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은 “내 평생에 가는 길”을 하나님께 찬양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누가복음 2:13-14)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눅2:9, 현대인의 성경) “베들레헴”(6절, 현대인의 성경) “부근 들판”에서 “밤을 세워가며 양떼를 지키고 있었”던 “목자들”(8절, 현대인의 성경)에게 “혼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 후(10절) “갑자기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그 천사와 함께”(13절, 현대인의 성경)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4절)하고 “하나님을 찬송”(13절)하였다[(14절, 현대인의 성경) “가장 높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에게 평화!'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다”]는 말씀을 묵상할 때 제일 먼저 저는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그 천사와 함께”(13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을 찬송하였다”(14절,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a) 그리하여 수많은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찾다가 요한계시록 5장 11-12절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i) 사도 요한이 본 환상 속에서 “수많은 천사들”이(11절, 현대인의 성경) 보좌에 앉으신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12절)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음성을 들었는데(11절, 현대인의 성경) 그 찬양 내용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12절)였는데 이는 어린양 예수님께서 모든 영적인, 물질적인 소유와 통치의 지혜를 가지셨으며, 하나님과 동일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분임을 나타냅니다(참고: 인터넷).
· 이 수많은 천사들의 찬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일한 존귀와 영광,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인터넷).
- 이 찬양은 하늘 보좌 앞에서 드려지는 온전하고 영광스러운 예배의 모습으로서 하늘의 천사들뿐만 아니라 땅 위에, 땅 아래, 바다 위 등 모든 피조물들이 어린양 예수님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돌리는 예배로 이어져야 합니다(참고: 인터넷).
n 복음성가 “죽음 당하신 어린양 받으소서 능력과 부귀와 지혜와 힘” 가사입니다:
“죽음 당하신 어린양 받으소서
능력과 부귀와 지혜와 힘 또 존귀와 영광과 찬양
존귀하신 주 존귀하신 주 존귀하신 주
존귀하신 주 존귀하신 주 존귀하신 주
존귀하신 주 존귀하신 주 존귀하신 주.”
n 복음성가 “비전(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가사입니다: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 주셨네.
그의 피로 우리 구원받았네.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 강같이 온 땅에 흘러-
각 나라와 족속, 백성 방언에서 구원받고 주 경배 드리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어린양께 있도다.”
(b) 이렇게 요한계시록 5장 11-12절에서 수많은 천사들이 보좌에 앉으신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 후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피조물이 보좌에 앉으신 성부 하나님과 어린 양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동시에 찬양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3)
(i) 그리고 나서 셀 수 없는 무리들이 천상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7:10). 여기서 셀 수 없는 무리들은 구원받은 무리들로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오는 자들로서 순교자들로 봅니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있으며,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큰 소리로 찬양합니다.
· 그리고 나서 모든 천사들이 보좌 앞에 엎드려 셀 수 없는 무리들의 찬양에 대해 이렇게 화답 찬양합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12절)(참고: 인터넷).
(c) 저는 이렇게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찬양들을 묵상하는 가운데 특히 요한계시록 15장 3-4절에 나와있는 짐승을 이긴 자들의 찬양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i) 여기서 짐승은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을 말하며(13:1)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은 적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 찬양은 적그리스도와 그의 우상, 그리고 그 이름의 수인 666표를 이기고 승리한 자들의 찬양으로서 그들은 천상의 유리바다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 제목이 바로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였습니다(참고: 인터넷).
· 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장차 부르게 될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짐승”(the beast)인 사단의 적그리스도를 이기고 끝까지 모든 핍박과 환난을 견뎌낸 최후의 승리자들입니다(MacArthur). 이 최후의 승리자들은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실 하나님의 승리의 백성들입니다. 승리케 하시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적그리스도와 인간을 우상화한 그 적그리스도의 우상들에게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2절, 박윤선).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 짐승의 수 곧 적그리스도의 수(“그의 이름의 수”)인 “육백 육십 육”(13:18)을 이마에나 오른손에(16절) 소유하지 않게 하시사 최후 승리를 얻는 승리자들로 하여금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게 하실 것입니다.
