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이중 명령: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8:50).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기다렸음이러라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자가 누구냐 하시니 아니라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앎이로다 하신대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이유와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영이 돌아와 아이가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누가복음 8:40-56).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8 40-56 말씀을 마태복음 9 18-22 말씀과 마가복음 5 21-43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 묵상을 크게 개로 나눠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1) 혈루증 여인과 (2) 야이로의 .

 

(a)    혈루증 여인:

 

(i)                      여기셔 “혈루증”이란 부인병으로 월경 이외에 자궁 출혈 또는 음부로 피를 흘리는 병을 말합니다(인터넷).  혈루증을 12 동안이나 앓고 있었던 여자는많은 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느라고많은 괴로움 받았고 또한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지만아무 효험이 없고”[“나아지기는 커녕”(현대인의 성경)] 오히려 병만 악화되었고 그녀는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8:43, 5:26).

 

·       여기서 저는 혈루증 여인이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5:26)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분명히 그녀는 12 동안이나 혈루증이란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기에 병에서 치료를 받기를 간절히 원하였기에많은 의사들을 찾아다녔을 것입니다(26, 현대인의 성경).

 

-            그런데 그녀는많은 의사들에게많은 위로 받기보다 오히려많은 괴로움 받았고[“무척 고생하였고”(현대인의 성경)], 가진 재산도 허비하였습니다(26).  이렇게 그녀는 자신의 재산을 사용해서라도 자신이 걸린 혈루증 낫기를 간절히 원했건만 그녀의 병을 고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8:43, 현대인의 성경) 그녀의 병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병만 악화되었다는 (5:26) 그녀에게는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n  12 동안 혈루병을 앓아온 그녀가 처한 상황은 병의 불치성과 의술의 무력함을 나타내 보이고 인간적인 모든 수고가 허사로 돌아 갔다는 절망적인 상황 묘사와 여인이 받고 있는 고통이 진퇴 양난의 절박한 상황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재산을 치료비로 허비하고 남은 것은 병든 하나이고 그나마 병은 더욱 악화되고 병의 부정함 때문에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소외된 여인의 모습은( 15:25-28) 인간 최악의 한계 상황에 다다른 것입니다.  삶과 존재의 기반이 송두리째 상실되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참으로 절막정이었습니다(호크마).

 

(ii)                    바로 절망적이었을 때에 그녀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 틈에 끼어 가다가 예수님의 옷만 만져도 자기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뒤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5:27-28, 현대인의 성경).

 

·       저는 부분의 말씀을 묵상할 다시금 생각하게 교훈은 우리가 절망적일 때에야 말로 주님만을 갈망하고 소망할 있는 좋은 기회라 믿습니다.

 

-            그리고 우리가 절망적일 때에야 말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있는 귀하고 좋은 기회라 믿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절망적일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말씀을 믿고 소망케하시사 우리의 절망한 영혼을 소성케해주시고 부흥케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       절망적이었을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께서 병를 치료하신 기적에 대한 소문을 상세하게 들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의 옷만 만져도 자기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5:28,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생각만 것이 아니라 뒤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는데(5:28, 현대인의 성경) 이유는 그녀의 믿음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도 자신의 병이 치유될 것이라는 믿었기 때문입니다(8:48, 참고: 호크마).

 

-            결과 실제로 그녀의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여자가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흐르던 피가 즉시 멎었다”(현대인의 성경)](44).  마가복음 5 2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즉시 피가 멎었고 그녀는 병이 나은 것을 느꼈다”(현대인의 성경)].

 

n  저는 말씀을 묵상할 12 동안이나 피를 흘리며 앓던 혈루증 여인 자신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즉시 피가 멋었기에 그녀는 자신의 혈루증 병이 나은 것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순간에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느낀 그녀의 마음(심정)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의사들을 찾아 치료를 받았지만 많은 괴로움만 받고 그녀를 고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시라면 자신의 병을 고칠 수있다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흐르던 피가 즉시 멎었으니(8:44, 현대인의 성경) 고침을 받은 그녀의 기쁨은 어떠했겠습니까.

 

(iii)                 혈루증 여인이 병이 나은 것을 느꼈을 (5:29,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것을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누가 옷을 만졌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30; 8:45, 현대인의 성경).

 

·       그러자 베드로(제자들)주님, 사람들(군중) 이렇게 밀어닥치고 있는 것을 보시면 누가 만졌느냐고 물으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하고 대답하였습니다(45; 5:31,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예수님은내게서 힘이 나갔으니 나에게 손을 사람이 있다하고 말씀하신 (8:46, 현대인의 성경) 누가 옷을 만졌는지 알아보려고 둘러보셨습니다(5:32, 현대인의 성경).

