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막힌 같은 당혹감 속에서 자기 고집(양심의 가책) 버리고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전환이 필요합니다.

 

 

 

 

 

 

 

분봉 헤롯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선지자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라 헤롯이 이르되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사람이 누군가 하며 그를 보고자 하더라”(누가복음 9:7-9).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9 7-9 말씀을 마태복음 14 1-2 말씀과 마가복음 6 14-16 말씀과 함께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a)   첫째로, 예수님이 행하신 일로 떠도는 예수님의 소문이 널리 퍼져 마침내 분봉와 헤롯의 귀에까지 들어갔었을 헤롯 왕은 몹시 당황하였습니다(9:7; 14:1; 6:14; 현대인의 성경).

 

(i)                  여기서 떠도는 예수님의 소문이란 당시까지 예수님께서 행하신 갖가지의 이적들[예를 들어, 누가복음 8장만 보아도 예수님께서 바람과 성난 파도를 꾸짖으시므로 폭풍이 그치고 물결이 잔잔케 하신 이적(8:24, 현대인의 성경), 더러운 군대 귀신을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떠나게 하신 이적(27-39), 12 동안 혈루증으로 많은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던 여인을 치유하신 이적(43-48), 야이로 회당장의 죽은 외동딸을 다시 살리신 이적(41-42, 49-56)] 말씀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누가복음 9장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므로 그들이 나가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많은 병자만 고쳐준 것이 아니라 많은 귀신을 쫓아낸 (9:1, 6; 6:7, 13) 소문에 포함된 듯합니다(참고: 호크마).

 

·         저는 예수님의 소문에 대해서 묵상할 주님의 교회도예수님이 행하신 일로” “소문”(9:7, 현대인의 성경) 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제가 그리 생각하게 이유는 지금 주님의 교회가 우리가 행한 일로 소문이 나고 있든지 교회가 행한 일로 소문이 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지금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데 우리(교회) 영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n  우리 교회가 주님께서 홀로 영광을 받으시는 교회로 세움 받기를 기원합니다.  사도행전 11장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가 생각이 났습니다.  스데반의 핍박으로 흩어진 자들에 의해 세워져 주님의 손이 함께하는 교회로 수다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 돌아오는 소문난 안디옥 교회는 이방 땅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 믿음과 은혜가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파송했을 정도로 부흥과 헌신의 역사가 일어난 모델적인 교회입니다(참고: 인터넷).

 

(ii)                여기서(9:7) ‘몹시 당황하였다 헬라어 단어 “διηπόρει”(디에포레이) 부정의 접두사 “διά”(디아) 뜻하는 “πόρος”(포로스) 합성어로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상태 의미합니다.  , 사방이 막혀 있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상태, 매우 당황하다혹은철저히 혼란에 빠지다라는 뜻이 됩니다.  말하자면 헤롯도 당황하여 몹시 불안한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표현이 문법상 미완료 과거 능동태인 점을 감안할 헤롯의 당황과 불안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진행되었음을 있습니다(호크마, 인터넷).

 

·         헤롯 왕은 예수님의 기적들을 듣고 "당혹스러워했습니다"(διηπόρει).  갈릴리의 분봉왕인 그는 하나님의 나라(왕국) 권능에 직면한 정치 권력을 상징합니다.  그의 당혹감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나중에 그가 회피하게 책임감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23:8-11, 현대인의 성경) “헤롯은 오래 전부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한번 만나 보고 싶기도 했고 그가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보자 매우 기뻐하였다.  헤롯은 예수님께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으나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거기 서서 악착같이 예수님을 고소하자 헤롯은 군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한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보냈다”].   동사는 진리를 감지하면서도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양심의 불안감을 드러냅니다(인터넷).

 

-          저는 헤롯 왕이 몹시 당황하였다는 말씀(9:7, 현대인의 성경) 묵상할 우리도 사방이 막혀 있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매우 당황스럽고 철저히 혼란에 빠졌을 때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계속되는 당황과 불안 속에서 충분히 진리를 감지하면서도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양심의 불안감을 나타낼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n  핵심은 'διηπόρει(디아포레이)' 주는 상태, 사방이 막힌 같은 당혹감 속에서 자기 고집(양심의 가책) 버리고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전환이 필요합니다.  진리를 감지하면서도 순종을 거부하는 양심의 불안감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3가지 영적 권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의 (Poros)' 막혔음을 인정하고 항복해야 합니다.

 

'디아포레오' 내가 가려던 (포로스) 막혀 통과하지 못할 발생하는 당혹감입니다.  불안이 계속되는 이유는 생각과 계획을 끝까지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천: " 길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겸손한 인정이 필요합니다.  시편 37 5절의 말씀처럼 나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는 '영적 항복' 불안을 끝내는 첫걸음입니다.

 

2.      양심의 가책을 '회개의 동력'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진리를 감지하면서도 거부할 느끼는 불안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불편함'입니다.  이를 단순히 감정적인 괴로움으로 방치하지 말고,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는 신호로 삼아야 합니다.

 

실천: 지성적으로만 진리를 동의하는 수준을 넘어,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를 굴복시키는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주님, 고집을 꺾고 순종할 마음을 주옵소서"라고 정직하게 구해야 합니다.

 

3.      통로(Poros)'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헬라어 '포로스' 길이라는 뜻도 있지만, '해결책'이라는 의미도 내포합니다.  인간의 길은 막혀도 하나님의 길은 열려 있습니다.

