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안식일에 주인이십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누가복음 6:1-5)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저는 이 누가복음 6장 1-5절 말씀을 읽을 때에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안식일”(Sabbath)인 주일(The Lord’s day)에 ‘돈을 쓰면 안된다’(Don’t use money), ‘공부하면 안된다’(Don’t study) 등등 ‘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자라난 제 어릴 때 생각이 좀 났습니다(참고로 저는 한국 장로교 합동측 목사님의 둘째 아들로 아버님이 개척하신 교회에서 자라났음). 물론 저는 이러한 ‘하지 말라’는 말 외에 ‘하라’는 말도 듣고 자라난 것이 어렴풋이 좀 기억이 납니다: ‘밥 먹을 때 꼭 기도하라,’ ‘주일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등등. 결국 제가 볼 때 저는 어릴 때 교회 사택에서 살면서 주일마다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어린이 주일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성경을 배우면서 자라나면서 교회에 대한 이미지 중 두드러지게 제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하지 말라’(Don’ts)과 ‘하라’(Do’s)는 말들입니다.
(a) 그러다 보니 저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마땅히 자신의 행함(Doing)에 초점을 맞추고 교회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비록 교회에서 예수님이 누구이시고, 하나님이 누구이신 것(성령님이 누구이신 것을 배운 기억은 나지 않음)을 분명히 배웠을텐데 그 배운 것이 기억나기보다 ‘하지 말라’와 ‘하라’는 ‘계명’들만 좀 뚜렷하게 생각이 납니다.
(i) 이것을 생각할 때 저는 마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막7:6-9, 13).
· 그리고 저는 제가 어릴 때 자라나면서 배웠던 ‘하지 말라’와 ‘하라’는 말들은 “사람의 계명”, 현대인의 성경으로 말한다면 “사람이 만든 법”이란 생각이 듭니다(7절). 그 사람이 만든 법을 교회에서는 마치 주님의 교훈인 것처럼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어릴 때 받은 주일 학교 교육은 예수님의 말씀을 빌린다면 ‘하나님의 게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만 내세우는 교육’을 받은게 아닌가 생각합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어쩌면 우리는 사람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8-9절).
- 만일 이것이 맞다면, 우리는 “위식하는 자”[“위선자들”(현대인의 성경)](6절)가 되는 주일학교 교육을 받은 것이요 그 결과 우리는 입술로는 주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은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6절).
(b)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교 교육의 초점은 ‘하라’와 ‘하지 말라’와 같은 ‘행함’(Doing)이 아니라 ‘성경은 나를 누구라고 말씀하고 있는가’와 같은 ‘존재’(Being)가 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i) 예를 들어,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롬8:16)라고 말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17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17절)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성도님들에게 ‘고난을 받으세요’라고 가르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입니다’하고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존재’에 초점을 맞춘 기독교 교육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교육을 먼저 한 다음에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소망의 메시지)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자녀와 상속자로서의 행함)하고 성도님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존재에서 행함이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존재에서 나오지 않는 행함은 외식이요 위선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저는 신론(Doctrine of God)에서도 하나님의 존재(하나님은 누구이신가)에 초점을 맞추는 신앙생활을 해야지 하나님의 행하심(하나님은 무슨 일을 행하시는가)에 초점을 맞추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보다 하나님의 행하심에 초점을 맞추고 신앙생활을 할 경우 마귀에 시험(유혹)에 빠져 범죄할 위험이 참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행하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n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일4:8, 16)라는 말씀대로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에서 믿음이 성장하면 하나님의 행하심이 우리의 명철/지식으로는 이해가 안되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나에게 사랑으로 행하실 수밖에 없으시다’는 믿음으로 우리 앞에 일어나 결과적인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만일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우선순위를 두지 않음으로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제대로 성장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행하심에만 관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에게 행하실 수 있는 것인가?’하고 의문과 의심 속에서 결국 하나님을 불신하게 되고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c) 제가 저희 교회가 소속되 있는 P.C.A.(Presbyterian Church of America) 교단의 한인 서남 노회(Korean Southwest Presbytery)에서 고시부(Exam Committee)에서 섬겼을 때에 목사 고시나 강도사 고시를 보고자 하는 신청자들이 써서 낸 “한인 서남노회 일반 신청서”(Application for The Korean Southwest Presbytery of PCA)를 먼저 보았는데 그 신청서에는 여러 “신학적 입장” 질문들(Theological Questions)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바로 이 질문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대해 예외 사항이나 꺼리는 점이 있습니까?"
