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선교 보고를 해야 할까요?  

우리가 전해야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인가요?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누가복음9:10-11)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예수께 여쭈니”(9:10)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a)   여기서여쭈니 개역개정 번역을 현대인의 성경은보고하자라고 번역을 했는데 개역개정 번역보다 현대인의 성경 번역이 번역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여쭈니라는 헬라어 단어 “διηγήσαντο”(디에게산토)경과를 끝까지 이야기한다" 의미로서 제자들이 행한 모든 일들을 예수께 상세히 보고하였음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호크마).

 

(i)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불러모으시고 모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능력과 권위”(권능)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병든 자를 고치라고 내보셨기에(9:1-2) 나가서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친 (6) 예수님께 돌아와 자기들이 모든 일을 예수님께 상세히 보고했습니다(10).

 

·         “διηγήσαντο”(디에게산토)라는 단어는 사건들을 신중(세심)하고 질서정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일관되게 묘사합니다.   단어는 성경이 그리스도의 사역, 사도의 선교, 예언의 성취, 또는 구속사의 흐름과 같은 상세하고 신뢰할 있는 이야기를 강조할 사용됩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용례는 믿음을 세우고 복음 전통을 보존하는 있어 정확한 증언의 중요성(가치) 한결같이 뒷받침(강화)합니다(인터넷).

 

-          단어는 이미 우리가 묵상한 누가복음 8 39절에서도 예수님께서 치유하신 귀신 들렸던 사람에게 하신 말씀 내용에도 나옵니다: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διηγο)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일을 행하셨는지를 성내에 전파하니라.”

 

n  해방된 귀신 들린 사람은 데가볼리 지역의 번째 선교사가 되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자세하게 이야기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명성을 유대 지역 너머로 전파하는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인터넷).

 

-          단어는 사도행전에도 세번 나오는데(8:33, 9:27, 12:17) 중에 사도행전 12 17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διηγήσατο)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n  베드로는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모여 기도하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12) 주님께서 자신을 감옥에서 어떻게 구출해 주셨는지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교회의 기도 모임은 응답을 받았고, 베드로의 상세한 보고(detailed report)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박해받는 신자들을 강하게 하며(strengthens),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했습니다(guides practical steps)(인터넷).

 

(b)   저는 이렇게 여쭈니”(9:10)라는 헬라어 단어 “διηγήσαντο”(디에게산토) 묵상할 저희 교회에서 매년 1 둘째 주일 오후 1 30분에 갖는선교 나눔의 시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주로선교 보고 시간이라고 말하지만 저는선교 나눔의 시간이라고 주일 예배 시간에 광고함).  과연 선교사님들이 어떻게 선교 보고를 성도님들에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i)                   신중(세심)하고 상세하며 질서정연하게 신뢰할 있는 선교 보고를 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선교사님들의 선교 보고가 정확한 증언의 중요성(가치) 한결같이 뒷받침(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들의 상세한 선교 보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선교 보고를 듣는 성도님들을 강하게 하며(strengthens),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2)   둘째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따로 뱃새다라는 고을(마을) 떠나 가셨을 무리(군중들) 예수님의 일행이 떠난 것을 알고 뒤따라왔다(9:10-11)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a)   여기서뱃새다”(Bethsaida) 히브리어로어부의 이라는 뜻을 가진, 갈릴리 호수 북쪽에 위치했던 고대 어촌 마을입니다.  제자 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이자(1:44)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오병이어 ) 행하신 곳으로, 성경과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입니다(인터넷).

 

(i)                  뱃새다 사도들이 전도 여행 돌아와 예수님과 함께 고을로 이동하여 쉬려 했으며, 많은 무리가 따라와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킨 장소로서(10) 가버나움, 고라신과 함께 예수님께 많은 권능을 보였음에도 회개하지 않아 책망받은 도시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인터넷).

 

(b)   예수님께서 선교 여행에도 돌아온 제자들을 데리시고따로뱃새다라는 고을(마을) 떠나 가셨던 것일까요?  호크마에 의하면 이유는 피곤하고 시장한 제자들에게 쉼을 주고자 하는 예수의 자상한 배려 때문이었습니다(호크마). 