- 이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주님께서 승리케 하시사 구원하여 주신 모든 성도들이 다 함께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찬양할 것인데 이 노래의 내용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15:3), 하나님의 왕권(3절)과 하나님의 거룩(4절)을 찬송합니다[참고: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806146266?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2) 오늘 본문 누가복음 2장 13-14절 말씀에서 마지막 두 번째로 제 마음에 다가온 말씀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4절)입니다. 여기서 제가 관심을 갖게 된 대조는 바로 “지극히 높은 곳”[“가장 높은 하늘”(현대인의 성경)]과 “땅” 그리고 “영광”과 “평화”입니다.
(a) 먼저 왜 “하늘”과 “땅”이라고 대조하지 않고 “지극히 높은 곳”[“가장 높은 하늘”(현대인의 성경)과 “땅”이라고 대조하였는지 좀 궁금합니다.
(i) 여기서 “지극히 높은 곳”이란 헬라어 단어(ὑψίστοις)가 신약 성경에 13번 나오는데 그 중에 4번은 찬양하는 말씀에 나오는데 오늘 본문 누가복음 2장 14절 외에 신약성경에 세번 더 나옵니다: (1) (마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2) (막11: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3) (눅19: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 이 말씀들을 보면 “지극히 높은 곳”이란 헬라어 단어가 세 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자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종려주일에) 무리들이 큰 소리를 하나님을 찬양할 때 “지극히 높은 곳”(또는 “가장 높은 곳”)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나머지 한 번은 오늘 본문 누가복음 2장 14절에서 수많은 천사들[“수많은 천군”(13절)에서 “천군”이란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하늘의 군대로서 수많은 천사들의 무리를 지칭하는 말임(인터넷)]이 구주이신 우리 주 그리스도(11절) 예수님의 탄생을 하나님께 찬송하였을 때 그 단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 결국 “지극히 높은 곳”이란 단어가 사용된 네 번 중 한 번은 예수님의 탄생 후에 쓰여졌고 나머지 세 번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쓰여졌습니다.
· 이렇게 “지극히 높은 곳”이란 헬라어 단어가 4번은 찬양하는 말씀에 나오는 반면에 나머지 9번은 신적 칭호(“지극히 높으신 이”)로 사용되었는데 그 중 2번은 우리가 이미 묵상한 가브리엘 천사가 처녀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인 누가복음 1장 32절과 35절에 나옵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32절),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35절).
- 이 두 말씀은 “지극히 높으신 이”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이 세상[하늘(heavens)에 대비하는 “땅”(the earth)(2:14)(인터넷)]에 오실 것을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말씀으로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낮추셔서 피조물인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입니다(마1:21, 현대인의 성경).
n 그 구원의 방법은 예수님께서 “원래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고 계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의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 되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시는 것이었습니다(빌2:6-8, 현대인의 성경).
(b) 그 다음에 좀 궁금한 점은 왜 “가장 높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눅2:14, 현대인의 성경)이고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현대인의 성경)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에게 평화!”](14절)라고 대조하였는가입니다. 저는 이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의 대조에 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i) 그래서 저는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이란 헬라어 단어(εὐδοκίας)에 의미를 먼저 관심을 갖게 되어 좀 찾아보았는데 그 단어의 신약 성경에서의 용례(occurrences)와 범주(categories)에 대한 글이 흥미롭습니다(인터넷):
· 구속적 계시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Divine delight in redemptive revelation)
- 마태복음 11:26, 누가복음 10:21: “옳소이다 아버지여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아버지께서는 “어린아이들”에게 나라를 드러내시기를 기뻐하시며, 구원의 지식이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에 의해 주어짐을 보여주십니다.
· 성육신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Divine delight in the Incarnation)
- 누가복음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천군의 찬송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εὐδοκία(유도키아)를 메시아가 가져오신 평화와 연결시킵니다.
· 선택과 양자 됨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Divine delight in election and adoption)
- 에베소서 1:5-6: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 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것이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그분의 기뻐하시는 목적에서 흘러나와 결국 그의 은혜의 찬송으로 귀결됩니다.
· 성화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기쁨(Divine delight energizing sanctification)
-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믿는 자의 순종은 구원을 계획하신 바로 그 은혜로운 목적에 의해 능력 있게 됩니다.
