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무리가 맞을새 무리 중의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외아들이니이다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그들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되었음이라 그들은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누가복음 9:37-45).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9 37-45 말씀을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 1714-23 말씀과 마가복음 9 14-32 말씀과 함께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a)   첫째로, 변화산 사건 직후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셨고 무리가 예수님을 맞이하였을 무리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어 엎드려주여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벙어리 귀신 들린 자기 외아들을 돌보아 주시길 구했습니다.  그는 귀신이 자기 아들을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내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고치지 못했다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9:37-40; 17:14-16; 9:17-18).

 

(i)                  저는 변화산 사건(9:28-36) 직후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신 사건(37-43) 묵상할 사건이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연관성을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하였다(31)하는 말씀에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저는 변화산 사건과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신 사건의 연관성을 예수님의별세에서 찾게 것입니다.

 

·         우리가 이미 묵상했듯이별세라는 헬라어 단어는ξοδον”(엑소돈)입니다.  단어는 누가복음 9 31절에 사용된 의미는 이렇습니다(인터넷):

 

-          변화산 사건에서 모세와 엘리야는 영광 중에 나타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 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모세는 번째 출애굽을 상징하고, 엘리야는 예언적 기대를 나타냅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는 율법과 예언서를 하나로 묶어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절정의 출애굽임을 보여줍니다.  희생의 장소인 예루살렘은 인류 구원의 출발점이 됩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골고다를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결정적인 해방의 장소로 여깁니다.

 

n  절정의 출애굽(의미: 탈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죽으심(“별세”)으로 우리가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탈출하게 된다는 사실이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신 사건과 연관이 되냐면 아이가 귀신으로부터출에굽’(탈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가가 변화산 사건이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신 사건을 기록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ii)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셨고 무리가 예수님을 맞이하였을 무리 사람인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어 엎드려 “주여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벙어리 귀신 들린 자기 외아들을 돌보아 주시길 구했다는 말씀을 묵상할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의 마음(심정) 생각하게 됩니다.

 

·           아버지는 예수님에게 귀신이 자기 아들을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간다는 구체적인 설명까지 갈급한 심정으로 하면서 이미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내 달라고 간청하였다고까지 말을 것을 보면 귀신으로 인해 매우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기의 외아들이 치유를 받아 고통에서 자유를 누리길 간절히 원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러기 위해선 자기 아들을 지배하고 있는 귀신을 누군가가 내쫓아줘야 하는데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간청을 했지만 그들은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많은 군중) 뚫고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어 엎드려 “주여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17:15)하고 벙어리 귀신(9:17, 현대인의 성경) 들린 자기 외아들을 돌보아 주시길(9:38) 구했던 것입니다.

 

·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주여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17:15)하고 예수님께 간청하였는데 여기서불쌍히 여기다라는 헬라어 단어λέησόν”(엘레에손) "자비를 베푸소서" (Have mercy)라는 뜻으로서 하나님께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저를 구원하고 도와달라는 간절한 간구입니다(인터넷).

 

-          동사는 칠십인역 성경에서 히브리어 단어인 רִחַם(라함, 자비를 베풀다) חָנַן(하난, 은혜를 베풀다) 번역하는 사용되었으며, 언약적 사랑과 연결됩니다.  또한 동사는 백성의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despite their unworthiness)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헌신(God’s steadfast commitment to rescue His people)이라는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인터넷).

 

n  공관복음을 보면 오늘 본문 누가복음 9 38-42절에 나오는 귀신 들린 아들을 아버지뿐만 아니라 맹인들, 나병환자들, 가나안 여인, 그리고 바디매오는 모두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는데( 9:27; 15:22; 17:15; 20:3031; 10:4748) 그들의 간구는 다음을 가르쳐 줍니다: (1) 예수님의 메시아적 권위에 대한 인식(“다윗의 자손”), (2) 그분의 긍휼하신 성품에 대한 신뢰, (3) 끈질기고 공개적인 호소의 정당성.  그들 누구도 거절당하지 않았으며, 모든 간구는 치유나 구원으로 응답 받았습니다.  이는 긍휼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saving power)임을 보여 줍니다(인터넷).

