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짧은 말씀 묵상

 

 

 

우리는 하나님 보시는 것과 우리가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참고: 사무엘상 16:7,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베들레헴으로 보내사 이새의 아들들 중 한 명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려고 하셨을 때 구체적으로 그 한 명이 누구인지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저 “내가 그(이새)의 아들 중에서 기름 부을 자를 너에게 알려 주겠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사무엘상16:1, 3, 현대인의 성경).  그러신 후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한 명씩 한 명씩 보고 있었을 때 이새의 8명의 아들들 중 제일 막내 아들인 다윗을 보고 있는 사무엘에게 “이 소년이 내가 말하던 바로 그 사람이다.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6-12절,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미리 알려주시지 않으시고 나중에 가서야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의문을 가지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저 겸손히 믿음으로 순종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체적으로 알려주심을 믿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어서 이것저것 다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이 없이도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나타내 보여주십니다(참고: 사무엘상 17:47, 현대인의 성경).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골리앗을 향하여 정면으로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는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사무엘상 17:47-48,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우리 자신과 죄악 된 세상과 사탄과 죽음과 싸우는 영적 전쟁에서 구원의 확신과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정면으로 부딪혀서 싸울 수 있는 용기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다는 확신과 우리의 영적 전쟁은 주님께 속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정면"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던 골리앗은 그를 향하여 "달려가"며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끄집어내어 물매로 그에게 던지자 그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아 꽂히므로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이와 같이 다윗은 칼 하나 없이 물매와 돌 하나만 가지고서 그 블레셋 거인을 쓰러뜨리고 "달려가" 골리앗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것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목을 베어 버렸습니다(사무엘상 17:48-51,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구원의 확신과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정면 대결해야 하며 또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에베소서 6:17) 정통으로 대적자의 정곡을 찔러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또한 우리는 주 말씀 향하여 달려가야 한다는 교훈도 받습니다(참고: 시편 119:32).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승리하여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온 다윗을 이스라엘 왕 사울이 대화한 후 사울 왕의 아들인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에게 깊이 끌려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사무엘상 17:45-51, 57-58; 18:1, 현대인의 성경).  성경은 왜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에게 깊이 끌려 그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맺으시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과 같은 사람(사도행전 13:22)에게 우리 마음이 깊이 끌리게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그 사람을 우리 생명처럼 사랑케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즉,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에게 깊이 끌려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게 된 것은 성령님께서 그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성령님의 일하심을 더욱더 깊이 경험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나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과 모든 군중 앞에서 높임을 받기를 원했던 사울 왕은(사무엘상 15:30, 현대인의 성경)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죽인 다음 승리한 이스라엘 군이 돌아올 때 이스라엘의 모든 성에서 여자들이 승전을 축하하면서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 명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수만 명이라네"라고 노래했을 때 얼마나 불쾌하였길래 그는 그 때부터 다윗을 계속해서 살인적인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았겠습니까? (18:6-9,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높임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높임을 받으면 충분히 질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높임 받기를 좋아하기 보다 하나님에게 높임 받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낮춰서 다른 사람을 우리보다 낫게 여기고 우리의 모든 특권을 버리며 종의 모습으로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마태복음 20:28; 빌립보서 2:3-8, 현대인의 성경).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높이실 것입니다(참고: 빌립보서 2:9-11).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권력을 가진 사울 왕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다윗과 같은 사람입니다(참고: 사무엘상 18:12,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가정의 가장인 우리 남편들/아버지들과 함께하시므로 우리가 식구를 잘 인도하면 우리의 아내와 자녀들도 우리를 사랑할 것입니다(참고: 사무엘상 18:14, 16, 현대인의 성경).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는 “나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도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며 게다가 우리 가족은 우리 지파의 모든 집안 중에서도 가장 보잘것 없는 집안인데 어째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라고 사무엘 선지자에게 말했는데(사무엘상 9:21, 현대인의 성경) 흥미로운 점은 다윗도 사울 왕에게 “내 아버지(이새)의 집안은 보잘것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18:18,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 보기에나 자기 스스로 보기에 보잘것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택하여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고린도전서 1:28,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만일 우리가 스스로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교만해져서 보잘것 있는 사람이라고 내세우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지 못하고 사람들의 도구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겉으로는 정말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우리를 질투해서 우리는 해하려고 하는 속셈일 수도 있습니다(참고: 사무엘상 18:22, 25, 현대인의 성경).

 

사울 왕은 꾀를 부려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함께하셔서 그로 하여금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게 하시므로 다윗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게 하셨습니다(사무엘상 18:17-25, 28, 30).  사람의 꾀는 하나님의 지혜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사울 왕은 그럴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죄 없는 다윗을 죽여 범죄하려고 했습니다(사무엘상 19:5,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리스도에게 우리 죄를 대신 지계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게 의롭다 칭함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고린도후서 5:21, 현대인의 성경).

 

아버지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데 사울 왕의 아들인 요나단 뿐만 아니라 그의 딸인 미갈도 다윗을 도와주었습니다(사무엘상 19:1-7, 11-12).  하나님은 우리를 해하려고 하는 자의 식구를 통해서도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단창을 그에게 던졌던 사울은(사무엘상 18:11, 19:10) 자기 아들인 요나단까지 죽이려고 그에게 단창을 던졌습니다(20:33).  그러나 다윗뿐만 아니라 요나단도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치시사 죽이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구원(영생)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자기 아버지 사울이 자기가 생명처럼 사랑하는 친구 다윗을 정말 죽이기로 결심한 것을 알게 된 요나단은 대단히 화가 나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처럼 다윗을 모욕하는 자기 아버지의 태도를 보고 무척 마음이 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사무엘상 20:33-34,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모욕하는 우리 아버지의 태도를 보고 무척 마음이 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