(i) 이 질문에 주로 신청자들이 예외 사항을 두는 것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1장(“경건한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 8번입니다: “이 안식일은 주께 나와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주일을 지키는] 사람은 마음을 합당하게 준비하고, 일반의 직무를 미리 수행하여 행함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의 직업, 언어, 세상적인 직업, 오락 등에서 온전히 떠나며, 또한 온 종일 거룩한 휴식을 지킨다(출20:8; 16:23,25-26,29-30; 31:15-17; 사58:13; 느13:15-19,21-22). 그리고 주의 예배를 공적이고 개인적으로 수행하며, 필요한 의무와 자비를 베푸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사58:13; 마12:1-13)”(인터넷).
· 예를 들어, 한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을 나눕니다: “WCF 21.8은 안식일에 즐기는 활동이 죄라고 말하지만, 저는 성경이 실제로 그렇게 말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날 하루 종일 즐기는 활동을 피하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분명히 목표가 되어야 하지만, 저는 즐기는 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주님 안에서 온전히 기쁨을 누리는 것을 스스로 빼앗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인터넷).
- 목사 고시나 강도사 고시 신청자들은 이렇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1.8에 대하여 예외사항을 말할 수 있겠지만 아마 성도님들 중에는 “오락”외에도 “자기의 직업”과 “세상적인 직업”에도 예외사항을 두기에 주일에 자기 직장 일이나 사업을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2)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6장 1-5절 말씀을 읽을 때에 두 번째로 마태복음 12장 1-8절과 마가복음 2장 23-28절 말씀과 비교해 보면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그리했을 때 한 다섯 가지로 나눠서 묵상하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a) 첫째로, 어느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에 제자들이 함께 하면서 시장하여(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었을 때 그 먹는 모습을 본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어째서 당신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짓을 하시오?' 하고 트집을 잡아 따져 물었다는 말씀입니다(눅6:1-2; 마12:1-2; 막2:23-24, 현대인의 성경).
(i)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은 행위는 율법에서도 분명히 허락하고 있기에 그 행위 자체는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남의 곡식 밭에 들어가서 손으로 이삭을 잘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곡식에 낫을 대서는 안 됩니다”(신23:25, 현대인의 성경).
· 굶주린 이웃이 타인의 곡식 밭에 들어가서 그 주린 배를 채운다 할지라도 관용과 긍휼의 정신으로 그것을 용납하라는 은혜로운 규정입니다. 그러나 아울러 율법은 땀흘려 농사 지운 타인의 소유가 지나치게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굶주림을 채우는 것 이상의 반출이나 절취는 엄격히 금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데 하나님의 율법은 사랑과 공의가 충만한 그야말로 조화롭고 온전한 생활 규범입니다. 즉 하나님을 더불어 사는 삶을 살도록 배려하셨고 모두의 권리를 인정하고 공익을 보호하시려고 하셨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은혜로운 규범에따라 마침 시장했던 제자들이 타인의 밭에서 이삭을 자르는 것 자체는 별 문제가 되지않았습니다. 문제는 제자들이 이삭을 자르고 손으로 비비어 먹은(눅 6:1) 그때가 바로 안식일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실로 유대인들의 율법주석서 미쉬나(Mishina)에 따르면 '안식일에 어린 양이 한 입에 넣을 남큼의 이삭을 잘라 취하는 것도 죄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M. Sabbath, 7:4). 유대 율법주의자들에 의하면 이는 두 가지 죄를 범한 것이됩니다: 첫째, 이삭을 잘랐으니 이는 안식일에 추수한 결과가 되므로 죄악이 됩니다. 둘째, 자른 이삭을 손으로 비볐으니 이는 안식일에 타작한 결과가 되므로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호크마).
- 당시에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은 유대교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였습니다. 율법학자들은 단순히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와 관련된 사항들을 제외하고도 문자 그대로 수천가지의 명령에 대한 미묘한 조항들을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 결과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는 완전히 형식주의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원칙과 형식을 고집하는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준수의 참된 의미를 중요시하신 예수님의 태도를 비난하고 나선 것입니다(호크마).
n 실제로 지금도 이러한 비난이 교회 안에서 난무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겉으로 입술로는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처럼 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마음 속으로라도 형제, 자매들을 비난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정도로 지금도 안식일인 주일을 지키는 문제가 형식주의로 전락해 버린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형식주의에 관하여 예수님은 비판하셨으며, 율법의 본질인 사랑과 자비, 정의를 강조하셨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23장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위선적인 형식주의를 꾸짖으며, “겉은 깨끗하나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찼다”고 지적하고, “율법의 더 중요한 문제인 정의와 자비와 신실을 버렸다”고 말씀하셨으며, “잔의 겉만 깨끗하게 하고 속도 깨끗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따르는 내면적이고 진실한 신앙을 요구하신 것입니다(인터넷).
(b) 둘째로, 그래서 예수님은 그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배가 고팠을 때, 굶주렸을 때)에 한 일을 읽어 보지 못했느냐?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하는 말씀입니다(눅6:3-4; 마12:3-4; 막2:25-26, 현대인의 성경).
