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하여 권위 있는 말씀을 선포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선교하길 기원합니다.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누가복음 4:31-32)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예수님께서는 자라나신 고향 나사렛(눅4:16, 현대인의 성경) 북동쪽으로 약 40 km 떨어진 갈릴리 연안에 위치한 도시인(호크마)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참고: 여기서 “내려오사”란 표현은 갈릴리 바다가 지중해의 수면보다 약 200 m 정도가 낮기 때문에 높은 곳에 위치한 나사렛에서 해변의 평지에 이르는 길이 내리받이 경사였음을 보여줌(호크마)] 안식일에 가르치셨습니다(31절).
(a)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이미 묵상한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요당 강에서 돌아오셔서 성령님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가 40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유혹)을 받으셨을 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 성경으로 승리하신 후(1-13절)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셔서(14절) 친히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다는 말씀(15절)과 자라나신 고향 나사렛으로 가셔서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셔서 성경을 읽으셨다(16절)는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i) 그리할 때 저는 두 가지 좀 흥미로운 관찰을 하게 되었습니다:
· 첫째로, 저는 누가복음 4장 1절에서 예수님께서 요단 강에서 ‘돌아오셨다’는 말씀과 14절에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돌아가셨다’는 말씀에 흥미를 갖게 되었는데 여기서 “돌아오사”(1절)란 헬라어 단어와 “돌아가시니”(14절)란 헬라어 단어는 동일한 단어입니다[ὑπέστρεψεν (hypestrepsen)].
- 그리했을 때 저는 누가는 자기가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이 헬라어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는 사실[전체 용례의4분의 3이상을 차지(인터넷), 즉 전체 사용된 사례의75%이상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었음(인터넷)]과 더불어 누가의 관심은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공적 사역에 있어서 예수님의 여정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에 대한 관심을 많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참고: 인터넷).
n 그리고 저는 주님이 세우시는 승리장로교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선교(the Spirit-driven mission)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교회 당회(session)원인 담임 목사인 저와 장로님이신 윤 장로님이 성령 충만해여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성령님께서 주님의 교회인 승리장로교회를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어떻게 그 때 그 때 사용하시길 원하시는지 지혜롭게 또한 영적 민감함을 가지고 잘 분별하여 성령님께 순종해야 할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둘째로,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있는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다는 말씀(14-15절)과 자라나신 고향 나사렛에서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셔서 성경을 읽으셨다는 말씀(16절)과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서도 안식일에 가르치셨다는 말씀(31절)에 흥미를 갖게 되었는데 여기서 저는 예수님의 공생애(public ministry)에 있어서 가르치는 사역에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여기서 “예수님의 공생애”란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시점(약 30세)부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약 3년~3년 6개월간의 공적인 사역 기간을 의미합니다(인터넷)].
- 그리할 때 저는 특별히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그 말씀이 권위가 있”었기에(32절)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32절,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되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저자 누가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3:23)하고 기록한 후 오늘 본문 4장 32절에 와서는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고 기록하였는데 나중에 사도행전 13장 12절에 가서는 성령이 충만한 사도 바울(9절)이 총독이요 지혜 있는 사람인 서기오 바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7절) 마술사 엘루마가 사도 바울을 대적하여 서기오 바울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썼지만(8절) 결국에 가서는 서기오 바울 총독이 “주님에 대한 가르침에 크게 놀라 믿게 되었다”(12절,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주님이신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주님에 대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들은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주님은 절대적인 귄위자이시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시기에 “성령님의 능력을 받”으신(눅4:14, 현대인의 성경) 주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권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눅4:32). 그리고 그 권위 있는 말씀을 성령으로 충만한(행13:9, 현대인의 성경) 사도 바울이 서기오 바울 총독(7절)에게 주님에 대하여 가르쳤을 때 그 총독이 크게 놀랐을 뿐만 아니라 주님을 믿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12절, 현대인의 성경).
n 저도 매 주일마다 늘 하던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성령으로 충만하여 절대 권위자이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권위 있는 말씀”(눅4:31, 현대인의 성경)을 그대로 선포하길 기원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 말씀(개역 한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참고: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369843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