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언약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누가복음 1:70-75)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가랴 제사장(눅1:67)이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68절)하고 예언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 돌보사 속량하시며”(68절) “오래 전에 그의 거룩한 예언자(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 원수들과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70-71절, 현대인의 성경)을 베푸시고자 “그의 종 다윗의 집에서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주를 일으키셨”기 때문이었습니다(69절, 현대인의 성경).
(a) 여기서 사가랴가 성령 충만함을 받아 “우리 원수들과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71절, 현대인의 성경)이란 그저 그 당시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메시아(그리스도)가 오시면 그저 “우리 원수들과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인 로마 사람들로부터 정치적으로 해방시켜 주시는(political freedom) “구원”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원수인 마귀”(요일4:3, 현대인의 성경)요 우리의 “원수인 마귀”(벧전5:8)와 그의 세력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입니다(눅1:71, 현대인의 성경).
(i)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을 하나님의 백성[“그 백성”(68절)]에게 베푸시고자 “그의 종 다윗의 집에서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주를 일으키셨”는데(69절, 현대인의 성경) 그 “구원의 주”는 바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27절)로 하여금 성령으로 잉태케 하시사(마1:18, 20) 낳게하신 “예수”님입니다(눅1:31).
·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능력을 지닌 구세주 곧 메시야[“구원의 뿔”(69절)의 의미(호크마)]이신 “구원의 주”(69절,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을 이 땅에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나게 하시사 하나님의 백성을 “속량”(68절), 즉 죄에서 건져 주시는 구원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b) “우리 원수들과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71절, 현대인의 성경)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68절)께서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인데(72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입니다(73절).
(i)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 구원의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는 하나님이심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할 때 저는 호세아 11장 8절 말씀을 다시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는(2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시며 다시는 그들을 멸하지 아니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9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로하여금 자신을 좇게 하시며(10절) 결국에는 그들로하여금 “각 집에 머물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11절).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지 못하시며 버리지 못하셨습니다(8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사랑하며(1절) 그들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자신의 팔로 안은(3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 하면서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싫어 할 뿐만 아니라(5절) 돌아오지 않기로 결심한(7절)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사 버리지 않으신 것입니다(8절). 아니,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못하셨습니다.
- 이렇게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교회인 우리를 버리지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교회에게 그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이미 교회의 모든 죄를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독생자 예수님에게 맹렬한 진노를 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 삼으신 교회를 “사랑의 줄”(4절)로 매어 우리를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이끌어 주시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영원한 집으로 인도해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또한 시편 기자처럼 믿음으로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23:6).
(ii) 또한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 구원의 하나님은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시는(눅1:72) 하나님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할 때 저는 “나의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참고: 왕8:23), “나의 하나님은 나에게 약속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참고: 15, 18-19절), 그리고 “나의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다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참고: 20절)라고 묵상한 성경 말씀 묵상의 글을 다시금 읽게 되었습니다. 제가 결론에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 저는 언약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한 저는 언약의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들이 하나님의 좋은 약속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좋으신 언약의 하나님께서 저의 삶의 모든 상황들도 사용하시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롬8:28).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주신 모든 좋은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제 생각과 제 기대와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주신 모든 좋은 약속의 말씀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반드시 다 이루실 것입니다.
-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내 뜻을 이루며 내가 의도한 목적을 성취할 것이다”(사55:11),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며 인간이 아니시니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어찌 그가 말씀하시고 행하지 않으시며 약속하시고 지키지 않으시겠소?”(민23:19, 현대인의 성경).
(c)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다(눅1:72)는 말씀은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73절)로서 그 맹세란 창세기 22장 16-18절 말씀입니다(호크마):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i) 이 맹세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의 원수들이 정복될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구원은 단지 이스라엘이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되리라고 하는 정치적 해방을 가리킨다기보다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원수 마귀의 손에서 건짐을 받고(눅1:74) 죄와 사망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될 소위 영적 이스라엘의 구원을 가리킵니다(참고: 호크마).
· 이 영적 이스라엘의 구원은 주님의 교회의 구원이요 바로 우리의 구원으로서 그 목적은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주 앞에서 일평생 두려움 없이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주를 섬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75절).
- “구원의 결과: 주님을 섬기는 삶
n 새로운 삶의 방향: 구원받은 성도는 과거에 세상의 정욕과 쾌락을 따르던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삶의 목적과 방향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이들이 이제는 주님을 위해 살게 됩니다.
n 사랑과 헌신으로 섬김: 주님을 섬기는 것은 의무감이 아닌,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자발적인 헌신으로 이어집니다.
n 이웃 사랑의 실천: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셨으며, 제자들에게 서로를 섬기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이웃을 향한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n 착한 행실로 영광 돌림: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은 후 착한 행실의 열매를 맺으며 살도록 권면합니다. 이 모든 선한 일과 섬김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구원은 단순히 죄의 용서를 받는 사건을 넘어,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 사랑에 반응하여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