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예수께서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자니라”(누가복음 9:46-48).

 

 

 

(1)   귀신 들린 아이를 낫게 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하나님의 위대하심”(현대인의 성경)] 행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랍게 여기고 있을 제자들에게 말을 귀담아 들어라.  나는 멀지 않아 사람들이 손에 넘어가게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9:38-44).  그러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제자들은 오히려 자기들 사이에서 누구 크냐[“누가 가장 위대하냐”(현대인의 성경)]하는 변론이 일어났습니다[“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졌다”(현대인의 성경)](46).

 

(a)   여기서 저는하나님의 위대하심”(43, 현대인의 성경) 제자들이 변론했던 사람의위대함’(46, 현대인의 성경)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i)                  하나님의위대하심”(“위엄”)에서위대하다 헬라어 “μεγαλειότητι”(메갈레이오티티) 단어는 신약성경에 등장하는데(9:43; 19:27; 벧후1:16), 그때마다 오직 하나님께만 합당한 압도적인 영광, 위엄, 그리고 초월적인 위대함을 나타냅니다(인터넷).

 

·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 예수님이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신 직후, 사람들이 목격한 '하나님의 압도적인 권능과 영광'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위엄은 예수님께서 악한 영들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으로 직접적으로 묘사됩니다.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일어난 모든 구원 행위가 아버지 하나님의 순수한 영광을 새롭게 드러내는 것임을 확증합니다.  군중의 놀라움은 신성한 계시에 대한 인간의 합당한 반응, 경이로움에서 비롯된 경배를 보여줍니다(인터넷).

 

(ii)                사람의위대함에서위대하다 헬라어 “μείζων”(메이존)라는 단어는 형용사 μέγας(mégas, 크다) 비교급으로, “ ”, “ 중요한”, 또는가장 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인터넷).

 

·         제자들은 장차 임할 메시아의 나라에서 자신들 누가 높은 지위나 요직을 차지할 것인지를 두고 다투었습니다.  여기서 «μείζων» 영적 성숙함보다는 사회적·정치적 '서열(Status)'이나 '영향력' 의미합니다”(인터넷).

 

(iii)              결국 누가복음 9 43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위엄(위대하심)(μεγαλειότητι) 감탄하던 제자들이 바로 직후(46) 자신들의 크기(위대함)(μείζων) 논하는 모습은, 인간의 교만과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극명하게 대조되는지를 보여줍니다(인터넷).

 

·         하나님의 위엄(위대하심) 들어내신 예수님께서는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서 겸손히 죽임을 당하게 것을 말씀하셨는데(43-44),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누가 큰가(μείζων)”하며 교만하게 서열 다툼을 벌인 것입니다(46)(참고: 인터넷).

 

(b)   여기서 저는 제자들 사이에누가 크냐하는변론 일어났다(46) 말씀에서변론이란 단어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i)                  변론이란 헬라어 단어 “διαλογισμς”(디알로기스모스)통과하다라는 뜻의 “δια”(디아) '계산하다, 생각하다'라는 뜻의 “λογίζομαι”(로기조마이) 합쳐진 단어로서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재고 따지며 자기중심적으로 계산하는 생각이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분쟁을 뜻합니다(인터넷).

 

·          제자들이 겉으로 드러내 놓고 싸웠을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의 생각(διαλογισμν)' 아셨다는 47절의 표현을 , 그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기적인 야망과 시기심을 강조합니다.

 

-          성경에서 단어는 종종 '의심'이나 '악한 생각' 연결됩니다.  제자들의 '논쟁' 하나님의 나라를 오해하고 자신의 서열을 계산하는 인간적인 탐욕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합니다”(인터넷).

 

(c)   만일 우리 마음속에 이기적인 야망과 시기심이 자리 잡고 자신의 서열을 계산하는 인간적인 탐욕에 노예가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i)                  우리 야망에 눈이 어두워지면,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보지 못하고 오직 '나의 영향력' '나의 위치' 보게 것입니다.  결과 경외심은 사라지고 비교 의식에서 오는 불안과 교만만 남게 것입니다.

 

·         또한 우리의 이기적 야망은 타인을 동역자가 아닌 제거하거나 넘어서야 경쟁자로 보게 만듭니다.  우리 마음속의 계산(διαλογισμς) 겉으로 드러나는 날카로운 변론과 다툼을 낳습니다.  결과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사귐은 사라지고, 끊임없는 눈치싸움과 시기심으로 인해 영혼이 고립될 것입니다.

 

-          우리내가 높아지려는 욕망 사로잡히면, 낮아짐과 섬김을 강조하는 복음의 핵심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결과 십자가의 길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으면서도, 스스로는 주님을 따르고 있다고 착각하는 '종교적 위선' 빠지기 쉽습니다(인터넷).

 

(2)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자니라”(9:47-48).

 

(a)   제자들의 은밀한 마음의 생각까지도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굳이 어린아이 하나를 선택해 '자기 (옆자리)' 세우신 것은, 제자들이 갈망하던 '권력의 자리' 대한 관점을 완전히 뒤집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좌우편(가장 가까운 자리) 차지하기 위해 다퉜습니다.  예수님은 탐나는 자리에 제자들이 아닌 어린아이를 앉히심으로써, "주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신 것입니다.  아무런 정치적 계산이 없는 어린아이의 순전함을 대조시켜, 제자들의 복잡하고 이기적인 야망을 부끄럽게 만드신 교육적 조치였습니다(인터넷).

 

(i)                  당시 유대 사회에서 어린아이는 오늘날처럼 보호받는 존재라기보다, 법적 권리나 사회적 지위가 없는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 상징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누가 자인지 다투며 위를 보고 있었으나, 예수님은 사회적 가치가 없는 아이를 세워 "하나님 나라의 크기는 사회적 서열이 아니라 겸손의 깊이로 결정된다" 사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인터넷).

 

·         예수님은 아이를 곁에 두시고 "누구든지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48).  제자들은 높은 사람과 연결되어 자신의 권력을 키우려 했지만, 예수님은 보답할 능력이 없는 미미한 존재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임을 가르치셨습니다(인터넷).

 

(3)   저는 "주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사람"이란 말을 생각할 사도 바울이 생각났습니다.  이유는 바울은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a)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고전15:9), (b)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작은 나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3:8), (c) “… 죄인 중에 괴수니라”(딤전1:15).

 

(a)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 1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i)                  이렇게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점진적으로 더욱더 알아가는 자는 더욱더 겸손해질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인 복음 증거하는 일을 완수함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20:24). 

 

·         그러므로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더 깨달아 가는 신앙생활속에서 더욱더 낮아지고 겸손해지므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복종하길 원합니다(2:8).

 

-          찬송가 310 하나님의 은혜로가사입니다:

 

(1절)       하나님의 은혜로 쓸데없는 구속하여 주는지 없도다

(2절)       내게 굳센 믿음과 복음 주셔서 맘이 항상 편한지 없도다

(3절)       내게 성령 주셔서 맘을 감동해 예수 믿게 하는지 없도다

(4절)       언제 강림하실지 밤에 낮에 주님 만날 그곳도 없도다

(후렴)  내가 믿고 의지하는 모든 형편 아는 주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