 

-            여자는 숨길 없게 것을 알고 두려워 떨며 예수님 앞에 나와 엎드려서 예수님을 만진 이유와 어떻게 해서 즉시 낫게 되었는가를 모든 사람 앞에서 사실대로 말하였습니다(8:47; 5:33, 현대인의 성경).

 

·       저는 혈루증 여인이 병이 나은 것을 느꼈을 예수님은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것을 아셨다는 말씀(5:29-30, 현대인의 성경) 묵상할 저는 여인의 혈루증 병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치유를 받았다는 증거라 생각합니다.

 

-            그런데 드는 생각은 예수님께서는 누가 자신의 옷을 만졌는지 알아보려고 둘러보셨을까?’(5:32, 현대인의 성경)라는 의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말대로무리가 애워싸 미는 예수님도 보고 계셨을 텐데(31) 누가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는지 어떻게 수가 있었겠습니까.   

 

n  예수님이 그녀를 찾으신 이유는 다음과 같은 사역적과 영성적 목적이 있기 때문일 수있습니다(인터넷):

 

믿음의 공개적 확증: 열두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은 부정하다는 사회적 낙인 때문에 몰래 치유받고 떠나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불러내어 "믿음" 그녀를 구원했음을 공포함으로써, 그녀의 병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명예까지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인격적 만남과 관계: 예수님은 기계적인 능력의 유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치유받은 자와 직접 대면하여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셨습니다. 그녀를 "딸아"라고 부르시며 영혼의 평안까지 주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과 무리에게 가르침: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밀쳤으나, 오직 여인만이 믿음으로 손을 내밀어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이를 통해 단순한 구경꾼과 참된 믿음을 가진 자의 차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야이로를 위한 격려: 아이가 죽어간다는 소식에 절망할 있었던 회당장 야이로에게, 여인의 즉각적인 치유 사건을 보여주심으로써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확신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여인이 숨어서 치유받는 것에 머물지 않고,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에 서게 하시려고 그녀를 찾으신 것입니다.”

 

(iv)                 예수님은 여자에게딸아, 믿음이 너를 낫게(구원) 하였다.  이제 평안히 돌아가거라.  질병에서 해방되어 건강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8:48; 5:34, 현대인의 성경).

·       12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은 부정하다는 사회적 낙인 때문에 몰래 치유받고 떠나려 했지만 예수님은 그녀를 "딸아"라고 부르시며 영혼의 평안까지 주고자 하셨을 뿐만 아니라 믿음이 너를 낫게(구원) 하였다 말씀하심으로 "믿음" 그녀를 구원했음을 공포함으로써, 그녀의 병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명예까지 회복시켜 주셨습니다(인터넷).

 

-            여인의믿음 그녀가 예수님에게 치유의 능력이 충만함을 확신한 것입니다(5:27, 28).  그리고 믿음을 행위로 옮겼을 여인의 가장 절망적 문제였던 혈루증이 완전히 치유된 것입니다. 

 

n  여기서 “구원하였으니”(세소켄) 완료시제를 취하고 있어 구원이 이미 그녀에게 확실히 주어졌음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구원은 현상적으로는 육체적 구원과 영적 구원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묘사되고 있습니다(2:1-12).  따라서 치유의 체험은 질병으로 인한 모든 육체적 고통과 자신이 부정한 죄인이라는 정신적. 영적 굴레로부터 벗어남을 뜻합니다(25).  이와 같은 구원 선언을 예수님께서는 군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함으로써 여인이 이상 죄인이 아님을 선언하고 있으며, 아울러 예수님은 여인을 소외 당했던 사회로 다시 복귀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같은 자유와 회복을 허락하시려고 여인을 그렇게 찾았던 것입니다.   여인은 이상 죄인이 아니며 또한 부정한 여인이 아닙니다.   사람의 구원은 죄의식으로부터 풀려나는 뿐만 아니라 건강과 평화로운 사회 공동체에 복귀하여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까지 포함되는 것입니다(호크마).

 

(2)    야이로의 :

 

(a)    야이로라는 회당장은 12 외동딸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앞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셔서 손을 얹어 그녀를 살려 주시기를 간청하였습니다(8:41-42; 5:22-23, 현대인의 성경)[누가와 마가는 야이로의 딸이 죽기 직전에 있었으며 그후 그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회당장의 집에서 보냄받은 사람들이 알려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딸이 방금 즉었사오나 오셔서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9:18)하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마태는 누가와 마가가 기록한 야이로의 딸이 죽어 가고 있었다는 것과 자기가 기록한 야이로의 딸이 방금 죽었다는 기록을 결합하여 상세한 과정을 생략한 예수님께서 일을 어떻게 처리하셨는가를 소개하는데 역점을 두었던 것입니다(Broadus).  뿐만 아니라방금 죽었사오나”(9:18) 해당하는 헬라어 '아르티 에테류테센'(ρτι τελεύτησεν) 반드시 '죽어 있다' 의미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다', '죽으려고 한다' 의미를 나타낼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야이로 회당장이 예수님께 와서 ' 딸이 너무나 아픈 나머지 지금쯤은 죽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라고 고백했던 것으로 있을 것입니다(호크마)].

