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주는 삶을 사십시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누가복음 6:38-40)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눅6:20)에게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36절)하고 말씀하신 후 자비로운 사람에게 4가지 교훈을 주시고 계십니다: (1) ‘너희는 비판하지 말라’(37절), (2) ‘너희는 정죄하지 말라’(37절), (3) ‘너희는 용서하라’(37절), 그리고 (4) ‘너희는 주라’(38절).
(a) 저는 예수님의 이 4가지 교훈을 묵상할 때 누가복음 6장 24-26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4가지 “화 있을진저”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25절), (2)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25절), (3)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25절), (3) ‘화 있을진저 너희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자들 …’(26절).
(i) 또한 저는 누가복음 6장 20-23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4가지 ‘복이 있도다’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 ‘복이 있도다 너희 가난한 자여 …’(20절), (2) ‘복이 있도다 너희 지금 주린 자여 …’(21절), (3) ‘복이 있도다 너희 지금 우는 자여 …’(21절), (4) ‘복이 있도다 너희 예수님 때문에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22절).
· 결국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6장 20-26, 36-38절에서 ‘복이 있는자’에 대하여 4마디 말씀(20-23절)과 ‘화가 있는자’에 대하여 4마디 말씀(24-26절)과 ‘자비로운 자’에 대하여 4마디 말씀(36-38절)을 하신 것입니다:
- 복이 있는 자는 …
가난한 자요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것이다(20절),
주린 자요 그가 배부름을 얻을 것이다(21절),
우는 자요 그가 웃을 것이다(21절),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당하는 자요 하늘에서 그의 상이 클 것이다(22-23절).
- 화가 있는 자
너희 부요한 자(24절),
너희 지금 배부른 자(25절),
너희 지금 웃는 자(25절),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자(26절).
- 자비로운 자는 …
비판하지 않는다(37절),
정죄하지 않는다(37절),
용서한다(37절),
준다(38절).
· 그러면 드는 질문은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6장 27-35절에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입니다.
- 먼저 예수님께서는 27-30절에서 8가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인터넷):
n 원수를 사랑하라(27절),
n 선대하라(27절),
n 축복하라(28절),
n 기도하라(28절),
n 빰을 맞는 자에게 다른 빰을 대라(29절),
n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까지 주라(29절),
n 구하는 자에게 주라(30절),
n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하지 말라(30절).
-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31-35절에서 4가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인터넷):
n 황금률: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31절),
n 원수 사랑: 자신을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고,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32-33절),
n 대가 없는 베풂: 주는 자에게 빼앗지 말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34-35절),
n 하나님을 닮은 삶: 이러한 사랑과 자비는 하나님께서 은혜없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심을 본받는 것이며, 큰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음(35절).
(2) 저는 오늘 예수님께서 자비로운 사람에게 주신 4가지 교훈 중 마지막 교훈인 ‘너희는 주라’(38절)는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니 너희에게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부어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남에게 되어 주는 것만큼 되돌려 받을 것이다”(현대인의 성경)](38절).
(a) 여기서 ‘주다’라는 헬라어 단어 “δίδωμι”(디도미)가 2번 나오는데[“주라”(δίδοτε)와 “줄 것이니”(δοθήσεται)] 이 단어가 요한복음 3장 16절에도 나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ἔδωκεν(에도켄)] ….”
(i) 여기서 “'ἔδωκεν”(에도켄)은 '주었다(gave)'라는 뜻의 헬라어 동사(δίδωμι)의 단순과거형으로,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보내주셨다),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셨으며(주셨다), 궁극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시키셨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소유물을 주는 것을 넘어,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독생자)를 온전히 내어주신 최고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구원 사역의 시작을 의미합니다(인터넷).
· 저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다’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묵상할 때 로마서 8장 32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παρέδωκεν(파라도켄)]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 여기서 “παρέδωκεν”(파라도켄)이라는 단어(의미: ‘내어주셨다’)는 “παραδίδωμι”(파라도미)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는 '옆으로(παρά)'와 '주다/넘기다(δίδωμι)'가 결합된 그리스어 합성어로, '넘겨주다', '넘겨주다', '양보하다', '포기하다', '위탁하다', '넘겨주다' 등의 의미를 가지며, 특히 예수님이 십자가에 넘겨지신 사건 등 신적인 희생과 헌신을 묘사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부정적인 의미로는 배신하거나 고발하기 위해 넘겨주는 행위(예: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준 사건)에도 사용되는 단어입니다(인터넷).
