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무지의 필연적인 결과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신성 모독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마가복음14:63-65)하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은 행동은 극한 슬픔에 직면했거나 의로운 분노의 한 표현으로 행하던 유대인들의 전통적 행동이었습니다(왕하1:37; 1 Macc.11:71). 특히 랍비들이 규정한 바에 의하면 율법에 중대한 위협이 발생했을 때 법관은 일어나 옷을 찢도록 했습니다(호크마). 가야바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은 이유는 예수님께서 “신성 모독하는 말”(막14:64; 마26:65)이였기 때문입니다.
(a) 그 “신성 모독하는 말”이란 가야바 대제사장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메시아)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신성 모독의 가장 중한 범죄자가 된 것입니다(호크마). 레위기 24장 16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i) 그러나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누구이신지 자기의 존재를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호크마).
(2)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신성 모독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막14:63-64)하고 가야바 대제사장이 말했는데 산헤드린을 위시한 군중들은 만장 일치로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였습니다(64절)(참고: 호크마).
(a) 가야바 대제사장의 입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신성 모독죄를 범하였기에 “더 증인을 요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헤드린을 위시한 군중들도 “이 이상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이 사람(예수님)이 직접 하는 말을 다 들었다”하고 외친 것입니다(눅22:71, 현대인의 성경).
(i) 가야바 대제사장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에게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에게 묻는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마26:63, 현대인의 성경)하는 질문을 통해 예수님을 처형할 합법적 이유를 구체적으로 마련하려고 했었는데 그가 원하는데로 예수님이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막14:62)하고 말씀하심으로 율법적으로 신성 모독의 죄를 범했다고 말한 것입니다(64절).
· 그러니까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였습니다(64절).
(b)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실 때 성령님으로 잉태되시고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이 땅에 오시되 죄가 없으신 온전한(완전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성자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인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죄의 형벌인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롬8:3) 오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신 데 연약한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렇게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성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옮기셔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셨습니다[“육신의 죄를 정하사”(3절)].
(i)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영원히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근거하여 죄인인 우리를 의롭다 하셨은즉 누가 우리를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정죄하실 수 있으신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기에 어느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가 없습니다! 로마서 8장 3절 말씀입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현대인의 성경) “우리의 타락한 성품 때문에 율법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우리의 죄값을 그에게 담당시키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6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 결과는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고, 다 나음을 받았으며 또한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3)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막14:65)하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사야 50장 6절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호크마):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a) 실로 불법 판결이 끝나자 주위에 기다리고 있던 하속들이 차마 말로 다할 수 없는 수모와 학대와 조롱을 일삼은 것입니다(막 14:65). 정녕 그들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최악의 수치를 예수께 안겨준 것입니다. 여기서 남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더할 수 없는 모욕입니다(민 12:14 ; 욥 30:10). 그리고 “주먹으로 치며 ... 손바닥으로 치더라”(막14:65)란 말씀은 도무지 반격할 수 없는 자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은 더더욱 야만적입니다(호크마).
(i) 한편 누가는 이때 그들이 예수를 조롱하고 구타하기 위해 얼굴을 가리웠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눅 22:64). 이와 함께 마태복음26장 67절에서 “손바닥으로 때리며”(헬라어: “에르라피산)는 '몽둥이로 때리다' 뜻하는 헬라어 “라피스 마”에서 유래한 단어로 그 당시 하속들은 손바닥뿐 아니라 몽둥이로도 예수를 심하게 구타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호크마).
· 실로 그들은 신성 모독자를 구타한 것이 아니라 신성 모독의 범죄를 자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영적 무지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호크마).