 

·         또한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에게선생님 청컨대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외아들이니이다”(9:38)하고 간청했는데 여기서돌보다 주십시오라는 헬라어 단어πιβλέψαι”(에피블렙사이)위에 뜻하는π”(에피)보다 뜻하는 “βλέπω”(블레포) 합성어로 환자를 정밀하게 검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의학 용어로서(의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누가의 독특한 표현이라 있음)(호크마) 의미는 "~ 내려다보다", "주목하다", "자비로운 눈으로 살피다" 또는 "돌보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참고: 인터넷).

 

-          오늘 본문 누가복음 9 38절에서는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도움이나 자비를 구하며 "살펴봐 주십시오" 또는 "돌봐 주십시오"하고 간청한 것입니다(참고: 인터넷).

 

(iii)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이미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아내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고치지) 못했다(9:40) 말하였는데 여기서능히 못하다 헬라어 단어δυνήθησαν”(에뒤네데산) δύναμαι (“ 있다”, “능력이 있다”) 부정과거(Aorist) 수동태 3인칭 복수형으로, "그들은 없었다(could not/were not able to)" 의미입니다.  주로 과거의 능력 부족이나 불가능한 상황을 나타낼 사용됩니다(인터넷).

 

·         이것은 제자들의 실패가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능력 자체의 한계였음을 보여주며(동시에 무한하신 능력의 주님의 절대적 도움의 필요성을 보여줌), 이후 누가복음9 41절에서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는 배경이 됩니다(참고: 인터넷).

 

(b)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외아들의 아버지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때에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땅에 엎드려져 구르며 거품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하고 물으시니까 아버지는어릴 때부터입니다.  귀신이 자주 아이를 불과 속에 던져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무엇을 하실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아이 아버지가 소리로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못하고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하시매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갔고 아이는 죽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아이가 죽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그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를 낫게 하신 그의 아버지에게 돌려 주시자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습니다(9:41-43; 17:17-18; 9:19-27).

 

(i)                  여기서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9:31; 17:17; 9:19)하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꾸중은 믿음 없는 제자들과 거기 모인 모든 무리들에게 하신 것임에 분명합니다.  

 

·         아이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과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경멸하고 있는 서기관들과 아이의 고통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을 발동시켜 이적 자체를 즐기려는 무리들에게 적합한 책망인 것입니다. 

 

-          결국 제자들은 믿음이 부족하여 아무런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패역한 무리들은 아이와 아버지의 고통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역할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호크마).

 

·         말씀(9:31; 17:17; 9:19) 주요 의미입니다(인터넷):

 

-          영적 무지와의 대조: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고 내려오신 예수님의 거룩함과, 바로 눈앞의 문제(귀신 들린 아이)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세상의 영적 어둠이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대한성서공회 성경주석에 따르면, '패역' '뒤틀렸다' 뜻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세대의 완악함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          임박한 이별과 안타까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떠나야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당신이 떠난 후에도 여전히 믿음이 없는 상태로 남겨질 제자들과 사람들을 향한 스승으로서의 깊은 안타까움이 배어 있습니다.

 

-          하나님께로의 초대: 인간의 무능력을 꾸짖으심으로써, 도리어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시는 역설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인터넷).

 

(ii)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하고 말씀하셔서 아이가 때에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다(9:41-42; 17:17; 9:19-20)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귀신이 아이를 더욱 격하게 괴롭힌 데에는 가지 중요한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         귀신의 마지막 발악: 빛이 강할수록 어둠이 거세게 저항하듯, 귀신은 자신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직감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 앞에 쫓겨나기 직전, 자신이 지배하던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최대한의 고통을 가하며 저항하는 '최후의 발악'입니다.

