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의  뺨을 치는 자에게  뺨도 돌려대며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누가복음 6:27-35)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저는 누가복음 6 27-35 말씀을 읽을  27 말씀이  그러나라는 접속사로 시작을 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27 말씀 이전에 성경 구절들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a)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20절부터 22절까지 복이 있나니 …’[“Μακάριοι”(마카리오스)]라는 헬라어 단어로 시작[ 단어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호의 아래 있는 상태 환경적인 요인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기쁨을 나타냅니다(인터넷)]하는 말씀을 4번합니다[(1) ‘복이 있나니 가난한 자는 …’(20), (2) ‘복이 있나니 지금 주린 자는 …’(21), (3) ‘복이 있나니 지금 우는 자는 …’(21), (4) ‘복이 있나니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22)].

 

(i)                      그런  누가는  있을진저 …”[“Οὐαὶ”(우아이)] 시작[ 고대 그리스어 감탄사로주로 '슬프도다', ' 있을진저', '아아', '오호라등의 의미를 가지며깊은 슬픔비탄저주또는 경고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바리새인 등을 향해 사용하며 하나님의 심판이나 재앙을 선포할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단어입니다(인터넷)]하는 말씀을 4 합니다[(1) “ 있을 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24), (2) “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25), (3) “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자여 …”(25), (4) ‘ 있을진저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26)]

 

·       그러한 가운데서 누가는  번째  있을진저 …”(24말씀을 하기 전에 그러나”[“Πλὴν”(플렌)]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여 앞서서 말씀한 내용인 복이 있나니 …’ 말씀(20-23내용과 반대되는 말씀인  있을진저 …” 말씀(24-26) 시작했습니다.

 

-            그리고 누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6 27 말씀을 그러나 시작하였는데  그러나”[“Ἀλλὰ”(알라)] 접속사는 2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러나”[“Πλὴν”(플렌)] 접속사와 다른 헬라어 단어입니다.   누가는 이렇게  다른 그러나” 단어들을 사용한 것일까요

 

n  24절에서 사용된 접속사 그러나”[“Πλὴν”(플렌)] 부사적으로 문장  앞에 쓰여 앞선 내용을 제한하거나또는 전개하고 확장하는 역할을 하는데 누가복음 6 24절의 문맥은 '게다가', '더욱이', '그래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등으로 번역될  있습니다(인터넷).  흥미로운 점은  그러나” 접속사가 35절에도 헬라어 성경에는 나오는데 개역개정 한국어 성경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어 현대인의 성경이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라고 올바르게 번역을 했습니다[비슷한 경우가 마태복음 11 22, 24절에 나옵니다.  개역개정 한국어 성경에는 그러나 접속사가 생략되었지만 한국어 현대인의 성경에는 그러나라고 올바르게 번역을 했습니다].

 

n  27절에서 사용된 접속사 그러나”[Ἀλλὰ”(알라)] 앞선 내용(세상의 관습율법의 표면적 적용) 대조되며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 '원수를 사랑하라' 핵심 메시지를 강조하는 전환어입니다.  이는 단순히 '하지만'이라는 의미를 넘어기존의 가치관을 뒤엎는 차원의 명령을 시작하는 접속사로듣는 자들에게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의 새로운 윤리를 받아들이라는 강력한 촉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인터넷).

 

(2)    저는 누가복음 6 27-35 말씀을 읽을  이미 예수님께서 20-26절에서 하신 말씀과 비교하면서 반복해서 하신 예수님의 4마디 말씀을  보게 되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a)    첫째로,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22) 말씀과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27) 말씀.

 

(i)                      예수님께서는 22절에서 사람들이 (예수님때문에”[덕분에(?)]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를 미워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복된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복된 우리는 예수님께서 27절에서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합니다

 

·       여기서 선대하다라는 헬라어 “καλῶς”(칼로스) 선을 행하다누군가에게 이익(benefit) 주다라는 의미로서(참고인터넷마태복음 12 11절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사람은 양보다 더욱 귀하다그러므로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현대인의 성경).

