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앞에 큰 자"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누가복음 1:14-17)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주 앞에 큰 자”[“주 앞에서 위대한 사람”(현대인의 성경)](눅1:15)[또는 ‘주 앞에서 덕스러운/권위있는 사람’(참고: 호크마)]는 어떠한 사람인지 주님의 천사(11절, 현대인의 성경)가 사가랴에게 그와 그의 아내인 엘리사벳 사이에 태어날 (세례) 요한(13절)에 대해 오늘 본문 누가복음 1장 14-17절 말씀 중심으로 좀 몇 가지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a) 첫째로, “주 앞에 큰 자”는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합니다(15절).
(i)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나실인에 대한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민6:1-4).
· 여기서 “나실인”이란 히브리어 단어 "나지르(נזיר)"는 "거룩하게 된", "분리된" 또는 "헌신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히브리어 성경에서 일정 기간 또는 평생 동안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기로 서약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나실인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고, 머리를 깎지 않으며,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는 등 특별한 규례를 지키며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삼손, 사무엘, 세례 요한 등이 있습니다(AI 개요).
· 나실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구별하고 헌신하기 위해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았는데, 이는 '구별됨'과 '세속적인 쾌락을 거부하는 헌신'의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포도주와 독주는 일상적인 음식과 쾌락을 대표하며, 이를 거부함으로써 나실인은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바치는 신앙적 결단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것은 율법에 따라 자신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정결하게 지키는 행위이기도 했습니다(AI 개요).
(ii) 저는 누가복음1장 15절 상반절 말씀을 묵상할 때 잠언 31장 4-5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들에게 마땅하지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들의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이 말씀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그녀의 아들인 르무엘 왕을 훈계한 잠언 말씀(1절) 중 한 부분입니다.
· 그 어머니가 아들인 르무엘 왕에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훈계한 이유는 왕이 술에 취하면 법을 잊어버려서 곤궁한 백성에게 억울한 재판을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5절, 박윤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왕이 술에 취하면 사고력과 판단력이 약해지고, 유죄 판결을 풀지 못하며 또는 마음을 왜곡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술취함은 명확하고 꾸준한 마음과 예리한 판단이 필요한 통치자에게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맥아더).
-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통이나 가난을 잊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참고: 6-7절).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말씀)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아무리 우리의 고통이나 가난이 극심하다가 우리는 술취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 이유는 성경 로마서 13장 13절에서 술취함은 어두움의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 베드로전서 4장 3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술취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요 사람의 정욕을 따라사는 것이기에 우리는 술취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가 술취하지 말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누가복음 21장 34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술취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이 둔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도서 2장 3절에서 전도사 솔로몬 왕이 고백했던 것처럼 술취함으로 괘락을 누려보려는 것은 어리석기에 우리는 술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 중에 있을 술에 취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가까이하여 그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잠31:5). 우리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차 있을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르십니다(사54:6,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입니다(요14:1). 그러므로 우리는 근심 중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근심의 짐을 다 맡겨야 합니다(벧전5:7).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심된 마음을 위로해 주시사 우리의 영혼을 즐겁게 하실 것입니다(시94:19).
(b) 둘째로, “주 앞에 큰 자”는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함을 받”습니다(눅1:15).
(i) 여기서 (세레) 요한이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함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과 은혜를 받아, 일반적인 사람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사명(예언자, 예수 그리스도의 선구자)을 감당할 수 있는 영적인 준비와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그가 세례 요한으로서 큰 자가 되고,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예수님을 위한 백성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을 예고합니다(AI 개요).
· “특별한 부르심과 사명: 세례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독특하고 중요한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 영적 능력과 준비: '성령 충만'은 그가 인간적인 능력만으로는 할 수 없는 영적인 큰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구별된 삶: 그는 술이나 독한 술을 멀리하는 나실인과 같은 금욕적인 삶을 살게 되는데, 이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의 삶을 보여줍니다”(AI 개요).
(ii)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성령”이란 단어를 12회 사용했는데, 그 중 누가복음 1장에서만 4회(15, 35, 41, 67절)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이란 단어를 무려 41회나 사용하였습니다(호크마).
· 메시아(그리스도)가 오심에 있어 성령님의 활동은 그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놀라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아니한 태아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는 사실입니다(호크마).
(iii) 저는 누가복음 1장 15절 말씀을 묵상할 때 에베소서 5장 18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현대인의 성경) “술 취하지 마십시오. 이것 때문에 방탕하게 됩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 이 말씀을 보면 술에 취하게 되면 방탕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는 것은 술의 알코올에 의해 중추신경이 지배되는 것처럼, 술의 통제 아래 자신을 내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AI 개요).