(b) 예수님의 “주라”(눅6:38)는 명령은 다른 사람들의 곤궁을 구제하기 위하여 공급할 수 있는 모든 선물을 주라는 뜻이며 또한 받기를 바라기 이전에 먼저 베푸는 사람이 되라는 말로서 이것은 사랑의 구체적인 행위를 가리킵니다(호크마).
(i) 사도행전 20장 35절 말씀입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이처럼 내가 모든 일에 모범을 보였으니 여러분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열심히 일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우십시오.'”(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남긴 권면으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자신의 삶이 이 가르침에 따라 모범을 보였음을 강조하고, 성도들이 서로 섬기며 주는 삶의 복을 누리라고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바울이 자신의 사역을 마무리하며, 물질적 이익이 아닌 섬김을 통해 복음을 증거한 삶을 돌아보고, 미래의 어려움 속에서도 이 원리를 따르라고 당부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인터넷).
-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인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 즉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사랑의 본을 따르는 삶이 진정한 복이라는 의미입니다(인터넷).
n 여기서 핵심 교훈은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가치관과 달리, 주는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인터넷).
(3)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명령)에 순종하여 주는 삶을 살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고 말씀(약속)하셨습니다.
(a) 여기서 “후히 되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μέτρον καλὸν”(메트론 칼론)은 “분량”, “척도”[μέτρον(메트론)](measure)라는 말과 “좋은”[καλὸν(칼론)](good)이라는 말의 합성어로서 ”좋은 분량으로 주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의 의미는 줄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준다는 의미입니다. 즉, 굵은 콩 사이로 작은 조나 깨를 섞듯이 조금도 빈틈없이 누르고 흔들어서 채울 수 있는한 최대한으로 채워서 준다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여 그 이상으로 임합니다(호크마).
(i) 야고보서 1장 5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 에베소서 3장 20절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께”(현대인의 성경)].
- 더욱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짧은 말씀 묵상 3개만 나눕니다:
n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요구한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실 뿐만 아니라 ...”: “하늘의 하나님께 잠시 기도한 다음 황제에게 대답을 했을 때 그 황제는 느헤미야의 요구를 쾌히 승낙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황제에게 다시 부탁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와 함께 하셨으므로 황제는 느헤미야가 요구한 모든 것을 다 들어주었습니다(느헤미야 2:4-8,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잠시 기도했을 뿐인 데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요구한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에베소서 2:20, 현대인의 성경).”
n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 “아르타크셀크세스 황제(아닥사스다 왕)은 에스라에게 ‘그 밖에 네 하나님의 성전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국고에서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유프라테스강 서쪽 지방의 모든 국고 관리자들에게 ‘에스라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즉시 공급해 주어라’고 명령했습니다(에스라 7:20-21,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에베소서 3장 20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께’(현대인의 성경).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우리 주위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를 통해서도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필요한 것을 넘치도록 지원해 주십니다.”
n “열왕기상 3장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므로(11절) 주님의 마음에 들었기에(10절)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그에게 주셨습니다(13절).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할 때에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께.’”
(b) 여기 누가복음 6장 38절에서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라는 헬라어 “ἀντιμετρηθήσετα”(안티메트레데세타이)란 단어는 “다시”, “반복”을 나타내는 단어 “ἀντι”(안티)와 “재다”, “측량하다”는 뜻의 단어 “μετρέω”(메트레오)의 합성어로서 “다시 측정을 받을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해 주는가에 따라 그대로 받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호크마).
(i) 누가복음 6장 38절의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너희가 남에게 되어 주는 것만큼 되돌려 받을 것이다”(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은 ‘네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관대함과 후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너희에게 되돌려질 것이다’라는 의미로, 곧 '주는 대로 받는다', '상대방을 배려한 만큼 자신도 배려받는다'는 원리[황금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31절)]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인터넷).
·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남에게 베푼 사랑, 용서, 관용의 크기만큼 후하게 갚아주실 것이라는 약속이며,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넘어 심판과 축복의 기준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인터넷).
