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안이 열린 성도님은 영적으로 맹인이요 악한 열매를 맺는
거짓 목사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스스로 말씀을 통해 영적인 분별력을 키워서
선한 열매를 맺는 참 목사님을 따릅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누가복음 6:39-40, 43-45)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6장 39절을 묵상할 때 먼저 마태복음 15장 14절 말씀도 함께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a) 그리할 때 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는 누구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눈먼 인도자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
(i) 여기서”눈먼 인도자들”은 바로 “외식하는 자들”(7절)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1절)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그 율법적이고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켜 “눈먼 인도자들”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이 율법을 잘못 해석하고 자신들조차 영적으로 어두워 남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어 결국 함께 파멸[“구덩이”(14절, 눅6:39)]이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참고: 인터넷).
· 여기서 그 율법적이고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을 잘못 해석하였다는 말의 의미는 그들은 그들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마15:3, 현대인의 성경).
-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누구든지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만 하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 것(헛되게 한 것)입니다(4-6절, 현대인의 성경).
n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만 내세우고 있다” “너희는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렸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막7:8-9, 현대인의 성경). 목사님들이 교회의 전통(?)대로 아내와 자녀(가족)를 돌보지 않고 그들을 희생해서라도 주님의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는 것이요(13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것이며(9절, 현대인의 성경) “믿음을 저버린 사람이며 불신자보다 더 나쁩니다”(딤전5:8, 현대인의 성경).
·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7-9절).
- 지금 말로 한다면, 교회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자들은 주님 보시기에 위선자들이요, 입술로만 주님을 존경하고 마음은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으면, 주님을 헛되이 예배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위선자들은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그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으며(23:25, 현대인의 성경) 또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로서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해골과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27절, 현대인의 성경).
(b)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6장 39절과 마태복음 15장 14절 말씀을 함께 묵상할 때 두 번째로 생각하게 됨 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맹인”인 “외식하는 자들”(7절)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1절), 즉 그 율법적이고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이 인도하는 또 다른 “맹인”(눅6:39; 마15:14)은 누구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지입니다.
(i) 그들은 다름 아닌 영적으로 어두워 분별력이 없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 따르며 영적인 분별력을 잃고 함께 멸망의 길[“구덩이”(눅6:39; 마15:14)]로 빠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참고: 인터넷).
· 제가2018년7월18일에 창세기27장23절 말씀 중심으로 “목사님, 제발 분별해서 축복해 주세요!”란 제목 아래 쓴 말씀 묵상 글의 한 부분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많은 우리 목사님들이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는 영안이 어두워져서 분별하지 못하고 함부로 성도님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도님들이 야곱처럼 속이면서 살고 있는데, 분명히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분명히 성도님들이 이 세상과 짝지어 살면서 자기의 삶을 정당화하려고 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 목사님들은 예수님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그 성도님들을 책망하기보다(계3:19, 참고: 잠27:5) 오히려 그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목사님들은 영안이 어두워져서 영안이 어두운 성도님들이 좋아하는 물질의 축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지금 성도님들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있지 않는데 우리 목사님들은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이 더할 수 있도록 축복 기도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지금은 축복 기도할 때가 아닌데, 오히려 분명히 지금 우리 모두가 회개할 때인데 말입니다. 지금 영안이 어두운 우리 목사님들이 영안이 어두운 성도님들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지금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고 있습니다(마15:14). 그 결과 둘이 다 구덩이에 빠졌습니다(14절). 이미 지금 맹인인 우리 목사님들과 맹인인 성도님들이 구덩이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조차도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정도로 지금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잃었습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321175567].
- 여기서 두 문장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1) “지금 우리 목사님들은 영안이 어두워져서 영안이 어두운 성도님들이 좋아하는 물질의 축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2) “지금 영안이 어두운 우리 목사님들이 영안이 어두운 성도님들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n 영안이 어두운 목사님들이 영안이 어두운 성도님들을 인도하고 있는 광경이 상상이 되십니까?
