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우리 마음이
이러한 마음이 되야 하지 않겠습니까?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누가복음 8:4-15)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8장 4-15절에 나와있는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의 말씀을 묵상함에 있어서 마태복음 13장 3-23절과 마가복음 4장 3-20절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a) 이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눅8:4)에서 “씨를 뿌리는 자”(5절)는 예수님 자신을 의미하며, 예수님께서 뿌리시는 “씨”는 “하나님의 말씀”(11절), “천국 말씀”(마13:19)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네 가지 땅은 길가, 흙이 얕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참고: 인터넷).
(i) 첫째로, “길가”에 떨어진 “씨”는 발에 밟히고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는 말씀(눅8:5)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는 하였으나 그들이 믿어 구원받지 못하도록 말씀을 들었을 때에 악한 마귀(사탄)가 즉시 와서 그들의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는 것을 가리킵니다(12절; 마13:19; 막4:15, 현대인의 성경).
· 여기서 우리는 악한 마귀(사탄)의 목적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목적이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로 하여금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눅8:12).
- 이 목적을 이루고자 악한 마귀(사탄)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즉시 와서 우리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았아 갑니다(막4:15, 현대인의 성경).
n 요한복음 10장 10절 상반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 진정 악한 마귀(사탄)는 우리 마음에 뿌려진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하는 도둑입니다.
· 그러면 우리가 악한 마귀(사탄)에게 우리 마음에 뿌려진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 당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시편 119편 56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 이다.”
-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는 듣고 배우는 말씀을 “내 소유”로 만들 수 있습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우리는 직접 성경책을 펴서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재 우리 삶 속에 순종하고 적용하므로 살아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체험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소유”로 만들 수 있는 방법입니다(참고: “나의 소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095401752).
n “’내 소유’로 만드는 방법:
묵상 (Meditation): 말씀을 읽고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마음속에 새기는 과정.
기쁨 (Delight): 말씀을 즐거워하고, 세상의 어떤 재물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
순종 (Obedience): 말씀대로 살아감으로써 그 말씀을 자신의 삶에 실제적인 소유로 만드는 것.
의지 (Reliance): 삶의 모든 순간, 특히 어려움 속에서 말씀을 의지하고 따르는 것.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소유'로 삼는다는 것은 말씀을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아 묵상하고, 순종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인터넷).
(ii) 둘째로, “흙이 얕은 돌밭”(마13:5)에 떨어진 “씨”는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고 습기(물기)가 없으므로 말랐다는 말씀(5-6절; 막4:5-6; 눅8:6)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으므로[“그것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지 못하고”(마13:21; 막4:17, 현대인의 성경)] 잠시 믿음으로 견디다가 그 말씀 때문에 환난(고통)이나 박해(핍박)나 시험을 받으면 곧 넘어지는 사람이요 떨어져 나가는 사람[“배반하는 자”(눅8:13, 개역개정)]을 말합니다(눅8:13; 마13:20-21, 현대인의 성경).
· 여기서 저는 신앙의 뿌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됩니다. “신앙의 뿌리란, 신앙의 본질적인 기초와 근원을 의미하며, 굳건한 믿음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기독교에서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내리는 것을 말하며,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과 삶의 태도를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적 동의를 넘어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깊은 내적 확신과 연결됩니다”(인터넷).
- “핵심적인 의미
예수 그리스도: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뿌리로, 그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을 삶의 양식으로 삼아, 말씀에 깊이 뿌리내려 지혜와 능력을 얻는 것을 뜻합니다.
내적 확신: 시련이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견고한 믿음의 상태를 비유합니다.
사랑과 순종: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 그리고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 등)를 맺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신앙의 뿌리가 깊다는 것의 의미
견고함: 작은 바람(환난, 핍박)에도 쉽게 넘어지지 않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장: 복음의 씨앗이 마음에 뿌리내려, 삶 속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납니다.
근원적 동기: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목적을 갖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신앙의 뿌리는 신앙의 기초, 본질, 그리고 굳건한 믿음의 상태를 나타내며, 그리스도와 말씀에 깊이 박혀 흔들리지 않고 성장하는 삶의 중심을 의미합니다”(인터넷).