 

실천: 막막한 상황(디아포레오) 속에서 내가 길을 만들려 하지 말고,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요한복음 14 6절의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순종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당황과 불안은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시는 '멈춤 신호'이자 '전환점'입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거부하는 양심의 싸움을 끝내고, 진리가 당신의 삶을 이끌어가도록 마음의 통로를 내어드리십시오”(인터넷).

 

(2)   둘째로, 예수님에 관하여 사람들은죽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하고 말하였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말하고 어떤 사람은 선지자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그의 신하들에게그는 세례 요한이 분명하다.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기적을 행하는 이런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말했습니다.  헤롯은내가 분명히 요한의 목을 베었다.  그렇다면 소문에 들리는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하고 예수님을 보고자 하였습니다(9:7-9; 14:2; 6:14-16, 현대인의 성경).

 

(a)   분봉 헤롯이 몹시 당황하였던 궁극적인 이유는 자기가 분명히 목을 베었던 세례 요한이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되 살아난 세례 요한이 예수라는 소문을 듣고 헤롯은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는 이런 능력이 속에서 역사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9:7, 9; 14:1-2; 6:14, 16, 현대인의 성경; 참고: 호크마).

 

(i)                  비록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선지자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말했지만(9:8; 6:15) 헤롯은 예수님에 대한 가지 견해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세례 요한에 관한 견해만 집착하며 고민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의로운 세례 요한을 터무니없이 죽인 일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겪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14:3-11; 6:17-28)(호크마).

 

·         이렇게 양심의 가책을 겪고 있었던 헤롯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로 떠도는 소문을 듣고(9:7, 현대인의 성경)”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하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보고자 했습니다(9).  이유는 신앙적 동기가 아닌, 심리적 불안과 호기심, 그리고 정치적 계산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1.            죄책감과 두려움 (죽은 세례 요한의 부활 가능성)

 

헤롯은 자신의 불의를 지적하던 세례 요한을 베어 죽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인물이 나타나 권능을 행한다는 소문을 듣자, 자신이 죽인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닌지 깊은 당혹감(διηπόρει, 디에포레이)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는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거늘 이제 이런 일이 들리니 사람이 누군가"라고 자문하며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2.            기적을 구경하려는 세속적 호기심

 

헤롯은 예수님을 인류의 구원자로 것이 아니라, 신기한 이적을 행하는 '술사' '연예인'처럼 여겼습니다.  실제로 훗날 예수님을 직접 만났을 , 그는 어떤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기 때문에 매우 기뻐하며 여러 가지를 물었습니다( 23:8).  그의 관심은 진리에 대한 갈망이 아니라 단순한 볼거리(구경거리) 있었습니다.

 

3.            정치적 위협에 대한 탐색

 

    헤롯은 갈릴리의 통치자로서 자신의 영토 안에서 민중의 지지를 받는 예수라는 인물이 새로운 정치적 위협(민란의 소지 ) 될지를 파악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왕궁에까지 들릴 정도로 강력했기에, 그는 직접 대면하여 예수가 누구인지 간을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자 했던 행위는 회개나 믿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죄지은 양심의 불안을 해소하고 개인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진리를 감지하면서도 순종하기를 거부했던 그는 결국 예수님을 희롱하고 업신여기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11)(인터넷).

 

-          호크마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3 31(“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의하면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자 것은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호기심이나, 없는 선지자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악의 때문이었음을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을 만날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그는 예수님을 희롱하며 예수님이 처형되는 일에 적극적인 방조자내지는 동조자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23:8,11)(호크마).

 

n  저는 마침내 예수님을 만날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예수님을 희롱하며 예수님이 처형되는 일에 적극적인 방조자내지는 동조자로서의 역할을 헤롯을 묵상할 헤롯처럼 호기심이나 자기 안위만을 위해 예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의 기회' 영원한 생명으로 바꾸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1.      '구경꾼' 아닌 '죄인' 심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자신의 지적 호기심이나 볼거리를 충족시켜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 삶이 변화된 이들은 모두 자신이 주님의 자비가 필요한 죄인임을 인정하며 나아갔습니다.

 

실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대하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시편 51 17절은 하나님께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신다고 약속합니다.

 

2.      '지적 분석' 멈추고 '인격적 순종' 선택해야 합니다.

 

헤롯은 예수님께 여러 가지를 물었으나 정작 주님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기회는 '정보를 얻는 시간' 아니라 '삶의 주관자를 바꾸는 시간'입니다.

 

실천: 진리를 깨달았을 "그렇구나"라는 동의에서 멈추지 말고, 즉시 작은 일부터 순종하십시오.  야고보서 1 22절은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3.      ' ' 아닌 '하나님의 ' 붙잡아야 합니다.

 

성경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라고 말씀합니다.  헤롯처럼 자신의 정치적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기회를 미루거나 이용하려 해서는 됩니다.

 

실천: 예배, 개인 기도, 혹은 문득 떠오르는 말씀의 감동이 있을 그것을 하나님의 초청으로 여기고 즉각 반응하십시오.

 

4.      마음의 '교만' '완악함' 경계해야 합니다.

 

헤롯이 결국 예수님을 희롱했던 이유는 자신의 권좌와 가치관을 내려놓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완악해지면 눈앞에 진리가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실천: 마음의 밭을 기경하기 위해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생명의 삶과 같은 묵상 자료를 활용해 매일 주님과 교제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만날 기회 앞에서 우리가 일은 '나의 왕관을 내려놓는 '입니다.  인생의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드릴 , 불안(디아포레이) 평강으로, 호기심은 확신으로 변하게 됩니다(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