· 제가 컴퓨터 인공 지능에게 “영안이 어두운 목사님들이 영안이 어두운 성도님들을 인도하고 있는 광경”이라고 물었더니 이러한 답변을 얻었습니다: “'영안이 어두운 목사님이 영안이 어두운 성도들을 인도하는 광경'은 성경적 관점에서 영적인 무지나 맹목 속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위험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성령의 인도나 말씀 중심의 참된 목회 부재를 강조하며,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천국을 사모하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메시지입니다. 이는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과 같아 결국 모두 웅덩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마태복음 15:14)와 연결되며, 진리 안에서 바른 영적 분별과 인도를 받아야 함을 촉구하는 강력한 경고의 의미를 갖습니다”(인터넷).
- “핵심 의미와 성경적 배경
영안(靈眼)의 중요성: 단순히 육신의 시력이 아닌, 성령의 조명으로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를 분별하는 '영적인 눈'을 의미합니다.
성경적 경고: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마태복음 15:14)처럼, 영적으로 어두운 인도자가 영적으로 어두운 무리를 이끌면 모두 진리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진리 부재의 위험: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요한복음 17:3), 참된 생명과 구원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태를 지칭하며, 이는 구원과 생명이 없는 상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비유가 시사하는 바
참된 인도자의 필요: 성령의 조명으로 영안이 열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성경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목회자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성도들의 깨어있음: 성도들 또한 영적으로 깨어 분별력을 가지고,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스스로 말씀을 통해 영적인 분별력을 키워야 함을 강조합니다.
세상의 가치관 vs. 영적 가치관: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영안을 통해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삶이 참된 신앙임을 역설합니다”(인터넷).
n 여기서 저는 “성도들의 깨어있음: 성도들 또한 영적으로 깨어 분별력을 가지고,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스스로 말씀을 통해 영적인 분별력을 키워야 함을 강조합니다.”라는 글을 읽을 때 제가2020년8월 31일에 “분별해야 합니다. (3)”란 제목 아래 요한일서 4장 1-6절 말씀을 묵상한 글을 다시금 읽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성경은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1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현대인의 성경) “사랑하는 여러분, 영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믿지 말고 그들이 주장하는 영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시험해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목사님들의 설교를 무턱대고 믿어야 하나요? 아니면, 목사님들의 설교조차도 성경에 근거해서 맞는 말씀인지 아니면 틀린 말인지 분별해야 하나요? 성경 사도행전 17장11절을 보면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을 사도 바울을 통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서를 연구했다는 말입니다(공동번역). 이 말씀을 현대에 적용한다면, 여러분이 목사님들을 통해서 듣는 설교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날마다 연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젠 옛날에 어떤 목사님들이 설교 시간에 말한 것처럼 성경을 덮어 놓고 무조건 믿어서는 아니됨.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거짓 목사들이 너무 많고,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거짓 복음, 거짓 설교가 난무하기 때문입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2075812868].
(2)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6장 40절인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는 말씀을 묵상할 때 먼저 마태복음 10장24-25절 상반절 말씀도 함께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못하고 종이 주인보다 높지 못하다. 제자는 스승과 같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고 종은 주인과 같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현대인의 성경)].
(a) 이 두 성경구절에서 ‘제자가 그 선생(스승)보다 높지 못하다’라는 말씀의 의미는 맹인인 제자는 맹인인 선생(스승)보다 못할 것이고 바리새인들의 지도와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은 여전히 그 거짓된 교훈의 틀에 속박당하고 말뿐이라는 의미입니다(호크마).
(i) 그리고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눅6:40하)[‘제자가 그 선생 같으면 족하도다’(마1)25]]는 말씀은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그 선생의 가르침을 온전히 좇게 된다면 그 선생과 똑같은 바리새인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호크마).
· 그러나 이 말씀의 이면에는 예수님의 다른 의도, 즉 '나를 따르는 제자들은 이 사람보다는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 나의 제자들은 지금까지의 모든 가르침을 통하여 온전케 되어 나와 같이 되라'는 권고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생들 중에 그 누구도 예수님의 수준에까지 이를 수는 없지만, 성도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범사에 자라가야 합니다(엡 4:15; 골 1:18)(호크마).
-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외식하는 잘못된 스승을 따르지 않고 참 선생님(스승)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깨닫고 실천하여 성장하고 성령님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을 닮아 성숙해져야 합니다(참고: 인터넷).
n 제자는 선생님을 뛰어넘을 수 없고, 선생님이 겪는 수모와 핍박과 고난을 제자도 겪을 수 있으니, 그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주님과 같은 고난의 길을 가는 것 자체를 만족해야 한다는, 제자의 각오와 인내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마10:25)(인터넷).