 

·         영적 전쟁의 실체 노출: 평소에는 숨어있던 악한 영이 예수라는 절대적 권위 앞에 서자 정체를 완전히 드러낸 것입니다.  주석에 따르면, 이는 영적인 존재가 거룩한 능력에 반응하여 사악한 본성을 폭발시키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         치유 직전의 위기: 흔히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말처럼, 완전한 자유와 치유가 일어나기 직전에 가장 극심한 시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오늘날 신앙인들에게도 위기 뒤에 하나님의 강한 역사가 있을 있다는 교훈을 줍니다.

 

·         목격자들의 믿음 시험: 아이가 죽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주변 사람들과 아버지의 믿음을 흔들려는 책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습니다”(인터넷).

 

(iii)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하고 물으시니까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입니다.  귀신이 자주 아이를 불과 속에 던져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 무엇을 하실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하고 말했다(9:21-22) 예수님과 아버지와의 대화는 절망의 끝에 인간의 한계와, 한계를 깨뜨리시는 예수님의 권능이 충돌하는 지점입니다(인터넷).  

 

·         대한성서공회 마가복음 9장의 흐름에 따른 주요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통의 깊이와 기간: "어릴 때부터"라는 대답은 가정이 겪어온 고통이 뿌리 깊고 만성화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불과 물에 던져졌다는 묘사는 악한 영의 목적이 단순한 괴롭힘을 넘어 생명을 파괴하는 있음을 드러냅니다.

 

흔들리는 믿음 ("하실 있거든"): 아버지는 앞서 제자들이 실패하는 것을 보았기에 예수님의 능력마저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요청은 확신에 기도가 아니라, "혹시라도 가능하다면"이라는 반신반의의 태도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문제 앞에서 흔히 겪는 연약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질문 의도: 예수님이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참혹한 상태를 입으로 고백하게 함으로써, 문제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해결할 없는 불가능의 영역임을 확인시키고, 아버지의 간절함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자비에 대한 호소: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라는 표현에서 아버지는 아이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믿음은 부족했으나, 오직 긍휼(불쌍히 여김) 기대어 도움을 구하는 낮은 자세를 보여줍니다”(인터넷).

 

(iv)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할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아이 아버지가 소리로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하였다(9:23-24) 말씀을 부분으로 나눠서 묵상합니다:

 

·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주님이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신 분임을 믿고, 의심 없이 전적으로 신뢰할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된다는 핵심적인 믿음의 원리를 의미합니다.

 

-          구절의 핵심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의 한계와 의심의 질책: " 있거든"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귀신 쫓아내기를 실패한 상황에서, 주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의심을 질책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능력: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것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오직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는 믿음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말씀은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있다는 뜻이 아니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하시면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신뢰를 요구합니다.

 

기도의 동반: 사건의 문맥에서 예수님은 이런 능력이 오직 "기도" 통해서만 나타날 있음을 가르치셨습니다.

 

, 말씀은 능력이나 상황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실 있는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라는 명령입니다”(인터넷).

 

·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싶지만, 현실적인 의심과 연약함으로 흔들리는 인간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이는 완벽한 믿음이 아닌, 부족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연약한 신앙의 진실한 부르짖음’을 의미합니다.

 

-          핵심 의미 내용:

 

진실한 고백: 자신의 연약함과 의심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인정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간절한 도움 요청: 믿음은 자신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임을 깨닫고(도움), 그분이 믿음을 채워주시길 간구하는 것입니다.

 

복합적 상태: '믿음' '불신(의심)' 공존하는 상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예수를 의지하려는 의지적인 행동입니다.

 

은혜의 근거: 고백은 믿음의 크기보다 '믿음의 대상(예수)' 중요함을 보여주며, 부족한 믿음이라도 진실하면 주님께서 받아주신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결국 말씀은 완벽한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이 예수께 나아가 간구할 그분의 도움으로 믿음이 온전해질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인터넷).

 

(v)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말 못하고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갔고 아이는 죽은 사람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다’(9:25-26)하고 말씀하고 있는데 극적인 장면은 치유의 완성 직전에 나타나는 가장 치열한 영적 전투의 결과입니다(인터넷).

