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귀신의 간청과 거라사 지방 사람들의 간청도 들어주신 예수님께서는 왜 귀신나간 사람의 간청은 들어주시지 않으신 것일까요?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그 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알리니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귀신 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본 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매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새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누가복음 8:26-39).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8장 26-39절 말씀을 마태복음 8장 28-34절 말씀과 마가복음 5장 1-20절 말씀과 비교하면서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군대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신 사건을 묵상하는 가운데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a) 첫째로,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땅(지방)에서 만난 귀신 들린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눅8:26-27; 마8:28(귀신 들린 사람이 두명이라고 기록돼 있음); 막5:1-2].
(i) 누가는 이 귀신 들린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눅8:27)고 기록하였고, 마태는 “몹시 사나워 아무도 그 길을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더라”(마8:28)고 기록하였습니다. 마가는 그 귀신 들린 사람은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에 묶였으나 그것들을 끊고 부수어 아무도 그의 힘을 당해 내지 못하였기에 그를 묶어 둘 수가 없었고(막5:3-4, 현대인의 성경) 또한 그는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를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5절)고 기록하였습니다.
· 흥미로운 점은 그 귀신 들린 사람은 몹시 사나와 아무도 그 길을 지나갈 수 없을 지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마8:28) 예수님은 그 길로 지나가셨기에 그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셨다는 것입니다.
- 로버느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The Road Not Taken)이란 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 시의 주요 의미 중 하나는 “용기 있는 개척”으로서 “경쟁이 없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용기,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도전 정신을 나타냅니다”(인터넷).
n 저는 예수님을 본받아 아무도 지나갈 수 없는 지경의 길이라 할지라도 성령님이 그 길로 인도하시면 믿음으로 순종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만남을 가지고 싶습니다. 제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창18:14, 현대인의 성경)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고 순종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b) 둘째로, 그 귀신 들린 사람이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소리지르며 달려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며 외친 말인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나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원하건데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눅8:28; 마8:29; 막5:7)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i)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2013년 4월 24일에 “누가 괴롭게 하는 자입니까?”라는 제목아래 열왕기상 18장 17-18절 말씀을 묵상하여 쓴 글을 다시금 읽게 되었습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166641080):
· “… 열왕기상 18장 17-18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17:18, 24) 엘리야 선지자와 우상인 바알을 좇았던 아합 왕이 만나(18:16) 단도직입적으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요약한다면 아합 왕 입장에서는 엘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이고 엘리야 선지자 입장에서는 ‘아합 왕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입니다. 서로 상대방이 괴롭게 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과연 누가 괴롭게 하는 자입니까? 엘리야 선지자입니까, 아니면 아합 왕입니까?”
- 물론 아합 왕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버렸고 바알들(우상들)을 따랐습니다(18:1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으셨고(17:1) 그 결과 사마리아에 기근이 심하므로(18:2) 이스라엘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한 것입니다.
n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합 왕은 엘리야 선지자에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라고 말한 원인은 우상숭배의 죄가 그를 영적 장님으로 만들어 자신의 죄를 못 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죄를 지적한 하나님의 사람을 원망하게까지 만든 것입니다.
(ii) 오늘 본문 누가복음 8장 28절에서 그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에게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하고 외쳤는데 이 외침은 귀신[이름이 “군대”인데(30절) 여기서 “군대”(Legion)은 로마 군단(약 6,000명)을 의미하며, 이는 많고 강력한 악령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상태를 의미함(인터넷)]이 귀신 들린 사람의 입을 통해 예수님에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군대 귀신은 예수님에게 그리 외친 것일까요? 군대 귀신이 무슨 괴로움을 당한 것일까요?
· 군대 귀신은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앞에서 멸망당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군대 귀신은 예수님께 “제발 무저갱으로 들어가라는 명령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였던 것입니다(31절, 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무저갱”(Abyss)이란 헬라어 '아뷔쏘스'(ἄβυσσος)에서 온 말로, '밑이 없고 끝없는 깊은 구덩이'를 뜻하며, 주로 악령이나 사탄(마귀)이 갇히는 일시적인 감금 장소(계9:1; 20:3)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사용됩니다(인터넷).
- 그래서 군대 귀신은 예수님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28절)하고 외쳤는데 그 외침은 간섭하지 말라는 요청으로서 귀신 군대는 예수님에게 자신의 존재를 끝장내지 말고 있던 세상에 머물게 해달라는 절규와 간청을 한 것입니다(인터넷).