- 잠언 20장 1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 이 말씀의 히브리어를 개역하면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싸우게 하는 것이라 …”입니다(박윤선). 여기서 포도주와 독주가 우리에게 끼치는 악영향은 우리를 거만케 하며 또한 싸우게 한다는 것입니다.
n 사람이 술취하게 되면 사단에게 마음을 빼았겨(호4:11) 자신의 교만함과 거만함을 들어내면서 자기 자신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분노함도 들어냅니다(참고: 사16:6). 그러기에 술 좌석에서 다툼과 싸움이 일어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잠20:1).
n 포도주와 독주가 우리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lead astray)는 것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되 포도주와 독주는 우리로 하여금 미련한 길로 이끕니다. 미련한 길로 이끌되 우리로 하여금 당장 분노를 나타내어(잠12:16) 다툼을 일으키게 할 뿐만 아니라(20:3) 우리로 하여금 죄를 심상히 여기게 만듭니다(14:9). 결국 포도주와 독주란 우리 자신의 미련함을 나타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에베소서 5장 15-17절 현대인의 성경은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지혜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있는 사람처럼 시간을 아끼십시오. 이 시대는 악합니다. 여러분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십시오.”
· 에베소서 5장 18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님이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인도하도록 전적으로 굴복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는 성령님께서 공급하시는 지혜와 능력, 그리고 기쁨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상태입니다. 성령 충만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령님과 교제하고 인도하심을 구하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해지는 과정에서 계속해서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참고: AI 개요).
- “성령 충만의 의미:
n 성령님의 인도와 지배: 술에 취한 사람이 술에 전적으로 지배되듯이, 성령이 우리 삶의 중심을 사로잡아 지배하도록 맡기는 상태입니다.
n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성령 충만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힘을 의미합니다.
n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그분과 온전히 하나 되는 삶을 말합니다.
- 성령 충만의 결과:
n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성령 충만은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그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합니다.
n 참된 예배와 인간관계: 성령 충만할 때 참된 예배를 드리게 되고, 서로를 존중하고 복종하는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됩니다.
n 말씀의 깊은 이해: 성령은 우리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n 하나님 나라의 확장: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복음 전파와 봉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앞장섭니다.
- 성령 충만함을 받는 방법:
n 간절한 사모함과 기도: 술 취함과 같이 성령을 마시듯이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n 지속적인 회개: 자신의 죄를 철저히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은 성령 충만을 받는 데 필수적입니다.
n 하나님의 말씀과의 교제: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AI 개요).
(c) 셋째로, “주 앞에 큰 자”는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눅1:16).
(i) “주 앞에 큰 자”였던 (세례) 요한은 구약 시대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400년 침묵 시대를 끝내고 예수님의 시대를 여는 역할을 했습니다. 즉,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예고하고 그분이 오실 때가 되었음을 선포한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엘리야 선지자의 영과 능력을 가지고 와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했습니다(AI 개요).
· 선지자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인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었는데(렘3:7, 10; 겔3:19; 단9:13) (세례) 요한의 사역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회개의 사역이었습니다(Alford, 호크마). 그래서 그는 유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고 외쳤습니다(마3:1-2).
- 결국 (세례) 요한은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여 그의 뒤에 오실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였습니다(호크마). 그러므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눅7:28).
n 이 말씀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율법의 모든 예언이 세례 요한을 통해 마무리되었고, 따라서 그 시대까지 활동한 인물 중에서는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AI 개요).
(ii)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다니엘 12장 3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하리라.”
· 이 성경구절은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제 아버님께서 저에게 "지원"(지혜 "지"자 으뜸 "원")이란 이름을 지어주시고 이 성경구절 말씀을 저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 이 말씀에 의하면 지혜 있는 자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지혜 로운 자들은 많은 사람을 가르칠 것이나 마지막 때에 인류 역사상 최대의 환난이 있을 것이고(1절) 그들은 언제나 위험을 당하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환난과 핍박으로 인해(11:33) 일부는 죽임을 당하겠지만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연단을 받아 정결하고 깨끗하게 될 것이며 이런 일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35 절). 시련과 박해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될 것이나 악한 사람은 계속 악을 행할 것입니다.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것이며 오직 지혜로운 자만 깨달을 것입니다 (12:10).
(d) 마지막 넷째로, “주 앞에 큰 자”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할 것입니다(눅1:17).
(i) 여기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란 말씀의 의미는 (세례) 요한은 엘리야가 지녔던 기질이나 영향력, 그리고 엘리야가 하나님께 받은 능력같은 것을 가지고 사역을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호크마).
· 유대인들 가운데는 메시야가 오시기전에 선지자 엘리야가 먼저 와서 주의 길을 예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사 40:1; 말 3:1-5; 4:5, 6). 이것은 말라기 선지자때부터 요한이 탄생할 때까지 약 400년 동안의 유대인들의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세레) 요한은 전생애가 엘리야와 너무도 비슷했습니다. 삶과 사역을 통해 그 유사성은 더욱 확연히 들어납니다. 광야에서의 삶(털옷과 가죽띠를 두르고)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회개를 선포한 사실(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에게 회개를 요청하고 탄압을 당했으며 요한은 헤롯과 헤로디아에게서 박해를 받는다) 등이 그러합니다(호크마).