 

(i)                      여기서회당장 회당의 수반(head)으로 집회를 인도하고 회당 건물의 유지, 보존, 운용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예배의 질서와 신성함을 유지하는 책임을 맡고 있으며 또한 토라(율법) 낭독하거나 설교하는 사람을 선정하는 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회당장은 지방에서는 최고의 상류 계층의 일원으로 사회적 지위가 있고 존경을 받는 인물임을 있습니다(호크마)(혈루증 여인과 대조적임).

 

·       회당장의 외동딸이 12살이라는 나이는 유대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바야흐로 결혼할 있는 여성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나이를 뜻하므로 이제 피어 나려는 여성의 인생이 여기서 마감 된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외동딸이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아버지인 야이로의 애타는 심정은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의 아래 엎드려 간구하는 모습에서 나타납니다(호크마).

 

-            여기서 아래 엎드렸다는 것은 최대의 존경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회당장의 신분이 존경받는 사회적 지위를 가졌다면 장면은 예수님을 최고의 지위로 높이는 절대 겸손의 모습입니다.  사실 당시 예수님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랍비 정도에 불과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던 터였기 때문에 유대의 종교를 대표할 만한 종교 지도층 인사가 앞에 무릎 꿇는 것은 상상도 없었던 일입니다(호크마).

 

(ii)                    저는 말씀을 묵상할 제가 전에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러 집에서 나오려다가 근처에 이는 방에 불이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갔었을 사랑하는 딸이 마치 죽은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마루바닥에 무릎을 끓고주님, 딸을 살려주십시오라고 눈물로 간구하였던 적이 생각났습니다.

 

·       그래서 저는 야이로 회당장이 예수님의 발앞에 엎드려 “’ 어린 딸이 죽어 갑니다.  제발 오셔서 손을 얹어 살려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5:23, 현대인의 성경) 말씀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            그리고 저는 지금 병원 중환자실에서 위독한 어머님을 위하여 간절히 간구하고 있는 박선영 자매가 생각났습니다.  며칠 선영 자매가서로를 위한 기도후원 (카카오톡) 51 형제들, 자매들에게 간절히 기도 부탁한 내용의 부분만 나눕니다:

 

“…  엄마 호흡이 안정을 찾고 힘을 얻어 속히 자가호흡을 하실 있도록, 현재 출혈이 어느정도 멈춘 컨디션이 항응고제 치료를 다시 시작해도 유지가 되시도록(지금 엄마에게 출혈은 아주 위험하다 하셨어요), 그래서 폐와 안의 색전 치료가 말끔히 이뤄지시도록, 엄마의 영혼육을 붙드시사 의식을 명료하게 찾고 치료를 받으실 있도록 주시고 회복의 은총 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부탁드립니다. ㅠㅠ    엄마께서 너무도 고생을 많이 하고 사셨는데요, 주님 엄마를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원합니다ㅠㅠ🙏  회복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부탁드립니다. ㅠㅠ

 

(b)    그래서 예수님이 일어나 따라가시자 제자들도 뛰따랐는데 군중들이 마구 밀어 닥치고 있었고(8:42, 현대인의 성경) 바로 12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은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와서 믿음으로 그의 옷자락을 만지므로 그녀의 혈루증 병이 나았습니다(9:19-22,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예수님은 여자에게딸아,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질병에서 해방되어 건강하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직 말씀하고 계실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따님이 죽었습니다.  어째서 선생님을 괴롭히십니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곁에서 말을 들으시고 야이로 회당장에게 이렇게 말씀핫겼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5:34-36, 현대인의 성경)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그러면 딸이 살아날 것이다”(현대인의 성경)](8:50)

 

(i)                      여기서따님이 죽었습니다.  어째서 선생님을 괴롭히십니까?”(35, 현대인의 성경)하는 말은 이상 희망이 없는 상황을 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야이로의 딸의 죽음을 전한 자는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의 바르고 합리적인 발상으로써 예수님을 이상 괴롭히지 것을 간청한 것입니다(호크마).

