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누가복음 8:22-25).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8 22-25절에 나와 있는예수님께서 바다(광풍) 잠잠케 하신 이야기 마태복음 8 23-27절과 마가복음 4 35-41절과 연관해서 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a)    첫째로, 어느 저녁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호수(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신 그들은 군중을 남겨 두고 그곳을 떠나 행선할 (가는 도중) 예수님은 배의 부분에서 베개를 베고 잠이 드셨다(주무시고 계셨다) 말씀을 묵상합니다(8:22-23; 8:23-24; 4:35-36, 현대인의 성경).

 

(i)                      저는 말씀을 묵상할 요나 선지자가 생각났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요나는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1:4-5).

 

·       오늘 본문 누가복음 8 23절은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하고 말씀하고 있지만, 마태복음 8 24절은바다에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하고 말씀하고 있고, 마가복음 4 37-38절은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 예수님이 배의 부분에서 베개를 베고 잠이 드셨을 때는 바로 광풍( 폭풍) 호수(바다) 내리쳐서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배가 침몰하게 ) 상황이었습니다(8:23; 8:24; 4:37).

 

(ii)                    같이 밤에 잠을 못자는 사람에게는어떻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잠을 계속해서 주무실 있을까?’하는 의문이 수밖에 없는 같습니다. 하하.

 

·       제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주님의 몸된 승리장로교회를 21 동안 담임 목사로 섬기면서 처음에는 설교 시간에 몇몇 성도님들이 주무시는 것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어떻게 설교 시간에 주무실 있으실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말하면 아마도 거짓말이라 생각합니다. 하하.  그런데 나중에서야 저는 성도님들이얼마나 이민 생활에 피곤하고 지치셨으면 설교 시간에 주무실까?’ 또는안그래도 불면증이 있으셔서 어젯 (토요일)에도 잠을 못주무셨을 텐데 이렇게 설교 시간에라도 주무실 있게 되어 감사하다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            저는 인공지능(AI)에게성경에서는 ""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하고 질문을 했더니 이러한 답변을 얻었습니다: “성경에서 ''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안식과 평안의 선물(시편 127:2)이며, 동시에 영적 무관심이나 죄에 빠진 상태(로마서 13:11-14) 상징하기도 하고, 지혜로운 삶의 일부로 평온한 휴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잠언 3:24).  이는 단순한 수면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는 영적 상태와 삶의 방식을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잠의 긍정적 의미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의 선물과 안식: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평안한 잠을 주시며( 127:2), 이는 주님 안에서의 평안함과 안식을 의미합니다.

 

달콤한 휴식: 잠언 3:24 두려움 없이 편히 잠들 있는 달콤한 잠을 말합니다.

 

믿음의 권고: 시편 127:1-2 사람이 애쓰는 수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잠을 강조하며,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을 권합니다.

 

잠의 부정적 의미 (영적 상태)

 

영적 무관심/: 로마서 13:11-14에서는 "잠에서 깨어날 " 말하며, 어둠의 (방탕, 음행, 다툼) 버리고 주님과 같이 단정하게 행하라고 촉구합니다. 이는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상태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잠에 대한 교훈

 

하나님께 맡김: 자신의 삶과 수고를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한 잠을 누릴 있습니다.

 

깨어있는 : 잠자는 상태(무관심)에서 깨어나 주님 안에서 깨끗하고 단정한 (빛의 자녀)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인터넷).

 

(iii)                 여기서 배우게 되는 교훈은 인생의 광풍( 폭풍) 같은 위기가 우리 각자 개인의 삶이든 가정의 삶이든 교회의 삶이든 나라의 삶이든 간에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과 안식을 누리므로 평생에 가는길 순탄하여 잔잔한 같든지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편하다 영혼 평안해 영혼 내영혼 평안해”( 찬송가 413 평생에 가는 ” 1절과 후렴) 하나님께 믿음으로 찬양을 드릴 있길 기원합니다.