· 복음에 의해 빚어지는 인간의 선한 뜻(Human goodwill shaped by the gospel)
- 로마서 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바울의 갈망은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반영합니다.
- 빌립보서 1: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성령으로 난 선한 뜻은 진실한 복음 선포를 동기 부여합니다.
- 데살로니가후서 1:11: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선한 소원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시기를” 기도하며, 성도들의 열망이 하나님의 기쁨과 일치하기를 구합니다.
(ii) 그리고 저는 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눅2:14)이란 헬라어 단어(εὐδοκίας)의 신학적인 의미(Theological Significance)가 흥미롭습니다(인터넷):
· 주권적 은혜: εὐδοκία는 구원이 인간의 주도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목적에서 비롯됨을 강조합니다(엡 1:5).
· 그리스도 중심의 계시: 하나님의 기쁨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 집중되어 있습니다(눅 2:14; 엡 1:9).
· 송영적 목표: 하나님의 기뻐하심은 그의 영광의 찬송으로 이어집니다(엡 1:6).
· 협력적 성화: 하나님이 주도적 행위자이시지만(빌 2:13), 신자들은 적극적으로 순종을 추구하며, 그들의 노력이 하나님의 기쁨 안에 있음을 확신합니다.
· 선교적 충동: 바울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간구한 마음(롬 10:1)과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한 기도(살후 1:11)는 신자들의 소망이 하나님의 열방을 향한 구원의 선한 뜻을 반영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 저는 이 다섯 가시 신학적 의미 가운데 두 번째인 “그리스도 중심: 하나님의 기쁨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 집중되어 있습니다(눅2:14; 엡1:9)”이란 문구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이 문구가 오늘 본문 누가복음 2장 14절 말씀에 관한 문구이기 때문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n 여기서 저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 집중되어 있는 하나님의 기쁨을 묵상할 때 이 땅에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그래도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향하여 “너는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내 아들이다”(눅3:22,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셨는데 말입니다.
# 그런데 “지극히 높으신 이”(1:32, 35)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사랑하고 기뻐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천국 보좌에서 이 세상으로 던지셨고, 또한 하류계층만이 벌받는 십자가까지 던지셨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 가서는 땅 속까지 던지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신 예수님을 땅 속까지 쫓아내셨습니다.
#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2:6)낮고 천한 이 세상에 죄 없는 육체의 몸을 입고 오시되, 낮고 낮은 베들레헴 마굿간 구유(짐승의 먹이를 두는 곳)에 누이시고(눅2:7),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시되(빌2:7)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셨는데(8절), 그 십자가 형은 하류계층에게만 적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낮아지고 낮아지시되 "땅 속"까지 내려가셨습니다(마12:40).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영원한 지옥으로 쫓아낸바 될 수밖에 없는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인 우리들(롬5:8, 10)을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시기위해서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하늘에 속한 자들”로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고전15:48)[참고: 땅 깊은 속에까지 내려가신 예수님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2297884644)].
n 여기서 저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 집중되어 있는 하나님의 기쁨을 좀 더 묵상할 때 그리스도를 믿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즉, 우리의 인격은 겸손히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과 우리의 사역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야 한다[참고: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와 복음을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막8:35, 현대인의 성경)]는 교훈을 받습니다.
(iii) 궁극적으로 저는 이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의 대조에 대해서 묵상할 때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의 평화를 위해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나으신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는 아들이시요(눅3:22)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롬8:29) 우리는 이 땅에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되[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님의 형상은 바로 “고난”임(17-18절). 그러나 로마서 8장 2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그 아들의 형상”은 천상에서의 예수님의 형상으로서 그것을 바로 “영광”임(김창세)] 하늘에 계신 예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것처럼 우리도 하늘 나라에 가면 영광을 받을 줄 믿고 소망하면서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롬8:18, 현대인의 성경)[참고: 현재의 고난과 장래의 영광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2998935665)].
·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임합니다. 이 평화는 이 세상이 줄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참된 평안과 평화입니다(참고: 인터넷).
- “이는 단순히 갈등이 없는 상태를 넘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온전함,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뜻하며, 회개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인터넷).
n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은 새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을 하나님께 찬양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1절)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2절)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3절)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 눈 보다 더 정하리라
(4절)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에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으리
(후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