(3) 저는 누가복음 6장 43-45절 말씀을 묵상할 때 마태복음 7장 16-20절 말씀도 함께 연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리할 때 저는 한 가지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그 한 가지란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안다는 것입니다(눅6:44; 마7:16, 20).
(a) 누가복음 6장 44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나무는 그 열매를 보면 안다. …”(현대인의 성경)]. 마태복음 7장 16절 상반절과 20절 말씀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아는 것처럼 …”(현대인의 성경)](16절상),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20절).
(i) 여기 마태복음 7장 16절 상반절과 20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들”이란 “거짓 선지자들”(15절)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굶주린 이리떼와 같다”(현대인의 성경)”].
· 이 거짓 선지자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수 있다(16, 20절)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열매”(16, 20절)은 무엇인가요? 다시 말하면, 참 선지자가 아니라 거짓 선지자인지 알 수 있는 그 “열매”란 무엇인가요?
- 제가 컴퓨터 인공지능(AI)에게 “거짓 선지자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라고 질문을 하니까 이렇게 답변을 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를 알아보려면 그들의 가르침이 성경의 진리와 일치하는지, 그들의 삶과 성품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지, 그리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신성)을 부인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성경은 특히 열매(삶의 변화)와 말씀에 대한 충실성으로 그들을 분별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n 1. 가르침과 성경의 일치성
성경 왜곡: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거나 변질시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무시하거나 왜곡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핵심 부인: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거나, 스스로를 재림 예수, 성령, 또는 하나님이라 주장하며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합니다.
2. 삶과 성품 (열매)
탐욕과 타락: 돈, 권력, 성적인 욕망 등 세상적인 정욕을 추구하며,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합니다.
성령의 열매 부재: 참 선지자에게서 나타나는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의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고, 사탄의 행위를 닮은 모습(거짓, 시기, 분쟁 등)이 보입니다.
교만함: 자신을 높이며, 다른 사람을 미혹하고 속이는 데 능숙합니다.
3. 예언의 성취
예언의 진실성: 그들이 예언한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적이나 기적만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말씀과 삶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4. 결론: 성경을 깊이 이해하라
가짜를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본인 성경 말씀(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알면 거짓된 가르침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거짓 선지자들이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고 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경고합니다(마태복음 7:15)”(인터넷).
· 제가2018년 7월 18일에 “거짓 목사와 참 목사”라는 제목 아래 예레미야 23장 28-29절 말씀 중심으로 묵상한 글 중에 두 부분만 나눕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321177004]:
“거짓 목사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전하지 않고 자기의 마음의 간교한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거짓된 마음에서 거짓말을 내뱉습니다. 범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너희가 평안하리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17절)고 말하면서 위로의 설교를 합니다. 거짓 목사들은 바른 교훈을 전하기보다 듣는 자들의 간지러운 귀를 긁어 줍니다(딤후4:3). 경책과 경계와 권면이 없습니다(2절). 그들은 범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이키기보다 오히려 그들로하여금 힘있게 하여 계속 범죄케 합니다(렘23:14). 거짓 목사들은 성도들을 그릇 인도하고 있습니다(13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거짓 목사들 자신들이 그릇된 길을 달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21절 – “달음질”). 자기들 스스로를 더럽히면서 악을 행하되 하나님의 집 안에서도 악행을 범하므로 말미암아 결국 그들에게서 더러움이 나와서 온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참 선지자는 성실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18절). 받아 그 말씀을 성실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합니다(28절). 결코 그는 거짓 선지자들처럼 함부로 자신의 혀를 놀리지 않습니다(31절). 참 선지자가 전파하는 말씀은 “불” 같으며 또한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습니다(29절). 그러므로 참 선지자는 심령들의 강퍅한 마음을 녹이며 부스러뜨릴 수 있는 능력의 말씀을 성실하게 선포합니다. 그 능력있는 말씀을 성실히 전파하므로 말미암아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 하여금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합니다(22절).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여(27절) 하나님에게로 나아오게 합니다(14절). 그러므로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유익합니다(32절).”
