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신의 들보 보지 못하면서 제 아내의 보고 잔소리하는 남편입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속에서 들보를 빼라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누가복음 6:41-42)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저는 누가복음 6 41-42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일 먼저 동일한 말씀이 기록되 있는 마태복음 7 3-5 말씀을 찾아 읽고 오늘 본문 누가복음 6 41-42 말씀과 비교를 했습니다. 

 

(a)    그리했을 가지 인지하게 다른점은 누가복음 6 42절에서는너는 속에 있는 둘보를 보지 못하면서 …”라고 기록돼 있는 것과 마태복음 7 4절에서는보라 속에 들보가 있는데 …”라고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i)                      그래서 저는 다른점을 이렇게 보완하여 문장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보라 속에 들보가 있는데 너는 속에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

 

(2)    다음에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6 41-4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들보 정확하게 원어 헬라어로 무슨 의미인지를 찾아보았습니다.

 

(a)    여기서”(the speck)라는 헬라어 단어 “κάρφος”(카르포스) 물리적 의미는작고 가벼운 티끌, 지푸라기 조각, 먼지, 나무 파편이며, 단어의 상징적인 의미는아주 사소한 , 결점, 입니다(인터넷).

 

(i)                      역사적 문화적 배경: 1세기 갈릴리 지방의 목수, 농부, 그리고 일반 가정 사람들은 눈에 겨가 들어가거나 눈꺼풀 아래에 나무 조각이 박히는 불편함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목공소에서 자란 예수님은 이러한 일상적인 불편함을 통해 영적인 위험을 설명하셨습니다.  눈에 들보가 박힌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안과 치료를 해주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당시 청중들에게는 분명히 우스꽝스러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인터넷).

 

·       구약 성경의 메아리: 비록 '카르포스'(καρφος, 티끌)라는 단어 자체는 70인역 성경[“70인역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고대 그리스어로 번역한 가장 오래된 번역본으로, 기원전 3세기경 알렉산드리아에서 히브리어를 모르는 유대인들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기독교에서 구약성경의 중요한 판본이자 신약성경 인용의 원본이 되었음(인터넷)] 나오지 않지만, 비유는 겨나 지푸라기가 무가치하거나 덧없는 것을 상징하는 구절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21:18; 1:4; 40:24).  이러한 배경은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죄악에 비하면 형제의 잘못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더욱 강조합니다’(인터넷).

 

(b)    저는”(the speck)라는 헬라어 단어 “κάρφος”(카르포스) 상징적인 의미인아주 사소한 , 결점, 생각할 얼마 전에 제가 글이 생각났습니다: “Love is not looking for faults in others; rather, it is seeking to cover them(사랑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덮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i)                      제가 글이 생각난 이유는 아마도 제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결점이나 잘못이나 자기들이 죄를 찾아 고발할 증거(구실) 찾고 있었기 때문인 같습니다(6:7).

 

·       실제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오른손 마른 사람의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고[“지켜보고”(현대인의 성경)](6:7)/”주시하고”(3:2) 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주시하고”(3:2) 헬라어 단어 “παρετήρουν”(파레테룬)지켜보다”, “주시하다 뜻인파라테레오”(παρατηρέω) 미완료 과거 시제로서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고소거리를 찾기 위해 계속적으로 예수님 주변에 머물면서 적의에 눈으로 면밀히 바라보고 있었음을 나타내 줍니다( 14:1; 20:20)(호크마).

 

(ii)                    제가사랑은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덮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라는 글을 쓰게 이유 하나는 제가 저희 부부 관계에 있어서 자꾸만 아내의결점”(?) 보였기 때문입니다.

 

·       여기서 제가결점이라고 “(?)”라고 의문을 표시한 이유는 저의 주관적인 관점에서의결점이지 객관적인 관점에는 결점이 아닐 있기 때문입니다. ㅎㅎ

 

-            예를 들어, 저는 저희 부부의 30 결혼 생활 속에서 아내의 가지 행동이 계속해서 저를 신경 쓰게 만들었습니다. ㅎㅎ  가지 아내의 행동이란 (1) (light) 끄지 않고 놓은 것과 (2) 안방 문을 끝까지 닫지 않고 살짝 열어놓은 입니다. ㅎㅎㅎ

 

n  제가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ㅎㅎㅎ하고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진짜 아주 사소한 (“ 상징직인 의미인아주 사소한 , 결점, 아닌데 말임 )인데 그녀의 가지 행동이 저로 하여금 신경 쓰게 만들었는지 저도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입니다.