(i) 그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약 사무엘상 21장 1-6절에 기록된 바 다윗의 일을 읽고 그 의미를 정확히 파학하고 있느냐 또는 올바로 이해하고 있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일’이란 다윗이 요나단의 도움으로 자기를 죽이려던 사울 왕을 피하여 호위병 몇 명과 함께 도망하다가 배가 고파서 놉에 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제사장이 자신과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거룩한 떡을 줘서 다같이 전설병[“이스라엘 12지파의 수(數)에 따라 성소의 금상위에 두 줄로 배설했던 12개의 떡이다(출 25:30 ; 레 24:5-8). 이는 제사 제물이 아니라 여호와의 생명적 교제를 상징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주의 거룩한 성만찬을 예시(豫示)하고 있다”(호크마)]을 먹은 것을 말합니다(참고: 호크마).
· 호크마 주석의 글입니다: “성소 안에는 금으로 입힌탁자 위에 새로 구운 열 두 덩이의 진설병을 두 줄로 매 안식일마다 진열하도록 율법에 규정하고 있다. 이 열 두 덩이의 진설병은 향과 함께 봉헌되고, 그 다음 주의 진설병이 제단에 놓여질 때까지 그 자리에 계속 놓아 둔다. 다시 새로 구운 진설병을 바꾸어 놓고, 먼저 봉헌했던 진설병은 성소에서 물려 제사장들이 먹는다(출 25:30;레24:5 - 9). 따라서 이러한 이유에서 진설병을 먹는 것 자체는 위법이 아니다. 예수께서 주안점을 두신 것은 바로 이것이다. 즉 하나님의 심령을 닮은 인간인 다윗이 기근으로 심한 고통을 받을 때 그는 제사장에게 도움을 청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진설병을 얻었다. 사실 속인들이 진설병을 먹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레 24:9). 그러나 하나님에게바치는 거룩한 떡을 먹어서라도 생명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이 그 당시 다윗의 상황이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기꺼이 용인(容認)해 주셨던 것이다. 이것이 당시 실증법이었던 율법보다 더 근원적인 하나님의 자연법이 바르게 적용된 한 실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이유에서, 아니 그 이상의 이유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자르는것은 불법이 아니라 합법적인 일이며, 그들이 손으로 비비어 먹은 그 곡식 낟알은 그들의 배고픔을 충족시켜 생명을 보호해 주는데 참으로 필요했던 것이다”(호크마).
- 예수님께서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고팠을 때 제사장들만을 위한 음식으로 율법에서 지정한 진설병을 먹은 사건(삼상21:1-6)을 인용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에게 문자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 보다도 율법의근본 정신인 사랑과 공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호크마).
(c) 셋째로, 예수님께서 ‘또 안식일에 제사장이 성전 안에서 안식일 규정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그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다. '내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신 말씀입니다(마12:5-7, 현대인의 성경).
(i)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새파 사람들이 성경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책망하셨는데 그들이 바로 이해하지 못한 구약 성경은 십계명 중 제 4계명인 출애굽기 20장 8-11절과 신명기 5장 12-15절 말씀입니다.
· 제사장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안식일 규례에도 불구하고 성전안에서 매 안식일마다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의식을 행할 때 몇 가지의 일들, 예를 들어 진설병은 대체시키는 것(레 24:8), 수양 둘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민 28:9-10) 등의 직무를 행하여는데 이러한 율법의 규정은 안식일에 관한 법이 하위법이요, 성전에 관한 법이 상위법이며 또한 상위법을 지키기 위해 하위법을 범해도 된다고 하는 사실을 구약성경 자체가 인정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호크마).
- 호크마 주석의 글입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한 행위는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대속사업의 지속과 복음전파를 돕는 것과 예배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때에 이는 결코 과오로써 인정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실로 제사장들이 안식일에도 불구하고 성전 제사를 집례(執禮)하기 위해 일을 하여도 율법적으로 아무런 하자(瑕疵)가 없었다면, 그 성전과 제사의 궁극적 존재이신 예수와 그의 사역을 위해 안식일을 범한 제자들의 행동도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호크마).
n 성전법이 안식일 법에 우선하듯이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활동은 성전법보다 우선하기에(마12:6, 호크마) 예수님의 권위가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은 행위를 “무죄한 자”[“죄 없는 사람”(현대인의 성경)](마12: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율법을 대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태도는 호세아 시대 사람들이 피상적(superficial)이고 위선적으로 종교의식에만 관심을 기울였던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책망하신 것인데 여기서 그들이 관심을 기울였던 피상적이고 위선적인 종교의식이란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자비”[자비의 헬라어인 “ἔλεος”(엘레오스)는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친절과 구제 행위로서 중심에 사랑과 자비와 헌신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부합되는 경건한 행위임(호크마)]가 없고 단순히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올리는 희생 제물이나 제사행위를 말합니다(참고: 호크마).