· 제가2018년 7월 18일에 “우리들 가운데 참 목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란 제목 아래 에스겔 2장 5절 말씀 중심으로 묵상한 글에서 누가 참 목사인지 구분할 수 있는 기준 3가지를 나눕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321174816]:
첫째로, 참 목사는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든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입니다[(겔2:7)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참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대로 전합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탄식과 슬픔의 말씀이든 재앙의 말씀이든 그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결코 그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습니다(신4:2; 12:32).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성실히 전합니다(렘 23:28). 이러한 참 목사를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바른 교훈의 말씀을 그대로 듣기를 싫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딤후2:3).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따라 우리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설교 듣기를 좋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절).
둘째로, 참 목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겔2:6)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참 목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마10:28). 오히려 그는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28절). 이렇게 그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서도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를 구원하며 사람들의 손에서 그를 건져 주실 것을(렘42:11) 믿기 때문입니다. 즉, 참 목사는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심을 믿기에(신7:21) 그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참 목사는 패역한 사람들 같이 패역하지 않습니다[(겔2:8)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참 목사는 하나님께 충성합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기에(고전4:2) 그는 죽도록 충성합니다(계2:10).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하나님의 목소리가 그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합니다(렘42:6). 순종하되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처럼 받는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웁니다(히5:8). 그리고 그는 순종함을 배우는 과정에서 예수님처럼 자기 뜻을 내려 놓고 오직 주님의 뜻이 이뤄지길 기도합니다(눅22:42). 참 목사는 오직 주님의 뜻이 이뤄지길 기도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합니다(빌2:8). 이러한 참 목사를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는 주님의 뜻보다 우리의 뜻이 이뤄지길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b) 마태복음 7장 17절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즉, 참된 선지자들(“좋은 나무”)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만 거짓 선지자들(“못된 나무”)은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i) 여기서 “아름다운”이란 헬라어 단어 “καλοὺς”(칼루스)는 본질적인 탁월함, 도덕적 아름다움, 적합성, 그리고 유익함이라는 개념들을 아우릅니다. 종종 자비로움을 강조하는 ἀγαθός(아가토스)[“좋은”(ἀγαθός) 나무(17절)]와는 달리, 이 단어는 인정받고 존경받는 가치를 강조합니다. 따라서 이 용어는 미학적, 윤리적, 실용적인 영역을 넘나들며 사용될 수 있으며, 성경은 이를 통해 행동, 사물, 사람, 그리고 결과를 하나님의 눈앞에서 "선하다"(good)고 묘사합니다(인터넷).
· 이 단어의 하나님의 성품과의 연관성입니다: 이 형용사는 종종 하나님 자신의 선하심을 가리킵니다.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온전한 선물은 위에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약 1:17). 하나님께서 καλός(선함)의 궁극적인 기준이시기 때문에, 이 특성을 지닌 모든 것은 하나님을 반영합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는 이 단어를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적용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느니라"(요 10:11). 여기서 이 단어는 고귀한 성품과 희생적인 행동을 모두 나타냅니다(인터넷).
- “좋은 나무”인 좋은 선지자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좋은) 선지자들로서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의 성품과 희생적인 행동을 나타냅니다.
(ii) 여기서 “못된 나무”(마7:17)에서 ”못된”이란 헬라어 단어 “σαπρὸν”(사프론)는 적절하게 말하자면, 썩은, 부패한, 너무 익은; (비유적으로) 지나치게 익은; 따라서 부패한 이란 의미입니다(인터넷). 즉, “못된 나무”인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부패한 사람들입니다.
· 예레미야17장9절 말씀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거짓 선지자들은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iii) 여기서 “나쁜 열매”(마7:17)에서 “나쁜”이란 헬라어 단어 “πονηροὺς”(포네루스)는 하나님의 선하심(divine goodness)과 정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본질적으로 고통으로 가득 찬 상태를 나타내며, 악에는 항상 따르는 피할 수 없는 고통(비참함)을 강조합니다(인터넷).
·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을 가진 거짓 선지자들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입니다.
- (마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n 겉모습이나 말뿐이 아닌, 삶의 실제적인 결과(열매)를 통해 그 사람의 본질을 알 수 있으며, 선한 삶을 살지 못하고 유익이 없는 사람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인터넷).
