신 강사 목사님이 한국 교계에서 나름대로 연구한 후 내린 한국 교회 문제에 대한 진단이라 하시면서 한 3 가지로 말씀하셨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 한국 교회 교인들의 신앙(믿음)은 순수한 신앙이 아니라 불교, 유교 및 샤마니즘 등 섞인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2) 한국 교회 교인들은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생활과 교회 밖에서의 생활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3) 지금 한국 교회 강단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한국 교회 교인들의 신앙이 순수하지 못하고 또한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진단입니다. 여러분은 이 진단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진단을 생각할 때 아모스 8장 11절을 다시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임한 기갈은 먹을 것과 물이 없어 배고프고 목마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로서 지금 우리는 영적으로 배고프고 목마름 가운데 있습니다. 교회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의 간지러운 귀를 긁어주는 설교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가고 있기에 지금 우리들은 바른 교훈을 받지 못(아니)하고 우리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있습니다(딤후4:3). 그 결과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짓된 스승의 거짓 교훈에 쉽게 노출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우리들은 이단의 미혹에 너무나 쉽게 노출이 되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잘 믿고 있는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골1:4, 현대인의 성경) 믿음에 굳게 서 있길(23절) 원했던 이유를 배웠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 당시 이단 사상들이 골로새 교회를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맥아더). 우리는 그 이단 사상을 3가지로 배웠습니다(인터넷): (1) “거짓 철학”으로서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했고 또한 예수님의 구속으로 인한 구원을 부인했습니다(2:8). (2) 유대교적 율법주의로서 육체의 할례, 음식의 규례, 특별한 절기의 준수가 구원의 관계있다고 주장했습니다(16절). (3) 천사를 숭배하는 신비주의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인 천사를 숭배하는 것이 겸손이라고 주장했습니다(18절). 요한일서 4장 1-3절 말씀이 생각남: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성경은 “지금은 마지막 때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2:18). 또한 성경은 이 마지막 때에 이미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나타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8절, 현대인의 성경). 이 적그리스도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이요(22절) “미혹하는 자들”임(26절).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을 부인합니다(22절). 이렇게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들이 많아 나타났기에 사도 요한은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4:1). 다시 말하면, 사도 요한은 “영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믿지 말고 그들이 주장하는 영이 하나님께 왔는지 시험해 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현대인의 성경). 사도 요한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영지주의를 비롯한 각종 이단에 의해 심각한 위기를 맞은 교회를 진리의 터 위에 세우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하나님의 아들(14절)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현대인의 성경)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기 전에 계신 분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2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하나님의 본체이시다’라는 것임(맥아더). 빌립보서 2장 6절 말씀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히브리서 1장 3절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요한복음 14장 9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2)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십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이 말씀은 주로 이단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다(a created being) 라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만일 이단이 말하는 것처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바울은 16-17절에서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즉,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동시에 피조물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 이전에 존재하셨고 창조보다 높은 지위에 계시다는 것입니다(“He existed before the creation and is exalted in rank above it”)(맥아더).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하나님의 본체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 이전에 존재하셨고 창조보다 높은 지위에 계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God)되심과 완전한 사람 되심(Man)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Divinity of Christ)과 인성(Humanity of Christ)을 믿어야 합니다. 참된 신자들은 유일한 기초(only foundation)이신 그리스도 위에 견고하게 서 있으며(고전 3:11), 하나님의 가능하게 하시는 은혜로 신실합니다(faithful)(빌 1:6; 2:11-13)(맥아더). 우리 모두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안에 깊이 뿌리를 박고 그분을 기초로 우리의 인생을 건설하며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골2:7, 현대인의 성경; 참고: 엡3:17)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신실하게 감당하십시다(3:18, 현대인의 성경).

 

제가 평생 잊지 못하는 성경 구절 중 하나가 바로 베드로전서 5장 10절 말씀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And the God of all grace, who called you to his eternal glory in Christ, after you have suffered a little while, will himself restore you and make you strong, firm and steadfast). 이 말씀은 제가 2019년을 시작하면서 사랑하는 분들의 죽음으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무거운 슬픔과 더불어 저의 사랑하는 자녀의 고통으로 인해 마음의 뭉클한 눈물이 고인 곤 했었을 때 주님께서는 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 때 저는 이 성경 말씀을 영어 성경으로 읽다가 “suffered a little while”(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이란 단어와 “restore”(회복)이란 단어와 더불어 “make you strong, firm and steadfast”(“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라는 단어들이 제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사랑하는 자녀가 "잠깐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주님께서는 다시금 회복시켜 주시되("온전하게 하시며") 그 자녀를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길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수개월 후에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저는 주님께서 그 약속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녀에게만 성취하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저에게도 성취하시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여러 다양한 어려움들이 우리를 흔들리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그 다양한 어려움들 중에 우리를 제일 힘들게 하고 우리의 믿음조차도 흔들리게 만드는 것은 사랑하는 가족의 큰 어려움과 위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작년 2022년 11월에 가족 기도 모임을 인도하면서 사랑하는 딸을 먼저 떠나보낸 제 사촌 여동생 부부와 남은 세 자녀들을 위해 간구케 하셨을 때 고린도전서 15장 58절 말씀이 생각나서 그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간구했었음: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주님께서 그 모든 유가족에게 크신 은혜와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시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아 주시사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 전보다 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족이 되길 기원했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3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우리는 이미 이 말씀 중심으로 첫 번째 교훈을 받았음. 그 교훈이란 우리는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골1:23상)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현대인의 성경) “만일 여러분이 믿음에 굳게 서서 …”]. 그 핵심 교훈은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들은 유일한 기초(only foundation)이신 그리스도 위에 견고하게 서 있으며 (고전 3:11), 하나님의 가능하게 하시는 은혜로 신실합니다(faithful)(빌 1:6; 2:11-13)(맥아더). 우리 모두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 안에 깊이 뿌리를 박고 그분을 기초로 우리의 인생을 건설하며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골2:7, 현대인의 성경; 참고: 엡3:17)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3:18, 현대인의 성경).