 

·       옥한음 목사님이 한국 교회를 바다 가운데서 침몰하고 있는 배와 비교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습니다.  비록 지금 한인 교회가 위기를 맞이하여 마치 예수님이 타고 계시던 배처럼 침몰하게 되었다 할지라도(8:23; 8:24; 4:37, 현대인의 성경) “내 평생에 가는길 순탄하여 잔잔한 같든지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편하다 영혼 평안해 영혼 내영혼 평안해”( 찬송가 413 “내 평생에 가는 길” 1절과 후렴) 하나님께 믿음으로 찬양을 드릴 있길 기원합니다.

 

-            또한 지금 우리 가정이 마치 침몰하고 있는 배처럼 폭풍과 같은 위기를 맞이했다 할지라도 풍랑이 배를 위협하며 깊은 입벌려 달려드나 바다에 노저어 항해하는 작은 배사공은 주님이라”( 찬송가 432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2절과 후렴) 하나님께 믿음으로 찬양을 드릴 있길 기원합니다.

 

(b)    둘째로, 그때 갑자기 광풍( 폭풍) 호수(바다) 내리쳐서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하였습니다(배가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합니다(8:23; 8:24; 4:37).

 

(i)                      저는 말씀을 묵상할 언젠가 묵상했던 성경에 나오는 종류의 폭풍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종류의 폭풍이란 바로징계의 폭풍”(Storm of Discipline)온전케 하는 폭풍”(Storm of Perfection)입니다.

 

·       여기서징계의 폭풍”(Storm of  Discipline)하면 저는 요나 선지자가 생각납니다.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요나 선지자에게 징계의 폭풍을 내리시사 그가 타고 있는 배가 깨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1:1-5).

 

-            이렇게 하나님께서 징계의 폭풍을 요나에게 내리신 이유는 요나로하여금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인 니느웨로 가서 성읍을 쳐서 외치길 하나님께서는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n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요나처럼 도망하고 있을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의 징계의 폭풍을 허락하시사 우리의 인생의 배만 거의 깨어지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에 푹퐁도 일으키십니다.  일으키시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입술의 죄의 자백과 더불어 회개의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 않을 수록 우리 마음 속에 폭풍이 점점 흉융하여 절대 우리는 평안함을 누릴 없습니다.  결코 흉융한 바다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의 행동을 보이기 전까지는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 임한 폭풍은 점점 흉융해 것입니다. 

 

n  우리 하나님은 작정하신 바를 이루어 나아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 전에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사 선택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들어 일으켜 사용하시고자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요나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회피하고 도망가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를 즉시 자백하고 회개하여 돌이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지 않고 요나처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 징계의 폭풍을 던지실 것입니다.  우리는 요나처럼 내리막길 신앙생활 속에서 밑층까지 내려가 깊이 잠들어 있으면 아니됩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계의 푹풍조차도 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으면 아니됩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우리 마음에 울려퍼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마음을 두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요나에게 말한 이방인 선장의 말처럼 우리는 잠자는데서 일어나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께 또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길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입술로만 죄를 자백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도 요나처럼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의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자백하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흉융한 바다와 우리 마음에 흉융한 바다는 즉시 잠잠케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줄수 없는 마음의 평안함을 누리게 것입니다.          

 

·       여기서온전케하는 폭풍”(Storm of Perfection)하면 저는 욥기 23 10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우리 속에 힘들고 어렵고 두려운 환경이나 상황들은 우리를 단련시켜서 온전하게 하려는 용광로와 같은 도구라 생각합니다.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빚어지는 우리의 모습 중에 바로 “인내”라는 것입니다.  마이클  몰리노스란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통한 영혼의 정화는 인내를 낳습니다.  고난의 복판에서 우리는 사랑과 자비 같은 최고의 성품들을 훈련할 있습니다.  고난은 자아를 전멸시키고 정화시킵니다. 세상의 것을 가져다가 천상의 것으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고난 중에 내버려두실 때만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때는 없습니다”(인터넷).   