(ii) 여기 누가복음 1장 17절에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 돌아오게 하고”라는 말씀은 말라기 4장 6절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호크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
· 이 말라기 4장 6절 말씀은 마지막 때에 보내질 엘리야 선지자[(세례) 요한]의 사역을 통해 아버지의 마음은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은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회복을 예언합니다. 이는 율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떠났던 백성들이 회개하고, 가정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며, 말라기서를 마무리하는 중요한 약속입니다(AI 개요).
- 저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묵상할 때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그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는 탕자인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자기 분깃으로 받은 자기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갔을 때(12-13절) 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20절). 그러다가 그 아버지는 자기의 둘째 아들이 궁핍함 가운데서(13-17절)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멀리서 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그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췄습니다(20절). 그리고 그 아버지는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그 아들에게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서 함께 먹고 즐기자고 말했습니다(22-23절). 그 이유는 그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잃었다가 다시 얻었고(찾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았기 때문입니다(24절).
n 저는 여태껏 이 탕자의 비유를 생각할 때 아버지의 입장에서 돌아와야 할 아들은 집 나간 둘째 아들이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예레미야 26장 3, 13절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어쩌면 그 탕자의 비유에서 진정으로 돌아와야 할 아들은 맏아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게 된 이유는 둘째 아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쳐 자기 집과 자기 아버지께로 돌아갔지만 맏아들은 자기 동생이 돌아왔을 때 자기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하기보다 아버지를 향하여 분노하는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눅15:28-30). 특히 둘째 아들은 ‘나 행한 것 죄(sin)밖에 없습니다’하고 겸손한 자세와 은혜의식을 가지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아버지께로 돌아간 반면에(18-21절) 맏아들은 ‘나 행한 것 의(righteousness) 밖에 없습니다’하고 “자기-의”(self-righteousness)를 내세우는 교만한 자세와 공로의식으로 아버지에게로부터 멀리 떠나있었기에(29절) 진정으로 아버지께 돌아갔어야 할 자는 맏아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iii) 여기 누가복음 1장 17절에서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새번역) “거역하는 자들을 의인의 지혜의 길로 돌아서게 해서”]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반역하고 거스르는 사람들을 의롭고 지혜로운 사람의 올바른 지혜와 행동으로 돌이키고, 회개하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AI 개용).
· 여기서 “거스르는 자”란 헬라어 단어인 “ἀπειθής”가 신약 성경에 여섯 번 사용될 때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에 순종하여 응답하기를 거부하는 도덕적 상태를 일관되게 묘사합니다. 즉 영적으로 불순종함(spiritual disobedience)과 불신(unbelief)을 말합니다(인터넷).
- 예수님은 완전하고 자원하는 순종을 몸소 나타내셨습니다(빌 2:8; 히 5:8). 이러한 배경 속에서 “ἀπειθής”(“거스르는 자”)는 아담적인 자기 주장과 그리스도를 닮은 순종 사이의 깊은 간극을 드러냅니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서 예언된 (세례) 요한의 사명은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었으며,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하여 반역적인 마음이 오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하도록 부르는 것이었습니다(인터넷).
(iv) 여기 누가복음 1장 17절에서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현대인의 성경) “백성들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라는 말씀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하며, 사람들을 회개시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AI 개요).
· (세례) 요한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태어나며, 엘리야의 영과 능력으로 주님 앞에 먼저 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고, 주님을 믿고 따를 백성들을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AI 개요).
- 이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을 넘어, 영적인 준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 계획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사명입니다(AI 개요).
·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계22:20).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막13:31,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32, 33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33절, 현대인의 성경; 참고: 35, 37절,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 갑자기 오셔서 우리가 자는 것을 보지 않게 해야 합니다(36절, 현대인의 성경). 오히려 우리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하고 말하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참고: 눅1:17, 현대인의 성경).
(2)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인 (세례) 요한이 “주 앞에서 큰 자”(눅1:15)가 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큰 자”[(32절), (세례) 요한처럼 “주 앞에서”(15절)란 수식어가 없음]이신 “예수”님(31절) 덕분입니다(참고: 호크마).
(a) 우리도 “큰 자”이신 “예수”님 덕분에 (세례) 요한처럼 “주 앞에서 큰 자”가 되길 기원합니다.
(i) 우리 모두 술에 취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취하십시다.
(ii) 우리 모두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으십시다.
(iii) 우리 모두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고 전파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회개의 사역을 감당하십시다.
(iv) 우리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떠나 영적으로 불순종하고 불신하는 사람들로하여금 회개하고, 가정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와 주님을 믿고 따르게하면서 우리 주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임무를 전심전력으로 수행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