 

(iii)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 5 하반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한국어 성경은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것이다하고 번역을 했는데, 영어 NIV 성경은 “it keeps no record of wrongs”(사랑은 상대방의 잘못들을 기록해 놓지 않습니다)하고 번역을 했습니다.

 

·       말씀의 원어 헬라어 의미는사랑은 상대방의 /해악/불의 등을 계산/기록/하지 않습니다/마음에 품지 않습니다으로서 악한 것을 마음에 새겨두고 앙심을 품거나 복수심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인터넷).

 

-            저의 경우는 부부 관계에 있이서 제가 아내의 아주 사소한 일이 결코악한 아니고 그저 저를 신경 쓰게 만드는 일이며 또한 그것에 대하여 제가 마음에 새겨두고 앙심을 품거나 복수심을 갖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하하.  그런데 저의 문제는 아주 사소한 일을 머리(기억) 기록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내가 (light) 키고 직장에 갔다든지, 부엌에서 일하다가 안방에 들어오면서 문을 끝까지 닫지 않다든지, 화장실 문을 끝까지 닫지 않으면 제가 일어나서 불을 끄고 문들을 닫습니다. ㅋㅋㅋ. 

 

n  이렇게 제가피곤한 스타일남편이랍니다.   그냥 넘어가도 되는 일이 저에게는 신경 쓰게(bother)하는지 저도 자신을 모르겠습니다. .

 

(iv)                 사랑은 허물을 덮습니다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 (벧전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2)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       여기서허물이란 헬라어 단어(벧전4:8) 히브리어 단어(10:12) 의미는”(sin, transgression)입니다.  그런데 제가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는 아내의’(불을 끄는 것을 깜박하고 문을 끝까지 닫지 않는 ) 결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내를 사랑한다면서 그녀의조차도 덮어주지 않고[못하고(?)] 거듭 지적()하곤 했습니다.

 

-            잠언 17 9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람은 사랑을 추구하는 자이며 그것을 거듭 말하는 사람은 친한 친구를 이간하는 자이다”(현대인의 성경).

 

n  저는 입술로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내의 거듭 말하는 남편으로서 사랑을 추구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ㅠㅠ  저의 죄입니다.

 

(c)    여기 누가복음 6 41-4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들보”(the log)라는 헬라어 단어δοκον” (도콘) 문자적 의미는 나무 들보”, "목재 들보", "집에서 판자를 받치는 통나무”, 집을 지탱하는판자", "기괴하게 튀어나온 기둥", ‘(비유적으로) 누군가의 시야를 완전히 가로막는 거대한 통나무(집에 사용되는 판자처럼)' 뜻합니다(인터넷).

 

(i)                      건축 관행의 역사적 배경: 1세기 팔레스타인 가옥들은 일반적으로 벽에서 벽까지 걸쳐 놓은 커다란 나무 들보로 지지되는 평평한 지붕을 가지고 있었으며, 위에 작은 기둥, 갈대, 진흙 등을 덮었습니다.  이러한 목재 들보는 필수적인 구조 요소였으며, 그것들이 없으면 집은 그대로 무너졌습니다.  목수 일에 익숙하고(마가복음 6:3) 건축에 사용되는 목재를 매일 접했던 예수님의 청중들은 '도코스'(δοκός, 들보) 크기와 중요성을 즉시 이해했을 것입니다’(인터넷).

 

·       신학적 주제(Theological Themes):

 

위선(Hypocrisy): 들보는 고백하지 않은 증대(심각) 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여!"라고 책망하신 말씀은(7:5; 6:42) 비유를 내면의 진실성보다 외적인 모습을 중시하는 바리새적 태도와 연결짓습니다( 23:25-28).

 

심판과 자비(Judgment and Mercy): 구절은 도덕적 분별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가르칩니다.  신자들은 정직한 자기 성찰 후에야 "의로운 판단으로 판단하라"(7:24) 명령을 따를 있습니다.

 

성화(Sanctification): 들보를 제거하는 것은 회개를 상징합니다. 개인적인 죄가 해결되지 않으면 영적인 시야가 흐려져 다른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섬기는 사역을 없게 됩니다’(인터넷).

 

(ii)                    제가 2024 10 22일에나는 마음이 병든 위선자입니다.”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 글입니다: “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상대방의 속에 있는 티는 보여서 마음 속으로라도 사람을 비판(판단)하면서 입술로는 ‘나니까 당신을 생각해서 당신의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고 말한다면, 나는 마음이 병든 위선자입니다(참고: 마태복음 7:1-5, 현대인의 성경).”