 

-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8 22-25 말씀이나 마태복음 8 23-27 말씀이나 마가복음 4 35-41 말씀에 나오는 폭풍이야말로온전케하는 폭풍입니다.

 

n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성장시키고자 온전케 하는 폭풍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앙 성장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온전케 하는 폭풍을 주셨습니다.

 

#   고난의 목적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 거룩한 "귀히 쓰는 그릇"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딤후 2:21).  대장장이가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려고( 25:4) 은을 용광로에 넣고 높은 열을 가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연단하시려고(17:3) 우리를 "고난의 풀무 " 넣으시사( 48:10) 우리를 단련하십니다( 23:10).   목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한 그릇으로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25:4).  예를 들어, 욥에 경우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목적은 그를 단련하시사 순금 같이 되어 나오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욥기 23:10).

(c)    셋째로,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주님(선생님), 주님, 살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모른 척하십니까(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하고 부르짖었다(소리쳤다) 말씀을 묵상합니다(8:24; 8:25; 4: 38, 현대인의 성경).

 

(i)                      저는 말씀을 묵상할 마태복음 7 21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내게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 들어갈 것이다”(현대인의 성경)].

 

·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가는 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란 달리 말한다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6:29)로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 29절에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디로 말한다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석이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 위에 견고히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견고히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여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야 합니다.  그리할 어떠한 환난과 역경이 우리 속에 몰아친다 할지라도 결코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ii)                    또한 저는 ‘주님, 주님, 살려 주십시오’(8:24; 8:25; 4: 38, 현대인의 성경)라는 말씀을 묵상할 마태복음 14 30 현대인의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파도를 보고 무서워하다가 물에 빠져들어가자 '주님, 살려 주십시오!' 하고 소리쳤다.”

 

·       말씀의 문맥을 보면 새벽 4시쯤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배에 타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25).  배에 타고 있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해 있던 상황은 무엇이었습니까?  배가 이미 육지에서 떠나 상당히 멀리까지 갔었을 때였고 또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현대인의 성경) “바람이 휘몰아치므로 배가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24).  그들은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26).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즉시” 그들에게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27).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28).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29).  베드로는 예수님의 “오라”는 말씀을 듣고 “배에서 내려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습니다(29).  그러나 그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져 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리 질러” 예수님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했습니다[(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그가 파도를 보고 무서워하다가 물에 빠져들어가자 ‘주님, 살려 주십시오!’하고 소리쳤다”](30). 

 

-            예수님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으시며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의심하였느냐”(31).  그리고 예수님과 베드로가 배에 함께 오르자 바람이 멎었습니다(32).  배에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절하며 “주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33, 현대인의 성경).

 

(iii)                 저는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모른 척하십니까(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하고 부르짖었다(소리쳤다) 말씀(8:24; 8:25; 4: 38, 현대인의 성경) 묵상할 영상 형제가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의 (아가 8:3)”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 글을 다시금 읽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권능과 사랑의 손으로 성도를 사방으로 돌보시고 위로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 이유입니다(고후4:8). 

 

하나님은 그의 왼손이 머리를 바치듯 나를 평안 가운데서 굳게 지지하시고, 오른손이 감싸듯 완전한 보호 가운데서 크신 위로와 사랑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저 그의 품에 나를 내어맡기고 전적인 의존을 올려드릴 뿐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방위적인 보호 가운데서 사단은 좌로나 우로도 성도의 생명을 빼앗을 없고, 무엇으로도 성도의 즐거움을 침범할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모든 면에서 돌보심은 우리가 육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그분의 보호 아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그는 곤고한 나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셨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붙드시는 견인의 은혜 가운데서 내가 다시는 사망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께서 주신 영을 그의 왼팔로 견고하게 지지하시고, 오른팔로 감싸안아 사랑의 연합 가운데서 친밀한 사귐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이처럼 모든 면에서 돌보시는 하나님은 낮이나 밤에도 우리를 보호하시니, 어두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의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지지하고 지탱하고 있을 것이며, 과거에나 미래에도 영원 중에서 동일하게 보호하시니, 나는 그의 견고한 언약과 섭리 가운데서 위로와 확신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품에서만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돌보시고 보호하기 위하여 칼과 방패가 아닌 사랑으로 감싸안으시는 방법을 취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보호와 주권적인 돌보심은 그분과의 교제와 분리될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안전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만 나옵니다.