 

둘째로, 우리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길 원했습니다. 특히 그 당시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고 또한 예수님의 구속으로 인한 구원을 부인했던 “거짓 철학”을 주장하는 이단(2:8)의 배경을 생각할 때 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성도들이 흔들리지 않고 믿음에 굳게 서 있길 원했서 그리 권면했었는지 좀 이해가 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자들로서(1: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길 원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이단과 달리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예수님의 성육신을 믿고 또한 예수님의 구속으로 인한 구원을 믿는 자들로서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 있길 원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복음의 소망”(23절)이란 무엇일까요? 먼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듣고(6, 23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주님으로 받아들이기(2:6) 전에는 “악한 행실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과 되었”었습니다(1:21,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죽음을 통해 그들과 화해하셨습니다(22절, 현대인의 성경). 전에는 죄와 할례 받지 못한 육적인 욕망 때문에 영적으로 죽어 있었던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그들을 살리시고(2:13; 3:1) 그들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습니다(2:13,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들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3:3,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이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새사람은 여러분 안에 새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참된 지식에 이르도록 새롭게 되어가고 있습니다”(10절, 현대인의 성경). 이제 그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랑받는 거룩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12절, 현대인의 성경). 그 목적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1:22,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진 소망은 그들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들도 예수님과 함께 영광 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3:4, 현대인의 성경). 이것이 바로 바울이 골로새서 1장 5절에서 말씀한 “하늘에 쌓아 둔 소망”[“하늘 나라의 소망”(현대인의 성경)]이요 27절에서 말씀한 “영광의 소망”입니다[참고: “영생의 소망”(딛3:7)].

 

우리에게도 이 복음의 소망이요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이요 영광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세우실 것입니다(골1:22,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것입니다 (엡5:27; 유1:24).

 

2021년 선교주일 때 마태복음 9장 35-38절 말씀 중심으로 “추수할 일꾼”이란 제목 아래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주시는 3가지 교훈을 받았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37절). 여기서 “추수”란 영혼 구원에 있어서 영적 추수를 가리킵니다(맥아더). 그리고 “추수할 것”이란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는 것 또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열매를 거둬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영적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음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2) 예수님께서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38 절). 여기서 “추수할 일꾼”들이란 영적 추수하는 자들로서 영혼 구원에 힘을 쓰는 복음 전파자들을 말합니다. 추수할 주인이신 하나님께 이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시길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3) 우리는 예수님처럼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져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35-36절).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으므로 영적으로 죽고 영원히 멸망당하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2022년 10월엔 9월에 있었던 제1회 선교대회를 마친 후 “복음으로 승리하는 선교”라는 제목 아래 데살로니가전서 3장 1-8절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선교대회 및 모든 선교 사역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번 선교 여행을 뒤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면서 5가지 교훈 받은 것을 나눴습니다: (1)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큰 은혜와 사랑은 선교대회 때 주님 안에서 한 일꾼인 우리 17명의 형제, 자매들이 온 맘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마음 것 하나님을 찬양케 하셨습니다. (2) 복음으로 승리하는 선교 사역을 묵묵히 신실하게 감당하기 위해선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기본이요 근본이요 필수적임을 확인하는 선교 대회였습니다. (3) 현지인 선교사님들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하고 있는 우리 승리장로교회와 복음 선교회 멤버들에게는 그들에게 본을 보이는 진실함과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4) 주님 안에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사랑의 진솔한 마음 나눔의 교제가 귀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5) 성도의 교제를 더욱 힘써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일꾼입니다.

 

골로새서 1장 23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이 복음은 천한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현대인의 성경) “이 기쁜 소식은 하늘 아래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고 있으며 나 바울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골로새서 1장 6절에서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은 “복음 진리의 말씀”(5절), 즉 구원의 복음(참고: 엡1:13)을 [에바브라롤 통해(골1:7)]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그 날부터,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날부터(6절), 열매 특히 말씀의 열매가 그들 중에서뿐만 아니라 또한 온 천하에서도 맺어 자라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3절에 와서는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믿음에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에 흔들리지 말라’고 권면한 후 이 복음은 “천한 만민”[“하늘 아래 모든 사람”(현대인의 성경)에게 전파되고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은 사도 바울이 보기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힘으로 말씀의 열매 또는 복음의 열매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 가운데서만 맺어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온 천하”에서도 맺어 자라나고 있다(6절), 즉 “천하 만민(하늘 아래 모든 사람)에게 전파”되고 있다(23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 바울은 자기 또한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처럼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23절). 즉,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구원의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고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말씀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7절 말씀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현대인의 성경)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을 받고 내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일꾼입니다. 우리도 구원의 복음의 일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인 구원을 받은 자들로서 우리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들이 이미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분명합니다: “…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그러므로 우리도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골1:6)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온 천하에 다니면서 하늘 아래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온 천하에 다니면서 하늘 아래 모든 사람에 전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끝이 올 것이요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복음의 소망에 흔들리지 않고 믿음에 굳게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속해서 전파하고 싶은,

 

 

 

제임스 김 나눔

(2023년 2월 12일, 복음의 소망이시요 하늘 나라의 소망이시며 영광의 소망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사랑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