 

-            저는  말씀을 묵상할  자기를 미워하여 그리도 죽이려고 애쓴 사울 왕을 선대한 다윗이 생각났습니다.  사무엘상 24 17 말씀입니다“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말씀은 사울 왕이 다윗에게  말로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다윗의 손에 넘기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기를 죽이지 않은 것을 알고(18다윗에게 소리를 높여 울면서(16말한 내용입니다.  분명히 자기는 다윗의 생명을 찾아 해하려고 하는데(11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아껴 그의 손을 들어 자기를 해하지 아니한 것을 알고(10사울 왕은 다윗에게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라고 말했습니다(17).  그리고 사울 왕은 다윗에게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19) 말했습니다.  어떻게 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려고 하는 사울 왕을 선대할  있었을까요

 

n  다윗이 자기를 해하려고  사울 왕을 선대할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34:8; 참고50:20).  다윗은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쳤을 때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고사울 왕이 자기를 질투하여 죽이려고 했을때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원수에게서와 자기를 미워하는[“μισέω”(미세오): “이는 '미워하다', '증오하다'라는 뜻으로원수나 적대적인 존재를 향한 감정을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자들원수들그리고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가리킬  사용됩니다”(인터넷)] 사울 왕의 손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았습니다(참고1:71).  그랬기에 비록 사울 왕이 자기를 학대하였지만 다윗은 그를 선대할  있었습니다.

 

(ii)                    우리도 다윗을 본받아[요셉도 본받아(50:20)]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므로 예수님 때문에 우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해야 합니다.

 

·       진정으로 우리가 하나님은 선하시고(34:8),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도 선하신 뜻이고(12:2) 진정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8:28) 진리를 믿고이다면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므로(34:8) 우리는 미워하는 자도 선대해야 합니다(6:27).

 

-            만일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자만 선대하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6 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b)    둘째로, “사람들이  때문에 너희를 … 모욕하며 …”(6:22, 현대인의 성경) 말씀과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28) 말씀.

 

(i)                      제가 누가복음 6 22절의 모욕하며라는 단어 중심으로  짧은 말씀 묵상의   부분을 다시 나눕니다“…  저는  사실을 묵상하면서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불순종하는 자들로부터 충분히 모욕을 당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주님께 순종하는 자는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모욕을 당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요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불순종하는세상 사람들 뿐만 아니라 주님 안에서  형제자매들에게까지 모욕을 당할  우리는 그것을 당연시하지 않고 그리 모욕을 당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익숙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세상 사람들과 같이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받은 욕입니다.  하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범하고 사니까 이제는 세상 사람들에게 욕먹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같고 나아가서 함께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 형제자매들에게까지 욕을 먹는 것도 익숙해진  같습니다.  이렇게 욕을 먹는 일들을 했기에 욕먹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회개할 일이지만 아무 욕먹을 일들을 행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데 모욕을 당하는 것은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에게까지 모욕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39,44).

 

·       십자가상에서 모욕을 당하신 예수님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없도다 이스라엘의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15:29-32).   말씀을 보면  그룹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모욕하고 희롱하며 욕했습니다: “지나가는 자들”(39),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31),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박힌 자들”(32).

 

-            여기서 “지나가는 자들”은 비언어적으로는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했고언어적으로는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29-30)하고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여기서 ‘머리를 흔드는 것’은 상대방을 심히 멸시하고 조롱하는 유대인들의 상징적인 행동이었습니다(109:25; 2:15)(호크마).  또한 예수님을 비방한 강도(죄수) 예수님에게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23:39)하고 비방한 것을 보면 그는 유대인으로서 종교적인 의미로 예수님을 모역한 것입니다(호크마). 

 

n  이렇게 십자가상에서 모욕을 당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23:34, 현대인의 성경).

 

#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에게도 누가복음 6 2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c)    셋째로,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6:26) 말씀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32, 33, 34) 말씀.

 

(i)                      저는 이미 누가복음 6 26 말씀을 묵상한  칭찬에 중독된 거짓 목사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제목 아래 말씀 묵상의 글을 적어서 여기저기 나눴습니다.

 

·       저는  말씀 묵상의 글에서 이러한 글을  것을 나눴습니다: “여러분우리는 사람들에게 칭찬받기를 좋아하기 보다 주님께 칭찬받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다 주님 앞에 서서 회계할 때가  텐데 그때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18:23, 24; 25:14-30).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야 합니다(24:45).   

