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융화될 수 없는 “새 옷”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낡은 옷”인 유대주의를 융화해서 ‘섞인 복음’을 만들어 전한다면 그것은 ‘가짜 복음’이요 ‘거짓 복음’입니다!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그리고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새 옷에서 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 옷도 못 쓰게 되고 찢어 낸 천 조각도 낡은 옷에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현대인의 성경)](누가복음 5:36)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저는 오늘 누가복음 5장 36절부터 39절까지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두 개로 나눠서 묵상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오늘은 누가복음 5장 36절만 묵상하고 내일 금요일에는 5장 47-39절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a) 저는 오늘 묵상할 누가복음 5장 36절 말씀을 읽은 후 먼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같은 말씀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마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낡은 옷에 새 천 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기운 것이 그 옷을 잡아당겨 더 많이 찢어지기 때문이다”(현대인의 성경)], (막2: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낡은 옷에 새 천 조각을 대고 깁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 기운 것이 낡은 옷을 잡아당겨 더 많이 찢어진다”(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난 후 저는 이 세 성경 구절 말씀을 비교하면서 함께 묵상할 때 이 예수님의 비유를 2가지로 묵상합니다:
(i)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새 옷에서 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눅5:36상; 마9:16상; 막2:21상)(현대인의 성경).
· 여기서 “새 옷”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씀하고 있고, “낡은 옷”은 유대주의를 가리키는 말로서 율법을 오해하여 가르친 유대주의와 그리스도의 복음이 하나로 합쳐질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호크마).
- 저는 유대주의를 따르는 유대주의자들을 생각할 때 빌립보서3장 2절 상반절 말씀을 다시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개들을 삼가고”(beware of the dogs).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개들”을 조심하라(주의하라)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개들”은 누구입니까? 그 당시(1세기 AD) 개들은 사나우며 제멋대로 길거리를 돌아나니면서 먹을 것 등을 찾아 쓰레기 더미를 뒤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개들을 아주 더러운 동물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들처럼 여겼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아주 상종하지 못할 더러운 동물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를 보면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고있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요4:9).
- 주후 1세기 그 당시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이방 사람들을 사람으로 취급해 주지 않고 아예 그들을 개들로 여겼습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탈무드를 보면 옛날 유태인 남자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하나님께 하는 세 가지 감사기도 중에 제일 첫번째가 바로 “하나님, 내가 이방인이 아니라 유태인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합니다”라는 기도였다고 합니다. 꼭 누가복음 18장 11절에 기록된 바리새인의 기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감사하나이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들이 개들처럼 여겼던 이방인들을 주의(조심)하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개들을 주의하라”(빌3:2)고 말했을 때에는 유대인들, 특히 유대주의자들(Judaizers)를 염두해 둔 것입니다.
n 여기서 ‘유대주의자들’이란 누구입니까? 유대주의자들은 초기에 복음을 맹공격을 퍼부은 단체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들은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이방인들이 구약의 어떤 의식(특히 할례의식)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이 유대주의자들과 그들의 거짓된 복음을 이단으로 말하고있으며 심지어 저주까지 했습니다(갈라디아서). 그런데 문제는 유대주의자들은 교회 안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진짜 신자로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교회에서 그랬습니다(갈2:12). 그러나 정작 그들은 그 교회에서 복음의 명료성을 훼손하고, 복음을 심각하게 더럽혔으며 또한 이방 신자들을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그 혼란에 원인을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바울의 논리는 누군가가 (1) 먼저 그리스도를 믿고, (2) 그런 다음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고, (3) 다음에 즉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준비를 한다고 말한 반면에 유대주의자들은 누군가가 (1) 그리스도를 믿고, (2) 최선을 다해 율법을 지키고, (3) 그리고는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말한 것입니다(그래샴 메이첸).
# 이 차이가 아주 미묘한 차이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큰 차이입니다. 그 차이란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반면에 유대주의 자들은 인간이 노력하여 율법을지켜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전파하였던 참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행하신 일에 초점을 맞추지만(은혜), 유대주의자들이 주장한 거짓된 복음은 죄인인 사람들이 행하는 일에 초점을 맞춥니다(공로). 한 마디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유대주의자들은 인간의 행함으로 구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인간의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거짓가르치는 유대주의자들을 가리켜 “개들”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들이 물질을 탐하여 스승으로 자처하고 돌아 다니는 까닭이었습니다(빌3:19).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 거짓된 복음(가르침)을 전하는 거짓 스승들인 유대주의자들이 위험하기에 그들을 주의(조심)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ii) 둘째로, 예수님께서 만일 새 옷에서 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대고 깁으면 새 옷도 못쓰게 되고 새 옷에서 찢어 낸 천 조각도 낡은 옷에 어울리지 않을뿐만 아니라(눅5:36 하, 현대인의 성경) 새로 기운 것이 낡은 옷을 잡아 당겨 더 많이 찢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막2:21하; 마9:16하)(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은 3가지로 나눠서 묵상합니다. 만일 새 옷에서 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대고 깁으면 …
- 첫째로, 새 옷도 못쓰게 됩니다(눅5:36, 현대인의 성경).
n 결코 융화될 수 없는 “새 옷”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낡은 옷”인 유대주의를 융화해서 ‘섞인 복음’을 만들어 전한다면 그것은 ‘가짜 복음’이요 ‘거짓 복음’입니다!
- 둘째로, 새 옷에서 찢어 낸 천 조각도 낡은 옷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n 어떻게 “새 옷”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낡은 옷”인 유대주의가 어울릴 수가 있겠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그리고 결코 어울려서도 아니됩니다. 그런데 어찌된 노릇입니까?? 어떻게 우리 목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유대주의와 혼합해서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까??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이 쓴 편지 내용을 보십시오: “사실 다른 복음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여러분을 혼란 가운데 빠뜨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갈1:7,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8-9절). 그런데 이게 어찌된 노릇입니까?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보십시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 셋째로, 새로 기운 것이 낡은 옷을 잡아 당겨 더 많이 찢어집니다.
n 원래 세탁된 적이 없는 새 옷은 빨면 줄어드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 새 옷에서 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대고 깁은 후 빨면 즐어드는 새 옷의 천 조각이 낡은 옷을 더 잡아 당겨 더 많이 찢어질 수밖에 없습니다(참고: 인터넷).
n 즉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옛 종교인 유대교 이식에 접붙여질 경우 유대교 의식은 마치 낡은 옷처럼 이 새로운 복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허물어져 버리고 말 것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리새인들의 교리는 많은 금식과 금욕주의적 의식들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런 것들은 예수님의 새 복음과는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예수님의 새 교리들과 바리새인들의 낡은 교리들을 비교하면 할수록 바리새인들의 교리는 점점 더 고립되고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바 새로운 교훈과 은혜의 복음 및 생명의 진리는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 하지만 형식적이고, 바리새주의적인 옛 율법주의와는 절대로 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Lenski). 오직 새로운 진리에는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형식이요구될 뿐입니다(호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