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셨기 때문에 ...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개월간 닫히어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중의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크게 화가 나서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동네가 건설된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누가복음 4:25-30)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자라나신 고향 나사렛”(4:16,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환영”(24) 존경”(13:57; 6:4) 받지 못하시고 오히려 배척”(13:57; 6:3) 당하신 예수님께서는  고향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 않는 것을 보시고 놀라지 않을  없었습니다(6:6, 현대인의 성경).

 

(a)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4:16)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17) 읽으시고(18-19) “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21)하고 말씀하셨을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20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겼었는데(22이제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불신앙을 보시고 놀라신 것입니다(6:6, 현대인의 성경).

 

(i)                  이렇게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겼던 회당에 모였던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고 존경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배척을 했는데 오늘 본문 누가복음 4 28-29절을 보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은  크게 화가 나서 일어나 동네 밖으로 예수님을 쫓아내어  동네가 건설된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예수님을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였습니다.

 

·          그들은  정도로 크게 화가  것이었을까요?  예수님에 대하여 감탄하고  은혜스러운 말씀에 놀랬던(22현대인의 성경그들이 예수님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기에  정도로 크게 화가 나서 예수님을  위에 세워진  마을  벼랑까지 끌고 가서 던져 버리려고 했던 것일까요? (29현대인의 성경)

 

-          여기서 저는 마귀가 광야에서 예수님을  번째 시험(유혹)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9-11).   말씀이 생각난 이유는 마치 마귀가 예수님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거기서 뛰어내리라고 유혹한 것처럼마귀의 자식들은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크게 화가 나서[“분개하여”(현대인의 성경)] 일어나 예수님을  위에 세워진  말을  벼랑까지 끌고 가서 예수님을 밀쳐 떨어뜨리고자 했었기 때문입니다(28-29).

 

n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크게 화가 나서 예수님을 벼랑에서 아래로 밀쳐 죽이려고 했던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은 민 반역죄를 범한 것으로 몰아 유대 전통상 반역자를 처단하는 형벌 제도가 바로 벼랑에서 사람을 밀쳐 죽이는 형벌이었기 때문입니다[(대하25:12) “유다 자손이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몸이 부서지게 하였더라”](호크마).

 

(2)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에 대하여 감탄하고  은혜스러운 말씀에 놀랬던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 돌변하여 예수님을 벼랑에서 아래로 밀쳐 죽이려고까지 했었는지 놀랍지 않습니까?   이유는 그들의 입장에서 예수님은 민 반역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외쳤기 때문에 예수님이 민족 반역죄를 범한 것으로 몰아 유대 전통상 반역자를 처단하는 형벌 제도인 벼랑에서 아래로 사람을 밀쳐 죽이는 형벌을 집행하고자 했던 것입니다(호크마).

 

(a)   그러면 여기서 예수님께서 외치신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누가복음 4 25-27 말씀입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개월간 닫히어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중의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i)                  여기서 예수님께서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에게 외치신 이방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1) 첫째로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3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나라에  흉년이 들었을  거기에는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시돈의 사렙다에 사는  과부에게만 엘리야를 보내셨다(25-26현대인의 성경) 것과 (2) 둘째로엘리사 시대에는 이스라엘 많은 문둥병자가 있었으나  사람도 깨끗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고침을 받았다(27현대인의 성경) 것입니다.

 

·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구약상의  가지 실례인 엘리야와 엘리사가 행한 일들은  다다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행한 일들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시돈의 사렙다(현재 레바논 남부에 있는 도시) 사는 이방 여인인  과부에게만 보냄을 받아  흉년이 들어 고통받고 있었던  과부의  속에 밀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는 기적이 일어나 하나님의  은혜와 공급을 받았고엘리사는 수리아 사람(현대의 시리아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나아만 군대장관에게만 요단 강에서 일곱  몸을 씻으라고 말씀함으로 결국에 가서는 나아만이 나병(문둥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지 실례를 들어  회당에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이방인들에게만 보내셔서 건져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3:23; 참고18:15)이신 예수님을  땅에 보내셔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예수님께 나오는(예수님을 믿는모든 자들에게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8:11, 현대인의 성경) “ 너희에게 말한다.  동서 사방에서 많은 이방인들이 모여들어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6:37, 현대인의 성경)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사람은  내게로  것이며 내게 오는 사람은 내가 절대로 쫓아내지 않을 것이다”].

 

-           예수님의 말씀이 유대인 선민 의식에 가득차 있었던 회당에 모여 있던  모든 유대인들에게는 충분히  분노를 일으켰고  분노가 극에 달했기에 살의를 띠게 되어서 예수님을  위에 세워진  마을  벼랑까지 끌고 가서 밀어 떨어뜨림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배척과 살해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습니다(호크마)[참고유대인 선민 의식이란 유대인들은 자신들 민족만이 하나님의 택한 특별한 백성이라고 믿고 또한 자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도 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 백성이고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방인으로서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들로 취급합니다.   이런 선민의식은 아직도 유대교와 유대인들에게 남아 있어서 자신들이 이외에는  이방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인터넷)].

 

n  호크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의 말씀이 선민 의식에 가득차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모욕과도 같은 언사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회당은 일시에 수라장으로 변해 버렸다.  예수의 말씀을 청종하고 겸손한 태도로 자신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길 간구해야  청중들은 냉소적이고 불신에  태도에서 한걸음  나아가 맹목적인 증오와 분노의 태도로 돌변한다.  …  분노가 극에 달하면 살의(殺意) 띠게 된다.  처음엔 호의적인 태도로 말씀을 듣던 청중들이 어느새 폭도가 되었다.  이는 예수를 향하여 호산나 찬양을 외치던 군중들이 종국에 가서는 '십자가에 못박으소서'라고 외치는 적대 무리로 돌변하는 장면과 대비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호크마).

 

(3)   그러나 아직 예수님께서 죽음을 맞이하실 때가 아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셨습니다(4:30).  예수님께서는 가시고자 하시는 길을 계속 가셨습니다(호크마).

 

(a)   죽음의 난관에 봉착해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사역에 충실하며 복음의 사역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을 보게  (호크마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 각자의 부르심(소명따라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우리 생명을 받쳐서(8:35) 어떠한 죽음의 난관에 봉착한다 할지라도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찬송가 549, “ 주여 뜻대로” 3 가사기원하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것입니다.

 

(i)                   찬송가 549, “ 주여 뜻대로” 가사입니다:

(1절)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몸과 영혼을  주께 드리니  세상 고락간  인도하시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절)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절)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모든 일들을  주께 맡기고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          찬송을 작사한 베냐민 슈몰크(Benjamin Schmolck, 1672-1737) 독일의 루터교 목사님은 죽음보다도 참기 힘든 고난의 때에  찬송가 가사를 작사했습니다.  1704그의 나이 32살이던 어느 부부가 심방을 나갔다 돌아와 보니집이 홀랑 불타버리고아들 둘은 새까맣게  죽어 있었습니다.  그는 처절하게 울부짖다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주님의 환상을 보고'Mein Jesu, wie du willst' (나의 예수여주님 뜻대로 하소서라는 찬송을 작사한 것입니다.  3 마지막,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그의 신앙고백입니다(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