 

-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으므로 마음이 교만해지는 것보다 하나님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책망을 받아 마음이 겸손해지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 마음에도 없는 사람들의  마디의 칭찬보다 사랑으로 말하는  사람의  마디의 면책을  사모합니다.

 

n  그래서 ()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6 26절에서 경고하신 말씀을 겸손히 받아 사람들의 칭찬을 좇지 않습니다.

 

(ii)                    오늘 본문 누가복음 6 32, 33, 3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칭찬이란 단어를  번이나 사용하셔서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하고 말씀하셨는데   말씀들을 하시기 전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31)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우리기 익히 들어서 알고 있듯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31)하는 말씀은 황금률”(Golden Rule)다른 사람에게 존중사랑도움  자신이 받고 싶은 대접을 먼저 베풀라는 의미이며이는 성경  핵심적인 윤리 원칙으로세상의 상식(대가성) 넘어서는 '먼저 주는 사랑' '관계 역전' 강조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는 단순히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공감하고먼저 손해 보더라도 사랑과 이해를 베풀어야 함을 뜻합니다(인터넷).

 

-            여기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을 사자성어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것을 저는 오늘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사자성어의 의미는 입장을 바꾸어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라 뜻으로상대방의 상황이나 입장을 헤아려 공감하라는 의미입니다.  《맹자(孟子)》의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말로, '처지를 바꾸어 보면 누구나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인터넷).

 

n  비록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받은 만큼 돌려주시만 역지사지 가르침은 먼저 주어야 하는 관계 역전 요구합니다.  다시 말하면내가 원하는 것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먼저 상대방에게 사랑존중인내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인터넷).

 

·       예수님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1) 만일 우리가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없다.  (2) 만일 우리가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없다.  (3) 만일 우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빌려준다면칭찬 받을  없다.  누가복음 6 35 상반절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            예수님의 사랑하라’(32) 말씀을 묵상할  마태복음 4 46-47 현대인의 성경 말씀도 함께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너희가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무원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너희가 너희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지 않느냐?”

 

n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우리를 미워하고(6:27) 우리를 심지어 저주하며 모욕하며(28우리의 빰까지 때리는(29원수까지도 사랑하는(27, 35온전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참고인터넷).

 

-            예수님의 선대하라’(33) 말씀을 묵상할  2023 2 9일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악인을 선대할  없습니다.”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의 글을 다시금 읽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옛날 속담인 “악은 악인에게서 나온다”라고 말했고사울 왕은 다윗에게 “네가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을 보니 나보다 낫구나”라고 말한 (사무엘상 24:13, 17, 현대인의 성경) 보면 사울 왕은 자기가 악인임을 인정한  같습니다.  그런 악인을 다윗이 선대한 것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원수를 사랑하며 우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해야 한다(누가복음 6:27) 교훈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33).”

 

n  또한 2021 4 11일에 선대하는 다윗과 그의 소년들이란 제목 아래  짧은 말씀 묵상의 글을 다시금 읽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학대한 사울 왕을 선대했는데(삼상24:17), 다윗의 소년들은(25:12) 자기들을 모욕한(14미련한 자요(25불량한 사람(17) 나발의 하인들을 매우 선대했습니다(15).  학대나 모욕을 선으로 바꾸사(50:20)  모든 것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8:28)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자만이(34:8) 자신을 학대하고 모욕하는 자에게까지도 선대할  있습니다.”

 

#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6:35).

 

-            예수님의 다시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빌려주라’(34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묵상할  누가복음 6 30 말씀을 묵상하게 됩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네게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것을 가져가는 사람에게 돌려달라고 하지 말아라”(현대인의 성경)].

 

n   말씀은 관대한 나눔의 삶을 살라는 의미로서 누가복음 6 29절의 " 뺨을 치는 자에게 뺨도 돌려 대며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말씀과 연결되어가진 것을 아낌없이 베풀고 손해를 감수하라는 의미입니다(인터넷).

