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과 존재의 목적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을 위하여 입니다.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누가복음 9:23-25).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9 23-25 말씀을 마태복음 16 24-26 말씀과 마가복음 8 34-37 말씀과 함께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a)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아무든지(누구든지) 나를 따르길 원하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9:23; 16:24; 8:34)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i)                      여기서원하면 헬라어 단어 “θέλει”(델레이)[한국 성경에는따라오려거든이라고만 번역되어 있지만, 영어성경(NASB) 보면 “wishes to come”(오길 원하면)라고 번역되어 있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소망/소원(wishes) 의지를 뜻합니다(인터넷).

 

·       헬라어 단어는 의지, 욕망, 선택과 같은 자발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로, 신약성경에 209 등장합니다.   단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부터 사람들의 일상적인 소망(wishes) 이르기까지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어, 신적인 주도권(divine initiative) 인간의 책임(human responsibility) 모두를 이해하는 중요한 용어입니다(인터넷).

 

-            헬라어 단어가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반복적으로 의도적이고 구속적인 뜻을 드러내심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디모데전서 2 4절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desires).  요한복음 17 24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desire)."  빌립보서 2 13절에서 성령 하나님께서 신자들 안에서 일하고 계심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성령님께서는 능력으로 신자들의 성화를 이루시사 그들의 소원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게 하십니다(참고: 인터넷).

 

(ii)                    여기서따르길이란 헬라어 단어ρχεσθαι”(에르케스다이)오다”, “가다”, “따르다 뜻하는 동사 ρχομαι(에르코마이) 현재 부정사 형태로, 여기서는 "나를 따르려거든"으로 번역되어 제자가 되기 위해 예수님 뒤를 좇아가는 능동적이고 계속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인터넷).

 

·       저는 헬라어 단어를 묵상할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came)[ρχομαι(에르코마이)라는 단어의 뜻이따르다뿐만 아니라오다이기도 하기에]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교훈을 받습니다:

 

-            인자가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하는 누가복음 19 10 말씀을 묵상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가 세상으로 가는(go)[ρχομαι(에르코마이)라는 단어의 뜻이따르다오다뿐만 아니라가다이기도 하기에] 목적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는 것이여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            “…  내가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하는 요한복음 10 10 하반절 말씀을 묵상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하나님의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가 세상으로 가는(go) 목적은 하나님의 양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엳게 하려는 것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n  여기서영원한 생명”(영생)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연결(화목)되는 것이요(5;10-11), 유일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17:3) 또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요일1:2-3), 그리고 주님께서 재림하실 몸은 변화하든지( 때까지 살아있다면)또는 부활하여(죽었다면) 영혼과 연합되어 하늘과 땅인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영생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했는데 문자적 의미는 가지입니다: (1) 영생이란 시간적으로끝없이 지속되는 생명 의미할 뿐만 아니라 (2) 질적으로인간의 삶과는 다른 신적인 의미합니다(인터넷).   그러므로 "영생"이란 말에는 시간적으로 영원한 삶이란 의미와, 하나님 안에서 누리게 되는 신적인 삶이란 의미를 포함하고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을 보면영생 의미는 공관복음(마태/마가/누가복음)처럼내세에서 누릴 영원한 축복 의미하지만 그보다현재에 누리는 축복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미영원한 생명을 가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5:12, 현대인의 성경).  이유는 그들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1:2;5:20, 현대인의 성경) 마음에 모셨기 때문입니다(12,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성경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은(3:14, 현대인의 성경)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되(23)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5:12).   그리고 성경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1:2; 5:20)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요일3:23)이야 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2,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성경은 “그의계명을 지키는 자는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4).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을 통해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5:5).  여기서 “열매”란 무엇일까요?  다시 자문하면,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할때 맺는 “열매”란 무엇일까요?  저는 “열매”가 가지라 생각합니다.  가지, 이중적인 열매(twofold fruit)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요 또한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어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우리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중 계명(twofold commandment)대로 우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우리의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할 때에(22:37, 39) 맺는 이중적인 열매(twofold fruit)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벧후1:4)으로서 의미는 성령님의 성화로 인해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요 또한 성령님의 열매(fruit)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5:22-23)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임을 보여 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을 믿어 이미 영원한 생명을 가진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이 현재에 누리는 축복은 영원하신 하나님과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통하여 친밀한 인격적인 교제를(17:3; 요일1:3) 나누는 가운데 주시는 내세의 축복들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하나님의 신적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현재 땅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분적으로 누리는 영생의 축복은 바로 성령님의 성화 가운데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가 현재 부분적으로 누리는 내세의 축복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요일4:8, 16)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3:1, 2,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 아버지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사(4:19)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10)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셔서(9)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3:1, 2).  또한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되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사랑으로(2:2;3:16) 우리 죄가 없어졌습니다(3:5).  지금도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대언자가 되셔서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고 계십니다(2:1,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사[“하나님께로부터 자”(3:9; 5:1, 4)] 우리를 살려주셨을 뿐만 아니라(4:9)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5:11) 현재 땅에서도 부분적으로 누리게하고 계십니다.  누리게 하고 계시되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부은바 하나님의 사랑(5:5) 열매를 맺으시사(5:22) 예수님의 이중계명인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네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22:37, 39) 말씀에 순종케 하시는 의를 행하게 하시므로(요일2:29; 3:10) 우리로 하여금 땅에서도 부분적으로 천국 생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시되 천국의 충만한 기쁨(1:4) 놀라운 평강(20:19; 3:15) 맛보게 하고 계십니다(14:17)[참고: “어떻게 우리가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있을까요? (요한일서 3:14)”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2463872041]. 