· 제가 2024년 9월 4일에 “우리 믿음의 뿌리가 마르면 안 됩니다.”란 제목 아래 호세아 9장 16절 말씀 중심으로 묵상하고 쓴 글 중에 몇 부분만 나누고 싶습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3571927996):
“나무의 뿌리가 마르면 그 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의 믿음의 뿌리가 마르면 그 부모의 자녀는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참고: 호세아 9:16,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 묵상을 통해 얻은 교훈은 ‘열매보다 뿌리에 초점을 맞추고 신앙생활을 하자!’입니다.”
“저는 ‘뿌리’를 생각할 때 예레미야 17장 7-10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 여호와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그는 물가에 심겨져서 그 뿌리를 시내로 뻗어 더위가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잎이 언제나 푸르고 싱싱하며, 가뭄이 심한 해에도 걱정이 없고, 항상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은 자이다. 그 무엇보다도 거짓되고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누가 그런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 여호와는 마음을 살피고 그 깊은 동기를 조사해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겠다.’”
“… 나(우리)의 신앙(믿음)의 뿌리가 결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저는 이 두 말씀(렘17:7-10 & 시1:1-3)을 연합해서 묵상할 때 신앙의 뿌리가 마치 ‘물가’나 ‘시냇가’에 심겨진 믿음의 사람(또는 복 있는 사람)은 ‘그 뿌리’가 “시내로 뻗어”있기에 ‘더위가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뭄이 심한 해에도 걱정이 없’다는 말씀에 은혜를 받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가 영적으로 ‘가뭄이 심한 해’를 맞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뭄’은 다름 아닌 아모스 8장 1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로서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못하는?) 가뭄’이라 생각합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저는 디모데후서 4장 3절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현대인의 성경)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듣지 않고 오히려 자기 욕심을 따를 것이며 자기들의 귀를 즐겁게하는 교사들의 말을 들으려고 그들에게 모여들 때가 올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영적 말씀의 가뭄이 왔지만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복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있기에 아무 걱정 없이 항상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이 신앙 생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iii) 셋째로, “가시떨기”(눅8:8, 14)에 떨어진 “씨”는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으므로(7절; 마13:7)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막4:7,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만 살아가는 동안에 이 세상의 걱정(염려)[“이생의 염려”(눅8:14)]과 재물의 유혹(마13:22; 막4:19)에 얽매이고 그 밖에 여려 가지 욕심이 들어와서(막4:19, 현대인의 성경) 쾌락에 빠져 “말씀이 막혀”(마13:22) 말씀대로 생활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입니다(눅8:14; 막4:19, 현대인의 성경).
· ‘가시떨기에 씨가 뿌려진 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그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즉, 그 말씀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가시떨기에 씨가 뿌려진 자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세상의 염려(걱정)와 재물에 대한 유혹 때문입니다(마13:22). 이 외에 “기타 욕심”(the desires for other things)(막4:19)과 “항락에 기운”(쾌락)(pleasures)(눅8:14)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대로 생활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 마태복음 13장 22절을 보면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라고 마태는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막혀”라는 말은 영어로 “choke it”이란 말로서그 의미는 ‘숨이 막히다, 질식시키다’, ‘목을 조르다’는 뜻입니다. 또한 영어 단어는 “strangle”로서 그 의미는 ‘목을 조이다’, ‘목 졸라 죽이다’입니다. 이렇게 한번 생각하면 좀 이해하기가 쉬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그 말씀을 머리에 넣었는데 그 말씀이 우리 마음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가 우리 목을 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 무엇인가는 바로 우리 마음에 있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및 쾌락입니다.
n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환경은, 그 좋은 씨가 섭취해야할 영양을 다 빼앗기 때문에 그것이 결실하지 못한다”(박윤선). 무슨 뜻입니까? 만일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가시떨기와 같다면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우리 마음이 이미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 대한 욕심과 기타 욕심 및 쾌락에게 빼았겨서 그 말씀대로 살지못하므로 열매 맺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이런 저런 세상의 염려든지 재물의 유혹이나 욕심과 쾌락에 우리 마음이 빼았겼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수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염려하며 재물의 유혹과 욕심과 쾌락에 빠져서 하나님께 범죄할 것입니다.
