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어떤 분인가요? (2)
[로마서 1장 1절]
로마서 1장 1절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지난 주 수요 예배 때 우리는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었다는 말씀에 대해서 묵상을 했었습니다. 우리는 특히 “종”에 대해서 묵상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우리가 나중에 로마서 1장 2절부터 묵상할 때 묵상할 것입니다. 오늘은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1절)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바울은 어떻게 “사도”가 되었습니까? 그는 자기가 힘써서나 노력해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습니다(갈1:1). 그리고 성령님은 안디옥 교회로 하여금 주님을 섬기며 금식할 때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바울)을 따로 세우라”하셔서(행13:2)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1절)은 금식하고 기도한 후 바나바와 사울(바울)에게 안수하여 보냈습니다(3절).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유대인)의 사도로 삼으신 하나님은 바울에게 역사하사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갈2:8).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란 하나님께 부르심과 사명을 받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는 사도란 직책은 없지만 그 “사도”란 의미대로 하나님이 부르시사 사명을 주시고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10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사(도마는 그곳에 없었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사도들)만 보내신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그 날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을 만나셨는데 그들이 예수님이신 줄 알아보았을 때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 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눅23:33). 여기서 예수님의 열 한 제자(사도)들과 함께 한 자들처럼 우리도 주님께 부르심과 사명을 받아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순종하여 주님께서 가라는 곳은 어디든지 가야 합니다. 새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가사입니다: (1절)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2절) 이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 없이 드리리다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 없이 드리리다, (3절)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 가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아멘.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시는 곳이 어디일까요? 가장 어려운 곳이 아닐까요? 가장 어려운 곳은 어디입니까? 바로 우리 가정입니다[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셨기에 우리는 권능을 받아 우리의 “예루살렘”(행1:8)은 가정으로 가야 함]. 우리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 각자 가정으로 가서 우리 가정을 선교지로 삼고, 우리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선교의 대상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입술로 전할 뿐만 아니라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므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빌1:27). 그래서 우리는 가정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새찬송가 559장 “사철에 봄바람 불어잇고” 가사입니다: (1절) 사철에 봄바람 불어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집 즐거운 동산이라, (2절)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3절)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식구가 한상에 둘러서 먹고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후렴)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가정을 복음화해야 하는 것일까요? 베드로전서 3장 15절 말씀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우리는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삼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온유와 두려움으로” 가정 복음화를 해야 합니다. 여기서 “온유”를 묵상할 때 마태복음 11장 29절 말씀이 생각남: “나(예수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 에베소서 4장 2절 말씀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여기서 “두려움”이란 하나님에 대해서 거룩한 두려움을 가져야지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믿고 두려워서 떠는 두려움을 가져서는 아니됩니다(약2:19).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와 스랍(스랍들)을 환상으로 만나 두려워하며 자신의 죄성을 깨닫고, 석탄으로 정결케 된 후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부르짖으며 소명받는 이사야 6장 1-8절 말씀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부르심, 그리고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받아 순종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부르심에 순종하여 사명을 받아 주님이 우리를 보내시는 가정으로 가서 가정 복음화를 위해 힘써 가정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가정을 천국으로 세우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천국의 계명인 예수님의 이중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마 22:37, 39). 또한 성령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주시사(롬5:5)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더욱더, 점진적으로 우리 안에 충만하게 하십니다(갈5:22). 그러므로 우리의 책임은 그 계명에 순종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따라 온 가족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빌1:27; 2:2) 함께 하나님을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며, 서로를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가정은 천국화되어가므로 천국의 기쁨(요15:11; 요일1:4)과 사랑(시33:5)과 평화(롬15:13)가 충만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 가정을 지옥으로 만들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의 계명인 예수님의 이중 계명을 불순종하게 만들고 있으며(엡2:2; 5:6) 도리어 지옥의 계명인 서로 미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창37:5; 신22:13; 마24:10; 요일2:9). 또한 거짓의 영과 더불어 사탄의 미움을 우리에게 자꾸만 심어서(신21:17; 삼하13:15; 잠10:12) 어두움의 일을 하게 만들므로(사29:15; 겔 8:12; 엡 5:11) 가정의 쓴 열매를 맺게하고 있습니다(롬7:5). 그러므로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지옥 같은 집에 가고 싶지 않게 만들고 있으며 도리어 집 밖에서 맴돌게 만들던지 더 나아가서 집에서 멀리 멀리 떠나고 싶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식구들을 보고 싶지 않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배우자를 더욱더 미워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한 배우자를 향한 커지는 미움 속에서 그 부부 관계의 균열의 틈을 노려(참고: 느4:3, 히브리어로 "틈"; 6:1) 사탄은 다른 여자/남자를 관심을 갖게 만들고 있고, 안목의 정욕과 더불어 육신의 정욕으로(요일2:16) 그 다른 이성을 탐하게 만들므로 결국에는 외도하게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사탄은 우리 가정을 무너트리고 파괴하므로 가정 천국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며 도리어 우리 가정을 지옥과 같은 가정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전쟁입니다! 가정은 영적 전쟁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