 

·         대한성서공회 마가복음 9 본문에 나타난 현상의 의미입니다:

 

철저한 축출과 재입성 금지: 예수님은 단순히 귀신을 쫓아낼 아니라 "다시 들어가지 말라"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일시적인 완화가 아니라 영구적인 자유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계속된 파괴 본능: 귀신은 떠나가면서도 아이에게 "심히 경련" 일으키게 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지배력이 끝난 것에 대한 분풀이이자, 끝까지 생명을 해치려 하는 악한 영의 본성을 보여줍니다.

 

죽음 같은 정적 (완전한 자기 부정): 아이가 죽은 것같이 보였다는 것은 귀신이 휘두르던 거짓된 생명력이 완전히 빠져나간 진공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죽었다")에는 절망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기 위한 거룩한 멈춤이었습니다.

 

인간의 판단 vs 하나님의 역사: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 보고 '실패' 혹은 '죽음'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어질 부활과 같은 회복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장치가 됩니다.

 

이후 예수님께서 죽은 누워있는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는 장면은 마치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듯한 감동을 줍니다”(인터넷).

 

(vi)              예수님이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그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를 낫게 하신 그의 아버지에게 돌려 주시자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다(9:27; 9:42) 장면은 절망적인 죽음의 상태에서 생명의 주권자에 의해 일어나는 완전한 회복을 묘사합니다(인터넷).

·         대한성서공회 마가복음 9장과 누가복음 9장을 바탕으로 주석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으키심의 신학 (부활의 예표): 예수님이 '손을 잡아 일으키시는' 행위는 신약성경에서 부활을 설명할 사용하는 단어와 맥을 같이 합니다.  두란노 비전성경 주석에 따르면, 이는 영적으로 죽어있던 영혼이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는 구원의 과정을 상징합니다.

 

관계의 회복 (아버지에게 돌려주심): 예수님은 치유 자체에 머물지 않고 아이를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이는 악한 영으로 인해 단절되었던 가정의 질서와 기쁨을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세심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위엄(Majesty) 대한 경외: 사람들이 놀란 이유는 단순한 마술적 기적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죽음과 같은 상태가 생명으로 바뀌는 것을 보며, 그분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통치권과 영광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불신앙의 종결: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탄식하며 시작된 사건은, 결국 사람들의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드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인간의 불신앙을 하나님의 위엄이 덮어버린 순간입니다”(인터넷).

 

(c)   셋째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습니다.  그들이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기고 있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뜻이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되었기에 그들은 말씀을 알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말씀이 무슨 뜻인지 예수님께 묻기도 두려워하였습니다(9:43-45).

 

(i)                  장면은 기적의 절정에서 곧바로 수난을 예고하시는 예수님의 의도와,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영적 괴리를 보여줍니다.

 

·         대한성서공회 누가복음 9 본문을 바탕으로 주요 주석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          영광의 순간에 선포된 수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Majesty) 감탄하며 환호할 , 예수님은 오히려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기적을 행하는 '영웅적 메시아' 모습에만 열광하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당신의 진짜 사명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임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          "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표현은 원어로 "너희 속에 던져 넣어라" 강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더라도, 장차 일이 실제로 일어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내어 실족하지 않도록 마음 깊이 새기라는 엄중한 명령입니다.

 

-          깨닫지 못하게 숨겨진 이유: 제자들이 말씀을 깨닫지 못한 것은 단순히 지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n  영적 고정관념: 그들은 메시아가 로마를 물리치고 왕이 것이라 믿었기에, '죽임당하는 메시아'라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일 공간이 없었습니다.

 

n  하나님의 섭리: 가스펠서브 성경사전 등의 해석에 따르면, 십자가의 신비는 성령의 강림과 부활 이후에야 온전히 이해될 있도록 하나님께서 시점에는 가려두신 면이 있습니다.

 

-          묻기를 두려워한 제자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자신들이 기대하던 '영광의 ' 정반대임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두려워했습니다.  진실을 알게 될까 , 혹은 자신들도 고난의 길을 가야 할까 질문하기를 피한 것입니다”(인터넷).

 

(d)   마지막 넷째로, 예수님이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예수님께 우리는 귀신을 쫓아낼 없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알만큼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없느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17:19-20; 9:28-29).