 

·       제가 같은 날인 2024 10 22일에나는 먼저 속에 들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빼내어야 합니다.”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 글입니다: “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속에 있는 티만 보았던 마음이 병든 위선자인 나는 먼저 속에 들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빼내어야 합니다.    후에야 내가 밝히 보고 상대방의 속에 있는 티도 빼낼 있을 것입니다(참고: 마태복음 7:3-5, 현대인의 성경).”

 

-            제가 같은 날인 2024 10 22일에내가 밝히 보게 되어서 상대방의 속에 있는 티도 빼내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할지라도 ...”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 글입니다: “내가 밝히 보게 되어서 상대방의 속에 있는 티도 빼내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할지라도 상대방이 자신의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고 속에 있는 티를 들보로 여기고만 있다면 사람은 나의 도움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나를 마음 속으로라도 비판할 것입니다(참고: 마태복음 7:1-5).”

 

n  제가 2018 10 5일에상대방 속에 있는 티보다 속에 있는 들보를 보아야 할텐데 ...”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 글입니다: “ 속에 들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 그리도 앞에 있는 형제/자매의 속에 있는 티는 보이는지, 그래서 나는 형제/자매에게 /녀의 속에 있는 티를 어떻게서든 티나게 알려주고 싶어한다.  뿐만 아니라 나는 주제도 모르고 형제/자매에게 /녀의 속에 있는 티를 빼주겠다고 한다(마태복음 7:3-4).  그러면 형제/자매는 나에게 뭐라고 말할까?   '당신의 속에 있는 들보나 먼저 빼라' 말할까?   아니면 ' 속에는 티가 있는게 아니라 들보가 있다' 말할까?  "들보"이든 ""이든 상대방 속에 있는 것보다 먼저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우선이겠다.  그런 속에 있는 들보 뿐만 아니라 티까지라도 빼면 밝히 있을 것이다.”

 

(3)    다음에 제가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누가복음 6 41-4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보고”(41)/”보지 못하면서”(42)에서보다라는 단어와깨닫지 못하느냐”(41)에서깨닫다라는 단어가 정확하게 원어 헬라어로 무슨 의미인지를 찾아보았습니다.

 

(a)    여기서보고라는 헬라어 단어 “βλέπεις”(블레페이스) 의미는보다”, “주시하다”, “눈으로 인식하다라는 뜻으로, 주로 육체적인 시각이나 피상적인 관찰을 의미합니다.  남의 작은 티는 보면서도 자기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행태를 나타냅니다(인터넷).

 

(i)                      그리고보지 못하면서라는 헬라어 문장 “μ βλέπων”( 블레폰) 의미는보는 것을 하지 않으면서라는 뜻으로, 자기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 문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강조합니다.  겉으로는 남을 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는 무지를 뜻합니다(인터넷).

 

·       깨닫지 못하느냐라는 헬라어 단어 “κατανοες”(카타노에이스)에서깨닫다”[“νοέω(노에오)]라는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보다 넘어깊이 생각하다”, “이해하다”, “꿰뚫어 알다”, “통찰하다라는 심오한 의미를 가집니다.  남의 작은 흠은 알지만, 자기 안의 허물을 근본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영적 무능함을 나타냅니다(인터넷).

 

(b)    저는 단어들의 헬라어 의미를 묵상할 바리새인들처럼 외식하는 위선자들은 남의 작은 티는 보면서도 자기 자신의 문제(“들보”) 보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꿰뚫어 알지 못하고, 통찰하지 못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i)                       저는 근본적인 원인은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고자(earn)했던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자기 ”(self-righteousness) 생각합니다.

 

·       이것이 바로 율법주의의 가장 특징인 자기 (self-righteousness)입니다.  여기서자기 자기의 종교적인 행실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하는 자세를 말합니다(인터넷).  이것을 성경적인 용어로 말한다면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은 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켜 행하므로 자기가 의롭다고 굳게 믿었습니다(18:9).  그리고 그들은 자기 의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을 얻을 있다고 믿었습니다.

 

-            율법주의(Legalism) 무엇입니까?  주로 우리가 율법주의 라고 하면 성경에 나오는 외식했던 바리새인들을 생각하며 율법주의란 그들처럼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행위중심 구원관).  제일 근본적인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은 바로 구약의 율법을 순종하므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 율법주의는 자기 (self-righteousness) 기초한 신앙입니다.  그래서 율법주의에서는 정해진 규정들과 규칙들을 지키는 자기의 헌신과 노력이 강조됩니다(인터넷).  그러나 자기 의에 기초한 율법주의적 신앙에는 2 가지 위험한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영적 우월감과 상습적인 죄책감입니다.  율법에 정해진 규정들과 규칙들을 남들보다 지키는 사람들은 영적 우월감을 가지므로 자기들보다 못한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반면에 지키지 못한 사람들은 상습적인 죄책감을 가집니다(인터넷).