 

주님의 팔에 안기듯 하나님께 더욱 다가갈수록 우리의 안전은 견고해지고 하나님의 위로는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의 보호를 배우고, 그의 보호 가운데서 사랑을 배우며,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가운데서 성화되어 것입니다.”

 

(d)    넷째로, 예수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과 바다를 꾸짖자(바다를 향하여잠잠하라 고요하라하시니) 바람과 폭풍이 그치고 물결이 아주 잔잔해졌습니다(8:24; 8:26; 4:39, 현대인의 성경).

 

(i)                      저는 말씀을 묵상할 2021 10 28일에잔잔케 하시는 주님이란 제목 아래 묵상한 짧은 말씀 묵상 글을 다시금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폭풍이 휘몰아쳐서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하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잠이 드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이 깨웠을 일어나셔서 바람과 성난 파도를 꾸짖자 폭풍이 그치고 물결이 잔잔해졌습니다.  우리 인생에 폭풍같은 역경이 휘몰아쳐서 위기를 접한다 할지라도 주님을 잠잠히 신뢰하므로 힘을 얻어 주님께서 폭풍같은 역경을 어떻게 잔잔케 하시므로 우리를 위기에서 건지실지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립니다(이사야 30:15; 누가복음 8:23-24, 현대인의 성경).”

 

·       또한 저는 2020 1 5일에주님, 저는 위를 걷고 싶습니다.’하는 제목 아래 마태복음 14 28-29 말씀을 묵상한 글을 다시금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761524796).  결론 부분만 나눕니다: “새해 우리 승리장로교회 주제곡은 바로 “주 물위로 부르셨네”라는 미국 복음성가입니다.  복음성가 가사 중에 이런 가사 부분이 있습니다: “성령이 이끄시네 끝없는 믿음으로/ 위를 걷게 하시네/ 내가 주님을 부를 때”.  제가 영어 가사를 한번 한국어로 번역을 다시 해보았습니다: ‘성령님은 저를 국경이 없는 나의 신뢰로 이끌어 줍니다.  당신(주님) 부르시는 어디든지 저로 하여금 위를 걷게해 주세요.  여러분, 부분의 가사를 우리의 기도 제목으로 삼으십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라”고 말씀하실 때에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끌어 주시사 오직 주님만 전적으로 신뢰하고 주님의 “오라”는 말씀에 순종하길 기원합니다.  비록 바다에 바람이 분다할찌라도 우리는 사도 베드로처럼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기 보다 오직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다와 바람도 꾸짖으시사 아주 잔잔케 하신 주님만 바라보길 기원합니다( 8:24, 26, 현대인의 성경).  우리 모두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이신 주님만 바라보십시다( 12:2).  그리고 주님의 “오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가 타고 있는 “배”에서 내려 위로 걸으십시다.  이유는 주님이 계시지 않은 “배” 안에 있기보다 주님이 계신 “바다 위”가 안전하고 좋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믿음이 연약하여 주님을 의심하므로 베드로처럼 바람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져간다 할지라도 주님께 “주여 나를 살려주세요!’라고 부르짖으십시다.  그러면 우리 구원의 주님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시사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위를 걸으사 안전하게 배에 오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신앙 고백케 하실 것입니다.”