 

#     저는 여기서 손해를 감수하라 말을 읽을  성경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가 생각났습니다.   이유는 "기업 무를 자로서보아스보다 " 가까운 사람"(3:12) 그의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3) "" 보고(5) "내가 무르리라" 말했다가(4)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한다고 하니까(5자기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무엇이 손해입니까?  상상해 보십시오.  어떻게  기업 무를 자가 유대인 여인도 아닌 이방인이 모압여인과 결혼하여 유대 땅에서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분명히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인데  율법을 어기고 이방인 룻과 결혼하여 유대 땅에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기업 무를자에게 손해가 되겠습니까?  그것도 과부이방 여인과 결혼해서 유대 땅에서 살아간다는  얼마나 그에게 손해가 되겠습니까?  그리고 결혼해서 순수한 유대인 피가 흐르는 아이가 아니라혼혈아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할   기업 무를 자는 충분히 자기에게 손해가   있다고 판단하였기에 그는 기업 무를 권리를 포기한 것입니다자기 자신을 위하여 "무르지 못하"겠다고 말한 반면에(6보아스는 현숙한 여자" 룻을 보고 "기업 무를 자의 책임" 그녀에게 이행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11, 13)[보아스는 자기보다  가까운 친족과 달리 모압 여인 룻과결혼하여 기업을 무르는 일을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 생각하였을까요?   이유를  마디로 말하자면보아스는 모압 여인 룻이 “현숙한 여자”(a woman of excellence)  알았기 때문입니다(3:11).  그는 룻이 남편이 죽은  시모에게 행한 모든 [특히 시모에게 순종한것(2:22-23; 3:4-5)] 고국인 모압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유다 백성에게로  일을 분명히들어 알고 있었습니다(2:11).   나아가서그는 모압 여인 룻이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12).  보아스는 그의육의 눈으로 룻이 유대 여인이 아니라 이방 여인이라는 사실을 보기보다 그의 영의 눈으로 시모인 나오미의 하나님을 선택한 (1:16)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로 (2:12) 룻의 신앙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룻이 자기에게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함을 경험하였기에(3:10) 그는 룻을 선택한 것입니다.  결국 보아스는 자기보다  가까운 기업 무를 친족이 선택하지 않은 룻을 선택하여 그녀와 결혼하여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벳은 이새를이새는 다윗을그리고 다윗의 혈통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참고: “선택에 기로에  있을  (2)”: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105438775].

 

&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빌려 주어라) …”(6:35).

 

(d)    마지막 넷째로, “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6:23) 말씀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것이요”(35) 말씀.

 

(i)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 하늘에서 너희 상이  것이다’(23, 35). 

·       사람들이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를 미워하고 멀리하고(따돌리고)(왕따시키고욕하고(모욕하고우리를 가리켜 악학다’, ‘잘못되었다하고 비난하며 멸리하고 배척할 때에(참고인터넷)(22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도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23)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       또한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꾸어 주면(빌려 주면예수님께서는 너희 상이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  것이다(35)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지극히 높으신 이신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35).

 

-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악한 사람들에게 인자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할  우리의 상이  것이며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것입니다(35).

 

n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무엇일까요?  다시 말하면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하늘 나라에 가서 주님께 받을  상은 무엇일까요?  창세기 15 1 말씀인 “… 나는 …  너의 지극히  상급이란 말씀에 근거에서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가서 받을  상은 바로 하나님 자신으로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교제자체가 최고의 상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상입니다.  로마서 8 17 말씀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것이니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누리는 영광과 기쁨이  상입니다(참고인터넷). 

 

#     현재의 고난은 미래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없습니다!  제가 2024 7 10일에 고난과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로마서 8 18)”이란 제목 아래    부분을 나누면서  말씀 묵상의 글을 끝맺고자 합니다: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가   없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8:18; 고후4:17) 바로 우리 몸의 속량입니다.  로마서 8 23 말씀입니다“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현대인의 성경“이것뿐만 아니라 성령을  열매로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우리 몸이 구원받기를 갈망합니다”].  예수님  땅에 다시 오시는 마지막 나팔이 울려 퍼지는 (고전 15:52), 우리의 썩을 몸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아나고 변화될 것입니다(52).  우리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될 것입니다( 3:21).   외에도 장차 나타날 내세의 영광은 우리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것이며(고전13:12; 계시록 22:4) 그리스도와 함께  노릇  것입니다(계시록 22:5).  우리는 영원히 빛나는 생활을  것입니다(5).  그러므로 우리는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의 확신을 가지고 고난 중에서도 참고 인내하며 견디는 가운데 묵묵히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 나아가야  것입니다[참고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3507842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