 

n  그래서 예수님께서는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5:31-32)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인”은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의사가 필요없는 “건강한 사람”(31)들처럼 예수님이 필요가 없는 “의인”(32)들로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고자 했습니다[분명히 성경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하고 말씀하고 있는데두요(3:20)][참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사람에게만 의사가 필요하다. 나는 의로운 사람을 부르러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3714240653].

 

(ii)                    제가 2021 10 12일에하나님의 계명과 관련이 없는 …”이란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 글입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만든 많은 전통적인 법들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헛되이 예배하는 것이요, 자기 (self-righteousness) 말미암아 자기 공로의식 속에서 자기 영광을 추구할 위험이 많습니다(마가복음 7:4, 7, 현대인의 성경).”

 

·       제가 2017 6 8일에자기-(Self-righteousness)” 제목 아래 글입니다: “’자기-’(self-righteousness) 추구하는 나의 본능적인이기심’(selfishness) 오늘도 끊임없이 자신을 자랑(self-glory)하게 만들어 '자아-숭배'(self-idolatry) 하게 만들 것입니다.”

 

-            제가 2020 10 21일에자기 공로, 자기 , 마음의 완악함이란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 글입니다: “무엇인가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행한 것을 자기 공로로 여기면서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기를 좋아하게 되면 우리는 자기 (self-righteousness) 중독되어 마음이 완악해질 밖에 없습니다(마가복음 3:5)(오늘 가족 기도 모임 설교를 들으면서 생각).”

 

n  제가 2018 7 19일에자기 중심(Self-centeredness)” 제목 아래 가정(부부) 관한 중에 부분입니다: “참으로 위험한 것은 자기 중심적인 성향은 저로 하여금 ‘나는 맞고, 당신은 틀렸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를 뿐인데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마음 속으로라도 아내를 ‘틀렸다’, ‘잘못한다’ 등등 비판하고 심지어 정죄까지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중심적인 경향은 자신이 이렇게 하나님과 아내에게 죄를 범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자기 중심적인 경향은 아내에게제 자신의 (self-righteousness) 드러내기만 합니다.  그러니 저는 아내에게 ‘당신 잘났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중심적인 사고는 저로 하여금 자신을 못보게 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322063447].

 

n  제가 2022 1 29일에 “Divorce(이혼)”이란 제목 아래 글중에 부분입니다: “…  부부 관계, 어떻게 개선될 있을까요?  그냥 묻혀두면(?) 부부 관계 문제가 시간이 가면 나아질까요?  결코 아닙니다.  표면적으로 괜찮아질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면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부부 문제는 곪을 것이고 쌓일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님 안에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주님 안에서 부부 관계의 개선을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특히 헌신해야 점은 남편은 남편의 마음, 아내는 아내의 마음의 변화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말은 남편이 아내의 마음의 변화를 위해 헌신하고,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남편/아내인 자신의 마음의 변화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가 이리 말하는 이유는 아직도 아내/ 남편( 마음) 변화되기를 기도하며 기대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부부 관계의 문제를 주님 앞에서 자기 자신에게서 찾기보다 배우자에게서 발견하고 그것이 부부 관계의 문제의 들보라고 생각하고 있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는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속에서 들보를 빼라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6:42).   마음의들보 하나님 보시기에 건강하지 않고 병들어 있다면, 배우자의 삶의 계속 보일 것이고 또한 인하여 불만족 속에서 불평(원망)하면서 지적 하고 등등 ...  그래서 부부 갈등도 ...  그래서 부부 관계의 균열도 ... 그래서 분쟁으로 인한 불열까지도... 마음이 갈라서 정도로 .. 등등...  그러한 순서를 밟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병든 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병든 마음을 치유받고자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계속해서 나는 병든 마음의 관점으로 배우자를 바랄 것이고 ...  남편과 아내 둘다다 그렇다면 부부 관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에 가서는이혼이란 것까지 생각하고 심지어 배우자에게 말까지 하지 않겠습니까?  호세아 14 5 공동번역입니다: ‘이스라엘이 나를 배신하였다가 병들었으나, 나는 병든 마음을 고쳐주고 사랑하여 주리라 ....’  찬송가주여 나의 병든 몸을’ 1 가사입니다: ‘주여 나의 병든 (저는마음으로 수정해서) 고쳐 주소서 모든 (마음의 병이 고쳐지면 병든 부부 관계도 고쳐질 것이기에) 고쳐주마 약속하셨네 내가 지금 굳게 믿고 주님 앞에 구하오니 주여 크신 권능으로 고쳐 주소서’”[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2634459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