(c)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그 더러운 군대 귀신에게 그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령하셨을 때 그 군대 귀신은 예수님께 제발 무저갱으로 들어가라는 명령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 후 마침 그 곳에 풀을 먹고 있었던 많은 돼지 떼 속에라도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허락하시자 그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자 돼지 떼가 가파른 비탈로 내리달려 호수에 들어가 몰사했다(눅8:29-33,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i)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귀신”(29절)의 간청까지도 허락해주셨다는 사실에 좀 놀랐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저는 예수님께서 그 “많은 귀신”(30절)이 매우 두려워해서 간청한 “무저갱으로 들어가라는 명령만은 하지 말아 달라”(31절)는 외침을 충분히 거절(무시)하시고 그 많은 귀신을 무저갱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주님의 공의로우심을 들어내시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 이사야 55장 8-9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ii) 저는 누가복음 11장 5-8절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한밤중에 친구에게 떡 세 덩이를 꾸러 간 사람이 있습니다. 집주인은 이미 잠자리에 들었고, 친구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어주기 귀찮아합니다. 그런데 친구가 끈질기게 간청하자 집주인은 마침내 일어나서 필요한 것을 주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세상 친구도 그러한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청(간절한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인터넷).
· 누가복음 8장 8-10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iii) 누가복음 18장 1-8절 말씀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 2-5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 도시에는 한 과부도 있었는데 그녀는 자주 재판관에게 찾아가서 자기 원수를 갚아 달라고 애원하였다. 재판관은 얼마 동안 그녀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가 마침내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데도 이 과부가 계속 나를 성가시게 하니 내가 그녀의 간청을 들어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이 여자가 계속 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
- 7-8절 말씀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iv) 예수님께서 군대 귀신의 간청을 허락하신 결과 귀신들이 그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나와 “거의 2,000마리나 되는 돼지 떼”(막4:13, 현대인의 성경) 속으로 들어가서 결국 그 돼지 떼가 비탈로 내리 달려 호수에 들어가 몰살했습니다(눅8:33).
· 여기서 “몰사하거늘”(33절)이란 헬라어 단어 “ἀπεπνίγη”(아페니기)는 “to suffocate with water, to drown”(물에 질식해 죽다, 익사하다)란 의미로서 오늘 본문 누가복음 8장 33절 외에 7절에도 나옵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ἀπέπνιξαν).”
- 여기서 '막았다'는 헬라어 단어 “ἀπέπνιξαν”(아페니잔)의 의미는 “to choke”(질식하다)로서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 비유에서, 세상의 '염려, 재물, 향락'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라지 못하게 하고, 결실하지 못하도록 ' 가로막고 억눌러 질식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인터넷).
· 그러면 호수에 들어가 물에 질식해 죽은 귀신들과 세상의 염려, 재물, 향락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결실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억눌러 질식시키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 저는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 비유에서 세상의 염려, 재물, 향락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결실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억눌러 질식시키는 것을 생각할 때 파킨슨병 환자가 식도가 막혀 질식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파킨슨병 환자가 식도가 막혀 질식하는 주된 이유는 연하곤란(삼킴 장애) 때문이며, 이는 신경계 손상으로 음식물을 식도로 제대로 보내지 못하고 기도로 넘어가게 하거나(흡인), 식도 근육의 운동성 저하로 음식물이 정체되어 막히는 증상으로 나타나며, 이로 인해 기도가 막혀 질식에 이를 수 있습니다”(인터넷).
n 그리고 저는 호수에 들어가 물에 질식해 죽은 귀신들을 생각할 때 물에 빠져 질식하는 주된 이유가 기도(기관지)로 물이 들어가 폐로 산소 공급을 막기 때문이며, 이는 기도의 경련(후두경련)을 일으키고 폐포에 염증을 유발하여 호흡곤란과 저산소증으로 이어져 뇌 손상 및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과 소량의 물로도 '마른 익사'가 발생할 수 있고, 과호흡 후 잠수하다 의식을 잃는 '얕은 물 기절'도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인터넷).
- 결국 이 두 가지 경우의 질식해서 죽는 주된 이유는 기도가 막혀 산소 공급이 차단되어 질식해서 죽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n 저는 이것을 영적으로 산소 공급을 받지 못한다는 것으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영혼의 호흡과 생명력이 막혀 영적으로 무기력하고 답답한 상태를 비유하며, 주로 기도 부족, 말씀과의 단절,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부하여 영적 생명 활동(교제, 성장)이 멈추거나 약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치 몸이 산소 부족으로 힘을 잃듯, 영혼도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기면 영적 갈증과 공허함을 느끼며, 이는 믿음의 퇴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인터넷).
