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가 아니라 회개입니다.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현대인의 성경) “이른 아침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의회 전체 회의를 열어 결의한 후 예수님을 묶어서 끌고 가 빌라도에게 넘겼다”](마가복음15:1)하고 마가는 기록하였지만 마태는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마태복음27:1-2)하고 기록한 후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에게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6-10절).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마27:1)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는데(2절; 막15:1) 여기서 “결박”이란 두 손을 뒤로 모으고 포승으로 묶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사형과 같은 극형을 인도받는 자들을 인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호크마). 예수님은 이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원들에게는 사형수였습니다. 즉, 그들은 모두 예수님이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막14:64, 현대인의 성경).
(a) 그들이 새벽에 예수님을 정죄하고 로마의 판결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로마 법정으로 끌고 가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 비록 산헤드린 공회가 사형 판결을 내릴 수 있었으나 사형 집행은 직접 할 수 없었습니다. 판결을 받은 죄수는 로마 정부에 넘겨져 사형 선고를 받고 형이 집행되어야 했습니다(호크마).
(i) 로마 제국을 대표하는 행정 책임자였던 총독 빌라도는 유다와 사마리아를 관할하고 있었는데 유대사 요세푸스(Josephus) 등의 증언에 따르면 잔인하고 전제적이며, 자신의 수하에 있는 유대인 관리들을 싫어하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매우 외골수적인 지배자였던 것 같습니다 (Jos.Antiq.XVIII,35,55-62; Wars II,169-177). 또한 그는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구별된(고르반) 돈을 훔쳐 수도가 설비로 유용했으뗘, 이에 예루살렘 주민들이 반발하여 폭동을 일으켰을 때군대를 파견하여 많은 양민을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더럽힌 적도 있었습니다(눅 13: 1)(호크마).
(2) 그때 예수님을 팔아 넘긴 가룟 유다는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가 내린 것[예수님의 정죄함(개역개정)]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은화 30개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돌려주며 '내가 죄 없는 사람을 죽이려고 팔았으니 정말 큰 죄를 지었소'[“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개역개정)] 한 후 그 돈을 성전에 내던지고 나가서 목매달라 자살하였습니다(마태복음27:3-5, 현대인의 성경).
(a) 여기서 “스스로 뉘우쳐”(3절)란 헬라어 “메타멜레데이스”는 마음과 삶의 전적인 변화를 뜻하는 “메타노에인”(회개하다)보다는 상당히 약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자신의 행위를 뒤돌아보고 단순히 괴로워하며 '후회'하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죄 청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단지 인간적 후회의 차원에서만 바꾸는 것입니다(호크마).
(i) 두 헬라어 동사인 “메타멜레데이스”와 “메타노에인”은 ‘회개하다’로 변역될 수 있지만, 성경적 뉘앙스 때문에 두 동사는 구별됩니다: (1) “메타멜로마이”는 과거의 결정에 대한 고통, 즉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에(마 27:3), (2) “메타노에오”는 의지, 즉 하나님께로의 의도적인 돌이킴에 초점을 맞춥니다(행3:19).
· 가룟 유다는 하나님께로의 의도적인 돌이킴(회개)이 아닌 후회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회는 결코 믿음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복음적 희망이 없는 후회는 절망으로 끝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인터넷).
- 우리는 그저 스스로 뉘우치는 후회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우리는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합니다[회개한 것을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합니다(현대인의 성경)](행26:20).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했다는 것을 보여줄만한 바른 행동을 해야 합니다(마3:8, 현대인의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