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 "구유," "강보"

 

 

 

 

거기 있을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현대인의 성경)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해산날이 찼다.  여관에는 사람이  차서 있을 곳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마굿간에 머물게 되었다거기서 마리아는 첫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누가복음 2:6-7)하는 말씀을 단어 중심으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첫째 단어는, “베들레헴입니다(2:6, 현대인의 성경).

 

(a)   개역개정 성경은 거기라고 번역을 했고현대인의 성경은 베들레헴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개역개정에서 말씀하고 있는 거기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4) 말씀하기에 현대인의 성경이 베들레헴이라고 번역한 것을 타당합니다.

 

(b)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베들레헴 아기 예수 그리스도(메시아)께서 탄생하신 곳입니다

 

(i)                  이것을 미가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700  전에 메시아(그리스도)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영원에 있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너는 유다에서 가장 작은 마을 중의 하나이지만 너에게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 것이다.  그는 영원 전부터 있는 자이다'”](5:2).

 

·          미가 5 2 말씀은 마태가 마태복음 2 6절에 인용하였는데  배경은 헤롯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2:1-2)하고 말하였을  헤롯 왕과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하였습니다.  그리고 헤롯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었을 (3-4) “그러자 그들이 …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그것은 예언서에 이와 같이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5현대인의 성경)하고 말한  미가 5 2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고 마태복음 2 1-6절과 누가복음 2 4, 15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c)   저는  말씀들을 묵상할  특히 마태복음 2 6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 유대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아마도  이유는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베들레헴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하고 한국 개역개정은 번역하였는데 원어 헬라어 의미를 영어 성경 NASB  번역을 했습니다: “LAND OF JUDAH, ARE BY NO MEANS LEAST AMONG THE LEADERS OF JUDAH”(‘유다 땅아네가 유다의 지도자들 중에서 결코 가장 작은 자가 아니로다’).

 

(i)                  저는  번역을 생각할  유다의 지도자들 중에서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개역개정은 유대 고을 중에서하고 번역을 했지만).  그리고  관심 속에서 유다의 지도자들 묵상할  사무엘상 16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왕을 보았느니라”(1)하는 말씀 속에서    바로 베들레헴 사람” 다윗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13).

 

·         그리고 저는 다윗을 생각할  사무엘상 17장에서 다윗이 키가 거의 3미터나 되는 거인인 데다가 놋으로 만든 투구를 쓰고 무게가 57킬로그램이나 되는 놋갑옷을 입고 다리에는 놋으로 만든 각반을 대고 놋창까지 들고  블레셋 장군” “가드 사람 골리앗”(삼상17:4-6, 현대인의 성경)에게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알게 하겠고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45-47)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물매와 돌로 골리앗을(50죽이고 돌아올 때에 아브넬이 다윗을 사울  앞으로 인도하니 사울이 다윗에게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냐하고 물으니 다윗이 나는 주의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57-58)하는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          이렇게 유다  베들레헴은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유다에서 가장 작은 마을 중의 하나이지만”(5:2, 현대인의 성경유다의 지도자들 중에서 결코 가장 작은 자가 아닌(2:6) 다윗 왕이 태어난 곳으로서  다윗 왕의 혈통을 통해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입니다(2:6, 15-16, 현대인의 성경).

 

(2)   둘째 단어는, “구유입니다(2:7).

 

(a)   1세기 유대에서 구유”(φάτνη),  여물통은 대개 거칠게 다듬은 돌로 만든 상자이거나집이나 동굴 외양간의 낮은 층에 만들어진 진흙을 바른 움푹한 곳으로밤에 가축을 두는 장소에 설치되었습니다.  이는 가축의 높이에 맞춰 놓였으며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축의 먹이를 담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습니다.   흔함 때문에 구유에 대한 언급은 즉시 농민들의 일상생활을 떠올리게 합니다(인터넷).

 

(i)                  이렇게 농민들의 일상생활을 떠올리게 하는 흔한 구유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축의 먹이를 담기 위해 고안된 구유에 유다의 지도자들 중에서 결코 가장 작은 자가 아닌(2:6) 다윗 왕의 혈통을 통해 오신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뉘었습니다(2:7). 

 

·         물론  이유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었기 때문이었지만[현대인의 성경으로 말한다면, “여관에는 사람이  차서 있을 곳이 없었 때문이었지만](7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성자 예수님을  땅에 보내실   없이 많고 많은 장소들 중에 하필이면 마구간”(7현대인의 성경안에 있는 구유”[“마소이 먹이를 담는 그릇”(인터넷)] 아기 예수님을 뉘이도록 하신 것일까요?

 

-           이유는 성부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메시아에 관하여 예언하신 이사야 53 2 말씀을 성취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n  여기서 연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다는 말씀은 메시아의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시작을 나타냅니다.  화려한 배경이나 화려한 모습 없이평범하고 연약한 모습으로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인터넷).

 

n  또한 여기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하는 말씀은 세상의 관점에서  흠모할 만한 외적인 아름다움이나 풍채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는 메시아가 화려한 왕의 모습이 아니라 고난받는 모습으로  것이라는 예언입니다”(인터넷).

 

-          이렇게 메시아(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화려한 영광이 아닌고난과 멸시를 통해 구원을 이루시고자  땅에서 구유에서 시작하시고 결국에 가서는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2:8, 현대인의 성경) 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고난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입니다(참고인터넷).