 

(i)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예수님께 우리는 귀신을 쫓아낼 없었습니까?’ 하고 물었을까요?

 

·         제자들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고 서기관들과 논쟁까지 벌였기에, 실패의 원인을 알고자 예수님께 조용히 질문했습니다.  이는 과거의 능력 체험과 달리 믿음 부족과 기도 부족으로 능력을 잃은 것에 대한 당혹감과 배움의 자세 때문이었습니다”(인터넷).

 

(ii)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하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         여기서 '작은 믿음' 단순히 양이 적다는 뜻이 아니라, '결핍된 믿음(Oligopistia)' 의미합니다.  두란노 비전성경 주석에 따르면, 제자들은 과거에 전도 여행을 다니며 귀신을 쫓아냈던 자신들의 경험과 기술을 의지했을 , 순간 실제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 믿음의 '대상'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인터넷).

 

-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원인이,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능력의 근원을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의 힘이나 방법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겨자씨만 작은 믿음이라도 능력이 근원인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면 산을 옮길 있음을 강조하며, 근본적인 불신앙을 지적하신 것입니다(인터넷).

 

(iii)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알만큼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하고 말씀하셨는데 의미는 무엇일까요?

 

·         말씀은 믿음의 ''보다 '', 그리고 믿음이 '살아있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십니다”(인터넷).

 

-          믿음의 생명력: 겨자씨의 역설

 

겨자씨는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지만, 안에 생명이 있어 나무로 자라납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크기가 커야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작더라도 하나님과 연결된 '진실하고 살아있는 믿음'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          불가능의 정복: "산을 옮기리라"

 

당시 유대인들에게 '산을 옮긴다' 표현은 도저히 해결할 없는 '절대적인 불가능' 극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관용구였습니다.  가스펠서브 성경사전에 따르면, 이는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하나님의 안에서 신뢰할 하나님의 권능으로 성취될 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          기도를 통한 연결: "기도 외에는"

 

마가복음 9장의 병행 구절을 보면, 믿음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공급받고 작동될 있습니다.  제자들이 실패한 이유는 과거의 경험(자기 능력)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통로)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말씀은 마음대로 무엇이든 한다는 뜻이 아니라, 기도로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실현된다는 약속입니다.

 

결국 말씀은 "나의 능력을 믿지 말고,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함을 신뢰하라" 준엄한 가르침입니다”(인터넷).

 

(iv)              예수님께서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없느니라하고 말씀하셨는데 의미는 무엇일까요?

 

·         말씀은 영적 승리의 비결이 인간의 기술이나 지위가 아닌, 오직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존' 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          능력의 원천 확인 (Source of Power)

 

제자들은 이전에 전도 여행을 다니며 귀신을 쫓아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번에도 자신들에게 이미 그런 '권능' 내재되어 있다고 착각하고, 하나님께 묻지 않은 자신의 관성으로 사역하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의 근원은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시며, 능력을 끌어오는 유일한 통로가 '기도'임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          기도의 본질: 전적인 신뢰

 

여기서의 기도는 단순히 마디 말을 내뱉는 행위가 아니라, "나는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있습니다"라는 항복과 겸손의 고백입니다.  두란노 비전성경 등에 따르면, 기도는 인간의 의지를 관철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영적 연결입니다.

 

-          영적 전쟁의 특수성 ("이런 종류")

 

"이런 종류"라는 표현은 우리가 마주하는 영적 세력이나 삶의 난제들 중에는 인간의 상식이나 노력만으로는 결코 이길 없는 강력한 대적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러한 위기 앞에서 인간의 수단(, 지식, 경험) 무력하며, 오직 영적인 무기인 기도만이 승리의 열쇠가 됩니다.

 

-          지속적인 영성 유지

 

기도는 위급할 때만 쓰는 비상벨이 아니라, 평소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실패한 이유는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 평소에 기도로 깨어 있지 않으면 정작 능력이 필요한 순간에 권능을 드러낼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결국 말씀은 " 능력을 믿지 말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라" 강력한 영적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