 

(i)                  예수님께서 이곳으로 제자들을따로데리고 것은 제자들이 선교여행에서 돌아왔고 더구나 예수님의 주변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식사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6: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호크마). 

 

·         여기서따로라는 단어를 생각할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사적인 만남을 갖고자 하셨던 같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에게 적절한 휴식을 주고 동시에 제자들이 했던 일들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 주면서 그들을 온전한 사도로 교육시키는 기회로도 삼고자 했을 것입니다(호크마).

(c)   저는 여기서따로라는 말씀을 묵상할 1946 한국 대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따로 국밥 생각났습니다. .  따로 국밥은 밥을 국에 말지 않고 국과 밥을 서로 다른 그릇에 담아내는 한국의 식문화이자 대구의 향토 음식입니다.  과거 국에 밥을 마는 방식과 달리 깔끔함을 선호하던 양반 문화나 대구 특유의 얼큰한 쇠고기국밥 문화에서 유래했으며, 선지와 고추기름으로 맛을 것이 특징입니다.  , 따로 국밥은 밥과 국이 섞이지 않아 밥의 식감과 국물의 맛을 온전히 즐길 있는 특징입니다(인터넷).

 

(i)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9 10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따로 묵상하다가 따로 국밥이 생각나서 연관해서 묵상할 선교 여행을 다녀온 후에 선교사님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사람들과 분리해서 따로 자기들만의 적절한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6:31)하신 말씀을 다시금 묵상할 때에 선교사님들은 선교 여행을 다녀온 후에 사람들이 없는 조용한 곳에서 자신만의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물론 육신적으로 쉼이 필요하겠지만 동시에 쉬면서 선교 여행을 뒤돌아보면서 주님께서 행하신 일들(내가 행한 일들이 아니라)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짐이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d)   예수님께서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제자들을 데리시고 따로 뱃새다라는 마을로 가셨을 무리가 예수님의 일행이 떠난 것을 알고 뒤따라왔다(9:10-11) 누가는 매우 간략하게 기록했는데 마가에 의하면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이동했으며 예수님과 그의 일행이 배를 타고 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배가 상륙할 지점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6:32-33)(호크마).

 

(i)                  휴식하러 떠나는 예수님의 일행을 도보로 좇아가는 열정적인 군중들 수십 km 넘는(가버나움에서 벳새다까지는 30km) 거리를 지칠 모르고 걸어 예수의 일행보다 먼저 당도했던 것입니다(호크마).

 

·         예수님을 따랐던 군중들의 특징과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적의 목격자들: 고침, 오병이어의 기적 초자연적인 현상을 경험하며 예수님을 특별한 존재(선지자, 메시아) 인식했습니다.

 

말씀에 대한 갈급함: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다른, 권위 있는 가르침에 매료되어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따랐습니다.

 

현세적 기대: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정치적 메시아나, 육체적인 배고픔과 질병을 해결해 분으로 기대하고 열광했습니다.

 

변화무쌍한 태도: 열정적으로 환호하다가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는 등을 돌리거나 침묵하기도 했습니다”(인터넷).

 

-          저는 군중들의 열정을 생각할 제가2011 4 11일에위험한 열정이란 제목 아래 글을 다시금 읽게 되었습니다:

 

열정(zeal) 귀하다.  그러나 잘못된 확신에 근거한 삐뚤어진 열정은 위험하다.  주님의 교회를 삐뚤어진 열정으로 섬기는 자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섬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하나님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장된 자기 뜻을 이루고자 열심을 내고 있는 것인데 ...” 

 

(3)   마지막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무리(군중들) 영접하사(기꺼이 맞아)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9:11)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a)   여기서영접하다라는 헬라어 단어ποδεξάμενος”(아포덱사메노스)받아들이다”, “환영하다”, “인정하다 뜻을 가진 동사 'ποδέχομαι'(아포데코마이) 과거분사형(남성, 단수, 주격)입니다(인터넷).  