 

(iii)                 여기서자기를 부인하다라는 헬라어 단어ρνησάσθω”(아르네사스도) 성경에서 가지 주요 의미로 사용됩니다: (1) 하나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부정적으로 부인하는 것이고, (2) 다른 하나는 신실한 순종을 위해 자신이나 세상적인 명예를 긍정적으로 포기하는 것입니다(인터넷).

 

·       번째 부정적인 의미의 좋은 예는 바로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입니다.

 

-            베드로의 번의 부인과 교훈: 복음서 모두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뜰에서 예수님을 부인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6:70-72; 14:68-70; 22:57; 18:25-27).  그가 반복해서 "나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 것은 신자들이 경계해야 두려움에 부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나중에 회복되고( 21:15-19)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해진 모습( 4:8-20)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는 자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사명을 맡기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인터넷).

 

n  인간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믿는 자들이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부인할지라도 그분은 우리를 부인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신실하지 못할지라도 그분은 신실하게 남아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신을 부인하실 없기 때문입니다" (딤후2:12-13).   구절은 엄중한 경고와 함께 하나님의 변함없는 성품에 대한 확신을 동시에 전하고 있습니다(인터넷).

 

·       번째 긍정적인 의미의 좋은 예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9:23)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여기서자기를 부인하다 말씀은 그리스도의 주권에 순종하기 위해 자기 주권을 포기하는 것을 뜻합니다(인터넷).  자기 중심적인 , 욕심, 계획, 생각 등을 완전히 포기하고(renounce) 거절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인터넷).

 

n  자아 중심성의 포기: 자신의 존재, 소유,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나의 계획과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철저한 자기 포기: '아르네사스도' 단순히 낮아지는 것을 넘어, 나라는 존재의 주권을 스스로에게서 빼앗아 하나님께 맡기는 완전한 거절을 뜻합니다.

 

날마다의 성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매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박는 지속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영적 항복: 힘으로는 선을 행할 없음을 인정하고, 나의 모습을 부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이 안에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라는 우상을 깨뜨리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주권 아래 살아가겠다는 결단과 행위입니다”(인터넷).