 

-            저는 말씀을 묵상할 2018 3 24일에 두려움을 아시고 용기를 주시는 주님이란 제목 아래사사가 7 10-11 상반절 말씀 중심으로 묵상한 글을 다시금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236088405).  중에 부분만 나눕니다: “두려운 일이 많은 세상입니다.  풍파가 많은 세상입니다.  마치 배를 타고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와 같은 세상에서 배의 사공되신 주님과 함께 천성을 향하여 노를 저어 향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새찬송가 432,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그런데 우리는 종중 기대하지 않았던 풍랑도 만나게 됩니다.  분명히 우리가 기도하고 기대했던 것은 잔잔한 바다 물결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예기치 않은 풍랑으로 인하여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풍랑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풍랑과 싸워 이겨보려고 힘써 노를 저어보곤 합니다(1:13).  그러면 그럴 수록 바다는 우리를 향하여 점점 흉융해지는 것을 봅니다(13).  때서야 우리는 우리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철저히 깨닫게 되어 두려움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습니다(14).  부르짖되 우리는 이상 우리의 뜻을 구하지 않고 주님께서 주님의 뜻대로 행하시길 간구합니다(14).  주님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우리가 접한 우리 인생의 풍랑을 잔잔케 하시므로(15) 결국 우리로 하여금 이상 풍랑을 두려워하기 보다 풍랑을 잔잔케 하시사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크게 두려워하게 하십니다(16).”

 

(e)    마지막 다섯째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렇게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너희 믿음은 어디 있느냐?(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와 물을 보고 명령해도 복종하는가?' 하고 서로 수군거렸다(8:25; 8:26-27; 4:40-41, 현대인의 성경).

 

(i)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6:30; 8:26; 16:8; 12:28), “믿음이 작은 자여 의심하였느냐”(14:31),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17:20), “너희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8:25),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4:40), “그들의 믿음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16:14),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0:27).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의 믿음을 보시고 한번도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책망하셨습니다. 

 

·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목격한 예수님의 제자들 조차도 믿음이 작고 또한 없는 같이 살아가므로 예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셨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혹시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예수님께서 나의 연약한 믿음 또는 믿음이 없는 것을 책망하고계시는구나?

 

-            제가 2017 10 29일에주님,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아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됩니다.”라는 제목 아래 누가복음 12 26 말씀 중심으로 묵상한 글을 다시금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127615210).  말씀 묵상 중에 부분만 나눕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는 염려하고 염려합니다.  이유는 우리는 “믿음이 작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28).  우리는 믿음이 작은 자들이기에 오늘도, 내일도 우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우리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합니다(22).”

 

(ii)                    저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왜 그렇게 무서워하느냐?’(8:26; 4:40, 현대인의 성경)하신 말씀을 묵상할 제가 2025 1 10 산불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편하다 영혼 영혼 평안해 ~”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의 글을 다시금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3720863009).  부분만 나눕니다:

 

·       폭풍과 파도를 아주 잔잔하게 만드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그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느냐?”하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4:40, 현대인의 성경).  결국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불신앙이 그들의 영혼을 불안하게 만들어 죽음의 두려움 가운데 있게 만들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주님은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의문 가운데서 의심을 하고 있으면 우리의 영혼은 잠잠히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요 결과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서 폭풍과 파도와 같은 것이 우리 마음을 덮치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사야 30 15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너희는 돌아와서 말없이 나를 신뢰하라. 그러면 너희가 구원을 받고 힘을 얻을 것이다.' 하셨으나 너희는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고.

 

-            예수님의 제자들은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은 도대체 예수님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복종하는지 크게 놀랬기 때문이었습니다(마가복음4:41, 현대인의 성경).  그만큼 그들은 그들의 선생님이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모르는만큼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배에 타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임마누엘 믿음으로 예수님처럼 평안히 잠을 자지 못하고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 평생에 가는 순탄하여 잔잔한 같든지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편하다 영혼 영혼 평안해 평안해 내영혼 내영혼 평안해”하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찬양을 드릴 있어야 합니다( 찬송가 413, “내 평생에 가는 길” 1절과 후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