- (렘14:14-15)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n “하나님은 거짓 예언을 하는 자들과, 그 말을 믿는 백성 모두에게 임할 심판을 구체적으로 선언하십니다. 칼, 기근, 전염병은 당시 유다에 임할 재앙의 상징이며, 이는 거짓된 평안에 안주하는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보여줍니다”(인터넷).
(c) 마태복음 7장 16, 18절 말씀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i) 이 말씀을 보면 각 나무들에 열리는 열매들이 서로 바뀌어져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거짓 선지자들(“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지 결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참 선지자들(“좋은 나무”)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결코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런데 문제는 “못된 나무”인 거짓 선지자들이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고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었기에(15절) 겉모습만 보고서는 거짓 선지자들인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속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 바로 그들이 맺는 “나쁜 열매”(“가시나무”, “엉겅퀴”)(16절)로 거짓 선지자들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 “나쁜 열매”의 구체적인 예시입니다:
“거짓 가르침: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이익이나 인기를 위한 거짓 예언이나 왜곡된 말씀을 전파합니다.
잘못된 삶의 태도: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으며.
파괴적인 결과: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혼란에 빠지거나, 잘못된 길로 인도되어 결국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
영적인 열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 나쁜 나무인 거짓 선지자는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맺는 열매는 결국 가시나 엉겅퀴와 같이 해로운 것입니다”(인터넷).
n 여기서 거짓 선지자들의 '가시나 엉겅퀴와 같이 해로운 열매'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괴롭히고, 해를 끼치며,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없는, 쓸모없고 해로운 가르침과 행동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해로운 열매의 구체적인 의미는 이렇습니다(인터넷):
“영적인 괴로움과 파괴: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믿음을 흔들며, 결국 멸망으로 이끄는 가르침.
쓸모없고 헛된 가르침: 참된 열매(사랑, 의, 평화) 대신, 가시처럼 찌르는 고통을 주는 헛된 교리.
다른 복음: 성경의 핵심에서 벗어난, 이단적이거나 왜곡된 복음을 전파하는 행위.
결과로 나타나는 악행: 말뿐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행동이 부정적이고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
(d) 누가복음 6장 43-44절 말씀입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i) 여기서 “좋은 나무”는 “선한 사람”을 가리키며, “못된 나무”는 “악한 자”를 가리킵니다. 45절 말씀입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선한 사람은 마음 속에 쌓인 선으로 선한 말을 하고 악한 사람은 마음 속에 쌓인 악으로 악한 말을 한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기 마련이다”(현대인의 성경)].
(ii) 여기서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44절)하는 말씀은 나무의 본질에 따라 맺는 열매가 다르다는 원칙을 설명하며, 사람의 말과 행동(열매)을 통해 그 사람의 속성(나무)을 알 수 있으며, 선한 사람은 선한 열매를, 악한 사람은 악한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입니다(인터넷).
(iii) 사람의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며, 선한 사람은 좋은 생각과 의도에서 선한 말을, 악한 사람은 나쁜 생각과 의도에서 악한 말을 내놓습니다. 즉,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곧 그 사람의 '마음속에 쌓아둔 것'이며, 이는 그의 내면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인터넷).
· 사람은 겉으로 표현하는 모든 말과 행동(입으로 내는 것)이 이미 그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생각, 감정, 가치관(마음에 가득한 것)의 결과물입니다(인터넷).
- 마가복음 7장 20-23절 말씀입니다: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n 우리는 이 예수님의 비유 설명 말씀을 통해 무엇이 우리를 더럽히고 무엇이 우리를 더럽히지 않는 것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극도의 매너리즘(mannerism)과 위선에 빠져 있어서 늘 외형적인 더러움만을 씻어 내려고 하는 일에 급급해하지 말고(호크마) 내면적인 죄악을 깨달아 예수님의 십자가에 흘리신 보배로운 피의 능력을 믿고 우리 죄악을 고백하고 회개하므로 우리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e) 복음성가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가사입니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 라는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 걸
고마워요 그 사랑을 가르쳐준 당신께 주께서 허락하신 당신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욱 섬기며 이제 나도 세상에 전하리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 전하기위해
주께서 택하시고 이 땅에 심으셨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