 

(iv)                 여기서자기 십자가를 지다라는 말씀에서지다라는 헬라어 단어ράτω”(아라토)라는 동사는 헬라어(그리스어) 신약성경에 101 등장하며, 가지 주요 행위를 나타냅니다: (1) 하나는 무언가를 위로 들어 올리거나 운반하는 것이고, (2) 다른 하나는 무언가를 제거하거나 없애는 것입니다.  문맥에 따라 의미는 긍정적일 수도 있고(들어 올리다, 지탱하다) 부정적일 수도 있습니다(제거하다, 없애다).   단어의 유연성 덕분에 성경 저자들은 물리적인 행위에서 영적인 의미로, 예를 들어 그물을 들어 올리는 실제적인 행위에서 죄를 속죄하여 없애는 구원적인 행위로 자연스럽게 전환할 있었습니다(인터넷).

 

·       번째 의미의 좋은 예는 십자가를 지라는 제자도의 부르심(The Discipleship Call to Bear the Cross)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엄숙한 초대를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9:23).  여기서 동사는 값비싼 자기 부인과 지속적인 순종을 연결시켜 줍니다.   부르심은 마태복음 16 24절과 마가복음 8 34절에서도 반복되는데, 이는 제자도가 번의 결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을 평생 동안 감당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인터넷).

 

·       번째 의미의 좋은 예는 죄와 정죄를 제거하심(Taking Away Sin and Condemnation)입니다.

 

-            요한의 증언은 절정에 달합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 1:29).  후에 요한은그분이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요일 3:5)라고 확증합니다.   구절 모두에서 사용된 동사는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분은 죄의 짐을 단순히 덜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제거해 주십니다.  바울도 주제를 반복하며 말합니다.  죄의 기록을십자가에 박아 없애셨습니다” (2:14)(인터넷).

 

·       “'자기 십자가를 지다(ράτω, 아라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자신의 , 자아, 판단을 부인(죽임)하고, 매일 속에서 하나님 뜻에 순종하며 겪는 고난과 희생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외부적 고통이 아닌 내적인 자아의 죽음과 전적인 헌신을 뜻합니다.

 

1.       핵심 의미 (ράτω, '들어 올리다', '짊어지다')

 

자기 부인 (Self-denial): 자신의 , 경험, 생각, 판단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뜻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입니다.

 

자아의 죽음 (Death to Self): 죄인 자아를 십자가에 박고, 영적으로 죽는 경험을 의미합니다.

 

날마다의 순종: 십자가는 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연속적인 삶의 자세입니다.

 

2.       오해와 진실

 

오해: 단순히 일상에서 겪는 힘들고 괴로운 (질병, 가난, 대인관계 ) 참는 것이나, 맹목적인 헌신이 십자가를 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 죄가 없음에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스스로 자원하여 짊어지는 고난과 헌신, '주님을 따르기 위한 선택' 십자가입니다.

 

3.       성경적 배경 실천

 

마태복음 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실천: 자신의 뜻대로 사는 삶을 멈추고, 예수님이라면 상황에서 어떻게 하실지 묻고 결정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걷는 길에서 자신의 자아를 죽이고, 하나님 뜻을 위해 나의 안위와 권리를 포기하는 ‘적극적인 복종’입니다”(인터넷).

 

(b)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길 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찾으리라)’(9:24; 16:25; 8: 35).

 

(i)                      누가복음 9 23절에서아무든지(누구든지) 나를 따르길 원하면 …’라는 말씀에서원하다’(θέλ) 헬라어 단어가 여기 누가복음 9 24절에서도 다시 나옵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길 원하고자 하면 ….‘

 

·       그리고잃을 것이다라는 헬라어 단어πολέσει”(아폴레세이) 단순히 잃어버리는 것을 넘어, 파괴, 멸망, 영원한 상실을 내포하는 강한 표현입니다.  단어는 세상적 안위와 자기중심적 삶을 추구(구원)하려는 자가 영원한 생명과 참된 가치를 결국 상실하게 된다는 역설적 경고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따르기보다 자기 목숨(자아) 지키려는 행위가 영적인 파멸을 가져옴을 의미합니다(인터넷).