(4)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6장 39절을 묵상할 때 먼저 마태복음 15장 14절 말씀도 함께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a) 그리할 때 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는 누구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눈먼 인도자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
(i) 여기서”눈먼 인도자들”은 바로 “외식하는 자들”(7절)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1절)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그 율법적이고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켜 “눈먼 인도자들”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이 율법을 잘못 해석하고 자신들조차 영적으로 어두워 남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어 결국 함께 파멸[“구덩이”(14절, 눅6:39)]이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참고: 인터넷).
· 여기서 그 율법적이고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을 잘못 해석하였다는 말의 의미는 그들은 그들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마15:3, 현대인의 성경).
-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누구든지 부모에게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만 하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 것(헛되게 한 것)입니다(4-6절, 현대인의 성경).
n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만 내세우고 있다” “너희는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렸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막7:8-9, 현대인의 성경). 목사님들이 교회의 전통(?)대로 아내와 자녀(가족)를 돌보지 않고 그들을 희생해서라도 주님의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는 것이요(13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것이며(9절, 현대인의 성경) “믿음을 저버린 사람이며 불신자보다 더 나쁩니다”(딤전5:8, 현대인의 성경).
·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7-9절).
- 지금 말로 한다면, 교회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자들은 주님 보시기에 위선자들이요, 입술로만 주님을 존경하고 마음은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으면, 주님을 헛되이 예배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위선자들은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그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으며(23:25, 현대인의 성경) 또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로서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해골과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27절, 현대인의 성경).
(b)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6장 39절과 마태복음 15장 14절 말씀을 함께 묵상할 때 두 번째로 생각하게 됨 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맹인”인 “외식하는 자들”(7절)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1절), 즉 그 율법적이고 위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이 인도하는 또 다른 “맹인”(눅6:39; 마15:14)은 누구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인지입니다.
(i) 그들은 다름 아닌 영적으로 어두워 분별력이 없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 따르며 영적인 분별력을 잃고 함께 멸망의 길[“구덩이”(눅6:39; 마15:14)]로 빠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참고: 인터넷).
· 제가2018년7월18일에 창세기27장23절 말씀 중심으로 “목사님, 제발 분별해서 축복해 주세요!”란 제목 아래 쓴 말씀 묵상 글의 한 부분을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많은 우리 목사님들이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는 영안이 어두워져서 분별하지 못하고 함부로 성도님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도님들이 야곱처럼 속이면서 살고 있는데, 분명히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분명히 성도님들이 이 세상과 짝지어 살면서 자기의 삶을 정당화하려고 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 목사님들은 예수님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그 성도님들을 책망하기보다(계3:19, 참고: 잠27:5) 오히려 그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목사님들은 영안이 어두워져서 영안이 어두운 성도님들이 좋아하는 물질의 축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지금 성도님들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있지 않는데 우리 목사님들은 그들에게 이 모든 것이 더할 수 있도록 축복 기도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지금은 축복 기도할 때가 아닌데, 오히려 분명히 지금 우리 모두가 회개할 때인데 말입니다. 지금 영안이 어두운 우리 목사님들이 영안이 어두운 성도님들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지금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고 있습니다(마15:14). 그 결과 둘이 다 구덩이에 빠졌습니다(14절). 이미 지금 맹인인 우리 목사님들과 맹인인 성도님들이 구덩이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조차도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정도로 지금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잃었습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321175567].
- 여기서 두 문장을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1) “지금 우리 목사님들은 영안이 어두워져서 영안이 어두운 성도님들이 좋아하는 물질의 축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2) “지금 영안이 어두운 우리 목사님들이 영안이 어두운 성도님들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n 영안이 어두운 목사님들이 영안이 어두운 성도님들을 인도하고 있는 광경이 상상이 되십니까?
· 제가 컴퓨터 인공 지능에게 “영안이 어두운 목사님들이 영안이 어두운 성도님들을 인도하고 있는 광경”이라고 물었더니 이러한 답변을 얻었습니다: “'영안이 어두운 목사님이 영안이 어두운 성도들을 인도하는 광경'은 성경적 관점에서 영적인 무지나 맹목 속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위험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성령의 인도나 말씀 중심의 참된 목회 부재를 강조하며,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천국을 사모하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메시지입니다. 이는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과 같아 결국 모두 웅덩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마태복음 15:14)와 연결되며, 진리 안에서 바른 영적 분별과 인도를 받아야 함을 촉구하는 강력한 경고의 의미를 갖습니다”(인터넷).