-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진정한 의미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예수님의 이중 계명(마22:37, 39)]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서 단순히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종교의식에만 관심을 갖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잘못을 책망하신 것으로서 그들은 죄 없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죄인으로 단정한 잘못도 책망하신 것입니다(참고: 호크마).
n 저는 이 예수님의 책망은 우리에게도 적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라(막7:9) 예수님의 이중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그저 단순히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종교의식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의 책망인 “내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단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마12:7, 현대인의 성경)하는 말씀이 우리에게도 적용이 될 것입니다.
(d) 넷째로, 예수님께서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하신 말씀입니다(막2:27).
(i) 여기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창세기 2장 2-3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 이 창세기 2장 2-3절 말씀을 마가복음 2장 27절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할 때 안식일은 사람의 안식(쉼)을 위하여 있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처럼 우리도 안식일인 주일에 안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히브리서 4장 4, 9-11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n 제가 2010년 10월 13일에 묵상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자(시편 95편)” 말씀 묵상 글을 다시금 읽게 되었습니다. 몇 부분만 나눕니다: “… 우리는 다 함께 모여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 크신 하나님, 그리고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찬양을 드리데 감사함으로 찬양을 드려야 하며 또한 주님을 향하여 찬양을 즐거이 불러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께 감사히, 즐거이 찬양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자는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배하는 자는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계명을 순종합니다. 결코 진정한 경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경배자는 부지런히 묵은 땅을 기경하여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속히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를 알기에 마음이 미혹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근심케 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경배자 입니다. 그리고 그는 안식을 누리는 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영원한 안식처를 향하여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면서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 영원한 안식을 부분적으로나마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안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를 경배하십시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095401271].
(ii) 여기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막2:27)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요한복음 4장 23-24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아마도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안식일(주일)은 노동으로부터의 안식과 더불어 예배드릴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참고: 호크마).
· 제가 2010년 10월 14일에 “예배-증인들(Worship-Witness)”란 제목 아래 로마서 12장 1-2절 말씀(“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을 묵상한 글중에 한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진정한 영적 예배자는 진리의 성령님과 복음의 진리(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의 좋은 소식)에 이끌림을 받아 예배를 드립니다. 결국 영적 예배란 하나님 중심의 예배요 하나님의 중심의 예배란 항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성령님에 의해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한 마디로, 영적 예배란 삼위일체적 예배입니다(Frame). 우리 구원을 위하여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께서 행하신 독특한 사역을 인지하여 하나님께 감사, 찬양, 경배, 헌신하는 예배가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 이러한 영적 예배를 드리는 영적 예배자들이 추구하는 것 세 가지입니다: (1)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립니다. (2) 자신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추구합니다. (3)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참고: https://blog.naver.com/kdicaprio74/150095469599).
n 그러나 바리새인과 같은 교인들은 안식일(주일)에 병든 사람에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선한 일을 하는 것보다 사람의 영광이 들어나는 사람 중심된 예배를 훨씬 더 중요시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인 “내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안식일에 주인이신 예수님의 말씀보다 사람들이 만든 법을 더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입니다(참고: 마12:7-12, 현대인의 성경).
(e) 마지막 다섯째로,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나(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하신 말씀입니다(눅6:5; 마12:8; 막2:28, 현대인의 성경).
(i) 여기서 예수님께서 ‘나(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입법자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시고(창 1:26) 제 7일에 안식하셨기 때문이며(창 2:1-3), 첫 사람 아담의 타락 후 죄로 오염된 이 세상을 다시금 회복시키고 인간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실 자이시기 때문입니다(히 4:1-11)*(호크마).
· 유대교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려는 노력에 인간의 전생활 영역을 안식일 규정으로 얽매어 놓았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편협한 율법주의에 빠져들었기에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선언하심으로써 안식일 관행은 이제 당신의 뜻과목적에 따라 새롭게 규명되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호크마).
- 칼빈(Calvin)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는 말씀은 바로 안식일에 얽매여야 하는 의무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권세를 예수님께서 받으셨다고 하는 것이며, 따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감당할 수 없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율법을 멍에에서 벗어나서, 멍에를 대신 져 주시는 주님에게로 와서 쉼을 얻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칼빈, 호크마).
n 이렇게 안식일(주일)의 주인은 주님이시요 안식일(주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은 사람이 안식일(주일)을 위해 있는 것처럼 안식일(주일)에 해서는 안 될 짓을 한다고 트집을 잡으면서 자신들이 안식일(주일)의 주인 노릇을 합니다(막 2:24, 27-28, 현대인의 성경).
n 내 안에 있는 바리새인의 모습은 저 사람이 지금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혹시 안식일에 죄를 범하지 않을까 엿보고 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주님이신데 말입니다(눅 6:2,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