 

-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야망, 안락함, 세상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삶을 살면 우리는 그렇게 지키려 했던 삶이 결국 영원한 관점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생명력도 없는 상태(Ruin) 된다는 뜻입니다(인터넷).

 

(ii)                    여기 누가복음 9 24절에서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말씀을 묵상할 저는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과 존재의 목적이 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 우리 삶과 존재의 목적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복음을 위하여 입니다.

 

·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3가지 나눕니다:

 

(1)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지식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 3:7-8).

 

(2)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이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가리킵니다(고전 15:3-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흘려 죽으시므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시므로(부활)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4:25).  우리는 예수님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듣고 들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예수님의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해방하셨다는 사실을 듣고 들어야 합니다(1:5).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어(2:8)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6:7, 2:16).  그래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영생) 하나님의 선물로 받았습니다(5:18,6:23).

 

(3)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우리 생명을 받쳐야 합니다. 

 

만큼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이 우리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사는 것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사명감에 불타올라)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사도 바울처럼 이러한 고백을 수가 있길 기원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예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iii)                 예수님께서는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찾으리라)’(9:24; 16:25; 8: 35)하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자기 목숨을 잃으면이란 단순히 육체적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집, 욕망, 세상적인 가치관을 주님을 위해 포기하고, 십자가의 (고난, 희생) 선택하는 삶을 뜻합니다.  그리고구원하리라(찾으리라)’ 말씀은 우리가 자아를 죽이고 주님을 따를 ,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참된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약속입니다(인터넷).

 

(c)    마지막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사람이 만일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9:25; 16:26; 8:36-37).

 

(i)                      여기서유익하다라는 헬아어 단어φελεται”(오펠레이타이) 주로 경제적, 상업적 맥락에서이윤을 남기다라는 의미로 쓰였으나, 예수님은 이를 영적인 가치와 대조하여 다음과 같은 깊은 의미를 전달하십니다.

 

·       가치의 절대적 비교

 

세상 전체 < 자기 자신(영혼): 천하를 얻는 이익과 자신의 생명(영혼) 잃는 손실을 대조합니다.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를 손에 넣더라도, 결과로 자신의 존재 근원(영혼) 잃는다면 거래는 결국 마이너스(손실)라는 뜻입니다.

 

일시적 이익 vs 영원한 이익: 세상의 성공은 일시적인 유익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보존되는 '자기 자신' 영원한 가치를 지닙니다.

 

·       '유익' 진정한 정의

 

신앙적 계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순히 고통받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정으로 남는 장사인지를 생각하게 하십니다.  복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당장은 손해 같아 보이나, 실제로는 가장 유익(구원) 얻는 길임을 강조합니다.

·       상업적 은유의 사용

 

구절에는 '얻다(kerdaino)', '잃다(apollymi)', '해를 입다(zemioo)' 회계 장부에서나 법한 단어들이 나열됩니다.  오펠레이타이 일련의 거래에서 "최종적으로 남는 수익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결국 말씀은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엘리엇)라는 영적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인터넷).

 

-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죽을 있는 용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목숨까지 내어 놓을 있는 결단을 촉구 하고 있는 것입니다(1:38; 9:23)(인터넷).

 

(ii)                    제가 2010 12 12일에 엘리엇 (Jim Elliot)”이란 제목 아래 내용 부분만 나눕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098745570):

 

·       “10. 하나님의 일은 생명을 걸고 해야 한다.

 

엘리엇과 다른 선교 동역자들은 결국 1956 1 8, 10명의 Waodani  전사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엘리엇과 명의 선교사들에게는 총이 있었지만 총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그들의 총은 정글의 야생 짐들들로 부터 자기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지니고 있었던 것이지 결고 위험한 Waodani 인디언들에게서 자기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지닌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다가 죽임을 당했다. , 그들은 순교를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생명을 걸고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을 걸으셨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다가 죽은 사람들은 아름답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보시는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11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