(d) 넷째로, 돼지 떼가 가파른 비탈로 내리달려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자 돼지를 치던 자들이 이것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들어가서 이 일과 귀신 들린 사람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말하자 온 마을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눅8:33-35; 마8:33-34; 막5:14-15)는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i) 여기서 저는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와서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이나 다 놀라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 돼지를 치던 사람들은 예수와 귀신 사이에 있었던 사건을 목격하고 한편으로는 자기들이 치던 돼지 떼의 손실에 대해 당황했을 것이고 또 다른 한편 예수의 권능에 대해 심한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들이 '도망' 하였다는 표현이 그 사실을 말해줍니다(호크마).
- 불과 조금전만 해도 발가벗은 몸으로 이리 저리 방황하며 때로는 괴성과 괴력으로 사람들을 위협하였던 사람이 이제는 옷을 단정하게 입고 온전한 정신으로 점잖게 앉아있는 모습은 주위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야기시켰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하였다는 것은 지금 그들에게 직면된 상황이 매우 파격적임을 뜻하며 인간의 논리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 또는 신적 사건이었음을 입증합니다(호크마).
(ii) 저는 귀신 들렸던 사람이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었다는 말씀(눅8:35)을 묵상할 때 두 가지를 좀 적용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첫째는, 지금 정신 질환으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치유의 은총으로 정신이 온전해 지길 기원합니다.
· 둘째로, 영적으로 정신이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앞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즉, 그들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습니다[참고: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들었던 마리아(눅10:39)].
(e) 다섯째로,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님께 그 거라사 지방을 떠나달라고 간청하였다(눅8:37)는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i) 예수께서 일으키신 귀신 축출 사건은 그곳 주민들로 하여금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기에 죽은 돼지 떼에 대해서는 감히 아무런 불평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떠나주기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은 죽은 것과 다름없던 귀신들린 사람의 구원을 보았으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물질의 손실만을 생각하여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실수를 범한 셈입니다(호크마).
· 흥미로운 점은, 군대 귀신의 간청도 들어주신 예수님(31절, 현대인의 성경)께서는 거라사 지방 사람들의 간청도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37절, 현대인의 성경).
- 하물며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간청을 들어주시지 않으시곘습니까? 누가복음 18장 1-8절의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 비유에서 나온 구절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강조하며, 악한 재판관도 끈질긴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는데, 하물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당신의 자녀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냐는 의미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분명히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과 기도의 끈질긴 중요성을 나타냅니다(인터넷).
(f) 마지막 여섯째로, 예수님은 되돌아가려고 배를 타셨을 때 귀신나간 사람이 함께 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으나 예수님은 그를 돌려보내시며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너에게 행하신 큰 일을 이야기해 주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곧 가서 예수님이 자기에게 행하신 큰 일을 온 마을에 알렸다(눅8:37-39,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i) 군대 귀신의 간청(31절, 현대인의 성경)과 거라사 지방 사람들의 간청도 들어주신 예수님(37절, 현대인의 성경)께서는 귀신나간 사람의 간청은 들어주시지 않고 오히려 그를 들려보내시며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너에게 행하신 큰 일을 이야기해 주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38-39절, 현대인의 성경).
· 여기서 귀신나간 사람이 예수님께 ‘간청했다’는 것은 몇번이고 반복해서 계속 구했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은 너무나 귀한 은총을 체험했으므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거듭되는 그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내셨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그를 위한 다른 목적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호크마).
- 그 목적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너에게 행하신 큰 일을 이야기해 주어라”(39절, 현대인의 성경)였습니다. 왜 하필이면 ‘집으로 돌아가”라고 주님은 말씀하신 것일까요?
n 그만큼 집에 있는 식구들의 구원이 주님에게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이렇게 주님은 루디아라 하는 여자와 그녀의 온 집안 식구들을 구원하신 후(14-15절, 현대인의 성경) 간수와 그의 온 가족도 구원해 주셨습니다(33-34절, 현대인의 성경).
n 그런데 귀신나간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였습니다(39절). 그는 너무 기뻐서 온 성내를 다니면서 자기에게 있었던 일을 전파하였습니다(호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