 

·       여기서 “괴롭게 하다”란 뜻의 원어 ”σκύλλεις”(스퀼로) 원래 짐승의 가죽이나 나무의 껍질을 벗길 사용하던 말로서 가혹하리만치 혹독한 고통이나 쓰라림을 뜻합니다( 9:36).  따라서 말은 이상 예수님을 “귀찮게 하거나 마음에 부담을 주지 말라”는 매우 단호한 요청으로 있습니다(호크마).

 

(ii)                    여기서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5:36,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의 이중 명령은 모두 현재형으로써 같은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엄명입니다.  이는 죽음의 소식에 마음 흔들리지 말고 지금껏 (예수님) 향해 지니고 있었던 믿음, 그것을 계속하여 지니라는 말씀입니다( 4:20, 21)(호크마).

 

·       실로 예수님은 당신의 신적 본성을 의지하고 죽음을 훨씬 뛰어넘는 당신의 초월적인 능력을 계속 바라보게 하신 것입니다.  두려움과 믿음은 항상 적대적 관계입니다.  따라서 극한 절망 속에 있을 바로 시점에 모든 부정적 요소(두려움) 떨치고 절대적 존재이신 예수님을 절대 신뢰하는 것은 용기요 참믿음입니다.  예수님께 지속적 신뢰를 갖는 믿음이야말로 생명의 유일한 열쇠입니다(호크마).

 

-            저는 예수님의 이중 명령을 묵상할 예수님의 이중 계명이 생각났습니다: “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22:37, 39).   아마도 이유는 예수님의 이중 계명이나 이중 명령은 동전에 앞면가 뒷면같아서 뗄래야 없는 관계이기 때문인 같습니다. 

 

n  , 마치 예수님의 이중 계명인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동전의 앞면: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 "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동전의 뒷면: 이웃과의 수평적인 관계) 뗄래야 없는 관계인 것처럼 예수님의 이중 명령인두려워 말라’(동전의 뒷면: 야이로에게 딸이 죽은 것을 두려워 말라)믿기만 하라’(동전의 앞면: 예수님을 믿기만 하라) 또한 뗄래야 없는 관계라 생각합니다.  주님을 진정 믿으면 두려워하지 않겠지요.

 

(iii)                 예수님은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5:36, 현대인의 성경) 야이로 회당장에서 말씀하신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그러면 딸이 살아날 것이다”(현대인의 성경)](8:50) 말씀하셨는데 이미 에수님께서는 혈루중 여인에게딸아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딸아,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이제 평안히 돌아가거라”(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48).

 

·       분명히 야이로 회당장은 예수님곁에서”(5:36) 동행하고 있었기에 예수님께서 혈루증 여인에게딸아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딸아,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이제 평안히 돌아가거라”(현대인의 성경)(48)하신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야이로는 예수님께서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러면 딸이 살아날 것이다”(현대인의 성경)](8:50)하는 말씀을 들었을 진정 예수님의 말씀대로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만 믿으면 자신의 딸이 살아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c)    예수님은 야이로 회당장의 집에 도착하셨을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소녀의 부모 외에는 아무도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소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고 있었을 예수님이울지 말아라.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하고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소녀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8:51-53, 현대인의 성경).

 

(i)                      저는 말씀을 묵상할 예수님께서울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신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유는 저는 오래 전에 한국 화장터에서 어느 형제에게 화장하고 있는 아버님의 시신을 보면서 울고 있는 형제에게울지 말라 말한 것이 지나고 나서 매우 후회가 되었기 때문인 같습니다.  그만큼 생각이 바낀 것입니다.  저의 바뀐 생각이란 사랑하는 식구가 죽었을 울음이 나올 정도로 슬프면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오늘 본문 누가복음 8 52절에서 예수님께서는울지 말라 말씀하셨으니 (우리)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요?  물론 예수님께서울지 말라 말씀하신 이유는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었기에(52) 예수님께서 잠에서 깨우시면 그녀가 살아날 (50, 현대인의 성경)이였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그녀의 손을 잡고달리다굼!”(번역: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5:41) 또는아이야 일어나라하시니(8:54) 바로 순간 소녀의 영이 돌아와 그녀는 즉시 일어나(55, 현대인의 성경) 걸어다녔습니다(5:52, 현대인의 성경).

 

n  그러자 소녀의 부모님 야이로와 그의 아내만 놀란 것이 아니라(8:56) 예수님을 비웃었던  사람들도 크게 놀라고 놀라했습니다[“너무 놀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현대인의 성경)](5:42).

 

#     예수님은 다시 살아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명하셨지만(8:55-56, 현대인의 성경) 소문이 지방에 퍼졌습니다(9:26, 현대인의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