 

(i)                  헬라어 단어는 우리가 이미 묵상한 누가복음 8 40절에서 나옵니다: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기다렸음이러라.”

 

·         신약성경의 문맥에서 단어는 받은 것의 가치와 받아들이는 사람의 호의를 확인시켜 주는 열정적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의미에는 적극적인 포용, 지지, 그리고 포용에서 비롯되는 헌신적인 태도가 포함됩니다(인터넷).

 

(b)   저는 단어를 묵상할 선교 여행을 다녀온 제자들을 쉬게 하려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따로 벳새다로 가셨는데 그것을 무리가 따라왔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휴식의 장을 빼앗긴데 대한 불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으시고 그들을 영접(환영)하셨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i)                  저는 대답을 마가복음 6 34 상반절 말씀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  예수님께서 무리를 영접(환영)하신 이유는 그들이 목자 없는 같아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         여기서 저는목자 없는 같다 말씀에 대해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은 민수기 27 17(“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지도자를 잃고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며 곤란과 기진한 상태에 빠진 백성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 영적 지도자의 부재와 그로 인한 고난을 강조합니다(인터넷).

 

-          말은 먼저 자기 의무를 잊은 거짓 목자에 대한 비판적 이해할 있습니다(왕하 22:17; 34:5).  왜냐하면 당시 율법학자, 바리새인, 서기관 증의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음에도 무리들이 예수를 이렇게 열성적으로 따르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과 기적 행위가 당시 종교 전통에 어긋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진리로 받아들여졌다는 증거가 됩니다.  따라서 종교 지도자들이 무리들에게 진리를 공급해주지 않았음으로 무리들은 진리에 심히 굶주려 있었음을 가히 짐작할 있습니다(호크마).

 

n  지금도 목자 없는 같은 성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 지금도 거짓 목사들로 인해 진리(복음)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성도들은 진리(복음) 심히 굶주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제가2021 9 17일에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져 고생하는 교인들 ...”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 글입니다: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져 고생하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하고 간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마태복음 9:36-38).”

 

-          제가2021 12 26일에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져 고생하는사랑하는 지체를 생각할 ...” 제목 아래 글입니다: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져 고생하는사랑하는 지체를 생각할 예수님께서불쌍히 여기셨다 말씀이 생각나는 새벽입니다(마태복음 9:36, 현대인의 성경).”

 

(c)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6:34) 영접하사 그들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일을 가지 하셨는데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이야기하시며”(가르치는 )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병에 걸린 자를 고쳐주는 일이었습니다(9:11, 호크마).

 

(i)                  특히이야기하시며”[“λάλει“(엘랄레이)]고치시더라'[“ἰᾶτο” (이아토)] 모두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어 예수님의 가르침과 치유가 상당한 시간동안 지속되었음을 있습니다(호크마).

 

·         저는 말씀을 묵상할 우리가 전해야 하나님의 나라란?’ 무엇인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전해야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공간적 천국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땅에 이미 임하였고(Already), 장차 완성될(Not Yet)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Reign of God)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정의, 사랑, 평화가 삶의 영역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인터넷).

 

통치의 핵심: 하나님이 왕으로서 다스리며, 우리가 통치를 받아들이는 모든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현존하는 나라: 예수님의 오심으로 시작되어 성령 안에서 우리 마음과 공동체 속에 임한 현재적인 나라입니다.

 

회복과 변화: 죄로 깨어진 세상이 회복되고, 이기심이 사랑과 환대로 바뀌는 새로운 공동체(교회) 통해 나타납니다.

 

미래의 완성: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으로 완전히 성취될 종말론적 희망입니다.

 

전하는 방식: 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여 통치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살아가며,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입니다”(인터넷).

 

-          제가2024 1 11일에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라는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 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계명은 "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마가복음 12:30-31).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은혜의 선물로 "영생"(로마서 6:23) 소유한 (요한일서3:14,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의 이중 계명대로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합니다(베드로전서 1:22).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의를 행하신 것처럼 우리도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요한일서 2:6).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 (마태복음 6:33, 현대인의 성경)이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나라의 백성들로서 예수님께서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의 이중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