- “핵심 의미와 성경적 배경
영안(靈眼)의 중요성: 단순히 육신의 시력이 아닌, 성령의 조명으로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를 분별하는 '영적인 눈'을 의미합니다.
성경적 경고: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마태복음 15:14)처럼, 영적으로 어두운 인도자가 영적으로 어두운 무리를 이끌면 모두 진리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진리 부재의 위험: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요한복음 17:3), 참된 생명과 구원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태를 지칭하며, 이는 구원과 생명이 없는 상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비유가 시사하는 바
참된 인도자의 필요: 성령의 조명으로 영안이 열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성경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목회자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성도들의 깨어있음: 성도들 또한 영적으로 깨어 분별력을 가지고,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스스로 말씀을 통해 영적인 분별력을 키워야 함을 강조합니다.
세상의 가치관 vs. 영적 가치관: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의 것에 집착하지 않고, 영안을 통해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삶이 참된 신앙임을 역설합니다”(인터넷).
n 여기서 저는 “성도들의 깨어있음: 성도들 또한 영적으로 깨어 분별력을 가지고,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 스스로 말씀을 통해 영적인 분별력을 키워야 함을 강조합니다.”라는 글을 읽을 때 제가2020년8월 31일에 “분별해야 합니다. (3)”란 제목 아래 요한일서 4장 1-6절 말씀을 묵상한 글을 다시금 읽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성경은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1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현대인의 성경) “사랑하는 여러분, 영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믿지 말고 그들이 주장하는 영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시험해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목사님들의 설교를 무턱대고 믿어야 하나요? 아니면, 목사님들의 설교조차도 성경에 근거해서 맞는 말씀인지 아니면 틀린 말인지 분별해야 하나요? 성경 사도행전 17장11절을 보면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을 사도 바울을 통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서를 연구했다는 말입니다(공동번역). 이 말씀을 현대에 적용한다면, 여러분이 목사님들을 통해서 듣는 설교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날마다 연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젠 옛날에 어떤 목사님들이 설교 시간에 말한 것처럼 성경을 덮어 놓고 무조건 믿어서는 아니됨.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거짓 목사들이 너무 많고,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거짓 복음, 거짓 설교가 난무하기 때문입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2075812868].
(2)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6장 40절인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는 말씀을 묵상할 때 먼저 마태복음 10장24-25절 상반절 말씀도 함께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못하고 종이 주인보다 높지 못하다. 제자는 스승과 같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고 종은 주인과 같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현대인의 성경)].
(a) 이 두 성경구절에서 ‘제자가 그 선생(스승)보다 높지 못하다’라는 말씀의 의미는 맹인인 제자는 맹인인 선생(스승)보다 못할 것이고 바리새인들의 지도와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은 여전히 그 거짓된 교훈의 틀에 속박당하고 말뿐이라는 의미입니다(호크마).
(i) 그리고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눅6:40하)[‘제자가 그 선생 같으면 족하도다’(마1)25]]는 말씀은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그 선생의 가르침을 온전히 좇게 된다면 그 선생과 똑같은 바리새인이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호크마).
· 그러나 이 말씀의 이면에는 예수님의 다른 의도, 즉 '나를 따르는 제자들은 이 사람보다는 달라야 하지 않겠느냐, 나의 제자들은 지금까지의 모든 가르침을 통하여 온전케 되어 나와 같이 되라'는 권고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생들 중에 그 누구도 예수님의 수준에까지 이를 수는 없지만, 성도는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범사에 자라가야 합니다(엡 4:15; 골 1:18)(호크마).
-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외식하는 잘못된 스승을 따르지 않고 참 선생님(스승)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깨닫고 실천하여 성장하고 성령님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을 닮아 성숙해져야 합니다(참고: 인터넷).
n 제자는 선생님을 뛰어넘을 수 없고, 선생님이 겪는 수모와 핍박과 고난을 제자도 겪을 수 있으니, 그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주님과 같은 고난의 길을 가는 것 자체를 만족해야 한다는, 제자의 각오와 인내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마10:25)(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