 

(b)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에게는 풍채나 위엄이 없고 우리의 시선을  만한 매력이나 아름다움도 습니다(53:2, 현대인의 성경).  그러기에 아기 예수님이 뉘이신 마구간 안에 있는 구유 우리의 관심을  만한 매력이나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i)                  그러기에 우리의 관심은 결코 구유같은 교회 건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화려한” 교회 건물입니다

 

·         에스겔 16 14-15 말씀이 생각나 다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나 네가  화려함을 믿고  명성을 가지고 행음하되 지나가는 모든 자와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          분명히 이스라엘의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운 명성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영화로움 덕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화려함이 자신들의 능력이라고 착각하고 하나님이 주신 부와 명성을 믿고 교만해졌습니다.   결과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을 버리고여러 우상을 섬기며(영적 음행세상을 따라가는 죄에 빠졌습니다(인터넷).  그들은 세상의 속한 자들과 짝지어 살면서 자기 자신을 좋게 하려고 세상을 즐겼던 것입니다(박윤선).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은혜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n  지금 교회는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와 축복들을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금 교회는  모든 은혜와 축복들을 교회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까?  교회가 너무 화려해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려함이 하나님께 영광을 들어내기보다 교회 자체의 영광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보다 교회의 이름이  들어나고 있습니다.  교회 이름도 브랜드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회 이름이 세상 사람들에게도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결과 명성으로 인하여 교만해진 교회는 자기의 화려함을 믿고 있습니다.

 

n  지금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화려함을 내적화하지 못하고 외면화하여 세상과 짝지어  다를  없이 살아가면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보다 교회 자신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인 자녀들을 하나님께 받치기보다 세상에 받치고 있습니다.  교회 직분 자들 조차도 자녀들을 주님과 그의 복음과 그의 교회와 나라를 위하여 받치기보다 세상의 성공의 사닥다리를 올라가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낳은 자녀들인데(20자기 자신과 세상을 위하여 받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문제는 지금 우리는  죄를 작은 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지금 교회는 죄를 죄로 여길  있는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n  교회의 화려함?  주님이 주님의 교회에게 입힌 영화로 교회의 화려함이 온전해져야 하는데 사람들이 교회에 치장한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명성이 세상 사람들 중에 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 ( 16:14)

 

n  교회의 화려함을 믿고 교회의 명성을 이용하는 목사들과 교인들?  사람들이 치장한 교회의 화려함을 믿고 교회의 명성을 이용하여 세상에 나가서 돈을 우상화하여 "창녀짓" 하는 목사들과 교인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16:15, 23, 현대인의 성경).

 

(c)   아기 예수님이 뉘이신 구유”(2:7, 12 16) 계속해서 묵상할  아기 모세가 담겨졌던 갈대 상자”(2:3) 생각났습니다.  비록 구유 갈대 상자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성경에서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구원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물건이며특히 히브리어로   '테바(תֵּבָה)'라는 단어로 불린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인터넷).

 

(i)                  흥미로운 점은  모세의 갈대 상자는 히브리어로 '테바(תֵּבָה)'라고 불리는데노아의 방주도 히브리어로 '테바(תֵּבָה)'로서  단어는 물속에서 생명을 보전하는 상자를 통한 구원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구약에서  ‘'테바(תֵּבָה)'라는 단어가 사용된 스물여덟 번의 모든 경우는 노아가 만든 방주( 6–9) 아기 모세를 보호한 갈대 상자( 2:3-5)   이야기 속에만 나타납니다(참고인터넷).

 

·         여기서 노아의 방주 인류의 남은 자들을 보존한 것과 달리모세의 방주(“갈대 상자”) 하나님께서 언약의 민족을 애굽(이집트)에서 해방시킬 모세를 보존하였습니다(인터넷).

 

-          아기 예수님의 방주(“구유”)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창세 전에 택하신 교회를 죄에서 자유를 누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구원자 아기 그리스도 예수님을 보전하였습니다.

 

n  히브리어 테바’((תֵּבָה) 성경에서 스물여덟  등장하는데언제나 하나님이 설계하신 피난처를 가리키며그분의 백성을 심판의  가운데서  생명과 사명으로 인도합니다.  홍수에서부터(노아의 방주나일 (모세의 갈대 상자) 이르기까지 주제는 동일합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며그분이 정하신 방주 안에서 안전히 보장됩니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크신 방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안에서 믿는 자들이 영원한 안전을 누리게 됩니다(인터넷).

 

(3)   마지막 셋째 단어는, “강보”[“포대기”(현대인의 성경)입니다(2:7).

 

(a)    강보라는 단어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2 7절뿐만 아니라 12절에도 나오는데  구절 모두에서 마리아가 “그(아기 예수님) 강보에 싸서”라는 표현이 사용됩니다.   동사는  태어난 예수님을 향한 그녀의 의도적이고 세심한 돌봄을 나타냅니다(인터넷).

 

(i)                  아기를 강보로 싸는 것은 고대 근동에서 보편적인 관습이었습니다.  길고 좁은  조각을 어깨부터 발까지 단단히 감아 주어 따뜻함과 안전을 제공하고사지가 곧게 유지되도록 했습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모든 아이가 반드시 씻겨지고소금이나 기름으로 문질러진 ( 16:4), 강보에 싸여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는 환영과 정결언약 공동체에의 포함을 상징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가가 기록한 강보 언급은비록 가난과 정상적인 숙소에서의 배제로 인해 열악한 환경이었지만예수님이  신실한 유대인 어머니로부터 평범한 사랑과 언약적 돌봄을 받으셨음을 보여줍니다(인터넷).

 

(b)   저는  “강보”[“포대기”(현대인의 성경)](7, 12) 묵상할  요한복음 19 40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세마포 생각났습니다: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i)                  아기 예수님이 강보 싸여져 있었다(2:7, 12) 말씀은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말씀이라면예수님의 시체가 세마포에 싸여졌다(19:40)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         결국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과 관련된 강보 세마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히신 구원의 ”(61:10) 장차 구속받은 우리들에게 주어질 흰옷 생각하게 만듭니다: “내가 말하기를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