· 제가 2019년 5월 7일에 “’영적 혈관’이 막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라는 제목 아래 쓴 짧은 말씀 묵상 글입니다:
“어제 주일 만난 사람들 중 두 형제님이 혈관에 문제가 있어서 큰 일을 당했었다. 한 분은 혈관에 '피떡'이 있어서 심장 마비(?)가 올 수 있을 정도였던 것 같았고, 또 다른 형제는 실제로 뇌출혈이 작은게 왔었다.
오늘 이 아침에 이 두 형제님이 생각났는데 동시에 생각난 말씀이 마태복음 13장 22절이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나는 생각난 이 말씀을 생각하는 가운데 ‘영적 혈관’이 막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성경에서는 그 영적 혈관이 막히는 이유가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지금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을 인해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또 듣지만 영적 혈관이 점점 더 막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 그러다가는 영적 혈곽이 꽉 막히게 되면 주님을 향한 마음 사랑에 심장 마비가 올 수 있지 않을까? 주님을 알아가는 머리 지식에 영적 뇌출혈이 올 수 있지 않을까 ...?”
· 제가 2018년 3월 22일에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라는 제목 아래 쓴 짧은 말씀 묵상의 글입니다:
“귀를 기울여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잠언 22:17)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보전할 때(18절)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가 있습니다(19절).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전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보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13:22).”
(iv) 마지막 넷째로, “좋은 땅”(눅8:8, 15)에 뿌려진 “씨”는 잘 자라 100배의 열매를 맺었다는 말씀(8절, 현대인의 성경)은 “착하고 좋은 마음”[“바르고 착한 마음으로”(현대인의 성경)](15절) 말씀을 듣고 깨닫아[“받아들여”(막4:20, 현대인의 성경)] 그 말씀을 잘 간직하여 인내로 100배, 60배, 또는 30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을 가리킵니다(눅8:15; 마13:23, 현대인의 성경).
· ‘좋은 땅에 씨가 뿌려진 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열매를 맺는 자입니다. 누가복음 8장 1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잘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을 가리킨다”]. 여기서 “착하고 좋은 마음”(a noble and good heart)에서 ‘착하고 좋다’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를 보면 다른 두 단어이지만 그 의미는 ‘좋은’(good)이란 뜻입니다. 그렇지만 그 “좋은”이란 의미를 좀 구분할 수가 있는데 두 번째 단어인 “좋은 마음”(good heart)이란 도덕적으로 똑바른[곧은, 고결(순결)한(noble)] 마음을 가리킵니다(Zodhiates). 그런가 하면 첫 번째 단어인 “착하고”란 단어는 “아름답다’ (beautiful)이란 의미도 있는데 그 의미에는 ‘건강하다, 바르다, 적합하다’(healthy, sound, fit)이란 의미가 내포되 있습니다(Friberg). 이 의미를 생각할 때 누가복음 8장 15절에 나와 있는 “착하고”란 개혁개정 성경의 번역을 현대인의 성경에서 “바르고”라고 번역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단어를 구분한 이유는 좋은 땅에 씨가 뿌려진 자의 마음은 어떠한지 좀 더 정확하게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바르고 건강하되 하나님의 말씀 받기가 적합한 마음입니다. 또한 그 마음은 도덕적으로 똑바르고 고결(순결)한 마음으로서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 저는 이 마음을 생각할 때 사도행전 17장 11절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현대인의 성경)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며 그것을 확인하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 이 말씀이 생각난 이유는 누가복음 8장 1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착한 마음’의 영어 번역인 “a noble heart’를 생각할때 사도행전 17장 1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이“더 너그러워서”(개혁개정) 또는 “신사적이어서”(현대인의 성경)라고 말씀하였는데 그 단어의 영어 번역이 “noble character”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 구절 말씀을 연관해서 묵상했을 때 마태복음 13장 8절과 2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좋은 땅”, 즉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뿌려진 좋은 땅과 같은 마음이 무엇인지 좀 더 풍성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이란 ‘바르고 건강하되 하나님의 말씀 받기가 적합한 마음이요 도덕적으로 똑바르고 순결한 마음으로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마음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확인하려고 날마다 성경을 연구(상고 – 곰곰히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러한 마음이 되야 하지 않겠습니까? (참고: “좋은 땅에 뿌려진 씨”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1878978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