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비록 아무 사람들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헨리 나우웬).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더라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현대인의 성경) “사람들은 사가랴를 기다리다가 그가 성전 안에 너무 오래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사가랴가 드디어 밖으로 나왔으나 말을 하지 못하므로 사람들은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로 알았다. 사가랴는 사람들에게 손짓만 하고 말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있다가 그의 직무 기간이 끝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갔다”](누가복음 1:21-23)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백성들의 대표인 제사장 사가랴가 성소 안에 들어가 분향을 하는데 그 동안 백성들은 밖에서 기도하면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사가랴 제사장이 성전 안에서 너무 오래있으니까 백성들은 이상히 여긴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은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오래 지체하게 되면 제사장이 어떠한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성소 안에서 오랫동안 머물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Alford). 탈무드(Talmud)에도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는 잠시 동안만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Lenski). 따라서 제사장들은 가능한한 성소에서 속히 나와 백성들을 축복하고 해산시킨다”(호크마).
(a)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시피 사가랴 제사장은 어떠한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께 징벌을 받고 있었기에 성소 안에서 오래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그에게 아들 요한을 낳아 줄 것이라 하는 기쁜 소식을 듣고 가브리엘 천사와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13-20절).
(i) 저는 이 부분의 말씀을 묵상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지금도 교인들중에서는 주님의 종인 목사님이 어떠한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께 징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될 때 생각난 말씀은 바로 이사야 53장 4절입니다: “그는 우리의 질병을 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슬픔을 당하였으나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 고난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것은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릇된 생각입니다.
- 우리는 그릇된 생각을 합니다(사 53:4). 우리의 그릇된 생각이란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5절) 우리는 예수님께서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4절). 분명히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지시고(4절)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건만 우리는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며(신성모독죄) 성전을 모독한 죄로(성전모독죄)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그분의 고난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인데도 말입니다.
n 이러한 우리의 그릇된 생각의 뿌리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우리의 생각을 삐뚤어 놓습니다. 교만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와는 선악과를 보고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었을 뿐만 아니라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던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요한은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요일2:16).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로서 좆아온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으로 좇아온 것입니다(요일2:16). 이렇게 이생의 자랑은 그릇된 생각을 하게 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합니다.
(ii) 저는 이 부분의 말씀을 묵상할 때 주님이 종인 목사님을 통해 “축복” 받기를 사모하는 교인들 입장에서는 목사님이 교회 안에서만 있지 말고 좀 집으로 와서 또는 사업채로 와서 축복 기도해 주시기를 충분히 바라고 기대하고 기다릴 수 있으리라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그러나 목사님의 입장에서는 사가랴 제사장처럼 성소 안에서 하나님께 간구함이 들린 바 되어 기도 응답을 받을 것이기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을 것입니다(참고: 13-14절). 또한 목사님은 주님께서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21:16), “내 양을 먹이라”(17절)하고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양 떼들을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려고 성전 안에서 노력하고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렇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또한 “내 양을 치라”(16절)고 말씀하셨기에 목사님은 주님의 양떼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여야 할뿐만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돌봐야 하는 책임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2) 사가랴 제사장이 드디어 밖으로 나왔으나 말을 하지 못하므로 사람들은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로 알았다는 말씀(눅1:22, 현대인의 성경)을 묵상할 때 왜 사람들이 그리 생각을 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왜 그들은 사가랴 제사장이 말을 하지 못했던 이유가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로 알았을까요?
(a) 성경에서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미래를 보여주시기도 하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상을 보았기 때문에 말을 하지 못하게 된 직접적인 경우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모세는 하나님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변명한 적이 있고(출4:10-12), 다니엘의 경우 환상을 본 뒤 기쁨을 잃고 몸이 쇠약해졌던 기록이 있습니다(단10:8-15). 이처럼 환상으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변화를 겪을 수 있지만, 말을 못 하게 되는 경우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습니다(AI 개요).
(i) 실제로 사가랴 제사장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보았기에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니라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메시지, 즉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지어야 한다는 소식(13절)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사가랴 제사장은 그의 불신앙의 징계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참고: AI 개요): “네가 내 말을 믿지 않았으므로 이런 일이 일어날 때까지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할 것이다. …”(20절상, 현대인의 성경).
· 성경에 따르면 제사장의 불신앙의 징계는 직무 수행 중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아론의 두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지 않은 다른 불을 사용해 향을 피우다가 불에 타 죽임을 당하는 징계를 받았습니다(레10:1-2). 이는 제사장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할 때 엄격한 징계가 따랐음을 보여줍니다(AI 개요).
- “성경에서 불신앙에 대한 징계는 주로 하나님의 심판 또는 징계적 고난으로 나타나며, 이는 죄를 깨우치고 회개시키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과 원망으로 광야에서 헤매게 된 것이 대표적인 예시이며, 불신앙은 삶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약속된 축복을 잃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AI 개요).
(3) 사가랴 제사장이 사람들에게 손짓만 하고 말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있다가 그의 직무 기간이 끝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갔다(눅1:22-23, 현대인의 성경)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사가랴 제사장이 사람들에게 손짓만 하고 말을 하지 못했다는 말씀의 의미는 그가 말을 못할 뿐만 아니라 듣지도 못하였기에 손짓, 몸짓으로 그의 뜻을 전달한 것입니다(호크마).
(a)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어쩌면 사가랴 제사장이 말을 못할 뿐만 아니라 듣지 못하였을 때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들은 하나님의 약속(말씀)[(13절)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을 믿지 않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뒤돌아보면서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리면서 “때가 되면 내 말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20절, 현대인의 성경)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13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듭니다.
(i) 이것을 우리 각자에게 적용을 한다면, 사람들의 말을 듣기를 속히 하기보다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속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 말씀에 우리가 붙들린바 되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조용한 시간을 홀로 주님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침묵은 비록 아무 사람들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헨리 나우웬). 그리고 침묵이란 많은 사람들의 거짓 증언과 비난과 수군수군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는 말들을 듣는 가운데서도 오직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참고: 고후 1:9, 현대인의 성경)의 음성만 듣고 그 말씀에 묵묵히 믿음으로 겸손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b) 사가랴 제사장이 “그의 직무 기간이 끝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갔다”(눅1:23,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사가랴 제사장은 자기이 제사직을 수행한 후 고향 집으로 돌아가 결국에 가서는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임신하게 되었는데(24절) 저 같은 목사도 매일매일 저의 직무 시간이 끝나면 집에서 제 가정 사역을 감당하되 교회 사역과 가정 사역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올바르며 균형있게 묵묵히 신실하게 잘 감당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i)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저에게 주어진 사역은 “말씀 묵상 나눔 사역” 및 “책 선물 사역”과 “가정 사역”과 “교회 사역”(목회)와 “인터넷 사역”입니다. 이 주어진 모든 사역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더욱더 수고하되(참고: 고전15:10) 이렇게 "사역은 여러 가지"이지만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고전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