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현대인의 성경) “로마의 티베리우스황제가 다스린 지 15년째가 되던 해에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 총독으로 있었다. 그리고 헤롯은 갈릴리 지방의 왕으로, 그의 형제 빌립은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왕으로, 루사니아는 아빌레네 지방의 왕으로 있었으며 안나스와 가야바는 대제사장으로 있었다. 바로 그 무렵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들려왔다”](누가복음 3:1-2)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저는 누가복음 3장 1-2절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현대인의 성경) “바로 그 무렵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들려왔다”](2절 하반절)하는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3가지 흥미로운 점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a) 첫째로, 예언자적 메시지가 부재했던 400년의 침묵기 이후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인터넷).
(i)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아모스 8장 11절의 예언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 비록 인터넷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이지만 저는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을 맞이했다고 생각합니다.
- 새 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1절 가사와 후렴 가 생각났습니다: “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시옵소서.”
(b)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세례 요한에게 임한 장소가 “빈 들”[“광야”(현대인의 성경)](눅 3:2)이라는 것입니다.
(i) 여기서 “빈 들”이란 헬라어 단어 “ἐρήμῳ”(에레모스)의 의미는 “광야”(a desert, wilderness)로서 이 물리적 장소인 광야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더욱 강조합니다. 로마의 대로들은 제국의 권세를 자랑했지만, 세례 요한은 광야 지역에 서서 더 큰 왕국을 선포하였습니다. 그가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니라”(마3:1)고 한 것은 성경의 성취일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제사장 부패로부터의 분리를 나타냅니다. 무리들이 그에게 몰려나오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때로는 문화적 중심지를 떠나는 것을 요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인터넷).
· 여기서 예루살렘의 제사장은 오늘 본문 누가복음 3장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안나스와 가야바” 대제사장으로서 그들의 부패란 안나스는 전직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의 사역을 핍박하고 예수님과 사도들을 처형하는 데 앞장섰고, 가야바는 현직 대제사장이요 안나스의 사위로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도록 모의를 꾸몄음을 말합니다(참고: 인터넷).
- 흥미로운 점은 성경에서 “광야”(ἐρήμῳ)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풍성히 임재하시고 공급하시는 장소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한계가 없는 주님은 인생의 “제한된”(어렵고 힘든) 장면들 속에서 자신이 강하심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In Scripture, a "desert" (érēmos) is ironically also where God richly grants His presence and provision for those seeking Him. The limitless Lord shows Himself strong in the "limiting" (difficult) scenes of life)(인터넷).
n 그러므로 우리는 의도적으로라고 “광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광야에 들어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분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반가운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광야만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배 울 만한 곳이 없습니다(신8:3). 그러므로 우리는 광야의 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즐기는 생활 가운데서 우리의 영혼이 살고 또한 소성케 돼야 합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반석이 되시는 예수님의 넘치는 생수의 강을 체험해야 합니다(요7:38). 우리는 광야에서 성령 충만해져야 합니다.
(c) 마지막 셋째로, 세례 요한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i) 그 소명의 말씀이란 누가복음 3장 4절 말씀으로서 그 말씀은 이사야 40장 3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 여기서 세례 요한의 소명이란 주님의 오실 길을 곧게하므로 준비하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그 말씀이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3절)입니다. 즉, 세례 요한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의 말씀이란 죄를 씻는 회개의 세례를 백성들에게 선포하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받을 준비를 시키는 것이었습니다(참고: 인터넷).
- 그래서 세례 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1-2)하고 전파했습니다.
n 저는 세례 요한에게 임한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의 말씀을 묵상할 때 1987년 승리장로교회 대학부 수련회 때 고 김영익 목사님이 선포하신 요한복음 6장 1-15절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저를 부르시사 사명을 주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멈출 수 없고 끝나지 않는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나누는 것이 저의 소명입니다(Unstoppable and unending calling of meditating His living Word day and night and share with others. This is my cal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